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잠을 적게 자는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3개 주요국 중에서 일본의 수면 시간이 7시간 22분으로 가장 짧았고, 그 다음이 한국(7시간 51분)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수많은 한국인들이 ‘잠 못 이루는 밤’ 때문에 병원을 찾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불면증 환자는 지난 2016년 54만명에서 지난해 72만명으로 33% 증가했다.
왜 이렇게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걸까. 한국보다 잠이 더 부족한 일본에서 ‘꿀잠 전도사’로 맹활약 중인 스미야료(角谷リョウ) LIFREE 대표에게 해법을 들어봤다. 스미야 대표는 일본에서 수면 장애를 겪는 중노년층에게 올바른 수면법을 코칭하는 수면 컨설턴트다. 한국에서도 최근 번역 출간된 <일하는 당신을 위한 최고의 수면법> 외에 <50대의 수면 법칙> 등 숙면 기술 관련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1.일본과 한국은 왜 수면 부족국인가?
“두 나라 모두 쪽잠 자며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워커홀릭’ 사회다. 일본은 수면 환경도 굉장히 나쁜 편이다. 밤거리 조명이 너무 밝아서 ‘빛 공해’가 심각하다. 집안 조명도 미국·유럽보다 훨씬 밝아서 수면 부족에 빠지기 쉽다. 또 다른 이유는 특정 유전자 때문이다. 일본인 10명 중 8명은 S형 세로토닌 전달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 유전자는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데, 걱정과 불안을 유발해서 밤에 잠을 잘 못 자게 만든다. 한국도 일본처럼 해당 유전자 보유율이 높은 편이다.”
2.잠이 부족하면 어떻게 되나?
“수면 부족이 이어지면 이른바 ‘수면부채’가 차곡차곡 쌓인다. 이 빚은 서둘러 청산하지 않으면 심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수면 부족인 사람들은 주변에서 모두 꺼린다. 가령 잠을 잘 못 자서 얼굴이 푸석푸석한 상사에겐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다.
일본 기업들은 직원들의 수면 격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복지 혜택으로 제공한다. 밤에 잠을 잘 잔 직원들이 다음 날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하고 업무 성과도 좋게 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면증 직원이 팀에 있으면 해당 팀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업무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다.”
3.불면증이 업무 생산성까지 망치는가?
“일본에선 직장 내 팀의 결속력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때 팀 리더가 수면 부족 상태면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직속 상사다. 직속 상사가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예민해져 있으면, 팀 전체 분위기가 나빠지고 유대감도 약화된다. (당신이 지금 리더라면) 본인 자신이 아니라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잠을 푹 자라.”
4.아침 기상이 고역인 사람들이 많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억지로 일어나기 보다는 조명, 그 중에서도 하얗고 강한 빛을 활용해서 눈을 떠 보라. 일본엔 빛으로 잠을 깨우는 ‘빛 알람 시계’도 있는데 효과가 좋다. 알람 시계 소리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낫다. 삐비빅~하는 일반 알람 소리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많이 나오게 해서 몸에 부담을 준다. ‘2단계 알람법’도 알아두면 좋다. 기상 시간 20분 전에 알람이 작게 울리게 세팅하는 것이다. 일종의 워밍업 알람이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엔 잠이 깰 만큼 아주 시끄러운 알람이 울리게 해라.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
5.평일엔 일하고 주말에 몰아 자면 어떤가?
“숙면의 기본 원칙은 그날 그날 몸과 마음을 충분히 회복하는 것이다. 며칠 동안 수면 부족 상태로 보내다가 주말에 몰아서 자면 피로는 풀리지만, 업무 능력은 예전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다. 평일에 최고의 컨디션으로 일하려면, 술자리는 가급적 목요일에 가져라. 수요일은 1주일 중 피로도가 가장 높은 날인데, 이날 충분히 잠을 자둬야 피로가 덜 쌓인다.”
6.꿀잠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수면 장애를 겪는 직장인 6만5000명을 만나봤는데, 대부분 하루에 2000보도 걷지 않았다. 재택·배달이 일상화되다 보니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질 않는 것이다. 걸음수를 4000보로만 올려도 바로 잠자기가 편해진다. 잠이 부족하거나 아침에 피로가 풀리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면, 그게 당연하게 느껴져서 고쳐야겠다는 강한 욕구가 생기지 않게 된다.
