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나는 오랜 만에 여기 동해안 장사 바다에 왔다. 파도 소리 바람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모두가 파도요, 바람이요, 그리고 아, 하늘이 있을 따름인데 나는 왜 인간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홀로 포항에 머물 때였으니까 옛날 얘기가 되겠다. “바다가 그리울 때 불쑥 포항에 갈 겁니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대구에서 같이 피아노 레슨을 받던 한 아가씨가 사무실로 시외전화를 했다. 어느 날 그녀가 왔다. 송도며 북부해변, 칠포며 월포의 가까운 바다를 다 두고 하필이면 조금 멀고 외진 이 장사 바다로 오자고 했다. 산기슭에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지만 바람 끝이 차가운 사월 초였다.
그날따라 끄무레한 하늘은 낮게 내려앉았고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성난 파도는 사람을 삼킬 듯했다. 해변을 얼마간 거닐면서도 무슨 곡절인지 그녀는 통 말이 없었다. 침묵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내가 먼저 술을 한잔 하자고 했다.
그녀는 대학 시절 남자 친구와 바로 이날 여기에 왔다. 저기 산 위에 올라갔다. 바다와 하늘과 구름과 그리고 꿈을 바라보았을 거다. 그때 동전 몇 닢이 떨어졌는데 그 자리에 묻었다. 사랑의 토우(土偶)가 된 동전, 끝내 싹을 트지 못했다. 더듬더듬 분노처럼 내뱉는 해쓱한 얼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문득, 피아노를 배울 때 가끔 건반에 엎드려 숨죽여 흐느끼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났다.
우리는 위령탑 부근으로 갔다. 전몰용사 명단 같은 걸 둘러보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 15일 새벽 두 시에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고 네 시간 뒤인 여섯 시에는 장사상륙작전을 감행했다. 동서 협공으로 적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양동작전(陽動作戰)이었다고 한다. 전투에 투입된 772명 가운데 거의가 열 일고여덟 살 어린 학생들이었다. 훈련이래야 고작 열나흘 정도밖에 안 받은, 군번도 없는 이 유격대를 맥아더는 이 전투에 투입시켰던 거다. 하필이면 그때 장사에는 거센 태풍이 덮쳤다. 엿새 동안의 악전고투 끝에 승리했다. 적군의 퇴로를 끊고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혁혁한 도움이 되었지만 학도병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이 전투에서 섬멸 당한 인민군 병사 또한 학도병 또래의 열 일고여덟 살 꽃다운 나이였다. 학도병들은 주로 대구 지방의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때 열일곱 살 농촌 아이였다. 내가 만약 중학교를 대구로 갔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학도병모집에 지원했을까? 나는 지금도 대구역 광장에 나가면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도 아닌데 귀가 윙윙거린다. “학도들이여, 조국을 지키자.” 학도병 모집의 명을 받은 이명흠 대위의 절규다. 학도병이며 인민군, 그들은 왜 죽어야 했는가? 이 엄숙한 질문을 던지며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언제나 이른바 우주적 탄식을 금할 수가 없다.
‘이 여자는 여자로서, 이 전투에서 죽은 어린 학생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조금 시무룩해 있자 그녀가 내 옆구리에 자신의 팔을 걸고는 가만가만한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그리운 바다>로 번역되는 존 메이스필드의 Sea-Fever라는 시를 영어로 리드미컬하게 읊었다.
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 to the lonely sea and the sky, And all I ask is a tall ship and a star to steer her by, And the wheel's kick and the wind's song and the white sail's shaking, And a gray mist on the sea's face, and a gray dawn breaking.
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
나는 이내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되었고 그녀는, 들리는 소리로는 사문에 들었다고 한다. 그 시를 우리말로 읊어본다.
나는 다시 바다로 가야지,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키 큰 배 한 척, 그 배를 인도하는 별 하나, 그리고 물결치는 키 바퀴, 바람의 노래, 펄럭이는 흰 돛, 바다 얼굴 위의 잿빛 안개와 동이 트는 잿빛 새벽.
나는 다시 바다로 가야지……
눈을 감고 가만히 바다를 떠올려 본다. 파도 소리 들린다. 오는 소린가 싶더니 가는 소리요, 가는 소린가 싶더니 오는 소리다. 만남과 이별이 번갈아 든다. 전쟁과 평화가 갈마든다. 홍균(洪鈞)의 얼굴을 모르거든 파도를 보게나. 그 율동은 만유의 아르케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