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말 미국 실리콘발리의 Dot.Com Boom 이 한창이던 그시절 나는 UBC 3학년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유비씨와 고려대/서울대/연대가 자매연결을 맺어서 교환학생들이 처음으로 등장하던 시절입니다. 글솜씨가 워낙 부족하지만 그때 기억나는 한 교환학생에 관한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이름도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 안나네요. 그런데 시골에서 자랐다고 했습니다. 그녀석은 외국기행이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했습니다. 한국서 나오면서 비행기를 처음 타봤다고 했으니... 약간 촌스런 더벅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그때 교환학생들은 상당수가 여학생들이었고 세련된 오렌지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가운데 유독히 눈에 띄던 그녀석... 아마 촌스러운 모습때문에 그랬었나 싶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비닐하우스나 농가에서 자라는 잡초같이 생긴 녀석...왠지 나와는 연관되기 싫었던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학교가 시작하는 9월 - 한국 교민 신입생들 + 교환학생들의 오리엔테션이 끝나고 그녀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형 이게 모에요...저게 모에요". 약간 사투리가 섞인듯한 말로 겁먹은듯이 나한테 물어보는 질문들. 처음에는 쪼끔 친절하게 답해줬지만 나도 뽀송뽀송한 신입생 아가씨들과 교환학생에 섞여온 "여우" 한마리에게 정신이 팔려있던지라 귀찮다는 표현을 해버린거 같습니다. 그녀석도 그걸 느꼈던지 우두커니 서 있더군요.
다른 학생들은 서로 섞여서 왁자지껄 먹고 마시느라 정신 없었지만 그곳서 아무 부류에도 끼지 못하고 서 있던 그놈.
그후 한두달이 지난후에나 그녀석을 다시 볼수 있었습니다. 중간고사의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지던 그해의 11월. 유비씨 캠퍼스에는 가을낙옆과 함께 쌀쌀함을 느낄수 있던 계절이지요. 커플들은 팔짱끼고 운운해 다니지만 유독히 혼자서 배낭가방매고 둠둠하게 늘어지는 쥐색 파카를 입고 다시 내앞에 나타난 그녀석. 멀리서도 전원일기에 나오는 금동이 사촌형을 보는듯 했습니다. "형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 하더군요.
시골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어디라고 했는데 난 그곳 이름도 기억을 못합니다. 부모님은 농사지으시고 어렵게 공부해서 대학까지 갔다고 합니다. 어학연수할 돈이 없어서 교환학생으로라도 온거랍니다. 적응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당연하지...너같은 촌놈이 어떻게 이곳에서 적응을 하겠니..." 라는 생각이 앞서더군요.
하지만 무언가가 그녀석에게 끌리더군요. 왠지 신선한 느낌. 한국학생들끼리는 언제나 모여서 먹자 마시자 놀자 하는데 언제나 도서관에 박혀있거나 기숙사에 박혀 있는 그 놈. "야, 나 따라와...밴쿠버 구경시켜 줄께".
얼마후 중간고사 끝나고 나서 차몰고 밴쿠버를 한번 돌아다녀봐 주었습니다. 주로 "여우"들에게나 해주는 나의 친절...남자놈한테 해주자니 좀 그랬지만 그녀석의 호기심 많은 얼굴을 보니 내가 좋은일 한번 한다 샘 치고 해주었습니다. "형 우와...저긴 어디에요, 이건 모에요? 저기선 모해요?". 버스타고 다운타운 나오는것 외에는 다른곳을 보지도 못한 그녀석. 모든것을 새로와 했던 그녀석. 돈없어서 나가서 맛있는거 사먹지도 못했던 놈. IMF 가 한창이던 시절이지만 돈많은 유학생들은 허다한 때였습니다.
메트로타운 옆 다래옥에서 같이 짜장면을 먹으면서 물었습니다.
"너 여기로 아예 유학을 오지 그러니..."
"에이...전 한국서 살아야 되요..." (아마 부모님을 모셔야 했나봅니다).
"여기서 대학 마치면 한국 왠만한 기업에는 취직이 쉽게 될텐데..." (그때까지만 해도 쉬웠죠).
"....그래요?"
"여자친구는 있어? "
"...에이...없어요~~~"
"하나 소개시켜줄까? ㅋㅋㅋ"
"ㅋㅋㅋㅋㅋ..."
정말 순진한 녀석이었습니다. 같이 다니면서 눈에 다른애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있었지만 너무 끌리는 녀석이었고 잘해주고 싶었습니다. 왠지 이런놈이 잘 풀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 사는" 다른 연수생이나 교환학생들 보니까 괜히 이녀석과 비교가 돼면서 심술인지 아니면 질타심이 생기더군요. 하여간 그것보다도 먼저 그녀석의 풋풋한 인성과 왠지 넓은 생각에 끌렸습니다.
어느새 4월...1년이 지나갔고 방학이시작되는 무렵. 교환학생들이 돌아가야 할때가 되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자기들 쇼핑한게 많아서 아예 이민가방들 들고가는데 이녀석은 딱 조그마한 가방둘...그중 하나는 여기서 쓰던 책들이었습니다. 난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해서 그녀석에게 주었습니다. "여우"들한테도 선물 한번 안주는 난데...그녀석을 그냥 보내기가 좀 그렇더군요.
"가서 연락해 임마"
"형 정말 고마왔어요 꼭 연락할께요...한국 오시면 제가 대접 할께요 :) "
밴쿠버는 워낙 사람들이 왔다가 떠나는 곳이라서 - 나는 떠난사람은 연락을 안하게 된다는 법칙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약간 섭섭한 마음으로 그녀석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그녀석은 무언가 할수 있을거야...이녀석 정도 되면 정말 무언가를 할수 있을거야...이런녀석이 잘 풀려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몇년이 지난후 그녀석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른사람을 통해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느 중소기업에 취직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모하는지는 모릅니다. 어렵게 들어가서 자리를 지키는거 같습니다.
왠지 다른사람과 똑같이 챗바퀴 돌리면서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괜한 기대를 했었는데...쩝...그래도 자기자리를 만들어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정한 현실...한국이나 여기나 똑같지만 왠지 사회란것에 젖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어느새 나도 사회인...나는 지금 어디있나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그 동생분도 한국에서 어디선가 열심히 "꿈" 을 찾아서 뛰어가고 있겠죠. 잘 될거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