배달국(倍達國)의 역대기(歷代記)
제 1대 거발한(居發桓) 환웅천왕 재위 94년 120세
제 2대 거불리(居佛理) 환웅천왕 재위86년 102세
제 3대 우야고(右耶古) 환웅천왕 재위 99년 135세
제 4대 모사라(慕士羅) 환웅천왕 재위 107년에 129세
제 5대 태우의(太虞儀) 환웅천왕 재위 93년에 115세
제 6대 다의발(多儀發) 환웅천왕 재위 98년에 110세
제 7대 거련(居連) 환웅천왕 재위 81년에 140세
제 8대 안부련(安夫連) 환웅천왕 재위 73년에 94세
제 9대 양운(養雲) 환웅천왕 재위 96년에 139세
제 10대 갈고(葛古) 환웅천왕 재위 100년에 125세
제 11대 거야발(居耶發) 환웅천왕 재위 92년에 149세
제 12대 주무신(州武愼) 환웅천왕 재위 105년에 123세
제 13대 사와라(斯瓦羅) 환웅천왕 재위 67년에 100세
제 14대 자오지(慈烏智) 환웅천왕 또는 치우천왕(蚩尤天王) 재위 109년에 151세
제 15대 치액특(蚩額特) 환웅천왕 재위 89년에 118세
제 16대 축다리(祝多利) 환웅천왕 재위 56년에 99세
제 17대 혁다세(赫多世) 환웅천왕 재위 72년에 97세
제 18대 거불단(居弗檀) 환웅천왕 혹은 단웅(檀雄)이라 함. 재위 48년에 82세까지 사셨다.
배달국 역대 환웅천왕의 업적
제 1대 거발한(居發桓) 환웅천왕 재위 94년. 120세
분국의 준비 : 환인천제(桓仁天帝)가 직접 다스린 나라인 환국(桓國)의 우루국은 수 만년을 이어 오면서 처음에는 부유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인구는 늘어나고, 산업이 궁핍하여지자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다.
환국(桓國)의 7세(世=왕조?) 지위리(智爲利) 환인천제 시대에 이르러 환국(桓國)의 도읍지 우루국(虞婁國)은 산업의 궁핍함으로 인구를 분산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지위리(智爲利) 환인천제께서는 자식 같은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을 알고, 인구분산을 위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울만한 곳을 물색하게 되고, 이에 필요한 준비를 갖추게 하였다.
지위리(智爲利) 환인천제의 명을 받은 오가(五加)의 국인(國人)들은 환국(桓國)의 변방인 천해 동남쪽에 있는 금악(金岳)과 환국의 중앙에 있는 삼위(三危)산과 태백(太白)산 주변을 살펴보고, 이 세 곳을 환인천제(桓仁天帝)께 추천하니, 그때에 안파견(安巴堅)으로 추앙 받는 지위리(智爲利) 환인천제께서 금악(金岳), 삼위(三危-현 중국 감숙성 지방), 태백(太白-현 섬서성 서안(西安)지방)지역을 두루 살피더니, 태백(太白)이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할 수 있는 곳이라 하시며, 세 곳 중에 태백(太白)을 택하였다.
그런 연후에 말씀하시기를,「그러면 누구를 책임자로 보낼 것인가.」를 묻자, 오가(五加)의 국인(國人)들이 하나같이 대답하기를,
「서자부(庶子部→현 행정부)에 환웅(桓雄)이라는 대인(大人)이 있는데, 그 용맹함과 더불어 어질고 지혜가 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弘益人間)하여 세상을 바꿀 뜻을 가졌사오니, 그를 태백(太白)으로 보내어 다스리게 함이 좋을 듯합니다.」라고 하며, 환웅(桓雄)을 추대하였다.
