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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괜찮으세요?”
“아, 괜찮습니다”
“일어날 수 있으세요?”
“예, 감사합니다”
지나치게 예의가 바른 사람이다. 한영은 생각했다. 자신을 부축하는 손에 행여 폐라도 끼칠까 얼핏 봐도 성해 보이지 않는 몸에 억지로 힘을 주어 일어선다. 담벼락을 짚고 선 그의 몸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린다.
“일단 저희 집으로 가실래요? 이 몸으로 먼 길을 걸어가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웬만한 일은 웃어넘기는 한영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진다.
위험하다. 이 남자를 이대로 보낸 다는 건 가다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한영은 한 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남자의 팔을 제 어깨에 걸고 억지로 이끌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보이니까 가만히 좀 계세요”
결국 한영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야 잠잠해지는 남자. 맞닿은 남자의 온기가 너무나도 뜨거워 한영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우리 집이 이렇게 멀었던가?
“힉! 웬 시체를 주워 와?”
“죄송합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말한다!”
“멀쩡히 산 사람 앞에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좀 비켜 봐”
100미터도 체 안 되는 거리를 겨우겨우 걸어 마침내 집에 당도한 한영은 진영의 호들갑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남자를 거실로 이끌었다. 진영은 오늘도 거실에서 잘 생각이었는지 널찍한 거실바닥을 이불로 덮어 놓고 있었다.
“피! 피 묻잖아!”
“아, 죄송합니다”
“조용히 해 정신없어”
진영의 호들갑에 남자는 성치 않은 몸으로 재빨리 이불을 걷어내고 차가운 맨 바닥에 앉는다. 한영은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을 여유도 없이 어디선가 보았다는 기억뿐인 구급상자를 찾기 위해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 뒤져댔다.
“아, 찾았다”
땀이 흥건한 손으로 구급상자를 든 한영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한영은 구급상자를 남자 앞에 내려놓고 나서야 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손으로 닦은 땀을 바지춤에 대충 문질러 닦아내고 구급상자를 열어 연고와 대일밴드 통을 꺼내 상자 옆에 내려놓았다.
“일단 보이는 곳만 약 발라 드릴게요”
“아니요,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얼굴하고 팔 다리만 해드릴게요 흉지면 안되니까”
“누나!”
“왜?”
“그거 화상연고야”
이런 치료에 익숙하지 않은 한영이였다. 겉으론 침착한 척 했어도 사실 조금 전, 밖에서 길바닥에 피 칠갑을 하고 길바닥에 누워 있는 남자를 본 순간부터 한영의 내면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영은 진영의 지적에 민망해 하며 조용히 화상연고를 구급상자에 넣었다.
진영은 제 누나의 오지랖을 누가 말리겠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한영이 뒤집어 놓은 서랍 중 가장 아래 서랍을 열어 일명 ‘빨간약’과 거즈, 밴드테이프, 연고를 꺼내들었다.
“등은 제가 해드릴게요”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남자끼리 내외해요?”
“아,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이 형도 참 답답하네”
한영은 진영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연고를 집어 들었다. 진영이 무릎걸음으로 남자의 등 뒤로 가 앉더니 거침없이 티셔츠를 들어올렸다. 남자가 그의 행동에 움찔거리자 진영은 딱 등만 보인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눈 좀 감아보실래요? 얼굴에 연고 발라드릴게요”
“형, 혹시 비탈길에서 굴렀어요?”
진영의 말에 살짝 웃은 남자의 두 눈이 살포시 감겼다. 속눈썹이 무척이나 예쁜 사람이다. 숱도 숱이지만 꼭 붙인 속눈썹처럼 길어 바람이라도 불면 살랑살랑 흔들릴 것 같다. 제 주인의 성격을 말해주듯 올곧게 뻗은 콧날은 작은 상처도 가릴 수 없는 곧은 도도함을 보인다. 남자치곤 하얀 피부엔 상처를 제외한 그 어떤 잡티도 찾아볼 수가 없다. 피딱지가 진 도톰한 입술도 선명한 선분홍빛이 돌았다.
