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물길도 지리산에 오르는 산길도 매화향이 달콤했다.
지리산 문수골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다.
노고단이나 왕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막혀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문수골에 개벽을 꿈꾸는 도인 한 분이 살고 계시고 그를 만나러 가는 길,
그를 도인이라는 칭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관점과 기준일뿐이지만
그가 현실과 꿈꾸는 개벽의 간극에서 생애를 고뇌하고 번민하며 살아왔다는 이유가 크다.
그는 원불교의 교무과정을 이수했지만 순탄하지 못한 길을 걸어왔다.
개벽사상은 한국에서 자생한 종교의 핵심사상으로 발전하여
19세기 이후 한국민족종교운동의 일대 특성을 이루는 사상적 요인이 되었다
그가 추종하는 소태산의 ≪대종경 大宗經≫에 의하면,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주창하였다.
물질의 변화가 정신문명의 퇴락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주중에 내린 비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벽을 말하지는 못하고 권력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였다.
권력과 종교는 연관성이 있는 것인가?
권력을 가진 자가 때로는 인간을 억압하기도 하듯이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물소리에 잠을 깨고 밖으로 나왔을 때 새벽공기가 상큼하다.
문수사에 다녀올 참으로 길을 내려간다.
문수골은 여순반란사건시 섬진강 너머 백운산에서 패퇴한 빨찌산들이 숨어든 곳이었다.
당시 문수골은 토벌대와 빨치산 사이에서 낮과 밤으로 이념을 달리하며 살아야 했던 지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없이 고요한 산골마을이다.
개울을 건너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도심으로 모텔들처럼 이제 계곡마다 펜션들의 간판이 이어진다.
가파른 길을 오르지만 절은 보이지 않고 왕시루봉 너머 아침 햇살이 번진다.
문수사는 해발 800m쯤에 있는 절이다.
문이 잠겨있었다.
여러번 문을 두드렸지만 나와보지도 않는다.
포기하고 돌아서 우회할 곳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고 다시 올라간다.
이제는 큰 소리로 외친다.
한참만에야 스님이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한때 해우소에서 똥돼지를 키워 화제가 됐던 문수사는 여러 고승이 수행한 문수도량이다.
백제 성왕 때 창건됐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의 난입으로 파괴됐다.
그러던 1980년대 중반 요사체와 함께 3층 목탑 형태의 대웅전을 세웠다.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과 비슷하다.
층층이 올라간 단청과 지붕이 일반적인 절에서는 보기 드문 색다른 풍경이다.
대웅전 옆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과 문수전이 있다.
내가 문수사를 알게 된 것은 곰 때문이었다. 지금도 반달곰이 살고 있고 대웅전 왼편에 반달곰 우리가 있다.
쇠창살로 작은 공간에 왜 절에서 곰을 키우는거지?
곰을 시주받았다는 것도, 두 마리는 방사했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은 사나워 가두어두고 있다는 것도 의문이었지만
미욱한 중생이 모르는 이치도 있는 것인가?
잠시라도 마음의 평안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도 닿은 길인데 분노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세상일에 회의하고 번민하는 것은 나름의 수행이기도 한 것이지,
왕시루봉을 넘어선 아침햇살이 천천히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첫댓글 지리산 문수골!
그립네요.
문수골에도 가보셨는지요?
노고단이며 넉넉하게 왕시루봉이 올려다보이는, 물소리는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