환웅(桓雄)은 대인(大人)으로써 서자부(庶子部)에서, 평소에 많은 국인(國人)들과 백성들에게 정(情)을 베풀고, 여론을 깊이 들으며, 지상에 하나의 새로운 광명세계(光明世界)를 세우려는 큰 뜻을 가지고, 새로운 땅으로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에 지위리(智爲利) 환인천제께서 대인(大人) 환웅(桓雄)을 새 지도자로 명하여 떠날 채비를 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환웅(桓雄)을 정점으로 분국(分國)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울 준비를 하였다. 우선 환웅(桓雄)을 따라갈
무리들을 모았으니, 삼천의 무리가 되었다. 삼천무리의 한 무리는 최소한 가족단위로 보아야 할 것이며 5〜8명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가서 터를 닦고 살 수 있는 재물과 집(움막)을 지을 자재를 준비하고, 농사를 지을 각종 씨앗과 불을 일으키는 부싯돌을 비롯하여 생활의 도구 등, 여러 가지 산업을 마련하고, 환국(桓國)의 문화적 유산 즉, 학문 등을 전수(傳受) 받았다. 수년이 걸렸다. 이렇게 준비가 끝나자 지위리(智爲利) 환인천제께서 대인(大人) 환웅(桓雄)을 불러 명하였다.
「이제 사람(人)과 재물(財物)과 산업(産業)이 정하여 졌으니, 군(君)이 수고스럽지만 이들을 인솔하여 태백(太白)에 가서 나라를 열어 뜻을 펴고,(開天:개천) 변함없는 인륜의 도리를 세워 가르침을 베풀어 스승의 도(道)를 세우고(立敎),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祭祀)를 주관하여라(祭天). 그리고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도록 하여라(父權確立). 태백에 가면 현지의 사정을 잘 살피고, 백성들의 형편도 살펴서 그에 합당한 이치로 삼천무리를 다스려라(在世理化:재세이화).
그렇게 하여 모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크게 도와서, 자손만대(萬代)에 걸쳐 천하(天下)의 모범이 되게 하라.(弘益人間:홍익인간)」고 하면서, 백성을 통솔하고, 재물을 관리하고, 산업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의 상징인 천부인(天符印-환인천제의 옥새) 세 개를 주어 선택된 무리들이 따르고 순종하게 하여, 겨울이 지나 새 봄에 태백(太白)으로 출발시켰다.
당시의 운반수단은 주로 낙타와 말을 사용하였다. 최초의 민족이동이기도 한 것이다.
따르던 무리들 중에 반고(盤固)라는 부장이 있었는데 우루국에서부터 여러 가지 기이한 술법(術法)을 좋아하고 행하던 자였다. 환웅(桓雄)을 따라 태백을 향하여 가던 도중, 반고(盤固)가 환웅(桓雄)에게 길을 나누어 가기를 청하였고, 환웅(桓雄)은 이를 허락하였다.
이에 반고(盤固)는 자기를 추종하는 술법(術法)에 밝은 장수들과 함께, 재물과 보물을 나누어 받고, 따르는 장인(匠人)들과 더불어 움막을 지을 재료 및 농사지을 각종 씨앗과 불씨를 일으킬 부싯돌을 비롯하여 생활의 도구와 운반수단인 낙타와 말 등을 분배 받아, 삼위산(三危山-현 감숙성 란저우 남쪽) 쪽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삼위산(三危山)의 납림(拉林)지역에 이르러, 그 곳의 지역사람들을 교화(敎化)하여 임금이 되었으니, 이를 반고가한(盤固可汗)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환웅을 떠난 반고(盤固)를, 오늘날 중국의 지나 한족(漢族)은 반고(盤固)를 한족(漢族)의 시조(始祖)로 삼고, 반고가 개천(開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중국사-사마천사기 참조)
환웅(桓雄)은 반고(盤固)와 그의 추종자들을 보내고, 남은 무리를 이끌고 드디어 태백산(太白山-현 중국 서안 쪽)에 도착하여, 태백산 한 줄기에 신단(神壇)을 세우고, 그 아래 주위를 신성(神聖)하게 하여, 이곳을 도읍지로 정하여 신시(神巿)라고 선포하고, 백성들을 널리 배치하고, 나라를 열어 그 이름을 배달(倍達=밝다. 라는 뜻)이라 하여, 오랜 숙원인 광명세계를 이루려 했던 뜻을 펴기 시작했다. 이때가 바로 10월 상달이었다.
