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아시는 내용이지만
1.우리 박근혜대표께서 한나라당을 탈당하신때가 있었다.
그때의 명분은 이회창대표에게 당의 개혁을 요구했었지만 그 당시의 서슬퍼런 자리에 눌려
감히 어느 누구도 대항할수 없는 상황에서, 대표께서는 더이상 국민이 바라는 개혁적이지 않은 당에는 있을수 없다하여 떠나셨던 것이고
당시 전국적으로 박대표님의 기개를 다시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보다도 명분이 있었기에 대표님의 탈당을 언급하지 않는것입니다.
2. 전여옥의원이 대변인이 되었을때 대변인은 매일 5시쯤 대표집에 가서는 같이 식사하고
당에 출근하던것이 관행으로 되어있어 대표님 집으로 가니 박대표께서는 아침에 오지말고 당에서 보자했답니다 .
처음엔 좀 만만하게 보았었고 사전에 조율하지도 않았는데 지시하시는게 명쾌하고 군더더기가 없는지라 전여옥이가 누굽니까
그 입심센 전여옥이도 그때부터 대표님앞에선 꼼짝하지 못했답니다.
3. 제가 아는 지인 한분이 70세가 넘어셨는데 그분과 대화할 일이 있어 일전에 뵈었는데,
박대표님을 좋아하시고 지지하는 이유가 너무도 명쾌하고 분명하여 오히려 제가 머리가 숙여 졌습니다.이유인즉 풍비박살난 당을 추스리고
자기의 모든 기득권(공천권기타)을 내버리면서까지
공명정대하게 당을 이끌고오심에 비록 여자지만 원칙을 지키려는 당찬 기개와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시던 인내심에 고개가 숙여지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래글은 우리 선비(현재:국회의원,고위직)들의 처신이 어떠했는지 그 교훈이 될까하여 한자 적습니다.
비록 현세와는 차이가 있지만 선비의 지조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후세 역사적인 평가가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짧은 식견으로 발췌했습니다.
봉화백 정도전,조선에 유교 이상사회를 건설할 야망으로 평생을 분투했던 정도전은 56세의 한창 나이에 이방원에게 비참하게 죽었다.
왕자들을 제거하는 친위 쿠데타를 음모하다.
8월26일밤 반란세력인 정도전등이 무방비 상태에서 이방원에게 기습당하여 요동정벌과 조선창업의 위대한 개혁을 꿈꾸던 그가 최후를 맞았다.
당시 문무백관중 서열1위 였던 좌정승 조준은 결정적 시기에 이방원편에 붙어 백관들의 여론을
이방원편으로 기울게한 공로로 좌정승 자리를 지켰다.
정도전계열로 위화도 회군당시 이성계의 선봉부대장이었던 문화부찬성 유만수의 비참한 죽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스스로 짓밟은 결과이며, 그가 정도전의 편에서서 끝까지 남아 장렬하게 죽었다면 역사는 그의족적을 달리 평가 했을 것이다.
전세가 기울고 나서, 정도전측에 가까웠던 우부승지 변중량은 "정도전 ,남은등이 반역을하다 잡혀 죽었다"는 임금의 선포문 까지 썼고,
이방원앞에 잡혀 와서는 "제가 公에게 뜻을 둔지는 벌써 여러해 째입니다"라며 구명을 요청하다가 "저놈의 입도 고깃덩어리 이다"라는
이방원의 한마디에 세상을 달리했다.
평생동안 종잡을 수 없는 기회주의적처신으로 일관하다 인생의 종말에서까지 비굴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고려말 역성혁명의 시기에는 이방원의 정몽주 주살계획을 정몽주에게 미리 흘렸고, 한때는 이방원에게 붙어 정도전을 탄핵하다 귀양을 갔으며,
그후에는 다시 정도전측에 가담하여 대명 강경론에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 순간에는 다시한번 카멜레온의 변신을 시도하다 굴욕적 죽음으로 최후를 마쳤다.
정도전은 선비란 의리에 살고 선비의삶은 당당한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고 보았다.
비겁한 지식인, 의리없는 선비, 의무를 저버리는 지도층은 인간답게 사는길을 포기 했으니 금수와 다를게 없다고 했다.
필부의 죽음은 역사의 관심 밖이지만 , 말끝마다 의를 앞세웠던 사대부의 최후는 역사의 준엄한 평가대상이다.
필부와 사대부의 차이는 나만을 근심하는가, 천하를 근심하는가에 있다.
천하를 근심하던 사대부가 나만을 근심하는 필부로 전락하면 애초에 사대부가 되지 않았음만 못하다.
권력의 기본은 백성에게서 나온다.
정도전 , 철저한 民本의 중심에 있었으며 한치도 이 진리는 죽는 날까지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이 대목은 박대표께서 "나는 대한민국과 결혼했습니다"라는 말씀과 일치한다고 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주군에 대한 의리를 강요받지도 않지만 , 적어도 친구와의 의리, 동료와의 최소한의 의리와 예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작은것에 움직이고 몸을던지는 불나방같은 존재는 아니 되리라.
원칙과 근본이 가장 중요함이요 정면돌파가 최선의 방법입니다.
民을 먼저 생각했던 정도전이 그리워 진다.
官職은 입신양명의 지름길이 아니다.
정도전처럼 비록 죽음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음이 그를 더욱더 우르러 보이게 합니다.
천하를 근심하는 목민관 시험의 방이 붙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인간들 오늘도 잠이 안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