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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가려진 보물, 에트루리아 문명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이어주는 에트루리아 문명을 조명하여 서양에서 문명과 문화의 흐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소개합니다.
ㅇ 전 시 명: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ㅇ 전시기간: 2019. 7. 9.(화) ~ 2019. 10. 27.(일)
ㅇ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ㅇ 전 시 품: 신전 페디먼트, 석관, 청동상, 도기, 금제 장신구 등 300여점
ㅇ 주 최: 국립중앙박물관
ㅇ 협 력: 국립박물관문화재단
ㅇ 대여기관: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등
ㅇ 현지협력: 이탈리아 Expona/CP
ㅇ 관람료: 유료
이탈리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에서 대여한 287점의 에트루리아 보물들을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리스와 로마를 이어주는 신비로운 세계, 에트루리아 문명. 에트루리아인은 고대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에트루리아(Etruria)는 그리스와 함께 문화적으로 로마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아직도 비밀이 많은 베일에 싸인 문명입니다.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충만한 삶을 누리며, 자유롭고 즐겁게 가슴으로 숨을 쉽니다. 심지어 무덤까지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에트루리아의 가치입니다. 편안함과 자유스러움, 그리고 풍요로운 삶, 마음과 영혼을 어느 방향으로도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에트루리아인에게 죽음은 보석과 와인, 음악이 춤추는 즐거운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에트루리아는 종교나 제사, 건축, 스포츠 등 다양한 방면에서 로마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스 문명에서 로마 문명으로 변화하는 전환기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매력적인 문화를 만들었던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진면목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나보기를 바랍니다.
※ 뮤지엄 나이트 문의: 국립박물관문화재단:
https://forms.gle/guStEmAyabYpAkxYA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The Etruscans - Rising to Rome
- 반트, 기원전 4세기 말, 응회암, 파라오 투스카니아 -
지중해의 가려진 보물, 에트루리아
* 에트루리아의 영역(기원전 8세기~기원전 6세기) 이탈리아 중북부를 중심으로 성장한 에트루리아는 한때 에트루리아인이 로마의 왕을 할 만큼 강성했다.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10세기경 이탈리아의 중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로마에 흡수되기까지 천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지중해의 고대 문명이다. 그리스인은 에트루리아인을 티르세노이Tyrsenoi 또는 티레노이Tyrrhenoi라 불렀으며, 로마인은 투스키Tusci 또는 에트루스키Etrusci라 불렀다. 에트루리아인은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누구보다도 종교적이고 예술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중해를 가로질러 무역을 하였으며 그들의 삶은 예술과 스포츠, 건축, 종교로 풍요로웠다.
이번 특별전에는 에트루리아인의 삶과 세계관, 종교관을 보여주는 300여 점의 유물이 소개된다.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등에서 대여한 에트루리아 유물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다. 전시품 가운데 불치 신전의 페디먼트와 루니 신전의 페디먼트는 에트루리아 신전 건축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전시는 에트루리아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으며,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에트루리아의 삶과 사후 관념을 담은 전시
이 전시는 에트루리아의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트루리아는 그리스 다신 사상을 받아들여 이를 자신의 종교관으로 승화시키고 로마에 영향을 주었다. 종교는 그들의 삶 속에 늘 함께였다. 그들은 사후에도 삶이 지속된다는 내세관을 갖고 있었다. 무덤의 내부는 집처럼 꾸며 놓았으며 다양한 생활용품을 부장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에트루리아인의 삶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전시는 에트루리아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전시는 5부로 구성된다. 1부 주제는 에트루리아에 대한 소개이다. 에트루리아의 역사와 지리적인 위치를 설명하고, 지중해 세계에서 문명과 문화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이야기한다.
