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
조지훈(1920~ 1968)
사랑을 다해 사랑하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 스런 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 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 2020, 조지훈 선집 삼사제에서
조지훈 시인의 시 ‘사모’는 특별합니다.
청록파 당시의 시 승무.고풍의상 또는 지조론등에서 느끼는 ‘자연에 대한 관조’
‘반듯한 선비’의 이미지 또는 ‘비판적 지식인’의 면모와는 사뭇 결이 다릅니다.
마흔여덟의 짧은 삶을 살다간 시인의 생전 그 어떤 시집에도 ‘사모’는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1996년 <나남출판사>에서 간행된 ‘조지훈 전집(전 9권)’에도 빠져있습니다.
그의 사후 육필원고를 정리하던 중 발견한 유작으로 훗날 잡지 등에 인용되면서 널리 알려져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애송시 베스트가 되었습니다.
작품을 쓴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20대인 해방 직후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가족에게조차 감추려했었는지 부인도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아무튼 호방하면서도 치밀한 성품의 또 다른 면모입니다.
“그대와 마조 앉으면 기인 밤도 짧고나”로 시작하는 시인의 같은 제목 다른 시 ‘사모’와도 다릅니다.
그러니 사랑과 이별의 애절한 감정이 짙게 녹아든 시구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자뭇 궁금합니다.
세상엔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사랑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이해한다 해도 얻을 수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읊었나 봅니다.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을 잘라 나오는 피로 오선지’를 만들어 운다고 했습니다.
또한 사랑했던 사람이 남의 사람이 되었지만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남고 싶다' 했습니다.
가슴이 저릿합니다.
조지훈(1920~ 1968)
시인의 ‘개춘연 잔치’나 ‘주도유단’ 글에서 보면 시인의 컨텐츠는 ‘식도락과 애주’입니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후 한 주간지에 소개된 ‘우리 역사상 최고의 주객명단’에서
김삿갓, 황진이, 변영로에 이어 4등을 차지했을 만큼 선생은 호주가(好酒家)였습니다.
연가인 이 시에서도 애주가답게,
한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잔은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잔은 이 모든걸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넉 잔의 술을 마시겠노라 토로한 시인은
우리를 영원한 소년에서 황혼의 감성으로 녹여냅니다.
好酒家… 나그네 가는 길에 주막이 없으리야
‘이 길로 가면은 주막이 있겠지요.
나그네 가는 길에 주막이 없으리야.
꽃같이 이쁜 색시 술도 판다오’ 시 ‘밤길’ 중에서
시인이 애주가인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술이 주는 도취와 연민과 그리고 수많은 섬광들..
고려대학에서
한복도 즐겨 입었던 시인은 키가 180cm를 넘은 멋쟁이였습니다.
- 60년대 초반 여대생들에게 가장 멋진 남성으로 뽑히기도….
“집안에 계실 땐 늘 한복 차림이었고 외출할 때도 두루마기를 즐겨 입으셨다.
양복 차림에 종종 나비넥타이를 매고 바바리코트나 외투를 입고 나서시면,
영국 신사를 연상할 만큼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의 멋쟁이셨다.”
- 아드님 조태열 전 유엔대사의 회고-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면서 지사이자 문사로 존경 받았습니다.
고려대학 교수로 재직시엔 학교 교가와 호상, 4·18기념비 비문을 썼습니다.
선생의 ‘문학개론’ 강의는 명강으로 서울대학을 비롯 서울시내 인문대학생들의 단골 도강과목이었다 합니다.
첫댓글 조병화 조지훈 두분 시인이 올해 탄생 100주년입니다.
평소 애송하던 두분의 시를 올려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