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친일규명법은 내맘대로법"
"대통령 마음대로 누구든 임명, 아무나 조사"
법조계·야당뿐 아니라 열린당서도 이견나와
2004-09-14 14:50:05
◇ 열린우리당이 국회 행자위에 상정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은 여권인사들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8일 행자위에서 기립표결로 개정안을 상정하는 열린당 의원들 ⓒ 연합뉴스
열린우리당이 8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단독 상정한 ‘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이 법리적으로 허점투성이어서 열린당 내부에서조차 “이대로는 안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등 문제가 많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전문성이 전혀 없는 정치권 인사들이 거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 논란이 예상된다.
열린당은 개정안이 16대 국회에서 통과돼 23일 발효를 앞둔 기존법의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나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개정안은 기존법에 비해 엉성하고 정교하지 못하다”는 의견이다.
우선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진상규명위원회의 구성이다. 개정안에서는 규명위원을 임명하는 절차를 사실상 여권이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법안에서는 대통령이 국회의 추천을 받아 규명위원을 임명하도록 했으나 개정안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만을 얻어 9명의 위원을 모두 임명할 수 있게 했다. 열린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국회의 동의절차는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으로 보여 규명위원회 자체를 여권의 입맛대로 구성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진상규명위의 구성에서도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기존법은 규명위원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엄격한 자격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역사연구 전문가, 법조 전문가 등으로 엄격히 제한됐던 위원의 자격이 개정안에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또 일제 때 반민족행위를 한 사람이나 한국전쟁 기간 중 친공산주의 행위를 한 사람의 자식이나 손자는 위원에서 배제하는 기존법의 조항도 개정안에서는 빠졌다. 이는 극단적으로 해석할 경우 비전문가든 누구든, 친일파든 공산주의자든 대통령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아무나 규명위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개정안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사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사대상을 밝힌 신분범(身分犯) 규정이나 동행명령 처벌조항, 조사시기 등의 규정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정한 지위에 있던 자를 조사대상으로 규정한 신분범 규정개정안은 일제 때 소위 경시 고등문관 이상에 재직한 자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일제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모두 반민족행위자가 된다는 것으로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 대체적 의견.
더구나 이 규정은 기존법안에서 조사대상으로 규정했던 ‘중좌’ ‘군수 이상’에서 대상이 확대된 것이지만 유독 경찰과 헌병만은 조사대상을 기존의 ‘헌병 분대장’ 이상에서 경찰서장인 ‘경시(현재의 총경급)’ 이상으로 대폭 축소하는 것으로 돼 있어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는 신기남 이미경 의원 등의 부친이 일제 헌병으로 복무한 사실이 밝혀지는 등 당내 핵심인사들의 가족경력이 문제가 된 적이 있어 "일본군 중위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공격하고 ´당내 친일파의 자손들´은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말이 없게 됐다.
이와 관련, 열린당 강창일 의원은 “소위, 경시 등을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면서 문제점을 시인했다.
조사대상과 규모도 들죽날쭉한 해석이 가능해 정교해야 할 법이 너무 추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평가다. 개정안은 조사대상을 일제에 협력한 행위를 한 자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22개 친일행위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이때문에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개정안의 ‘추상적인’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수만명에서 많게는 100만명까지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열린당에서는 조사대상이 3000∼5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의견이 엇갈린다.
또 개정안에는 위원회의 동행명령권 대상이 ‘당사자와 그 관계인’으로 규정돼 있어 연좌제와 인권침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위원장이 판사의 영장없이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고 불응할 경우, 징역 등으로 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는 것도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조항으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은 “파시스트 국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악습”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개정안에 대한 대다수의 여론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법”으로 요약된다. “공정성과 독립성이 기존법에 비해 후퇴했고 시행과정에서 대통령과 여당의 입맛대로 운영돼도 아무런 견제장치가 없다”는 우려도 있다.
심지어는 “의문사조사위 활동에서 보듯 간첩 전력자가 자신을 수사한 사람을 조사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나라당도 “개정안은 위헌적 내용이 가득하고, 이름만 법이지 사실은 혁명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정안의 이런 문제점은 야당이나 법조계 뿐 아니라 열린당 내에서조차 “무리한 법안”이라며 인정하고 있다.
열린당의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개정안이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리한 면이 있고 법리적으로도 정교하지 못하다”면서 “법으로 확정되려면 많은 수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열린당은 14일 당면 이슈중 하나인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문제와 관련, 법안 처리 시기를 다음달 국정감사 이후로 늦추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섰다.
이에 따라 여권이 단독 처리 강행을 예고했던 시점인 오는 23일 국회 본회의의 여야 격돌은 일단 피할 수 있게 됐다.
열린우리당은 또 친일파로 간주되는 일제 조선인 경찰의 지위를 헌병으로 확대하는 한나라당의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에 대해 "우리당 법안과 함께 심리하겠다"는 전향적 자세를 나타냈다.
국회 행정자치위 여당 간사인 박기춘 의원은 14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친일규명법 개정안을 23일 처리하려 했으나 한나라당이 어제 별도 개정안을 제출한 데다 20일 공청회를 열기로 합의해 (내주 처리가) 쉽지않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첫댓글 노무현식 고도리는 어떤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