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브리아기의 별빛
이언
처음 할루키게니아 스파르사의 화석을 발견한 사람들은, 이 생명체의 머리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가시 같은 부속지를 이용해 걷는다고 생각했다 후에 머리가 발견되면서 머리와 꼬리의 위치가 밝혀졌다 그리고 가시처럼 보이는 부분은 이동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흔적임을 확인하였다
4인용 텐트 속 작은 다족류 절지동물 한 마리가 벽을 기어오른다
지퍼를 올려 텐트의 입구를 닫으면 사방이 비닐 지퍼팩처럼 팽팽하게 밀봉된다
지금, 텐트 속은 저 많은 다리로 건너왔을 5억년 전 캄브리아기
나는 설레발이*를 보면서
설레발치지 않는 연습을 한다
고요하게 몸을 열어 바람이
피부에 스며들게 내버려둔 채
피카이아, 오파비니아, 오토이아, 아노말로카리스
방금 설레발이를 따라온 긴 이름들이
목덜미에서 겨드랑이로 다시
사타구니까지 온전히 지나가도록
4인용 텐트 속, 멀고 먼
차마 외워지지 않는
별자리 이름처럼 길고 아득한
이름 한 마리가
솜털처럼 살갗에서 돋는 것을 본다
궤도를 이탈한 캄브리아기의 아득한 별빛
나는 가만히 몸을 누인 채 기다린다
이 오래된 멸종의 기울기가
내 그림자 주변을 더 오래 선회하도록
*돈벌레의 순우리말
웹진 『시인광장』 2024년 5월호 발표
이언 시인
서울 출생, 인하대학교 철학과 졸업, 2024년 문학뉴스&시산맥 신춘문예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