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검정버섯
출처 : 여성시대 검정버섯
https://hygall.com/41335431
오오호리 메구미는 가정교육면허도 가지고있고 멤버들에게도 상냥하고 눈물많고 의지가 되는 좋은멤버였음ㅠㅠㅠ
나중에 자서전에서 쓰여있길, 저 당시 너무 힘들어서 매일 과호흡오고, 자해하고, 부모님들은 주변에서 딸이 저러는데 안부끄럽냐는 비난을듣고
어머니는 우울증오고, 그런가족을 본 동생이 오오호리한테 전화해서 가족괴롭히지말라고 울었다고함ㅠㅠ
유일하게 응원해주던 할머니는 솔로발매 2일전 돌아가심. 그래도 솔로나올거라는 소식은 전할수있었어서 할머니가 기뻐하시며 이루었구나..라고 말해주셨다고..
당시에 본인도 노래를 듣고 머리가 멍했고, 천이없는 의상에도 할말을잃음..하지만 생각할시간도 없이 안무를 혼나며 배우고
이런기회조차 자신에게는 다시는 오지않을 기회라서 꽉쥐어야한다고 생각했다고ㅠㅠㅠ
지금은 유명한 각본가랑 결혼해서 딸낳고 행복하게 잘살고있다고함ㅠㅠㅠㅠ
<아래는 오오호리 메구미의 에세이 '최하층 아이돌의 삶' 중 일부 발췌>
"아, 그래서 오오호리 너 데뷔 말인데."
"아.. 예... ...예??!?!"
"오오호리, 너 이번에 솔로 데뷔하거든."
"데뷔요? 에..?!?"
"닛테레 (※ 일본 TV 방송국인 '니혼테레비' AKBINGO가 여기서 방영) 방송 기획이긴 한데, 진지하게 해 보려고."
".....예??!"
"그러니까, 너도 진지하게 도전 해 보도록 해."
"저기..."
"할 수 있지?"
"아니... 저기... 에... 예, 하... 할 수 있어요."
"곡은 이미 완성 되어 있으니까, 들어보고 확실히 기억 해 둬."
그렇게 말씀 하시면서 내게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하얀 CD를 건네주셨다.
(중략)
머릿속이 복잡 할 때에는 샤워를 하는 것이 나의 버릇이었다. 쏟아져 나오는 물주리에 몸을 맡기며 오늘 들은 충격 발표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너무나도 실없이 실실 웃기 시작했다.
거기서 또 2시간쯤 지났을까, 이제는 또 불안감이 덮쳐 왔다.
생각 해면 할 수록 믿을 수 없고, 수상한 이야기였다. 물론 그룹활동을 하는 아이돌 일원에게 솔로데뷔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는 이상 한 얘기가 아니지만, 어째서 나에게 그런 얘기가 들어 온 것인 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나는 소위 말하는 '선발' 에 자주 들어가는 인기 멤버도 아니었을뿐더러,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선발에 들어 간 경험이 단 한 번 밖에 없는 '못 나가는' 멤버였던 것이다. 그나마 선발에 들어 간 것도 정규 CD도 아닌 '인터넷 배포'곡이었던 것이었기에, 나라는 존재가 부각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극장 활동'에 한정되었었기 때문이다.
'음... 이거 아무래도 '돗키리 (※ 몰래카메라)' 인 것 같아.'
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 보면 나같이 인기 없는 멤버에게 몰래카메라를 걸기 위해 아키모토 야스시 선생님을 섭외 할 리가 없었다.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다보니 선생님께서 데모 CD를 주셨다는 것이 떠올랐다.
분명 '이미 곡은 완성되어 있다'고 하셨었다. 어떤 곡일지 궁금했다.
하얀 CD를 CD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른 뒤, 곡을 듣기 시작하였다. 탱고 리듬 비슷한 전주부분이 끝난 뒤, 데모를 녹음한 여성의 농염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아~ 차차
약간 취한 것 같아.
몸을 기대고 걷는
시오도메 부근
아~ 차차
기분 좋은 밤 바람
어디든 좋으니 데려 가 줘.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런 나의 응석을 가볍게 꾸짖는 사람
날 '가지고 가 줘' ♪
응? '가지고 가 줘? (※ 원문은 お持ち帰り, 햄버거 등을 포장 해 가거나 테이크 아웃 하는 것을 뜻함)' 라고? 순간적으로 내 귀를 의심했다. 손에 들고 있던 파자마를 뒤집었어야 했는데, 그것마저 잊고 있었다. 나의 그런 반응과는 관계 없이 노래는 흘러 어느 사이엔가 후렴구로 치닫고 있었다.
