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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없을 때》 《필요했을 때》를 생각하며
평균나이 81세, 98세 세대주 가정의 화목스토리
지난 1월 19일, 연길시 신흥가에 《98세 어머니를 세대주로 모시는 가정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신흥가 민성4구 강민11조 허상림댁을 찾았다. 세대주를 대상하고 떠난 취재가 세대주의 귀가 완전히 가버린데서 대화를 나눌수 없어 서운했다. 글로 물음을 올리려니 문맹이란다.
《신흥가두서 왔슴둥?》
알고보니 세대주의 아들며느리는 연변의 유공자였다.
아들 허상림(76세)은 1961년에 길림공대 자동차전공을 졸업하고 장춘자동차연구소에서 사업하다가 1964년에 연변대학에 전근, 1984년에 연변대학 공학원을 창립한 제1인자로 10여년간 연변대학 공학원 원장을 지냈다. 정년퇴직후에는 연변동북아경제문화교류협회 회장을 맡고 연변의 휘황한 력사를 기린 《연변과 더불어 60성상》,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기업인들의 가교로 불리는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기업인사전》의 주필, 출판을 담당하였다.
며느리 김정록(76세)은 1955년에 연변의학원부속병원 간호원반을 졸업하고 연변병원에 배치, 25살에 결혼한 후 할빈의대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1957년에 연변병원혈고를, 1984년에 연변혈액소를 창립한 제1인자로서 10년간 연변혈액소 소장을 지내다가 정년퇴직하였다.
허상림부부는 슬하에 딸 셋이 있는데 두 딸은 성가, 일본나고야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따낸 셋째딸은 청도해양대학에서 교수로 활약하고있다.
《신흥가두에서 왔슴둥?》
나한테 신흥가두에서 왔는가는 시어머님(김영숙, 98세)의 물음에 오선생을 신흥가두에서 위문하러 온 분인가고 여긴다고 며느리(김정록)가 해석했다.
《한석봉어머님》
《우리 집 평균나이가 81세》라는 허교수의 말에 부인이 《어머님이 지금도 우리 집 세대주》라며 아직도 10년은 문제없다고 한다.
《어머님의 고향은 룡정(당년 연길현) 용산촌인데 17세에 결혼하여 32세 꽃나이에 남편을 잃고 네 자녀(4남1녀, 장남은 항미원조렬사)에 시부모님을 모시며 농사일을 하면서 두 아들을 출세시킨 손색이 없는 한석봉어머님입니다.》
《어머님은 상식에 밝고 근면하며 말씀이 아주 철리적입니다. 10부작 텔레비죤드라마를 보고 한마디도 빠짐없이 복설할수 있을 정도로 기억력이 상당합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오.》
젊은이들이 오가는 말기를 알아듣는듯 세대주는 이따금씩 말참견을 한다.
《내가 소학교를 졸업하니 7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공부를 그만하고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하라는데 어머님이 우리 형제를 기어코 대학까지 다니도록 뒤시발을 하였습니다.》
《그때 생활은 가난하기로 말이 아니였습니다. 내가 시집을 오니 구들에 편 삿자리가 아홉쪽이고 사발 몇개에 가마도 크고작은 짝가마였습니다. 칼판도 없구???》
《내가 어머님께 고무신을 사드리니 해방후 두번째로 사서 신어보는 신이라며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한뉘 찌께다비만 신었다며…》
《어머님은 며느리가 올리는 돈도 보관만 하고 쓸줄을 모른답니다. 지금도 음식상에 함께 앉으면 다른 사람만 권하며 자시지 않기에 할수없이 독상을 차려서 대접합니다.》
어머님을 자랑하는 아들부부, 김정록은 어머님이 감사했던 이런 얘기도 들려줬다.
결혼후 남편이 가정회의를 열더니 어머님께 이런 말씀을 올렸다.
《어머님, 이때까지는 이 아들이 자나깨나 어머님만을 생각했다면 지금부터는 가끔은 어머님을 제때에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을겁니다. 그렇다고 섭섭해마십시오. 앞으로 내가 어머님을 50% 생각하고 며느리가 어머니를 50% 생각할것입니다.》
《그래그래, 며느리를 잘 돌봐줘라. 너네 부부가 화목해야 나도 따라 행복하단다.》
흔히 홀로 지낸 과부가 아들이 결혼하면 고부간에 남자《뺐기》를 하며 질투한다는데 청춘과부로 지낸 어머님은 며느리를 잘 돌보라고 아들에게 당부하니 그렇게도 감사하더란다.
