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를 '건신연무' 쪽으로 돌려야 할 글일 지도 모르겠으나, 우선은 책에 관한 내용이므로'세작열람'의 범주에 넣기로 한다 .
최용술과 김정윤
'랑의 환국'은 세계일보 기자인 신상득이 우리나라 합기술의 시조인 최용술과 그 제자이자 한풀의 창시자 김정윤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그 자신도 한풀 가승 과정(일종의 사범 연수)을 마친 이라고 한다.
김정윤은 최용술이 가장 아꼈던 제자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 실력 또한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최용술 생전에 남긴 유일한 기술 책자인 '합기술'과 '기도' 역시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이후 한풀이라는 보다 완벽한 체계를 갖춘 무술을 창시했으나, 녹음 테이프와 사진, 답사 자료 등 최용술에 관한 가장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끊임없이 합기도 관련 인사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여지껏 그 자료들을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송덕기 생존 당시 택견의 기술 역시 모두 동영상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한 때는, 왜 택견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그가 그런 엄청난 자료를 가지고 있으며 왜 공개하지 않는가를 두고,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여부조차 세간의 논란 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2003년 초호화 양장본 2권으로 구성된 '태견'을 출간함으로써 그것이 사실임이 증명됐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최용술에 대한 자료의 가치에 대한 기대치 역시 높다.)
소설 '랑의 환국'이 무술계에서만큼은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일단은 픽션이기에 이 책 내용이 어디까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반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가 김정윤의 제자로서 이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김정윤의 진술과 녹음 자료를 상당 부분 참고했다고 발히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김정윤과 함께 일본 최용술 관련 지역 답사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따라서 그 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최용술의 일본 행적에 관한 실마리와 김정윤의 자료 내용이 소설 내용 속에 상당히 녹아들어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허구성을 가져올 필요가 없는 저자의 머리말에서도 김정윤을 소설 속 명칭인 김정으로 표기하는 등에서 미루어 볼 때 작가 역시 심정적으로라도 소설 내용의 상당 부분이 사실임을 피력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
하지만, 그 때문에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사실적 자료와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물론 소설에서도 최용술이나 김정윤의 이름부터 최봉술(혹은 봉대, 그러나 호는 덕암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과 김정으로 바꾸어 표기하는 등 실제와는 다른 허구임을 분명히 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분명히 처음부터 끝까지 픽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실제 관계자들이 생존해있는 경우가 많고 관련 단체들과의 민감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보니 이름을 바꾸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무술계 사정에 어느 정도 눈과 귀가 트여있는 사람이라면 극중에 등장하는 인물과 단체가 누구 혹은 어디를 지칭하는 지는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이름 외의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그 이름이 바뀐 인물이나 단체의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기도 한데(국내 인물 중에서는 오로지 송덕기만이 본명으로 등장하는데, 그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가명을 쓸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반면 일본 측 인물은 아이키도 개조인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포함해 본명으로 등장하지만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이도 있다), 개중에는 분명히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100% 사실로 받아들였다가는 정말 큰 사단이 날 지도 모른다. 심지어 현역 대학 교수인 이가 다이토류의 적통임을 증명하고 싶어 강도질과 폭행 내지 살인까지도 저지르려 하는 악인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실제 인물은 당연히 그런 인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저자가 소설이라는 방식을 빌린 것도 이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일 터이다.
과유불급
작가는 이 소설을 집필하는데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소설로서는 처녀작인데다가 전부 세 권으로 구성된 꽤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현역 일간지 기자다운 맛깔나는 문체와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린 구성, 그리고 중간 중간 삽입된 다케다 소가쿠와 최용술의 흥미진진한 무용담으로 소설적인 재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게끔 해준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어쩌면 이 쪽 계통에 비관심자에게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 한풀 중심의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풀 가승인 저자로서는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소설 후반으로 갈 수록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김정윤과 한풀 사상을 설명하고 타당성을 부여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등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귀한 무예인 한풀을 하는 이로서 그 애정이야 모를 리 없지만, 자칫 한풀 홍보 자료로 보이기조차 하는 내용이 오히려 한풀에 부정적인 영향를 주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출처 : Human Art Studio 류운예당 (流雲藝堂) |글쓴이 : 류운 [원문보기] |
출처: Human Art Studio 류운예당 (流雲藝堂) 원문보기 글쓴이: 류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