♪ 좀 더 다가 와 다가 와
키스를 해 줘 해 줘
나의 달콤한 고관절~ ♪
....고관절?! 내 고관절?! 그것도 그냥 고관절도 아니고 '달콤한' 고관절이라고?!
머리가 띵해졌다.
음악을 멈추게 하려 했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버튼이 제대로 눌리지 않았다.
♪ 무릎을 부비부비
팔꿈치로 꾹꾹
느슨하고 달콤한 고관절~ ♪ (고관절, 사타구니가 느슨하다는 것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의미)
,,,,곡의 제목은 '달콤한 고관절'이었다.
....내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중략)
호출을 받아 거울 앞에 서 있으려니 의상을 주셨는데, 시험삼아 입어 보니 이게 웬걸... 천이 있어야 할 부분에 없었다. 몸의 반절 가까이 맨살이 노출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내 사정이야 아랑곳 없이 파파이야 스즈키 선생님의 지도 하에 안무 레슨이 시작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내 춤을 보시고는 "허리를 좀 더 섹시하게 흔들어야지!!" 라고 혼을 내시곤 하셨다.
거의 속옷이나 다름없는 의상을 입고 섹시하게 허리를 흔든다.... 게다가 가사는 '느슨한 (헐거운) 고관절~'이라던지 '날 가지고 가 줘' 등등 뭔가 좀 수위가 센 노래였던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을 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뭔가 굉장히 흥분해서는 춤을 배우고, 노래를 배웠다.
지금껏 제대로 된 기회를 잡아 본 적이 없는 내게 찾아 온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온 힘을 다 해 움켜 쥐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상이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닌 법, 그저 호의로 나를 솔로 데뷔 시켜 줄 리가 없었다. 지난 번, 사무소에서 있었던 회의에서 이런 말이 나왔었던 것이다. "단지, 이번 기획은 어디까지나 '도전'이라서, 조건이 두 가지 붙어."
아키모토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CD 발매일로부터 정확하게 한 달동안 1만장을 팔지 못 하면 AKB에서 졸업을 하는 것이 그 조건이라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조건은 바로 본명인 '오오호리 메구미' 대신 '오오호리 메시베'라는 예명으로 데뷔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1만장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단순히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하는 기획에서 정한 수치니까 그렇게 힘들진 않겠지'라고 만만히 보고 있었을 뿐이다. 뭐랄까, 단순한 '무챠부리 (무리한 부탁, 짓궂게 장난삼아 무리한 리퀘스트를 함)' 정도라고 봤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만에 하나 실패한다고 해도 기껏해서 버라이어티 기획에서 실패 한 정도로 AKB48을 그만 둘 리 없다... 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현실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 한 채, 단순히 나를 위해 곡이 만들어지고, 나를 위해 의상이 만들어 지고, 나만을 위해 안무가 만들어졌다는 상황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중략)
그 당시 느꼈던 압박감은, 지금껏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한, 엄청난 압박감이었다.
압박감에 짓눌린 나는 식사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 했고, 식욕도 잃어버렸던 것이다. 나중에 가서는 '살기 위해' 억지로 음식물을 섭취하면 바로 토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뿐이 아니라, 아무리 피로가 쌓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불면증이라는 것이 몸에 끼치는 악영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공연을 할 때에는 어찌저찌 버텨도, 대기실에 들어가는 순간 쓰러져 버려서 멤버나 스탭분들에게 폐를 끼친 적도 있었다.
정식으로 도전이시작 된 것도 아닌데 이랬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8월 25일, '오오호리 메시베 솔로 데뷔' 기획이 정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동시에 나의 인생을 건 도박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CD가 팔리지 않는 요즘같은 시대에, 그것도 AKB48에서 최하층 멤버가 혼자만의 힘으로 CD 1만장을 팔아야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말도 안 되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이런 현실을 깨달은 것이 바로 이 때였다.
(중략)
발매 직후, 극장이나 아키하바라의 매장에서 이벤트가 열렸다. 예상 외로 순조롭게 팔리고 있다는 듯 했다. 물론 블로그에는 변함없이 '어차피 무리겠지', 'AKB48 CD 사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너 따위 CD를 사 주는 사람이 1만명이나 있을 것 같아?' 등등 악플들이 달렸다. 너무나도 불안했지만, 허그회에 참가 해 주신 팬분들의 따뜻한 격려에 힘을 얻었다.