* 코린토식 컵, 기원전 6세기 전반, 테라코타,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코린토식 도기는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의 최대 무역품이였다. 코린트식 도기는 신화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연꽃이나 종려나무잎 등 화려한 무늬를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 오디세우스와 사이렌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후반,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이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 봉테라 네크로폴리스의 거대한 돌방무덤에서 발견된 유골단지이다. 호메로스가 쓴 그리스 서사 '오디세이'의 일화 중 사이렌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현혹하여 정신을 혼미하게 한 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이렌과, 이에 맞서 현혹되지 않으려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표현한 것이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선원에게 귀를 막고 노를 젓게 한 뒤 자신은 돛대에 묶어 난관을 헤쳐 나가려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아테네식 흑화 암포라, 기원전 530-520년, 테라코타/ 아테네식 적화 스탐노스, 기원전 5세기 전반, 테라코타,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채국립고고학박물관/ 불치 신전의 페디먼트(Pediment) - 이 테라코타는 나무로 제작된 보에 기와지붕을 얹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부분은 채색된 테라코타로 마감하여 내구성을 갖추었다. 디오니소스와 그의 아낸 아리아드네가 표현된 것으로 보아 디오니소스를 위한 신전의 장식으로 추정된다./ 여성 인물이 장식된 기와/ 여성 인물이 장식된 기와/ 두 인물이 장식된 기와, 남성 인물이 장식된 기와,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 티니아, 기원전4세기 초, 청동/ 라란 기원전 6세기 말, 청동/ 멘르바, 기원전 5세기, 청동/ 헤르클, 기원전 5세기/ 헤르클 두상, 기원전 2세기, 테라코타, 토스카나, 탈라모네/ 디오니소스 행렬이 묘사된 적화 킬릭스, 기원전 4세기 말, 적화식 도기,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 킬릭스는 굽이 있는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잔이다. 컵의 안쪽에는 행렬에 참가하는 세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디오니소스는 없으나 사티로스와 마이나데스가 묘사된 것으로보아 디오니소스의 행렬임을 알 수 있다. 에트투리아 적화식 도기 제작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였던 피토레 디몬테브라도니의 작품으로 보인다.
2부의 주제는 에트루리아인의 삶 속의 신이다. 에트루리아인은 누구보다도 종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신은 그들의 삶 속에 함께하였다. 에트루리아는 그리스 종교관을 수용하였으나 토착적인 요소도 있었다. 즉 그리스 신들에 해당하는 에트루리아 신들도 있고, 에트루리아 토착 신들도 있다. 여기서는 에트루리아의 신과 신전에 대해 소개하고, 신에게 바친 봉헌물로 제사 의례를 살펴보았다.
* 바쿠스(그리스의 디오니소스로 불리는 신이다.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난 영생을 얻었으며, 지상의 인간들에게 포도 농사를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른손에는 포도송이를 들고, 바쿠스를 따라다니는 동물인 표범을 데리고 있다.), 2세기,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에트루리아의 티니아(그리스의 제우스)상, 국립중앙박물관/ 영웅상(사냥군 모습의 젊은 남성 - 오른손에 뿔을 들고 왼발로는 야생돼지를 밟고 개를 데리고 있다.), 로마제국,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멘르바가 묘사된 장식 기와, 기원전 2세기 전반, 테라코타, 파라오 볼세나, 피렌채국립고고학박물관 - 기다란 키톤을 입고 투구와 방패로 무장 한 멘르바 몸통은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나 머리는 뒤를 돌아보고 있다. 옆에는 망토를 두른 또 다른 인물이 있는데, 소조상 아래의 명문을 살펴보면, 이 인물이 치렌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치렌스는 시간과 운명을 관장하는 에트루리아의 여신이다.
