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앎이 쌓이고 쌓여서 본래의 밝음을 가립니다.
깨달음은 잘못된 앎은 바로 잡는 겁니다.
새로운 걸 아는 게 아니라
잘못 알던 걸 바로 보는 겁니다.
밧줄을 뱀으로 잘못 봤습니다.
어둠 속에서 밧줄이 뱀처럼 보였습니다.
놀라서 피했습니다.
불을 켭니다.
밧줄이 보입니다.
아 뱀이 아니라 밧줄이었구나.
뱀이 밧줄로 바뀐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밧줄이었습니다.
잘못 본 것뿐입니다.
깨달음도 그렇습니다.
무언가가 바뀌는 게 아닙니다.
잘못 본 걸 바로 보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깨달음 전과 후가 다르지 않은 걸까요? 다릅니다.
하늘과 땅만큼 다릅니다.
뱀으로 볼 때와 밧줄로 볼 때
세상이 완전히 다릅니다.
뱀으로 보면 두렵지만
밧줄로 보면 두렵지 않습니다.
나라는 게 있다고 볼 때와 없다고 볼 때
삶이 완전히 다릅니다.
있다고 보면 집착하지만
없다고 보면 자유롭습니다.
같은 세상이지만 보는 방식이 다르면 다른 세상입니다.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비를 보며 우울해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를 보며 기뻐합니다.
비는 똑같습니다.
다만 보는 사람의 마음이 다를 뿐입니다.
깨달음도 그렇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보는 방식이 바뀝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납니다.
깨닫기 전에는 그게 나의 고통이라고 여깁니다.
나를 괴롭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깨달은 후에는 그게 그냥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나의 것도 아니고 나를 괴롭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겁니다.
파도가 일어납니다.
파도를 나라고 여기면 파도가 무너질 때 나도 무너집니다.
파도를 현상으로 보면 파도가 무너져도 나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나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입니다.
파도는 바다 위에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바다는 그대로입니다.
아는 겁니다.
지금 손바닥을 천천히 펴 보십시오.
펴지는 이 감각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깨달음을 얻으면 특별하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을 등지고 산속으로 들어가야 할까요?
한 제자가 깨달았습니다.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스승이 답했습니다.
물을 길러오고 나무를 해 오너라.
제자는 실망했습니다.
깨닫기 전에도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했습니다. 깨달은 후에도 똑같이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해야 합니까?
스승이 말했습니다.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안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물을 길러 올 때 예전에는 물을 길어 온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냥 물을 길어 올 뿐이다.
나무를 할 때 예전에는 나무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냥 나무를 할 뿐이다.
무슨 차이일까요?
예전에는 물을 길어오는 나가 있었습니다.
나는 물을 길어오고 싶지 않은데 해야 하니까 했습니다.
하기 싫지만 참고 했습니다.
이제는 물을 길어오는 나가 없습니다.
물이 필요하니 물을 길러 올 뿐입니다
하고 싶고 하기 싫음이 없습니다.
그냥 합니다.
차이가 미묘해 보입니다.
하지만 삶 전체가 바뀝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 괴롭습니다.
마음속으로 저항하고 불평하고 빨리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냥 할 때 괴롭지 않습니다.
저항이 없으니 편안합니다.
설거지를 합니다.
설거지가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합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마음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손은 설거지를 하지만 마음은 이미 끝난 후를 상상합니다.
이렇게 하면 설거지는 괴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냥 설거지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설거지를 할 때 설거지만 합니다.
물이 손에 닿는 느낌
그릇이 깨끗해지는 느낌
비누 냄새
그것들을 느끼면서 합니다.
빨리 끝내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에만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설거지는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저 하는 일일 뿐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괴로움을 만듭니다.
일 자체는 괴롭지 않습니다.
비가 옵니다.
비가 오는 건 괴롭지 않습니다.
비를 맞기 싫다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교통이 막힙니다.
교통이 막히는 건 괴롭지 않습니다.
