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똑똑똑
"아가씨..?"
똑똑.... 쾅쾅쾅
"아.가.씨!!!"
한 남자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문을 두드렸으나 방 안에선 아무 기척도 없었다.
'..나가? 말어?'
방 안에 이불을 꽁꽁 싸매고 앉아 있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왜 고민하느냐면 아주 간단한 이유였다.
오늘 새 간부가 들어온다는 일로 나에게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부터 아빠까지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있는 조폭 집안에서 자라난 나는 별종 중의 별종으로
싸움을 기피해왔다.
그러나 내 인생의 굴레 속에 결코 빠지지 않을 단어는 싸움이었고 눈을 감았다 뜨면
그곳은 언제나 전쟁터였다.
쇠파이프로 상대의 머릴 가격하는 사람이나 나이프를 들고 주저없이 남을 해하는 모습을
난 10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보고 자라왔다.
어릴때 부터 봐 와야 면연력이 생긴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말이다.
새 간부를 만나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오늘은 내가 첫 고등학생이 된 날이었다.
이런 중요한 날 간부들의 인사를 받으며 함께 아침식사라니 나에겐 무리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노크소리가 멈추고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뭐..하십니까?"
그리고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있는 날 향해 물었지만 난 이불을 내리며 하하..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잘.. 잤습니까?"
내 질문에 남자는 고운 미간을 좁히며 뚜벅 뚜벅 걸어왔다.
참으로 잘생긴 청년이 아니던가. 검은 머리카락과 선명한 이목구비.
벌써 10년 가까이 함께 지내온 시환오빠가 날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10년간 함께 지냈지만 그의 미모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난 조심스럽게 뒤로 물어났지만 그럴 수록 시환오빠의 표정은 더 굳어져 갔다.
"빨리 준비 안하시면 늦습니다. 그리고 제게 존칭하지 말라고 누누히 말씀을 드렸잖습니까"
딱딱한 어조. 10년째 아침마다 듣는 말이었으나 10년째 난 존댓말을 사용해 왔다.
이런 곳에 물들지 않겠다는 내 신조에 따라 난 나이가 많은 사람은 높이고 적은 사람과는 친구로 지내왔다.
문제는 이런 생활을 계속 하다보니 친구가 아직 없다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난 지금 시환오빠에게 한쪽 팔을 내어주고 식사를 하러 가고 있었다.
반쯤 끌려가다 싶이 도착한 곳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사람이 있다면 문 틈으로 말소리가 세어나와야 정상이었으나 문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안은 조용했다.
시환오빠가 문을 열자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건장한 사내들이 날 맞이 했고 맨 끝에 할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로 앉아 있었다.
"은우야 어서와라"
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앉았고 시환오빤 내 뒤에 서있었다.
시환오빠는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
난 어릴적 부터 오빠와 함께 하고 싶었으나 할아버지며 아버지가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
"자 모두 앉고 아.. 이 아이가 내 손녀. 하은우다."
"반갑습니다 아가씨!"
참으로 경의로운 울림이 아니던가.
가는 귀 먹은 사람도 아니건만 날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하는 검은 양복 무리를 바라보며 난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밥을 앞에 두고 한숨을 쉬지도 못하고 억지로 입속으로 밥을 꾸역 꾸역 먹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내가 이 자리를 불편해 한다는 사실을 알아 이해해 주셨고 모인 사람들이야 할아버지 부하여서 신경쓰지 않았다.
"많있게 드세요. 전 이만.."
난 나가기 전 모두에게 인사를 했고 그것도 90도로.
할아버지의 화난 얼굴이 문틈사이로 보였으나 난 문을 닫음으로써 그 기억을 지워버렸다.
"아가씨. 그런 태도 조직 사람들이 얕잡아 볼 수 있으니 삼가하는게 좋습니다."
시환오빠의 걱정담은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단지 그 뿐.
예의를 지키는 나의 삶은 계속 될 것이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교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니 흐뭇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그렇게 내 모습을 들여다 보는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내가 들어오라고 하자 시환오빠가 들어왔고 차를 대기시켰으니 타라는 말을 하셨다.
"걸어갈께요"
난 눈에 튀지 않는 조용한 고교생활을 꿈꾸며 단호히 거절했고 시환오빠도 순순히 물러났다.
학교로 향하는 길.
너무도 평화로웠다.
아침. 그런 일이 있었단 사실이 전부 꿈인양 내 가벼운 발걸음은 학교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신입생 환영회가 끝나고 배정된 교실에 앉았다.
같은 중학교 출신인 애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었으나 할일없는 날 포함한 몇몇은 MP3를 듣거나 폰을 만지작 거렸다.
하지만 난 그 둘다 할 수 없었다.
MP3는 가지고 오지 않았고 문자를 하려고 하여도 내 폰에 저장된 사람은 가족과 시환오빠 뿐이었다.
잠시후 담임으로 추정되는 여선생님이 들어오고 시끄럽던 교실은 조용해 졌다.
"여러분의 담임인 최화정 이에요."
참 인상이 좋은 분이었다.
생글거리는 미소가 썩 보기 좋았고 단정한 정장 차립이 잘 어울렸다.
순간 정장이라는 단어에 아침에 본 검은 양복이 떠올랐으나 곧 선생님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우선.. 음... 자기소개 할까?"
"에... 싫어요"
자기소개라는 단어에 기겁을 하는 아이들.
물론 나도 싫었다. 부끄러우니 말이다.
"그래도..."
선생님이 뭔가 말하려는데 방송이 울렸고 각반 담임 선생님을 불러들였다.
놀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채 선생님은 사라지고 반은 약 3분전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대로 1교시가 시작되었고 내 주변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참고로 내가 다니는 학교는 남녀 공학이었으나 합반은 아니었다.
여학생들은 얌전한 편이었으나 남학생 중 질이 안좋은 사람이 많은 학교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아직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1교시 시작후 점심시간이 되기까지 눈 깜짝할 사이였고 점심시간이 되자 난 홀로 급식소로 향할 내 자신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저기.."
그때 수수한 외모의 애가 말을 걸어왔다.
내가 올려다 보자 내 시선을 살짝 피했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그..그게 피한게 아니라.. 저.."
"응?"
"밥.. 같이 먹지 않을래?"
밥을 같이 먹자는 말에 난 입을 다물었다.
싫어서냐고?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은 충격으로 입을 열지 못한 것이었다.
"아.. 혹시 같이 먹을 사람이 있던거니?.. 미안해.."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는 돌아서려는데 그 애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리곤 밝게 웃으며 같이 먹자고 했고 우린 서로 바보마냥 헤죽거리며 급식소로 향했다.
"저기 이름이 뭐야?"
"하은우야"
"은우? 난 이민정이야"
"친하게 지내자?"
"그래"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걸어오는 내내 내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폰에 저장된 민정이의 번호를 쳐다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데 누가 알았겠는가.
하루만에 딴 학교로 옮겨 지게 될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