* 포루투나(그리스 신화에서는 티케로: 도시의 행운, 번영, 운명의 신으로서, 대게 이 조각상과 같이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조타기를 오른손에 들고 있다. 다만, 이 조각상에서는 유실되어 보이지 않는다. 왼손에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과일을 가득 담은 뿔이 표현되어 있다.)/ 헤르클레스(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 에르투리아에서는 해르클 - 초인간적인 힘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하다. 에트루이아와 로마에서는 헤르클레스를 신으로 숭배 하였다. 여기서 헤르쿨레스는 오른손에는 곤봉을, 왼손에는 사과를 들고 있다.)/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나 여신으로 불린다. - 전략, 전쟁, 미술, 무역, 지혜를 관장하는 여신이다. 이 미네르바 조각상은 큰 망토로 몸을 감싸고 서 있으며 가슴에는 방패인 아이기스, 머리에는 높은 장식이 달린 아테네식 투구를 쓰고 있다. 머리 높이까지 들어 올린 왼손에는 이마도 긴 창이 들려 있었을 것이다.)/ 메르쿠리우스(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 - 신들의 전령자이자 여행자의 수호신이다. 보통 날개달린 신발과 챙이 넓은 여행용 모자를 쓴 형태로 표현된다. 왼손에는 현재 유실 됬지만, 메르쿠리우스의 또 다른 상징인 두 마리 뱀으로 둘러싸인 날개달린 지팡이 카두케우스Caduceus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너스(그리스의 아프로디테에 해당 - 사랑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여신이다. 비너스는 로마의 조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로마인에게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였다. 왼손에 쥔 물체는 현재 유실되었지만, 아마도 비너스의 상징인 황금사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페디먼트 장식은 건축 장식의 일부로서, 고대 도시 루니의 대신전 페디먼트를 장식했던 테라코티이다. 루니는 에트루니아의 국경 지대에 있던 도시롤, 대신전은 도시 건설 후 바로세워졌다. (기원전 177년) 이 신전은 셀레네 루나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앞에 놓인 페디먼트 장식은 헤르클레스의 아들인 텔레포스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 페디먼트 장식 유피테르/ 페디먼트 장식 말 탄 사람/ 페디먼트 장식 남성
* 신에게 봉헌한 사람의 머리, 사람의 다리, 사람의 자궁, 사람의 인체 성기 등을 바치는 종교적 관습은 숭배 문화와 같이 연관되어 있다. 기원전 3-2세기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는 특정 질병을 관장하는 신을 위해 신전을 세웠다. 이러한 신전에는 신체의 일부분과 장기의 형태를 띠는 인체 봉남물을 봉헌 했다. 성기는 다산과 자녀 출산에 대한 기원을 의미한다./ 봉헌물 소, 돼지, 말 등 청동 조각상이나 테라코타 동물상을 신전에 바치는 일은 아르카익 시대(기원전 580-480년)부터 이어져 온 관습이다. 살아있는 동물을 바치는 대신 작은 동물 조각상을 바치는 이러한 특성은 농업이 주를 이루는 내륙지역 신전의 문설주에서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의 봉헌물 조각상들
* 언덕 전체가 죽은 자들의 도시인 무덤이다. (D.H. 로렌스의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 중에서)
3부는 에트루리아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그들이 남긴 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에트루리아의 무덤에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생활용품이 부장되어 있다. 에트루리아인은 무덤에 벽화를 그렸는데, 무덤 벽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괴수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구이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에트루리아의 신화와 종교의 내용을 묘사하였다. 흉포한 모습의 괴수가 우물에서 나오고 여러 명의 전사가 괴수의 목에 사슬을 둘러 단단히 붙잡고 있다. 한 남자는 도끼로 괴수에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괴수의 머리 위로 신주를 붓고 있다. 이러한 괴수와의 전투 장면은 악한 정령을 물리치는 정화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 점성술사가 묘사된 유골함 뚜껑, 기원전 1세기 초, 구이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동물의 내장을 이용해 예언하는 에트루리아 점성술사가 조각된 유골단지 뚜껑이다. 튜닉과 망토를 걸치고 머리에 왕관을 쓴 채로 기대어 누운 남성의 손에는 동물의 간이 들려 잇다. 이 남성은 에트루리아의 사제로 동물을 재물로 바친 후 내장을 읽어 예언을 한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이렇듯 점성술로 인간의 일과 관련한 신의 의지를 읽었다.
4부의 주제는 지하 세계의 신과 내세이다. 여기서는 에트루리아의 지하 세계의 신과 내세관에 대해 소개하고, 에트루리아의 무덤과 장례 의례를 설명한다. 지하 세계 신들의 존재는 죽음의 필연성을 상징한다. 에트루리아인은 사후에도 영혼이 계속 존재한다고 믿었다. 반트Vanth와 카룬Charun은 에트루리아 종교관에서 지하 세계의 신들이다. 무덤은 에트루리아 사회에 대한 가장 풍부한 정보이다.
* 전차, 기원전 7세기 전반, 청동 철, 토스카나, 포풀로니아, 피렌채국립고고학박물관 - 동방화 시기의 발견된 전차이다. 최고위 군 통솔자가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주인은 에트루리아의 왕 또는 최고위 귀족으로 추정된다. 전차 주인의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듯 화려하게 제작 되었다. 청동과 철로 상감 세공하고 현실 또는 동물이나 전투 장면을 묘사한 프리스로 장식했다.
