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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나비잠에서 깨어난 아이의 두 팔로 하트를 만들어 ‘엄마, 사랑해요’를 가르치려 했다. 애를 써보지만 아직은 아이의 팔이 짧아 머리 위에서 간신히 두 손이 닿으며 찌그러진 동그라미가 되었다. 그래도 며느리는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라고 말했다. 노루잠을 깬 터라 더 자고 싶은 아이는 인상을 썼지만 며느리는 반복학습의 효과를 기대했는지 “하늘만큼 땅만큼 하자”며 되풀이했다. 성가시고 아팠던지 아이는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한 주먹도 안 되는 조그만 속에도 소견과 고집이 있나 해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 한편 안쓰러웠다. 이게 세상에서 처음 맞는 갈등이고 시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 힘드니 그만둬라.” 했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며느리는 인사를 차릴 새도 없이 아이에게 개인기를 자랑하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해봐. 짝짜꿍 도리도리하자. 까꿍. 메롱. 나팔 불어 봐…” 하며 부추기지만 오랜만에 온 할머니 집이 낯선 아이는 탐색하듯 딴청부리며 앉아 있을 뿐이다. 머쓱해진 며느리는 “엄마만 거짓말쟁이 됐네.” 하면서 그동안 아이가 새로 배운 것과 해찰을 부린 얘기와 얼마나 자랐고 발육상태가 다른 아이에 비해 어떤지 상사나 바이어 앞에서 브리핑하듯 이야기한다.
며느리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고슴도치를 닮은 것 같아 웃다가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란 말이 떠올랐다. 아마 자랑하고 싶은 욕심이 지나쳐 아이를 닦달해 힘들게 하고 역효과가 날 것을 경계하는 말이 아닐까?
며칠 전에 며느리와 아이를 데리고 친정 언니네 갔다. 우리 애와 동갑인 조카는 동갑인 아들과 딸 자랑을 늘어놓았고 아이들의 재롱에 집안이 들썩거리도록 손뼉을 치고 웃었다. 우리 애들과 조카는 네 딸은 다리가 길고 늘씬하니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는 둥 네 아들은 기는 속도가 빠르다는 둥 잡고 일어서는 것이 안정되고 편해 보인다는 둥 치켜세우고 으쓱해하다가 부러워하다가 했다. 소아과 간호사였던 며느리가 아이를 키우며 터득한 요령을 얘기하면 조카는 모범생처럼 열심히 듣고는 감탄했다. 언니와 나는 다 알고 있는 얘기, 빤한 얘기를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 며느리와 신기해하며 듣고 있는 조카의 모습이 재미있어 눈짓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작년에 내 주변에는 아이가 다섯이나 태어났다. 한자리에 만나거나 전화를 주고받으면 으레 아이들 얘기가 나오고 조금 빠르거나 늦됨을 두고 아이 엄마나 아버지는 우쭐했다 의기소침해졌다 하리라. 겨우 걸음마를 하는 것, 엄마나 맘마 같은 간단한 한마디로 기뻐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에 들어갈 때가 되면 서로 견주며 애태울 것이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동갑내기 다섯 형제자매끼리 경쟁상대가 되어 만나도 재미없고 서먹해지지 않으려나 지레 걱정이 된다.
요즘 부모들은 내 자식만 아끼고 최고를 만들려 애쓴다. 못 이룬 꿈에 대한 보상심리로 한풀이 겸 대리만족을 하려는 건 아닐까. 아이 상처받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부모의 바람과 잣대로 아이를 출세시키고 부자 만들고 명예와 권세를 쥐게 하려 한다. 이런 탐심에 아이들만 힘들어져 때론 돌이킬 수 없는 딱한 일마저 생길 수 있다.
부모들이 욕심을 덜어내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헤아리면 지나친 경쟁 심리도 다소 누그러져 아이가 편안해질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도타운 정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꿈과 소망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면 신이 나서 하늘만큼 높아 보이던 꿈도 땅만큼 큰 소망도 이루리라 생각이 든다.
약력 : 2007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마당 깊은 꽃집』.
시산맥 특별회원.
메일 주소 : poesytr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