이렇게 잘생길 수도 있구나. 한영은 얼굴 곳곳에 난 상처에 조심스럽게 연고를 바르며 그의 얼굴이 너무 완벽해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연고를 바른 곳에 데일밴드까지 붙여주고 나서야 그에게서 떨어져 다른 곳에 난 상처를 살펴보았다.
“누나, 장난 아니야. 피멍 진짜 큰 거. 이따만 해”
진영이 정말 놀랐다는 듯 과장되게 손바닥을 쫙 펴 한영에게 보이며 말한다. 이따만 한 멍을 한영도 보고 싶었지만 모르는 남자의 등을 본다는 것이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닌지라 한영은 말없이 멍에 바르는 연고를 진영에게 건넸다.
“이 형 자는거야?”
“어? 진짜”
“고개 떨어지겠다”
그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는 것에 집중하던 두 남매는 아까부터 아슬아슬하게 졸던 그의 모습을 이제야 발견하고 일부러 깨우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손을 거즈로 둘둘 감싸 묶는 것을 마지막으로 치료를 끝낸 한영이 조심스레 남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저기요”
“네?”
꿈속에서 귀신이라도 본 듯 화들짝 놀라며 깨어난 남자의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뜨여진다. 진영은 그의 티셔츠 자락을 내려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남자에게 물었다.
“자고 갈래요?”
“아니요! 아닙니다”
뭐가 아닙니까? 진영은 이렇게 묻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 그것도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행색을 한 사람을 제 집에서 재운다, 요즘 시대엔 전혀 말이 될 수 없는 말이지만 어쩐지 이 남자는 요즘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남매였다. 답답할 정도로 예의를 차리는 남자가 조금 짜증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끝엔 협박에 가까운 진영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자는 밴드로 거의 도배를 한 몸으로 한영의 집을 나갔다. 마지막 90도 인사도 잊지 않았다.
남자가 나간 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약품들을 정리하던 한영에게 소파에 멍하니 올라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진영이 말을 꺼냈다.
“무슨 조선시대 사람 같아”
“누구? 아까 그 사람?”
“응, 얼굴은 누나 또래 같이 생겨갖고 말하는 건 아빠보다 더 해”
“그러게”
거실 정리 후 목욕까지 마치고 침대에 누운 한영은 남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에서 온 양반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꿈도 꾸었다. 청백색 도포에 갓을 쓴 남자의 모습. 다음 날 꿈에서 깬 한영은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 봤던 그 어떤 양반보다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고 생각했다.
*
“이 한영! 떡볶이 먹으러 갈래?”
“나 돈 없는데”
“꿔줄게 갚어”
“진짜?”
제 지갑을 슬쩍 열어 본 재경이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한영의 팔을 잡아 일으킨다. 덩달아 신난 한영의 눈이 보기 좋은 호선을 그려냈다.
“아줌마! 여기 떡볶이 3인분이랑 순대 1인분 주세요!”
“다 먹을 수 있어?”
“어, 당연하지. 나 배고파”
쏙 들어간 배를 어루만지며 불쌍한 표정을 짓는 재경. 저는 원체 많이 먹질 않으니 살이 안 찐다고 하지만 웬만한 사람보다 많이 먹는 재경이 살이 찌지 않는 것은 정말 체질 덕이라고 한영은 생각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쟤네 오늘 뭐 했나? 일찍 끝났나보네”
떡볶이가 나오기 전 입이 심심해 단무지를 씹으며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던 재경이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자 한영의 눈이 자연스레 재경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향한다.
“어?”
낯익은 교복무리가 저 멀리서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져 오는 것이 보였다. 한영의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남고의 교복이었다. 그러니 한경은 교복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그 교복을 입은 인물이 문제였다.
“왜?”
“어, 아니 진영인가 해서”
“맞다 진영이도 저기 다니지?”
한 살 터울의 남동생 진영의 얼굴을 한영이 잘 못 알아 볼 리 없었다. 그러니 한영은 재경에게 핑계를 댄 것이다.
몇일 전, 제 집 안까지 들여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 주었던 그 남자였다.