이를 고기(古記)에서는 개천(開天)이라 하였다. 실로 개천(開天)의 주인은 단군왕검 황제가 아닌 환웅천왕이시다. 따라서 오늘날 개천절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려면, 단군기원(檀君紀元)이 아닌 환웅의 개천기원(開天紀元)을 민족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환웅(桓雄)께서는 지위리(智爲利) 환인천제의 가르침과 조서를 따라 변함없는 인륜의 도리를 세워 가르침을 베풀어 스승의 도(道)를 세웠으며, 하느님께 제사(祭祀)를 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 부계(父系)사회를 이루어가게 하였으며, 서로 돕고 이끌고 보살펴서, 하나같이 평등함과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였다.
다음으로 환웅께서는 태백산 현지의 사정을 잘 살펴서 현지사정에 맞는 이치와 순리에 따라 백성들을 잘 교화(敎化)하고 다스렸으니, 이를 재세이화(在世理化)라고 한다.
이렇게 환국(桓國)으로부터 긴 여행 끝에, 개천(開天)하고, 입교(立敎)하며, 제천(祭天)하고, 부권(父權)을 확립하도록, 재세이화(在世理化)하여, 여러 면으로 백성들을 크게 도와, 모든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였으며, 자손만대(萬代)에 걸쳐 천하(天下)의 모범이 되게 하였으니, 이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하는 것이며, 이는 국가 지도자가 국가와 백성을 다스리는 정신이요, 통치방법이 되었다.
환웅천왕(桓雄天王)께서는 혼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음을 알고,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인 참모를 거느리고, 주곡(主穀), 주명(主命), 주형(主刑), 주병(主病), 주선악(主善惡)의 오사(五事)로 백성을 다스릴 책임자를 세우고, 무릇 인간생활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게 하였으니, 이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칭송을 하였다.
환웅천왕(桓雄天王)이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하늘의 뜻을 펴서 백성을 다스리시며, 또한 인륜도덕의 가르침을 베풀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환국(桓國)에서 전수 받은 천부경(天符經)을 널리 펴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론하여 가르쳤다.
신단(神壇)을 수립하여 하느님께 제사(祭祀)를 지낸 곳을 소도(蘇塗)라 하여, 그곳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나라가 관장할 수 있는 경계(境界)를 정하여 백성을 보호하고, 책임과 잘못을 물어 다스리고, 국인(國人)들과 더불어 의논하여, 여러 의견을 하나로 귀결하는 만장일치의 화백(和白)을 통하여 결정하고, 아울러 지혜로움과 삶을 나란히 수행(修行)하여, 인간으로써 온전함을 이루면서 살게 하였다.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은 국인(國人)들의 뜻을 항상 받아드리며, 국인(國人)들에게 백성들의 모범이 되도록 주의하여 이르기를,
「부모를 반드시 공경해야 하며, 처와 자식을 반드시 보호해야 하며, 형과 아우는 반드시 서로 사랑해야 하며, 노인과 장년을 반드시 정성스럽게 대하여야 하며, 어린이와 약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야 하며, 일반 사람과 대중을 반드시 믿음으로 대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또, 제도에 있어서 의술을 펴고, 약을 지어주며, 물건을 만들고, 짐승을 기르게 하고, 농사를 짓고, 날씨를 살피고, 예의와 범절을 지키며, 학문과 글자공부를 법으로 정하여 하나같이 교화(敎化)하니, 가깝고 멀고 간에 백성들이 모두 서로 의심하지 않았다.baedalung@hanmail.net
*필자/송부웅. 한민족상고역사연구회 연수원장. 역사전문 칼럼니스트.
배달국 역대 환웅천왕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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