이벤트, 허그회 뿐 아니라 방송 기획으로 지방에 가서 '판매 강화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니이가타, 나고야, 기후, 나가노에 가서, 섹시한 옷을 입고 생전 처음 와 보는 거리를 걸었다. 지방 로케였기에 그렇게 많은 인원이 움직일 수는 없기에 우에노 디렉터, AD분, 메이크업을 담당 해 주는 카토쨩과 함께 단 4명이서 만 움직인 것이었다.
가끔은 히치하이크를 하기도 하고, 미니 가라오케 기계를 들고 어시장에서 즉석 공연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산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침낭에 들어가는 부분까지 녹화하고 호텔에 가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옮길 생각을 하질 않는 것이었다. 슬쩍 '호텔은 언제 가냐'고 물어보니, 우에노 디렉터가 정말로 화를 냈었다.
매일 8센티 굽이 달린 하이힐을 신고 하루 종일 정처없이 걸었다. 나가노현에서 산길을 걸었을 때에는 물집이 터져, 발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도 했다. 발을 씻었더니 물이 들어가서 아렸다.
솔직히 말해서 '이거 나 괴롭히려고 일부러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방송이나 농담이 아니고 정말 너무 힘들었다. 진짜 10초에 한 번은 '다 포기하고 도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설마 이렇게 얘기가 커 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남일처럼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너무나도 한심한 자신의 모습에 눈물이 다 났다. 그런 분함은 결국 이상한 방향으로 표출되어, 혼자 자기 살을 꼬집거나 입술 안쪽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거나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기거나 하는 등 자학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었다.
그리고 알게 된 현실은 참혹했다. 당시 판매량은 약 3천장... 남은 10일간 7천장을 팔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반도 팔리지 않은 현실에 좌절했지만... 그래도 졸업 '당하기'는 싫었다.
혼자 고민을 하다가는 이대로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택시에 올라 타 사무소로 갔다. 사무소 스탭분들도 모두 나처럼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스탭들과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총 4명, 모두들 어른들인데도, 불안감에 짓눌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모든 것이 최악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TV 녹화에 참가 하였을 때에도, 충격으로 표정이 굳어 있었따.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같으면 내가 멍하게 있을 때, 매니저가 주의를 주기 마련인데, 그 '매니저' 조차도 충격으로 멍해 있었다.
(중략)
내 문제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상황은 더더욱 안 좋아졌다.
아버지와 내 사이에 껴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우셨을텐데, 주변 사람들조차도 도와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 얼마 전에 메구미쨩 나오는 거 봤어. 그런 일 그만두게 하는 게 낫지 않아?"
"오오호리상, 딸이 그러는 거 부끄럽지 않아요?"
"...도대체 내 딸도 아닌데 내가 다 부끄러워서 못 봐 주겠더라고."
...제 아무리 '강한' 우리 어머니라고 해도 상처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점점 늘어만 갔다. 어머니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메구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거야'라는 자기위안뿐이었다. 방에 혼자 숨어 남 몰래 우는 나날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날... 방에 숨어 홀로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여동생이 내게 전화를 해 왔다.
"언니, 제발 부탁이니까 우리 가족을 이 이상 괴롭히지 말아 줘!!"
동생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하여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는 이 사실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내가 괴로운 것은 '내가 좋아서 택한' 일이므로 견딜수 있었다. 하지만, 나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괴로워하고,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미 내 상황은 '바닥을 치고' 있었기에 앞으로 남은 것은 '치고 올라가는 것' 뿐이라고 나 자신을 세뇌하면서 내 행동을 정당화했다. 가족들의 전화에도, 문자에도 답을 하지 않고, 그저 일이 잘 풀리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중략)
드디어 운명의 발표일, 11월 15일이 찾아왔다.
당일 아침에 확인 해 본 결과는, 10000장에서 무려 1414장이나 모자란 상황이었다.
마감 시각인 밤 8시가 되기 이전까지, 아소비트 아키하바라점에서 직접 팬들을 만나 CD를 팔며 허그회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횟수는 무려 5회. 하지만 내게 있어서는 그 5차례의 허그회가 마지막 기회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겨우 진정시키고, 1회차 허그회에 나섰다. 회장에 계셨던 팬분들은 겨우 32분... 자리는 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그렇게 빈 좌석을 보는 순간,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간단하게 토크를 하고, '달콤한 고관절'을 부른 뒤, 관객 여러분들과 가볍게 포옹을 했다. 1회차 허그회가 끝난 뒤, 2회째 허그회가 열리기까지 1시간 정도 시간이 있었지만,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회장 앞으로 나가서 필사적으로 전단지를 돌렸다. 효과가 있는 지 없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 있으면 미쳐버릴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제 2회 허그회가 열렸다. 이번에는 34분이 참가 해 주셨었다. 1회, 2회를 걸쳐 판 앨범 총 수 는 겨우 158장... 앞으로 남은 기회는 3회밖에 없었는데, 지금껏 판 CD 수는 목표의 약 10분의 1에 불과했다.