* 모자상, 기원전 3세기 전반, 대리석,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라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그리스 양식의 추모용 조각상으로 키톤을 입고 아이를 않은 어머니를 표현하고 있다. 여인의 오른팔에 그녀의 이름인 '라르티아 벨키네이'가 새겨져 있다. 이러한 그리스 문화 양식은 에트루리아가 그리스 세계와 접촉 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조각상은 볼테라에서 발견된 후, 처음으로 외부에 전시되는 것이다.
* 청동투구, 기원전 4-2세기 - 우측의 청동투구는 반구형 원뿔 모양으로 꼭대기에는 손잡이가 달려있고 거의 보이지 않은 목 보호대가 부착되어 있으며 한 번에 주조된 투구에 빰과 턱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대를 탈부착하도록 제작하였다. 투구는 당시 로마군에서 사용하단 다른 유형의 투구를 대체하여 기원전 4세기부터 에트루리아에서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전통 양식으로 활용했으며 기원전 1세기까지 사용하였다.
* 허리띠고리, 기원전 7세기 후반, 청동
* 무덤의 부장풍들 - 왼쪽의 함(Pyx)과 오른편의 아스코스(Askos)는 기름 같은 액체를 소량 따르기 위해 담는 그릇(통)이다./ 전차모형(두 세 마리의 말이 끄는 이륜전차는 주로 전장에서 사용되는 빠른 이동수단이다. 전차모형이 무덤에서 발견된 것은 망자(亡子)가 전사였음을 강조한 것이다./ 말의 제갈/ 청동식기 그릇/ 청동 그릇/ 청동으로 제작된 꼬쟁이, 부집게, 부삽, 장작 밭침대/ 에트루리아의 정교한 청동제품들(스탐노스 Stamnoid Olla, 기원전 7세기 말, 부케로, 토스카나, 시에나, 라폴라노 테르메,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 포도주를 담는 항아리로 세 마리 고양이 머리가 뚜껑의 손잡이 역활을 하고 있다./ 청동거울)
* 히드리아, 기원전 6세기 중반, 부케로, 토스카나, 시에나, 라폴라노 테르메 - 에트루리아만의 독특한 양식이 돋보이는 도기로 뚜껑이 수탉조각이 되어 있다./
5부의 주제는 로마 문화에 남은 에트루리아의 영향이다. 로마는 기원전 8세기에 세워진 도시국가였으나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고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에트루리아는 점차 로마에 흡수되었으나, 그들의 뛰어난 문화는 로마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 저승의 문지기, 반트와 카룬 - 반트와 카룬은 에트루리아의 신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저승의 신이다. 반트는 날개가 달린 여성으로 표현 되는데, 횃불과 함께 죽은 이의 운명을 담은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있다. 칼과 열쇠를 들고 팔에 뱀이 감겨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카툰에 해당되는 카툰은 수염을 기르고 매부리코에 뾰족한 귀가 특징이다. 짧은 튜닉을 입은 남성으로 묘사되거나, 저승의 문지기를 상징하는 망치를 들고 있기도 한다. 일부 벽화에는 카툰의 피부색이 그가 이끄는 죽은 이와 같은 푸르스름한 색으로 묘사되어 있다.
* 저승의 신 - 에트루리아의 조각이나 그림에서 저승의 신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징한다. 에트루이아 묘비에는 종종 이러한 저승의 신을 인간과 짐승의 본성을 함께 가진 존재로 묘사해 놓았다. 무덤 벽화나 석관, 유골단지에서 화병 장식에 이르기까지, 조각과 그림에 남아 있는 수많은 신령들은 저승으로 죽은 이를 안내하는 영혼 "호위대"의 존재를 잘 보여준다.
* 바다 신령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 볼테라 귀족 페르디난도 인콘트리가 1742년 진행한 조사에서 발견된 유골함이다. 세로로 홈이 새겨진 두 기둥 사이에 여성의 형상을 한 바다 괴수가 묘사되어있다. 바다 괴수는 흩날리는 긴 머리에 왼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등 뒤에는 외눈이 달린 한 쌍의 날개가 펼져 있고, 허리 아래로는 꼬리가 달린 다바뱀의 몸통을 하고 있다.