빨리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게 괴롭습니다.
괴로움은 상황에서 오는 게 아니라
상황에 대한 저항에서 옵니다.
저항을 놓으면 괴로움이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할까요?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항을 놓는다는 건
무기력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의 저항을 놓는다는 겁니다.
불의를 보면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합니다.
할 일은 피하지 않습니다.
말해야 할 때는 말합니다.
하지만 분노하면서 바로잡는 것과
평온하게 바로잡는 건 다릅니다.
분노하면 분노에 휩쓸립니다.
냉정함을 잃고 판단력이 흐려지고
과하게 반응합니다.
평온하면 상황을 정확히 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고
적절하게 대응합니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닙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겁니다.
슬픈 일을 보면 슬픕니다.
슬픔을 느끼되 슬픔에 빠지지 않습니다.
슬픔을 느끼는 것과 슬픔에 빠지는 건 다릅니다. 슬픔을 느끼면 그 슬픔이 일어나고 지나갑니다. 슬픔에 빠지면 그 슬픔이 계속됩니다.
강물이 흐릅니다.
강물에 손을 담그면 물이 흐르는 걸 느낍니다. 시원하고 부드럽고 흐릅니다.
강물에 빠지면 물에 휩쓸립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숨을 쉴 수 없고 허우적거립니다.
감정도 그렇습니다.
느끼되 빠지지 않으면 감정은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빠지면 감정에 휩쓸립니다.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감정을 봅니다.
아 지금 슬픔이 일어나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립니다.
알아차리는 순간 이미 빠지지 않았습니다.
알아차리는 건 빠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물을 볼 수 없습니다.
물 밖에 있어야 물을 볼 수 있습니다.
감정에 빠진 사람은 감정을 볼 수 없습니다.
감정 밖에 있어야 감정을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을 보고 있다면 이미 감정 밖에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감정을 느끼지 않는 걸까요?
감정을 느끼지만 감정과 동일시하지 않는 겁니다. 슬픔은 느껴집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고 숨이 막힙니다.
이 모든 걸 느낍니다.
하지만 내가 슬프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슬픔이 일어나고 있을 뿐입니다.
차이가 중요합니다.
내가 슬프다고 여기면 슬픔이 나를 정의합니다.
나는 슬픈 사람이 됩니다.
슬픔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면 슬픔은 현상일 뿐입니다.
나는 슬픔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지 슬픈 사람이 아닙니다.
구름이 하늘을 가립니다. 하늘이 구름이 된 건 아닙니다. 하늘은 여전히 하늘이고 구름은 지나갑니다. 슬픔이 마음을 가립니다. 마음이 슬픔이 된 건 아닙니다. 마음은 여전히 마음이고 슬픔은 지나갑니다. 이걸 알면 어떤 감정도 두렵지 않습니다. 일어나도 괜찮습니다. 일어났다가 지나갈 걸 알기 때문입니다. 폭풍이 몰아칩니다. 무섭습니다. 하지만 폭풍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지나갑니다. 감정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강한 감정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지나갑니다. 이걸 믿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아니 견디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게 둡니다. 구름이 지나가는 걸 견딥니까? 아닙니다. 그냥 지나갑니다. 감정도 견디는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게 둡니다. 그렇게 살면 삶이 편안해집니다. 모든 것과 싸우지 않게 됩니다. 비가 오면 비를 받아들이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받아들입니다. 좋은 일이 오면 기뻐하고 나쁜 일이 오면 슬퍼합니다. 하지만 기쁨에 집착하지 않고 슬픔에 빠지지 않습니다. 모든 게 왔다가 갑니다. 계절처럼 날씨처럼 물결처럼. 우리도 그렇게 삽니다. 흘러가는 대로 삽니다.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건 무기력하게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항 없이 산다는 뜻입니다. 강물이 흐릅니다.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감싸고 낮은 곳을 만나면 고이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떨어집니다. 강물은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냥 흐릅니다. 하지만 강물은 무기력하지 않습니다. 바위를 깎고 계곡을 만들고 바다에 이릅니다. 