3회째 허그회가 시작 되기 직전, 머릿 속에 '졸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 어쩌면 좋아..."
긴장이 지나쳐서 나도 모르게 과호흡 현상이 일어 나 버렸다. 과호흡이 일어나니 당황해서 상황은 더더욱 안 좋아 질 뿐이었다. 조금 지나자 손발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메이크업 담당인 카토쨩이 그런 모습을 보고는 입가에 비닐 봉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등을 쓸어 내 주었다. 나와 함께 지방 촬영도 돌아 주었던 카토쨩... 이번 기획이 시작 된 뒤로 주욱 나와 함께 해 준 카토쨩... 언제나 '나보다도' 이번 기획에 대해 걱정 해 주었었다.
카토쨩의 모습을 보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마치 매달리듯이 카토쨩을 붙들었다. 곧 조금씩이지만 진정이 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아... 카토쨩도 나와 함께 하는 동안 많이 말랐구나... 다 내 탓이야... 카토쨩 미안...' 이라고 생각했다.
티슈를 뽑아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쳐도 곧바로 다시 눈물이 났다. 내 몸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수분이 나오는 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중략)
마감을 앞두고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는 나를 위해 여러모로 배려 해 주고, 나를 지탱 해 주었던 멤버들... 문자를 보내주고, 전화를 해 주고, 도시락을 만들어 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부적을 만들어 주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홀로 대기실에 앉아 초조해 하고 있으면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서서 가만히 손을 잡아 주기도 했다.
멤버 중 한 명은
"메땅, 몇 장 모자라? 모자라는 만큼 내가 전부 사 줄게!!" (※ 본문에서는 안 밝혔지만 카사이입니다.)
라고 이야기 해 주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공연에 나설 때마다, 팬분들의 눈빛이 달라 진 것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오오호리가 공연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듯 한 느낌이었다.
멤버들은 내게 와서 '우리도 악수 참가할게'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참가하는 팬 분들께서는 확실히 늘어 날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CD 판매매수도 늘어 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AKB48에 남을 가능성 역시 높아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해 준 멤버들에게 정말로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 승부는 '나의 승부'였다. 멤버들에게도, 팬들께도 항상 신세를 져 오기만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정도는 나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 내고 싶었다.
그렇기에, 멤버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분에 넘칠 정도로 고마웠지만 그 요청을 거절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배드보이즈 분들께서
"오오호리,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잖니. 여기 한 번 정도 멤버들의 호의에 기대도 좋지 않을까? 창피 한 일 아니라고 봐. 모두 함께 1만장을 달성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야." 라고 조심스레 말을 걸어 오셨다.
...너무나도 고마웠다. 기껏 마음 먹었던 나의 결심이 흔들렸다. 지금은 자존심을 버리더라도 AKB48에 남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멤버들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멤버들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발표 시간이 찾아왔다.
긴장으로 꼭 쥔 주먹에는 힘이 너무나도 들어 가, 손가락이 부러 질 것만 같았다.
전자 게시판에는 차례차례로 숫자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하루 사이에 팔린 CD 매수는 1539장... 합계 출하매수 1만 125장.
...나는 AKB48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첫댓글 ㅅㅂ 좆본새끼 개빡친다
진짜저렇게까지 몰아세워야 하나 어휴..
재재데뷔였어서 더 간절해했던걸로 기억함 초창기 멤버인데 몇 안되는 성인 데뷔 멤이라 예능에서도 나이로 개그맨들이 존나게 꼽주고 후려치고... 자체 예능에서도 근성으로 분량 따내니까 스탭들이 대놓고 인상 쓰고 싫어함; 멤버들 몰카한답시고 본인 동의없이 핸드폰 전골같은데 빠트리질않나...ㅜ
진심 역겹다 젊은여자 괴롭히는게 보고싶은사람 많아 진짜
그게 25살이라니...ㅠ
.... 진짜 개같은데?
존나징그럽다 ㄹㅇ
우웩...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