* 그린핀과 전투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 1858년 포르토네 네크로폴리스의 돌방무덤에서 발견된 유골함이다. 그린핀과 싸우는 두 명의 전사가 묘사되어있다. 전사는 방패, 창, 검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린핀은 사자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지닌 그리스 신하 속 괴수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핀은 아폴론의 보물을 지키고 금광을 수호한다고 한다.
* 망자를 인도하는 반트와 카룬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묘사한 유골함이다. 짧은 키톤을 입은 망자는 말을 타고 왼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반트는 오른손으로 말의 고삐를 끌고, 왼손으로 횃불을 들고 있다. 아래를 향하는 횃불은 저승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뒤쪽의 카룬은 오른손에 칼, 어깨에 망치를 걸머지고 망자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 사후의 세계 문으로 망자를 인도하는 반트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기,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 유골함의 뚜껑에는 망토로 온몸을 두른 망자가 누워있다. 유골함 정면에는 저승으로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 가족과 이별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문은 저승을 상징한다. 망자의 여정을 반트와 저승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가 함께하고 있다.
* 사후 세계 문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 석관 중앙에 네 마리 말의 고삐를 쥔 여신이 두 마리의 돌고래가 헤엄치는 파도에서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석관의 다른 쪽 측면에는 내세로 이어지는 문이 있다. 이러한 부조는 저승으로 이어지는 문턱을 넘는 망자의 여정을 묘사한 것이다. 괴물들이 득실거리지만, 돌고래처럼 우호적인 동물도 있는 바다를 건너는 일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바다의 신령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 마차를 타고 저승으로 가는 여정의 한 장면을 묘사한 유골함이다. 왕관을 쓴 남성은 마차의 고삐를 잡은채 여성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말발굽 아래에 상체는 인간이지만, 등에 날개를 달고 물고기 꼬리를 한 트리톤이 보인다. 유골함의 오른쪽 끝에는 수염을 기른 저승의 신이 오른손에 막대기를, 왼손에는 뱀을 감고 있다.
* 오두막 모양 유골단지, 기원전 9세기 말/ 옹관, 7세기/ 유골단지, 기원전 8세기 전반/ 유골단지, 8세기 전반
* 포조 델 임파카토 네크로폴리스 출토품 - 카노푸스 단지와 의자, 탁자, 주사위, 눈 모양 부장품
* 인물을 형상화한 카노푸스 단지, 기원전 7세기 말, 테라코타, 토스카나, 시에나, 카우시 - 에트루리아의 유골단지는 단순한 반구형 뚜껑에 망자의 얼굴을 간략하게 묘사한 초기 형태에서 점차 뚜껑에 얼굴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카노푸스 단지로 발전하였다. 인물 형상은 망자의 유골을 담은 단지임을 나타내려는 의도록 보인다. 외형적인 모습에서 무덤 주인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되었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옥좌 위에 올린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 묘표석, 기원전 6세기 전반, 응회암, 올브리아, 오르비에르, 피렌체고고학박물관 - 에트루리아묘표석은 주로 무덤 위나 무덤 방 입구 옆에 설치되었다. 묘표석의 형태는 매우 다양했는데, 망자의 성별, 연령,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랐다. 이 묘표석은 각자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여성의 상체가 놓여있다. 이러한 유형은 키우시 지방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눈물 흘리는 조각상과 비슷하다./ 묘표석, 기원전 6세기 후반, 대리석, 피사·리보르노 관활 문화유산리국 - 돌방무덤이 눈에 띄도록 무덤 위에 설치한 묘표석이다. 묘표석 아래에는 대리석으로 조각한 암양머리를 장식해 놓았다. 이는 의식에 제물로 바쳐진 동물을 상징한다. 에트루리아 북부 해안에서 유행한 이러한 묘표석은 당시 이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 사람들로부터 대리석 가공 기술을 배워 제작한 것이다./ 비석, 기원전 6세기 후반, 사암, 토스카나, 피렌체, 인텔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 피에솔로 지역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일명 '피에솔로석'이라 불리는 비석이다. 이 비석은 사각기둥 형태로 상부에 종려나뭇잎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아래에는 의자에 기댄 두 명의 남성이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대화하는 모습과 두 명의 젊은이가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2단으로 나누어 표현되었다./ 묘표석, 기원전 6세기 초, 응회암, 라치오, 불치,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사각기둥 형태의 묘표석으로, 앞면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에는 고삐를 쥐고 말 옆에는 걷는 남자, 가운데는 스핑크스, 하단에는 등에 새를 태운 황소가 묘사되어 있다. 옆면에는 실재의 동물과 상상 속 동물들이 함께 새겨져 있다.
