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iaEcDgxm8es?si=w_JvoiunX588BwAG
(Ana Vidovic plays introduction and variations on a Theme by Mozart Op 9 by Fernando Sor)
기타(guitar)는 8세기경 사라센 제국의 스페인 지배 당시에 무어 인들이 들여온 '키타라(Quitara)'라는 악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하고, 또 그리이스어 '기타라 (Kithara)'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합니다. (영. guitar, 도.gitarre, 프.guitare, 이.chitarra, 스.guitarra)
13세기의 스페인 문헌은 당시 기타(guitar)의 종류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무어 키타아(guitarra moresca)와 라틴 기타아(guitarra latina)로 구분했습니다. 그러나 17세기까지도 기타아(guitarra)라는 이름보다는 비우엘라(Vihuela de mano)란 이름이 더 널리 사용되었다지요. 손(手) 비우엘라(Vihuela de mano)는 뜯는 기타아를, 활 비우엘라(Vihuela d'arco)는 활로 긋는 피델 즉 비올라를, 피크 비우엘라(Vihuela de penola)는 피크로 치는 기타아를 의미했다고 합니다. 기타아는 본래 5-7개의 홑줄을 갖고 있었는데, 17세기에 잠시 4-5개의 겹줄로 바뀌었다가, 18세기부터 오늘날처럼 6개의 홑줄로 확정되었습니다. 특히, 스페인은 기타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었을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기타 음악이 가장 풍부하게 발달하였던 나라였습니다.
스페인에서는 '클래식'기타가 발전하기 훨씬 전부터 비우엘라가 연주되었는데, 기타의 전신인 비우엘라 데 마노(Vihuela de mano)는 콜롬부스 시절에 외국에서 도입된 악기로, 류트(Lute)와 같은 방식으로 조율되었지만 모양은 기타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16세기에는 상당한 양의 비우엘라의 연주 레퍼토리들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1535년, 최초로 스페인에서 루이스 데 밀란이 7명의 작곡가들의 비우엘라 작품들을 모아 비우엘라 타블라추어 모음집《마에스트로 EI Maaestro》를 출판하게 되었는데, 이 작곡집은 타블라추어(tablature)라는 특수 기보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류트(Lute) 음악에 사용되었던 타블라추어(tablature)는 일종의 '손가락 기보법'인데 음자리표와 비슷한 여섯 개의 가로선이 류트의 여섯 줄을 나타내며, 오른손으로 탄주될 지판을 문자나 숫자로 표시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바로크 초기 시대에 이르러 스페인에서는 비우엘라 대신 5현으로 된 기타가 사용됩니다, 기타 작곡가들은 이 악기를 위해 새로운 음악들(대부분 춤곡)을 작곡하고 또한 이를 출판하였습니다. 그후 기타는 스페인과 여러 유럽지역에서 오늘날과 같은 6현을 가진 모습으로 발전을 거듭합니다.
하지만 19세기에 걸쳐 스페인에서도 피아노가 워낙 기세를 떨쳤기 때문에 기타 음악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합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도 스페인에는 클래식 기타의 전통을 이어받은 두 대가가 있었으니 바로, 페르난도 소르(Fernando Sor)와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입니다.
페르난도 소르 (Fernando Sor)
19세기초 고전파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 겸 기티리스트 페르난도 소르(Fernando Sor). 1778년 2월 14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소르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초까지 활약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이며 이탈리아의 쥴리아니 (M.Giuliani)와 함께 고전파의 쌍벽을 이룬 존재였습니다.
5세때부터 작곡을 할만큼 신동으로 천부적인 음악의 재질을 타고 난 소르는 카탈로니아의 몬토세라토 수도원 부속학교에서 바이얼린, 첼로, 화성학, 대위법 등을 공부합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태리 가극이 전성을 이루었는데, 오페라에 감명을 받은 소르는 19세 때 "칼립소섬의 텔레마코"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여 공연하여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화가 고야의 후원자이기도 하였던 알바 공작부인의 가족으로 살면서 당시 막강한 메디나셀리 공작의 후원을 받으며 창작활동을 하였는데 오페라, 교향곡, 오라트리오, 3개의 현악4중주, 여왕봉 찬가, 피아노 또는 기타반주의 스페인 가곡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합니다. 소르는 반왕정 해방운동 등의 정치적 이유로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망명, 1817년에 영국으로 건너가는데, 마침 기타음악의 개화기였던 런던은 소르의 기타 연주에 열광적으로 호응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소르는 기타를 위한 작품활동은 물론 오페라 작곡을 계속하여 호평을 받게 되는데 파리에서는 그의 오페라 "신데렐라 Cendrillon"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어 1823년에서 1830년까지 무려 104회나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1823년 파리에서 신작 발레 "신데렐라"를 상연한 후 당시 연주가들이 동경하던 러시아의 여행에서 7현 기타를 사용하던 그곳에서 현재와 같은 6현 기타의 묘기를 보여 절찬을 받았습니다. 페데르부르그에서는 국왕 알렉산더 1세의 장례를 위한 장송 행진곡을 작곡하였으며 모스크바에서는 니콜라스 1세의 즉위 축하를 위한 발레 "엘큐르와 옴파레"를 작곡 상연하였습니다. 파리로 돌아 온 후에도 유럽에서의 소르의 기타 연주는 계속 성공을 거두어, 그로 인하여 기타(guitar)의 대중적인 인기가 다시 살아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만년에는 빈곤과 병고, 사랑하는 딸의 죽음 등으로 비참하고 불행한 생활을 한 끝에 1839년 7월 13일에 사망하였습니다.
소르는 같은 스페인 출신 기타음악가 아구아도(Dionisio Aguado 1784~1849 스페인)와 깊은 우정을 나누면서 한때는 수년간 함께 살기도 하면서 서로의 예술을 깊이 연구하였다고 합니다. 기타를 연주하는 주법에 있어서, 아구아도는 손톱을 길러 사용한 주법을, 소르는 손톱 없이 하는 주법으로 서로 상반된 주법을 사용하였으나 서로를 존경하며 우의를 두텁게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소르는 두사람을 위한 연주회용 2중주곡인 "두 친구"를 작곡하였는데 이곡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기타리스트들에 의하여 자주 연주되고 있는 명곡이라고 합니다. 그가 쓴 교본에서는 기타의 기술적인 면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손톱의 사용이 편하다고 쓰고 있다고요...!!!
소르는 '주제와 변주(Theme et Variations)'형태를 좋아해서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노래를 주제로 변주곡들을 만들어냈는데 클래식 기타의 10대 명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그 예입니다. 이 연주곡은 너무도 유명해서 클래식 기타 음악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아마 충분히 귀에 익은 곡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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