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갑곶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어진 정자 연미정은 강화읍 월곶리의 한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정자로 《여지도서》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월곶진 뒷 봉우리에 있다. 예전에 이곳은 장무공 황형黃衡의 정자였다. 바닷물이 유도에서 갈라져 마치 제비꼬리 모양처럼 흐른다. 정자 터는 물줄기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우뚝 솟아 이루어진 봉우리에 오르면 들로 갈라진 두 물줄기가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그 봉우리 위에 정자를 짓고, ‘제비꼬리’라는 뜻의 ‘연미’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자에 오르면 사방이 시원하게 확 트였기 때문에 5월에도 덥지 않다.
돛대 위로는 갈매기가 날고 아래로는 물고기가 노닌다. 두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강산의 경치가 아름다워 간혹 악양岳陽의 파릉巴陵으로 착각하곤 한다. 굳이 흠을 꼽으라 하면 모래사장과 물빛이 그리 맑고 푸르지 않다는 점일 따름이다.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무공 황형이 정자 위에서 손님을 맞아 장기를 둘 때마다 ‘장이야’ 하는 소리가 갑곶까지 울려 퍼져, 나루를 건너는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고 황형이 장기를 두는 가 보다고 여겼다고 한다. 황형이 정자의 댓돌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반드시 보십곶甫十串 마을의 개들이 놀라서 짖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황형의 씩씩하고 늘름한 목소리와 기운이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자는 없어진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줄지어 선 주춧돌만은 뚜렷이 남아 있다. 유수부에서 돈대를 설치한 후, 건물은 없어진 채 남아 있던 정자를 갑자년(영조 20, 1744)에 유수 김시혁이 다시 세웠다.
신정이의 <신 택리지> 경기도 편에서
강화라는 이름은 한강이 강화섬 앞에서 바다로 접어들기 때문에 이 섬을 한강물이 빚어낸 한 떨기 꽃으로 비유하여 강의 꽃 ‘강화江華‘라고 하였다 한다. 강화읍 월곶리 동쪽의 바닷가에 있는 연미정燕尾亭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하여 흐르다가 이곳에 이르러 두 갈래가 되어 한줄기는 남쪽으로, 한줄기는 서쪽으로 흘러 마치 제비꼬리처럼 생겼으므로 연미정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조선시대에 삼남 일대에서 거두어 들인 세속을 실은 배들이 서울 마포로 가기 위해 물 때를 기다렸다는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하구인 유도섬이나 한강이 바다로 합류하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인데...
두 그루 느티나무가 다정하게 서서 연미정을 수호하다가 어느 해 링링이라는 바람에 한 그루가 부러져 상혼만 남은 연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