* 연화 장면과 사자가 묘사된 유골단지 - 웅크리고 있는 아켈로스가 석관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한 유골단지이다. 뚜껑은 경사진 지붕 형태로 용마루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웅크리고 있다. 석관 앞에는 조문객들과 함께 있는 망자의 모습이, 뒷면에는 장례 의례를 암시하는 전차 경주가 묘사되어 있다. 짧은 두 옆면에는 연회 장면이 새겨져 있다./ 유골단지로 사용된 켈레베 - 켈레베는 기둥 모양의 크레테르를 일컫는다. 원래 크레테르는 연회 때 포도주와 물을 타는 데 사용된 그릇으로 그리스에서 먼저 사용되었다. 그러나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조상의 시신을 화장한 후 남은 유골을 담는 용도로 자주 사용하였다./ 석관은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사이에 제작된 석관의 뚜껑으로 귀족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뚜껑에는 망자의 모습이 표현되었는데, 연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스듬한 자세로 오른손에는 '파테라'라 불리는 잔을 들고 있다. 석관은 현재 바디칸 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 석관은 기원전 3세기 후반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에트루리아의 도제관은 점차 돌로 만든 석관을 대체하였다. 뚜껑에는 일반적으로 망자의 모습을표현하였는데, 연회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의복을 입고 비스듬히 혹은 반듯하게 누워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제관에 묘사된 돌고래는 사후 세계를 향해 바다를 건너는 망자의 여정을 보여준다.
* 야누스, 1세기, 대리석 -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문을 지키는 수호신 역활을 하였다. 로마인들은 야누스 머리를 조각한 기둥을 거리, 교차로, 문 앞, 국경 등에 도둑과 사고를 막고자 설치하였다. 한쪽은 노인의 얼굴로, 다른 한쪽은 청년의 얼굴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 죄수와 여사제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1세기 초 - 두 명의 여사제가 선 채로 왼손에 칼을 들고, 오른손 에는 잔을 높게 들어 두 죄수의 머리 위로 부르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죄수들은 여사제를 향해 머리를 뒤로 돌리고 있으며, 앞에 선 청년은 그 의식을 지켜보고 있다. 이 장면은 복잡한 에트루리아 종교의식의 하나로, 정화 및 축복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유골단지 - 대리석이나 설화석고로 만들어진 임포라 유골단지이다. 이러한 유골단지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많이 제작 되었다./ 에트루리아 상징이 묘사된 유골함 -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유골단지로 에트루리아와 로마의 연관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측면의 X자 모양의 접이식의자는 로마 행정관이 직무를 수행할 때 앉았던 것으로 이는 에트루리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자 옆에는 두 점의 파스케스가 있는데, 이는 에트루리아 왕의 경호원들이 소지했던 무기였다./ 카피톨리노의 늑대가 묘사된 유골함 - 몸통은 작은사각형의 집이며, 뚜껑은 종려나무잎 무늬 장식이 달린 경사진 지붕으로 표현한 유골함이다. 글씨가 새겨진 판 아래에는 늑대가 쌍둥이에게 잣을 물리는 로마의 시조 신화가 묘사되어있다. 그 밑은 꽃줄 장식인 페스톤의로 장식 하였다./ 메르쿠리우스와 헤라클레스가 묘사된 장식판, 1세기 - 작은 제단에 재물을 받치는 헤르클레스(오른쪽)와 메르쿠리우스(왼쪽)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이다. 두 인물 사이에는 'SACR'이라는 글자가 있다. 에트루리아의 알파벳은 오른쪽에서 완쪽으로 읽는 반면, 로마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개선 행진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망- 1세기 초, 설화석고, 구이르나치 에트투리아박물관 -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표현하고 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탄 망자 앞에 두 명의 호른 연주자와 파스케스를 든두 명의 경호원, 관을 운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행열이 보인다. 날개를 펼치고 횃불을 든 밤트가 이 행렬을 지켜보고 있다. 망자의 마지막 여정과 개선 행진을 이중적으로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승리를 축하하는 개선 행진은 에트루리아와 로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 이였다.