날씨가 쌀쌀해진 탓에 춘추복을 입은 남자의 팔, 다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완벽한 얼굴 군데군데엔 데일밴드가 붙어 있었다.
진영의 말대로 내 또래였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더 반가워지는 한영이었다. 그러나 재경 앞에선 알아도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저 정도 인물이라면 재경이 꼬치꼬치 묻고 따져들게 뻔했기 때문이다. 유도심문이나 끝없이 파고드는 추궁엔 약한 한영은 대충 둘러댄 후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자네! 뭐 찾아?”
“아니”
“근데 어딜 그렇게 봐”
“보긴 어딜 봐 아니야”
“그래? 야, 차 홍운은 어디 갔냐?”
“걔가 우리 노는데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거 봤어?”
“그래도 새꺄. 딴 데도 아니고 당구장인데”
여고생들 못지않게 왁자지껄한 남고생들 사이, 그냥 걷는 것도 곧은 기품이 보이는 남자가 어딘가를 예의주시 하는가 싶더니 친구들의 추궁에 다시 시선을 돌린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시선 하나마저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고 빈틈없는 남자는 보았다. 이름도 모르는 저의 상처를 치료 해주었던 여자를.
“야, 자네! 돈 있어?”
“돈도 없으면서 당구장을 오자고 한거야?”
“아, 결국 줄 거면서 꼭 저렇게 태클을 걸어요”
행동거지는 껄렁껄렁해도 신뢰감만큼은 두터운 제 친구에게 돈을 건네주는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 ‘자네’란 별명으로 불리는 ‘김 정’이었다.
*
‘진짜?’
“그래, 아까 봤다니까”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모두 빠져나가 휑한 교실에 홀로 남아 느긋하게 가방을 챙기는 한영의 손에 들린 휴대폰 넘어 진영의 목소리가 조용한 교실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집에 가서 하려던 이야기를 누나의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것이 걱정 된 진영의 전화에 예상보다 빨리 말하던 참이었다. 저녁시간에 보았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진영은 저와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말에 적잖게 놀란 듯 하였다. 그 증거로 진영은 같은 물음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헐, 진짜로?’
“이제 그만 물어 봐 가짜 같으면 가짜라고 생각해 그냥”
‘왜 내가 몰랐지?’
1학년임에도 학교 특이사항이나 학교 내 특이인물은 줄줄 꾀고 있는 진영이었다. 제가 보기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음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꽤나 진영에겐 꽤나 큰 충격인 듯 했다.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진영에게 질린 한영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후 묵직하게 정리된 가방을 메고 고요해진 학교를 나와 걸었다. 학교와 집이 멀지 않기 때문에 항상 걷는 길이었다.
오늘따라 더 무거운 가방에 더 무거운 발걸음. 내일이 토요일이고 오늘이 금요일이기 때문에 축척되었던 피로가 슬금슬금 덮쳐오는 것 같았다. 한영은 자꾸 어깨선을 타고 팔뚝에 걸쳐지는 가방 끈을 고쳐 매며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빨리 집에 가 폭신한 침대에 누워 따뜻한 이불 속을 파고들고 싶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집이 보이자 한영의 발걸음이 다시 느려졌다. 집이 가까워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집 문 앞을 서성이는 실루엣 때문이었다. 거리가 좀 멀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든 한영의 발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다.
진영이한테 전화할까? 집이 가까워져 올수록 한영의 공포는 더해갔다. 드디어 실루엣의 얼굴이 보이는 지점에서 한영의 발이 멈춰 섰다. 아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사람. 오늘만 두 번째 보는 그였다.
“안녕하세요”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의 교복 가슴팍에 달린 명찰이 반짝였다. ‘김 정’
한영은 얼떨떨한 그 와중에도 그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
끈기라곤 죽을 쑬래도 없는 임메입니다.
전에 쓰던 소설을 계속 쓰다보니 완결까지 갈 자신이 점차 줄어들더니
오늘에서야 소멸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답니다.
이건 끈기를 갖고 열심히 쓸 생각이니 많이 지켜봐주세요!
업뎃쪽지는 '어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이고오 ㅠ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