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과 어리석은 것,
어떤 때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 아니 어리석은 일을 하고서
혼자서 얼굴을 붉힐 때가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그때를 반추해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나를 본다.
시간이 흘러서 그런가? 아니면 진실로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가?
마음이 매 순간 변하기 때문에 그런가?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글에도 그와 비슷한 글이 실려 있다.
“그것은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오히려 대립적인 것이다.
‘아름다운’이라는 것은 아마도 여느 때보다도 더 좋았던 시간이고,
‘어리석은’이라는 것은 여느 때보다도 더 나쁜 시간들이다.
‘아름다운 시간들‘은 음울한 미래에 빛을 더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어리석은 것‘에 수업료를 지불한다.
왼손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고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수업료를 지불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짓‘은 물론 모든 인간이 한다.
얼마, 얼마죠?‘
사람들은 어떤 다른 일을 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 지나치게 어리석은 일을 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누구나 어리석게 살때가 많다.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희생당한 김일손金馹孫에게 충북 제천현감으로 있는 친구가 객관 서쪽에 헌軒을 짓고 기문記文을 청하였다.
이 지은 기에, “ 내 벗 권자범權子汎이 고을을 다스린 지 3년 만에 객관客館의 서쪽 낭무廊廡를 수리하여 헌軒을 만들고 나에게 기記를 청하였다.
내가 자범에게 말하기를, “먼저 이름을 짓고 뒤에 기를 쓰는 것이 가可한데 치헌痴軒이라고 이름 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다. 자범이 치痴에 대한 뜻을 묻거늘, 내가 웃고 대답하지 않으니 자범이 자뭇 불쾌한 모양이었다. 한참 만에 내가 고하기를, ”왕숙王叔의 어리석은 것 왕연王椽의 어리석은 것은 은덕隱德의 어리석음이요, 간사한 어리석은 것 투기하는 어리석은 것은 교활한 자의 어리석음이요, 문文으로 해서 호치虎痴가 되는 것은 재주가 특이하여 어리석은 것이다. 술을 끊은 자도 어리석은 것이고, 관官의 일을 잘하는 자도 어리석은 것이다. 옛날에 어리석은 것으로 이름 하는 것이 하나가 아닌데, 자네의 어리석은 것도 또한 하나만이 아니다. 세상 사람은 말에 영리한데 자네만은 말에 어리석어서 말을 발하면 기휘忌諱에 저촉되고, 세상 사람은 모양을 차리기에 능한데 자네만은 동지動止가 어리석어 사람이 미워하게 되고, 세상 사람들은 출세하는 데에 교묘하여 한 관등官等만 얻으면 잃어버릴까 근심하는데 자네는 교리校理의 청반淸班으로서 스스로 낮추어 궁벽한 고을의 현감縣監이 되었으니, 이것은 벼슬에 어리석은 것이고, 세상 사람은 사무에 응함에 민첩하여, 백성을 임하는 데는 칭찬 받기를 먼저로 삼는데, 자네는 홀로 아무 일 없이 재각齋閣에 앉아 휘파람이나 불고, 억센 호족豪族과 교활한 자를 탄압하고, 불쌍한 홀아비나 과부를 무휼撫恤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고, 부세賦稅를 독촉하는 데에는 서투르니(拙) 이것은 정사에 어리석은 것이고, 세상의 관리된 자가 용렬한 자는 백성을 수고스럽게 한다는 것을 핑계로 내세워, 관사가 낡은 것을 보고도 기울고 허물어지는 대로 내버려 두어서 스스로 간이簡易한 정치를 행한다는 말을 하고, 일에 재간이 있는 자는 높은 집과 아로새긴 담장을 쌓지 않는 것이 없어서, 그것이 토목土木이 요망한 것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부지런하고 일 잘한다는 명성을 크게 날리는데, 자네는 제천에 있어서 낡은 집을 수리하였으니, 이미 용렬한 자는 되지 못하였고, 또 능력 있는 자도 되지 못하였다. 노는 사람을 부리고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려 하여 오히려 자기의 마음을 수고롭게 하니, 이것은 일을 하는 데에 어리석은 것이다. 자네의 어리석은 것을 합하여 이 헌軒에 편액扁額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말을 들은 권자범은 “어리석은 것으로 나를 조롱하는 것은 괜찮지마는 나의 어리석음으로 해서 공관公館에 욕이 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며 못마땅해 하였다. 김일손은 다시 말하기를 “치痴라는 것은 우愚와 비슷한 것인데 또 비슷한 것으로는 졸拙이 된다. 안연顔淵의 우愚와, 고시高柴의 우愚와 영무자甯武子의 우愚가 모두 공자孔子에게서 칭찬을 받았고, 주무숙周茂叔의 졸拙은 형벌이 맑아지고 폐단이 끊어지는 데에 이르렀으니, 그렇다면 치痴로 헌軒을 이름 짓는 것이 헌의 욕이 아니라 헌의 영광이다. 어리석은 현감을 얻었으니 조물주도 또한 이 헌에 대하여 다행으로 여길 것이요, 세상의 지교智巧로 이름난 자일지라도 비록 이 헌을 하고 싶어도 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자범이 이를 승낙하고서 “ 앞으로 처세를 더욱 어리석게 하여 일생을 어리석게 마치겠다.” 고 하자 김일손은 다시 “”어리석음을 의식한 어리석음은 어리석음이 아니니 반드시 애써서 어리석게만 살 일도 아니라고 말하였다. 자범이 다시 “내가 세상의 교巧한 것을 싫어하여 나의 치痴를 지키려고 하는데 어리석게 산다는 것이 그처럼 어려우면 어떻게 어리석게 살 수 있겠는가,”하자 김일손이 “자네는 정말 어리석다.” 고 하고서 바라보니 치痴 즉‘어리석음‘에 대한 이론에 지친 자범은 난간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실린 글이다.
너무 똑똑한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탈이 많은 이 세상에서 어리석게 어리석게만 산다는 것도 그처럼 어려운 일인데, 당신의 요즈음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2024년 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