수면 부족을 개선하려면 ‘왜 나는 숙면하지 못할까’부터 생각해 보고 답을 찾길 바란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 같은 것을 글로 적어보는 것도 괜찮다.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를 아침에 하는 습관은 숙면 확률을 높인다.”
7.아침에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는데...
“아침에 짧은 시간이라도 취미 생활을 하면 하루의 행복도가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다. 나는 아침에 독서를 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책을 읽고 나면 머리가 맑아져서 하루 종일 집중도 잘 되고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 ‘기분이 좋아지는 집안일’을 하는 것도 권한다. 남성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설거지나 빨래 개기 같은 집안일을 하면 마음도 편안해지고 가족들도 기뻐할 테니 강력 추천한다.”
8.잠 때문에 가족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타인과 연관된 인생 이벤트, 가령 결혼·임신·출산 등으로 가족이 생긴다면 수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특히 남녀는 숙면하기 위한 실내 체감 온도가 상당히 다르므로, 누구에게 온도를 맞추면 좋을지 조율도 필요하다. 잘 때 가장 쾌적하다고 느끼는 실내 온도는 남녀 사이에 3도 정도 차이 난다(남성이 낮은 온도 선호). 에어컨 온도는 여성에게 맞게 세팅하고 남성은 선풍기를 추가로 켜면 부부가 같은 방에서 숙면할 수 있다.”
9.숙면의 적(敵)은 스마트폰 아닌가?
“잠자기 전 스마트폰은 본인 의지로 끊기 어렵다. 하루 긴장을 내려놓는 심야 시간엔 더 통제하기 힘들다. 벗어날 수 없다면 시스템이나 기능을 사용해보자. 가장 간단한 건 스마트폰 야간 모드 활용이다. 지정한 시간대에 화면이 어두워지게 하거나 흑백으로 바꿔보라. 자신이 지정한 시간대에 강제적으로 스마트폰이 꺼지는 ‘스크린타임’ 기능도 활용하면 좋다. 스마트폰 충전은 눈에 잘 안 띄는 곳에서 하라.”
10.나이 들수록 아침잠이 사라진다?
“나이가 들면 수면 패턴이 바뀐다. 일본 후생노동성 수면 지침에도 ‘나이가 들면 아침형 인간이 된다’고 나와 있을 정도다.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10년에 한 번 정도는 본인 생활 습관에 따라 수면 패턴과 수면 시간을 점검해 보는 게 좋다. 특히 50대 이후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농도가 20대에 비해 50% 미만으로 감소해서 쉽게 잠들지 못하게 된다. 여성은 갱년기 등으로 신체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면 안 하던 코골이 증상이 나타나고 수면 질이 나빠지니 대비해야 한다.”
11.50대부터는 푹 자기 어렵다더라?
“그렇다. 하루에 최소 6000보 이상 걸어라. 신체 호르몬 저하를 막는 방법으로 최상이다. 8000보 이상 걸으면 노화도 늦출 수 있다. 50대부터는 소화 능력도 떨어지는 만큼, 밤에 너무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 저녁 식사를 가볍게 하거나 양을 줄여야 숙면할 수 있다. 자는 동안 위 속에 음식물이 남아있지 않게 하라는 얘기다. 지금보다 저녁 식사를 한 시간 빨리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12.오늘이라도 당장 써먹을 숙면법은?
“수면 환경을 바꿔봐라. 다이소에 가면 가격은 싸면서 좋은 물건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구매해 침실 물건을 바꿔봐라. 베개 커버도 좋고, 냉감 시트 같은 것도 좋다. 그 다음 낮에 깨어있으려는 노력을 하라. ‘얼른 자야지’라는 생각 대신 ‘낮엔 꼭 깨어 있어야지’라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고 싶은 욕구, 즉 수면압력이 커진다.
13.황혼기 부부의 수면 대책은?
“부부는 오래 살면 닮는다고 하지만, 수면 패턴만큼은 예외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절대 닮지 않는다. 부부의 수면 패턴이 너무 다르다면 따로 자는 것이 최선이다. 각방을 쓸 정도로 집이 넓지 않다면 침대를 분리하라. 부부가 싱글 침대를 하나씩 사용하면 수면 만족도가 극적으로 높아진다.
더블 침대는 싱글 사이즈 침대의 1.4배밖에 되지 않아서 부부가 함께 자면 수면의 질이 나빠진다. 같은 침대에서 자는 부부 중 남성의 70%는 불만이 없다고 하지만, 여성은 70%가 불만이었다. 같은 침대를 써야 한다면, 덮는 이불이라도 각자 하나씩 사용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