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호自號, 석야石野
석야 신웅순
석야는 오래 전부터 스스로 지어 부른 나의 자호이다. 스승이 지어주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뒤늦게 스승을 만나 그런 행운은 누리지 못했다. 그 때는 석야라는 호를 이미 쓰고 있었다.
돌석 자‘石’은 돌림이다. 나의 8대조 선조인 영조 때 시인 신광수의 호가 석북(石北)이다. 또한 석북 후손 7손, 나로서는 재당숙인 신석초 시인의 호가 석초(石艸)이다. 나의 두 선조의‘석’자를 따서 석북과 석초의 대를 잇고자 석야라 자호했다. 그것은 운명이었던가 싶다.
어느 문인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나를 고령 신씨 가문의 시인 삼석이라 불러주었다. 가문의 영예이기도 하지만 두 대시인의 뒤를 이으라는 뜻에서였을 것이다. 나로서는 어마어마한 짐이이면서 영광이었다. 선친께선 석북 자손이라는 것을 무척 명예롭게 생각하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넓은 들녘을 바라보며 자랐다. 들처럼 마음을 넓게 쓰며 살자해서‘돌석’에‘들야’자를 붙여 자호했다. 석야는 돌처럼 굳고 들처럼 넓다라는 뜻이다. 그렇게 평생 마음가짐으로 살고자했다.
박사 공부 시절 알바로 학습지 『노벨과 개미』에 잠시 동화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바위 의미가 무의식 속에 잠재해있었던가 그 때의 필명도‘바위’의 옛말인 ‘바회’였다. 이름을 불러주면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라고 종교처럼 믿고 있었다. 나는 운명처럼 돌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내 가슴 속의 스승, 추사 김정희는 명호가 300개도 넘는다고 한다. 호 속에 자신의 세한도를 숨겨두고 아슬아슬하게 세상을 살았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지 않은가. 무슨 여한이 있으랴.
내 이름‘웅순’은 선친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얼마나 고심을 해 내게 그런 이름 석자를 붙여주셨을까. 어렸을 때는 싫었으나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왠지 그냥 좋았다. 외로울 때면 내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그렇게도 따뜻할 수가 없다. 그 때마다 쿵쾅쿵쾅 심장이 뛴다. 웅장할‘웅(雄)’자에 순박할‘순(淳)’자,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은 세상에 없을 듯 싶다.
나는 내 이름과 호를 사랑한다. 생각해보면 둘 다 뜻이 똑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는 아무리 봐도 웅장하고 들도 아무리 봐도 순박하다. 나는 그렇게 뜻을 붙였다.
‘호사유피 인사유명’이라한다. 호랑이 가죽을 버릴 수 없고 사람의 이름도 버릴 수 없다. 영원히 이름을 따라다니니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김삿갓은 조상이 부끄러워 평생 삿갓을 쓰고 다녔고, 매국노의 후손들은 또 어쩔 것인가. 후손이 무슨 죄가 있어 대대로 속죄를 하며 살아야하는 것인가.
오늘도 유치환의 「바위」를 되뇌이며 나를 채찍질해본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러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2024.10.10.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