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 개발 논란, 용산공원 밑그림 설계한 조세환 한양대 명예교수
용산공원 주택 개발, 37년 합의 파괴, 10% 활용안, 생태 시스템 연결성 약화
도쿄식 복합 개발로 주택·녹지 동시 확보 제안
조세환 한양대 명예교수가 지난 21일 서울 용산어린이정원에서 남산, 용산, 한강으로 이어지는 서울시의 생태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조 교수는 “도시 생명력 관점에서 용산공원 훼손은 사람의 허리를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 1세대 조경학자인 조세환 한양대 명예교수(전 한국조경학회장)는 “용산공원에 주택을 넣는 것은 37년간 이어온 사회적 합의에 대한 폭거이자 용산공원 알박기, 글로벌 도시 서울에 대한 테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용산어린이정원에서 만난 조 교수는 용산공원에 주택을 짓겠다는 이재명 정부 구상이 갑작스럽게 나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이재명 재직 직후 국토부 한 관계자로부터 ‘용산공원에 주택을 받아주는 안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조 교수는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 않았다면 묵혀뒀을 카드”라며 “정치적 판단을 ‘청년·신혼부부 주택 공급’으로 포장한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노무현의 특별법 제정 직후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용산공원의 밑그림을 그려온 인물이다. 2008년 총리실의 용산공원 기본 구상 수립 단계부터 학계 전문가로 연구를 시작해, 2010년 국토교통부가 발주한 ‘용산공원 및 주변부 정비 종합계획’ 연구 용역을 총괄했다.
2012년 용산국가공원 국제현상공모 예비심사 심사위원장, 2013년 국토부 용산공원추진협의회 의장, 박근혜 정부 때 용산공원 콘텐츠발굴 소위원장을 맡았다. 문재인이 추진한 3기 신도시 공공택지지구 총괄계획가로도 활동했다. 건축물 중심의 도시계획에서 벗어나 녹지·생태를 도시의 뼈대로 보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을 국내에 도입한 선구자로도 꼽힌다.
◇30년 넘게 흔들리지 않은 약속
용산공원 조성 논의는 1987년 당시 노태우 대선 후보의 용산기지 반환 공약에서 시작됐다. 1989년 방한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헬기를 타고 용산기지 상공을 둘러본 뒤 “한 나라 수도 한복판에 외국 군대가 있을 수 없다”는 취지의 뜻을 밝히면서 다음 해 이전 협약이 체결됐다. 노 대통령의 구상은 ‘뉴욕 센트럴파크, 파리의 불로뉴공원처럼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느끼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였다.
공원화를 공식 선언한 것은 노무현이다. 2007년 제정돼 2008년부터 시행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은 용산기지를 공원 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조 교수는 “당시 반대한 사람은 노바디(nobody)였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네덜란드 조경가 아드리안 구즈의 ‘치유와 회복’ 구상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문재인은 공원 조성 면적을 약 80만평에서 90만평 규모로 확대했다. 특별법에 따라 국토부 장관이 수립하는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은 네 차례 수정됐지만 공원 조성이라는 큰 방향은 유지돼 왔다.
박근혜 정부는 공원 안에 여성사박물관·과학문화박물관 등을 추진했지만 주민 공청회에서 반발이 나오고 서울시와 언론은 ‘부처별 땅 따먹기’라고 비판했다.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조 교수는 “공원에 어울리는 박물관조차 ‘콘크리트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무산된 땅”이라며 “그곳에 아파트 단지를 넣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용산공원은 아직 전체 부지를 반환받지도 못했다. 반환율은 30%대이고 미군 잔류 시설을 둘러싼 협의도 진행 중이다. 토양 오염 정화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미 간 정화 책임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선(先)반환 후(後)협의’ 방식으로 반환이 진행돼 왔다.
이재명 정부가 주택 공급 후보지로 거론한 용산어린이정원 약 9만평은 기름 오염 정화까지 끝난 사실상 유일한 부지다. 조 교수는 “다른 땅은 반환과 정화에 시간이 걸리니 임기 내 성과를 위해 이미 공원으로 정리된 땅부터 쓰겠다는 조급함이 작용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10%만 활용하자는 건 대형 공원에 대한 무지”
서울 용산 어린이공원.
국토부는 용산공원의 90%는 보존하고 10%가량만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 교수는 이를 대형공원(Large Park)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했다. 그는 “60만평이 넘는 도심 한복판 대형 공원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힌다”며 “이 정도 규모면 토양·지질·숲·초원·생물이 연결된 하나의 생태 시스템을 이루고, 자체적인 국지 기후를 형성해 폭염과 집중호우를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는 “면적 10%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생태 시스템 전체의 연결성을 약화시키는 문제”라고 말했다.
경관과 도시 구조 측면의 손실도 지적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중앙 테라스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조망이 주거 시설에 가려질 수 있고, 향후 강변북로 지하화로 조성될 수 있는 한강~용산공원~남산 녹지축 조성에 결정적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주택 공급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주택과 녹지를 함께 늘리는 방향으로 도시 개발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도쿄의 ‘힐스(Hills)’식 도시 재생 모델을 대안으로 꼽았다. 롯폰기힐스·아자부다이힐스처럼 노후·저밀 주거지를 대규모 복합 개발 단위로 묶어 고밀 개발하고 주거·업무·상업·문화·여가 시설과 함께 녹지·공공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아파트를 높게 짓는 것이 아니라 도심에 부족한 주택과 일자리, 생활 편의 시설, 녹지를 한꺼번에 확보하는 재구조화 모델이라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도심의 저층·저밀 주거지는 그대로 둔 채 외곽에 신규 택지를 만드는 방식으로는 서울의 주택과 녹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용산공원을 지키느냐 마느냐를 넘어 서울의 장기적인 도시 구조를 어떻게 짜고 주택과 공공 녹지를 어떻게 함께 늘릴 것인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