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가 391장 (구 446장) / 열왕기하 4 : 38 - 41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391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열왕기하 4장 38절 – 41절 말씀입니다.
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40.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그들이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41.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지니라. 아멘!
우리가 신앙으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에도 고난이 있고, 때론 슬픔과 절망의 그늘이 머무를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신앙인들도 그런 삶을 계속 반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주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도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감격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신앙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우리들이 매일 매 순간 그런 영적인 기쁨과 평강으로 가득 채워진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까? 신앙으로 살기 때문에, 단 한번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삶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려고 하면 꼭 장애물이 생깁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 같기도 합니다. 예수 믿지 않을 때 겪어야 했던 모든 슬픔과 고통을 똑같이 겪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읽은 말씀은 우리에게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길갈을 방문했습니다. 길갈에는 선지학교가 있었습니다. 당시 선지학교는 벧엘, 길갈, 여리고 등 여러 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선지학교가 있는 곳을 순회하면서 잠간씩 머물면서 선지학교 생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가 선지학교를 방문할 때는 그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 땅에 자주 가뭄과 흉년이 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뭄이나 기근, 흉년 이런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벧엘에 있는 선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엘리사에게 말씀을 배우고 있는 선지학교 학생들은 이스라엘을 영적인 침체로부터 구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선지학교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위대한 선지자들 아래에 선지학교가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선지학교는 크게 세 시기에 있었습니다. 사무엘과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입니다. 그 때는 모두 영적으로 어두웠던 시기였고, 또 그런 시대에 위대한 선지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선지자들 아래로 선지학교 학생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선지학교 학생들도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암울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보겠다는 열정으로 모여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스승 엘리사가 오자 곧 엘리사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스승으로부터 말씀을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식사시간이 되자 엘리사 선지자가 자기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모든 학생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 국을 끓이라.” 고 합니다. 지금 선지학교에는 먹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이 큰 솥을 걸고 있는 사이에 한 사람이 들로 나갔습니다. 온 땅이 오랜 기간 동안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을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힘들게 산으로 들로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들호박 열매를 발견합니다. 들호박 열매는 둥글고 황갈색을 띤 오렌지만한 열매인데, 먹으면 복통과 신경통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을 구하려 들에 나갔던 그 사람이 그 들호박 열매를 썰어서 펄펄 끓고 있는 솥에 넣었습니다. 국이 다 끓자 국을 퍼다가 선지학교 학생들에게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국을 먹다가 굉장한 쓴맛이 났고, 그걸 먹은 학생들은 솥에 독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오늘 본문에서 왜 신앙으로 산다고 하는 우리의 삶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어려움이 있고, 사망의 독이 들어있는 국을 마시게 되는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신앙으로 산다고 하는 우리의 삶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어려움이 있고, 사망의 독이 들어있는 국을 마시게 되는 이유는 우리의 영적인 무지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들에 가서 들호박이라는 먹거리를 찾았는데 먹어도 되는지 아니면 먹으면 안 되는지를 분간 못했습니다. 먹을 수 없는 열매라고 생각하고 국을 끓였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 열매는 먹을 수 없는 열매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열매를 따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열매로 국을 끓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몰랐습니다.
우리도 때로 영적으로 먹어야 하는 것과 버려야 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육체의 소욕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멸망뿐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잘 잊어버립니다. 욕심에 이끌려서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걸 버리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우리의 삶에 하늘의 기쁨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그걸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래서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추구합니다. 그러다보면 우리의 삶에는 사망의 독이 침투하게 됩니다.(갈 5:19-21) 그러기에 우리는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무지에서 벗어나도록 말씀을 배우는 것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에 사망의 독이 침투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영육간에 너무 나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오랜 가뭄으로 인한 흉년 때문에 선지학교에 있던 모든 사람이 육체적으로 매우 허기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먹을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먹지 못하다보니까,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법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영적으로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육간에 건강을 잃으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사망의 독이 우리의 삶에 침투하게 됩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해야 바르게 신앙생활할 수 있고, 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사망의 독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솥에 사망의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다.” 고 외치는 학생들에게 엘리사 선지자는 “가루를 가져오라.” 그리고 그 가루를 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국을 떠다가 무리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다시 떠온 국을 먹어보니 사망의 독이 없어졌습니다. 맛있는 국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사망의 독이 침투해 들어왔을 때, 우리는 그 독을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망의 독을 제거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가장 큰 사망의 독은 죄입니다. 죄는 우리를 사망으로 이끄는 주범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라는 놈이 우리의 삶에 침투하면 우리의 모든 삶을 망가뜨립니다. 그리고 그걸 그냥 놔두면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끌고 갑니다. 그러기에 죄에 종노릇하는 사람은 사망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죄를 끊어야 합니다. 죄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라는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롬 8:1-2)
나의 삶에 아직도 사망의 독이 있습니까? 죄로 인한 사망의 독, 우리의 영적인 무지 때문에 당하는 삶의 고통들,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나약해져서 겪게 되는 숱한 어려움들, 그게 모두 우리의 삶속에 침투해 있는 사망의 독입니다. 그 사망의 독을 제거해야만 우리가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사망의 독을 제거해야만 우리의 삶에 하늘의 평화가 깃들일 수 있습니다. 그 사망의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신앙생활하면서도 여전히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되고, 특히 죄의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망의 종노릇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드는 삶의 독이 있다면, 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그 독을 제거하는 방법은 우리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엘리사선지자가 사망의 독이 든 솥에 가루를 넣은 것처럼, 우리의 삶에 들어와 있는 삶의 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셔야 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죄가 활동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이라면 모든 어려움도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고통도 기쁨이 됩니다. 주님께서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 띠우시기" 때문입니다.(시 30:11)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내 안에 모시므로, 모든 삶의 독으로부터 나의 생명을 보호받고, 안전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