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8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28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사랑을 뜨겁게 불타오르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죽음과 죽은 다음에 우리가 맞이할 세상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헨리 나웬 신부님의 ‘살며 춤추며’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읽고 잠시 묵상하였습니다.
⌜너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이승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데 대한 두려움과 죽은 뒤 저승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결부되어 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여길 만큼 네 안에 두려움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너는 영적 투쟁의 핵심과 직면한다. 이승에서 환영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어둠의 세력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너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려고 세상에 오신 그분의 음성을 믿을 것인가? 너는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순간마다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네 어머니 배 속에 빚어주었다.”(시편 139, 13 참조)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을 믿고 의지하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예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은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네가 환영받은 줄 알아라.” 예수님은 아버지와 긴밀하게 연결된 당신 생명을 너에게 주신다. 그분은 당신이 아는 모든 것을 너도 알고,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을 너도 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당신 집이 곧 네 집이기를 바라신다. 그렇다. 그분은 당신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을 마련하고자 하신다.
네가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하느님한테서 온 것도 진실도 아님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일러주어라. 어둠의 왕자는, 네 인생이 실수로 던져진 것이요 네가 머물 집이 아무데도 없다고 속삭이며 그 말에 속아 넘어가기를 바란다. 그 말에 솔깃하여 귀 기울일 때마다 너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그 거짓의 탈을 벗고, 네가 환영받는다는 진실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마이클 포드 엮음/이현주 옮김)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두렵기도 합니다. 내가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정말 하느님께서 나를 환영하실지 두렵기만 했습니다. 그 두려움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기 전에 하느님께서 환영하실 조건을 갖춰야 하겠다는 그런 긴박감을 언제나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비천한 나를 환영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고 반신반의하고 두렵기만 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내 믿음이 아직 확고하지 못한 것도 있고,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없거나 적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해도 할아버지는 손자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손자는 할아버지가 예뻐해 주니까 할아버지의 수염을 뽑으려고 달려듭니다. 손자에게 수염을 잡힌 할아버지는 손자가 버릇이 없어도 그 손자를 예뻐하고 귀여워서 수염을 내어 놓습니다. 손자의 태워주는 말이 되기도 하고, 손자의 얘기를 들어주는 학생이 되기도 하고, 손자의 장난감이 되기도 하고, 응석을 받아주면서 손자를 품에 안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할아버지의 삶입니다.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를 품에 안아보니까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픈 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려는 노력만 해도 하느님께서는 손자를 예뻐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예쁜 짓을 하기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시 사람은 아주 복잡하고 따지는 것이 많아서 사랑하는 것도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대한다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도 나와 취향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고 선호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사랑이 아니라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나는 사랑한다고 한 것이 미움을 살 짓을 했다고 빈축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심을 알면 그런 오해는 풀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를 벗어나서 진심으로 사랑하면 모든 것은 사랑으로 덮어줄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대한다면 어찌 하느님께서 우리를 환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진심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한다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나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환영하실 것인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만 내가 어떻게 최선을 다해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셔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을 하느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축일3월 8일 성 요한(천주의) (John of God)
신분 : 설립자
활동 연도 : 1495-1550년
같은 이름 :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천주의 성 요한(Joannes de Deo)은 1495년 3월 8일 포르투갈 몬테모르오노보(Monte-Mor O Novo)에서 태어나 후안 시다데(Juan Cidade)라는 이름을 얻었다.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8세 때에 한 순례자를 따라 가출하였다. 순례자를 따라 에스파냐까지 간 그는 오로페사(Oropesa)라는 도시에 사는 마요랄(Mayoral)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마요랄의 집에서 글공부와 허드렛일을 익혀 가면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학교 공부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가축을 돌보는 일을 하며 양치기 목동으로서 28세까지 그곳에서 생활했다.
프랑스와 에스파냐 사이에 국경 분쟁이 발생하자 그는 오로페사 백작의 군대에 편입되어 에스파냐를 방어하기 위해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 시기에 성 요한은 다른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방종한 생활을 했으며, 자신이 담당하는 전리품이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해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군대에서 추방당했다. 그 후 예전처럼 양치기 목동 생활을 하던 그는 다시 터키 제국의 침공으로부터 비엔(Vienne)을 방어하고 있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군대에 지원했다. 1523년 9월 25일 비엔 근교에서 격전이 벌어졌고, 하루 만에 터키군이 패해 유럽에서 퇴각했다. 전쟁이 승리로 끝나고 군대가 해체되자 성 요한의 군대 생활도 끝났다.
그 후 그는 감사기도를 드리기 위해 에스파냐의 북서부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이 순례가 그의 인생에 새로운 장을 여는 출발점으로 그는 많은 시간을 묵상과 기도로 보냈다. 그러던 중 그는 포르투갈의 영토이며 전략적 요새였던 북아프리카의 수타 지역으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떠나 그곳에서 잠시 생활했다. 수타에서 돌아온 후 성 요한은 그라나다(Granada)의 엘비라(Elvira) 성문 옆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책과 십자가, 성물 등을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1539년 1월 20일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축일에 성 요한은 아빌라의 성 요한(5월 10일) 신부의 강론에 큰 감명을 받아 회심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런 그의 생활을 본 주변 사람들은 그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여겨 왕립 병원으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그는 모진 시련을 겪었다. 성 요한은 퇴원한 후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 성지를 순례하고 그곳에서 병원 운영과 병자 간호에 필요한 기본적인 일들을 배웠다. 그라나다로 다시 돌아온 성 요한은 그라나다의 주교와 베네가스(Venegas)라는 은인의 도움으로 1539년 12월 말에 루체나(Lucena) 가도에 처음으로 '자선의 집'을 개원했다. 그는 환자들이 따뜻하고 깨끗한 생활을 영위하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지내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의 활동이 가끔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길거리의 창녀와 부랑자들을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540년에 에스파냐 국왕의 고문이며 그라나다를 관할하고 있던 투이(Tuy)의 주교 라미레스(Ramirez)가 성 요한을 만찬에 초대해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천주의 요한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하사하였다. 주교의 인정과 그의 높은 성덕과 헌신 덕택에 수많은 재산가와 왕족들이 그의 사업을 위해 많은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성 요한은 심장 울혈증과 관절염, 안구 이상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나 쉬지 않고 일하였다. 하지만 결국 1550년 3월 8일 자신이 태어난 날,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선종하였다. 천주의 성 요한은 1630년 9월 21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690년 10월 16일 교황 알렉산데르 8세(Alexander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1886년 5월 27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그를 병자와 병원을 위한 수호성인으로 선포했고, 1930년 8월 28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병자를 돌보는 모든 간호사와 협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서적 판매원과 심장병 환자 그리고 소방대원의 수호성인이자 현대 병원의 창시자로도 불리는 그의 유해는 그에게 봉헌된 그라나다의 천주의 성 요한 대성당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천주의 성 요한은 살아 있을 때 직접 수도회를 설립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 의해 사후에 수도회가 설립되었다. 교황 비오 5세는 그를 일컬어 “교회의 뜨락을 온전히 꾸미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한 송이 꽃”이라고 하였다.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설립된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는 1572년 1월 1일 교황 비오 5세에 의해 공동체로 인정되었고, 1586년 교황 식스토 5세(Sixtus V)에 의해 정식 수도회로 승격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한(천주의) (John of God)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