저항 없이 흐르되 계속 흘러갑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상황에 저항하지 않되 계속 나아갑니다. 넘어지면 일어납니다. 실패하면 다시 시도합니다. 아프면 쉬었다가 다시 걷습니다. 저항하지 않으니 괴롭지 않고 계속 나아가니 멈추지 않습니다. 무념의 삶입니다. 생각에 걸리지 않고 사는 삶입니다. 생각은 여전히 일어납니다. 하지만 생각이 발목을 잡지 않습니다. 일해야 한다는 생각 저래야 한다는 생각 잘해야 한다는 생각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일어나도 붙잡지 않습니다.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입니다. 따를 수도 있고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바람이 이쪽으로 가라고 합니다.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도 그렇습니다. 생각이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이 나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나는 생각을 듣되 선택합니다. 자유입니다. 깨달음은 신비한 경지가 아닙니다. 생각에서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자유롭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건 아닙니다. 생각은 있되 그 생각에 메이지 않습니다. 3장 안에 새는 갇혀 있습니다. 날고 싶어도 날 수 없습니다. 3장 밖에 새는 자유롭습니다. 날 수도 있고 쉴 수도 있습니다. 깨달음 전에는 생각의 3장 안에 있습니다. 생각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깨달음 후에는 생각의 3장밖에 있습니다. 생각을 따를 수도 있고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유 속에서 삶이 흐릅니다. 억지로 흐르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흐르게 둡니다. 물은 스스로 흐릅니다. 밀지 않아도 흐릅니다. 마음도 스스로 흐릅니다. 억지로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입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어지고 피곤하면 쉬고 싶어집니다. 이걸 따르면 됩니다. 특별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살면 됩니다. 자연스럽다는 건 억지가 없다는 겁니다. 무리하지 않고 애쓰지 않고 그저 흐르는 대로 사는 겁니다. 하지만 흐르는 대로 산다고 해서 책임을 피하는 건 아닙니다. 매 순간 선택이 일어나고 그 선택에 책임집니다. 해야 할 일은 하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많은 게 내려놓아져 있습니다. 집착도 욕심도 분노도 내려놓으려고 애쓴 게 아닙니다. 그냥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려놓아진 겁니다. 낙엽이 떨어집니다. 나무가 떨어뜨리려고 애쓴 게 아닙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떨어집니다. 집착도 그렇습니다. 놓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놓입니다. 그때는 언제일까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입니다. 집착이 왜 일어날까요? 무언가를 붙잡아야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붙잡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면 집착이 필요 없어집니다. 아이가 인형을 꼭 붙잡고 다닙니다. 인형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자라면서 인형 없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인형을 놓습니다. 억지로 놓으라고 해도 놓지 않습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느낄 때 자연스럽게 놓습니다. 우리의 집착도 그렇습니다. 괜찮다는 걸 알 때 자연스럽게 놓입니다. 무엇이 괜찮다는 걸까요? 붙잡지 않아도 괜찮다는 겁니다. 물결이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물결을 붙잡으려 하면 붙잡히지 않습니다. 붙잡지 않으면 물결은 그냥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일어나도 괜찮고 사라져도 괜찮습니다. 모든 게 그렇게 흐르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 흐름 속에 있습니다. 흐름에 맡기면 저절로 흘러갑니다. 어디로 흘러갈까요? 바다로 흘러갑니다. 바다는 무엇일까요? 모든 게 돌아가는 곳입니다. 강물이 바다로 가듯 우리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본래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지금 여기입니다. 지금 여기가 본래의 자리입니다.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와 있습니다. 다만 그걸 모를 뿐입니다. 먼 곳을 찾아 헤매면서 발아래를 보* 못합니다. 지금 여기를 보십시오. 숨을 쉬고 있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이 살아 있음 속에서 매 순간 선택이 일어납니다. 2 선택이 삶을 만들어 갑니다. 더 필요한 게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