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현대도 장애인으로 생활하기가 만만하지 않은데 옛날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우려를 한 적이 많았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 전반적인 배려가 없어 사회적 활동도 미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는 장애인 인물 중에는 조국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훌륭한 분이 너무나 많았다.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뽑힌 바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이 세종대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세종대왕이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재위 중에 실명하게 된 중도실명 장애인이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면서 안질에 걸려 시력이 점점 약해져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세종 23년(1440년)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정사를 돌볼 수 없어 세자에게 전위를 발표하려는데 신하들이 울면서 만류했다며 세종실록은 전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그 후에도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서너 차례 보위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한다.
세종대왕이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 시각장애인 복지정책에서 잘 드러난다. 세종 18년(1435년)에는 시각장애인 지화에게 종 3품 벼슬을 주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관청인 명통사에 쌀과 황두(콩)를 지원한 기록도 있다. 또 궁중 내연에서 연주를 맡았던 관현 맹인이 가장 대접을 받았던 때도 바로 세종대왕시절이었다.
최근 한국장애인문인협회에서도 우리 역사 속의 인물 가운데 장애인을 찾아 동화로 펴내는 귀중한 작업을 시작했다. 문인협회는 장애위인 시리즈 50편을 출간할 예정으로 우선 "정경부인이 된 맹인 이씨 부인" "장애인 장군 황대중" 등을 펴냈다. 맹인 이씨 부인은 조선명종 서성의 어머니로 5살 때 한약 부작용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됐지만 퇴계 이황의 중매로 서진사와 결혼을 해서 서성을 낳았다. 서성이 태어나자마자 남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씨 부인은 혼자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약주와 약과를 빚어 팔았다. 그는 우리나라 약주 제조의 원조가 되면서 사업가로 성공했고 멸문의 가문을 일으켜 조선을 대표하는 인재를 배출한 위대한 교육자가 됐다. 이런 공로로 이씨 부인은 정경부인으로 추대가 됐는데, 시각장애여성이 정경부인이 된 것은 최초이자 유일한 일이었다.
또 장애인 장군 황대중 장군은 영웅 이순신 장군과 함께 활동했던 양쪽 다리를 저는 지체장애인이었다. 황 장군은 본인의 애마 위에서 놀라운 무용을 과시해 왜군을 떨게 만들었다고 한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남원성 전투에 참가해 적의 탄환을 가슴에 맞아 전사했다. 이때 왜장은 황대중의 충성과 효성에 감동해 그의 시신을 비단 천으로 덮고 애마 등에 태웠는데, 애마는 300여 리의 길을 달려 고향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한쪽 다리는 죽어가는 어머니를 살리고자, 또 한쪽 다리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두 다리에 장애를 갖게 된 황 장군을 무척 아꼈다고 한다.
근대 들어서는 일제강점기 때의 안중근 의사도 장애인이었다. 안 의사의 글씨에서도 보듯이 낙관에 분명히 손가락 두 개가 없는 장애인이다. 그리고 얼마 전 고인이 되신 김대중 대통령도 사고로 인한 지체장애인이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훌륭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앞으로도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훌륭하게 삶을 살고 또 자랑스러운 업적을 많이 남기도록 정부나 지자체는 편견 없는 시선으로 장애인정책을 기획하고 장애인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