* 월계관, 기원전 2세기, 금, 토스카나, 피사, 리파르벨라 체치나고고학박물관
* 금으로 만든 장신구들 - 브로치, 피불라, 머리핀, 화관(머리띠와 왕관은 헬레니즘 시기의 적형적인 머리 장신구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생전에 사용 하였으며 명예와 존경의 상징이였다. 장례식과 같은 행사에서 주로 살아 생전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넣어둔 것으로 보인다. 나뭇잎 무늬가 새겨진 직사각형의 얇은 판으로 제작되었으며, 가장 단순한 형태의 장식 중 하나이다.)
* 에트루리아에서 찾은 서구 문화의 숨결 - 우리는 지금껏 서구 문화의 뿌리를 그리스 - 로마로 배워왔다.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모방하여 조국의 팽창과 함께 그 문화를 널리 퍼트렸다고......
그러나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국가에 불과 했던 로마가 주변 도시 국가를 제압하고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바탕에는 에트투리아의 영향이 컷다.
로마는 건축술, 문자, 종교관, 상징체계와 오락거리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에트루리아로부터 빛을 지고 있다. 돌을 주재료로 삼았던 그리스나 로마와 달리 에트투리아는 나무와 흙으로 모든 것을 만들었다. 그 결과 에트투리아 문화는 따사로운 봄날에 피었다. 지는 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에트툴아가 로마에 전수한 문화는 2천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에트투리아 문화는 로마라는 이름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고......
에트루리아 전시 관람의 포인트
첫 번째, 에트루리아 문화와 그리스·로마 문화 비교하기. 그리스와 로마를 연결해주는 에트루리아. 에트루리아는 여러 방면에서 그리스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로마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에트루리아 유물을 관람하며 그리스와 로마 문화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두 번째, 흥미로운 에트루리아 종교 이해하기. 에트루리아인은 자신들의 토착적인 사상에 그리스의 다신 사상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사후 세계에도 삶은 지속된다는 독특한 내세관을 갖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에트루리아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는 신전 페디먼트, 신이 묘사된 청동거울, 신에게 바친 봉헌물, 저승의 신이 묘사된 유골함 등 다양한 유물이 소개된다.
세 번째, D. H. 로런스와 함께하는 에트루리아.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시인인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David Herbert Lawrence는 에트루리아 유적을 여행하고 답사기를 남겼다. 여기에는 에트루리아에 대한 로런스의 감성이 담겨있다. 로런스가 안내하는 에트루리아. 로런스의 글귀를 따라 관람을 마치고 나면, 마치 한편의 여행기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할 것이다.
네 번째, 에트루리아 문화 체험하기. 에트루리아의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곳곳에 영상과 체험 공간을 마련하였다. 에트루리아의 설화석고, 점성술, 알파벳 등 다양한 주제가 마련되어 있다.
* 유피테르 가면, 2세기 초,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 유피테르 두상의 클리페우스(Clypeus)이다. 클리페우스는 신이나 위대한 인물의 상반신, 특히 얼굴을 둥근 모양으로 양각한 것을 말한다. 로마에서는 대리석이나 금속으로 만든 클레페우스를 많이 제작했으며, 벽에 걸어 건축 장식으로 활용하였다.
그들은 삶의 어떤 충만함을 가지고,
자유롭고 즐겁게 숨 쉬도록 내버려 둔다. 심지어 무덤들 초차도.
이것이 진정한 에트루리아의 가치다.
즉, 편안함, 자연스러움, 그리고 삶의 풍요로움을.
지성이나 영혼을 어떤 방향으로도 강요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DH 로렌스의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 中
에트루리아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여전히 보석과 와인,
그리고 춤을 추기 위한 연주용 피리가 있는 삶의 즐거운 연장이었다.
황홀한 축복, 천국도 아니었고, 고통의 연옥도 아니었다.
그저 풍요로운 삶의 자연스런 연장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생명, 삶이란 관점에서 본 것이다.
And death, to Etruscans, was a pleasant continuance of life, with jewels and wine and flutes playing for the dance. It was neither an ecstasy of bliss, a heaven, nor purgatory of torment.
It was just a natural continuance of the fulness of life. Everything was in terms of life, living.
- D.H. 로렌스의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 중 -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정보<'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글. 노희숙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 학예연구사/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이영일/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