어머니를 조건으로
전세기 《혁명년대》는 사람들 모두가 정치생명을 제1생명으로 간주하였다. 정록씨도 례외가 아니였다. 그는 《출신이 좋고 대졸생이며 어머니가 꼭 있어야 한다》를 대상선택조건으로 결혼후 자식을 어머님에게 맡기고 시름놓고 혁명사업을 하며 입당을 생의 목표로 하였다. 허상림과 혼사말이 오가자 정록씨는 몰래 먼저 어머니를 고찰하였다. 《찌께다비를 신고 일밭에서 돌아오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처녀는 어머님에 대한 동정으로 《이 집이 바로 내가 개척할 집이구나》는 결심이 생겼다. (청춘고생은 만금을 주고도 못 산다는데.)
상림씨의 첫째도 어머님이였다. 고중때 쏘련소설 《명랑한 여름》을 읽고 어머니를 기쁘게 하겠다며 자동차전공을 선택했고(그때 자동차라면 하늘처럼 대단하게 생각했으니) 미국의 가정교양교과서인 《가정독본》을 읽고 수선 어머님을 위해 그 많은 청혼녀중 《큰 가문에서 자란 마음 착한 처녀》로, 7남매의 여섯째로 19명이나 되는 5대가족이 한집에서 화목하게 지내는 대가정의 처녀(정록)를 선택했다. 결혼후 장춘자동차연구소에 배치되여 잘 보내고 또 지도교수의 알선으로 독일에 갈수 있는 기회도 포기하고 단 하나 어머님을 위하여 연길에 왔다.
《큰 가정에서 화목하게 지내온 사람이면 사회의 어디서나 남들과 화목하게 지낼수 있고》 《훌륭한 가정이 훌륭한 나라를 만든다》는 《가정독본》이 아들며느리로 하여금 한평생 어머님께 효도하도록 감독했단다.
그녀만의 처방
《지금까지 단 한번도 어머님과 다퉈보지 못했다》는 며느리는 좀 서운했다면 《며느리들이 좌우하는 〈며느리시대〉에 지금도 시어머니가 좌지우지하는것》, 《혹시 가다가 남편이 내편을 들어줬으면 하는것》뿐이라며 그녀만의 고부 《갈등풀이》의 처방을 내놓았다.
그 처방인즉 《나쁠 때 좋았을 때를 생각하고》 《내가 저 나이면 어떨가고 생각하며 립장을 바꾸고》, 《대방이 필요없을 때 대방이 필요했을 때를 생각하는것》이다.
시집살이는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이라고 하는데 《무조건 지면 된다》, 《지는것이 이기는것이다.》
그렇다. 김정록의 이 《풀이법》은 5대가족 19명이 한집에서 화목하게 살수 있은 친정집의 《비방》이고 직장의 제1책임자를 지낸 그녀의 대인관계 처세술일것이다.
세대주의 걱정은?
김영숙세대주는 도문의 아들(허상건, 68세)이 형님의 신병을 시발하는 형수님을 걱정해 어머님을 모셔오려 해도 《객사(客死)를 안한다》며 요지부동이다.
취재중 세대주는 내 앞으로 다가오며 이런 물음과 걱정을 한다. 《60까지 살면 됐다고 했는데 80에도 안 죽습꾸마. 우리 며느리가 무슨 좋은 약을 썼기에 내가 안 죽어짐둥?》
《죽자니 앓는 상림이(말초신경염으로 병마에 시달림) 걱정되구???》《셋째손녀는 공부를 잔뜩해서 박사가 되더니 눈이 잔뜩 높아져 지금 40인데도 시집을 안 가니 속이 타꾸마. 대상을 얻기는 그래도 연변이 헐켔는데, 셋째가 시집을 안가는데두 대수로워하지 않는 저 어시들이 큰 문제꾸마???》
실로 명실공한 세대주다.
《가화만사성(家和万事成)》이라 한다. 그렇다. 이제 박사손녀만 결혼하면 김영숙할머니는 시름을 놓았다며 우리 집을 보더라도 《가화만사성》이라고 자랑을 할것이다. 세대주의 가버린 귀로 하여 《실패》한 취재로 생각되며 이 글이 이 가정의 화목스토리라고 말하기는 새발의 피만큼도 못미침을 부언한다.
길림신문 오기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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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병장수 기원합니다.
다복한 가족입니다,,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언제나 행복히 건강한몸으로 장수하세요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