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니?"
교탁 위에 서서, 안경을 치켜올리며 날 바라보는 선생님을 무시하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없다.
은석선배가 없다.
일제히 날 바라보는 그 무리중에서 내가 알아보는 얼굴이라곤,
윤호선배의 얼굴 뿐이었다.
날 조금은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윤호선배의 눈길을 피하고,
난 다시 교실 문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난, 무작정 학교를 뛰쳐나와
다율이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 후로, 어떻게 다율이의 집까지 걸어왔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침대 위에서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려던 다율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날 보더니 놀란 눈을 한다.
"등본..."
"어? 뭐라구?"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집 안으로 들어와,
다율이의 집에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왔던 캐리어가방을 뒤졌다.
"무슨 일 있어? 너 왜 그래?"
그런 내 뒷모습에 대고,
걱정스럽게 물음해 보이는 다율이.
"등본... 등본 찾아야 돼."
저번에 짐 챙길 때 어디에 놨었지?
기억이 안 나.
캐리어 가방에 들어있던 약간의 짐들을 전부
바닥에 던져놓고, 가방 구석구석에 손을 갖다댔다.
........찾았다.
내 손에 들린 등본 한 장을 급하게 접고는
교복 바지 주머니에다 넣었다.
"등본 찾으려고 온 거야? 이 시간에?"
다율이의 질문을 무시하고,
난 다율이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나 컴퓨터 좀 쓸게."
"어? 응."
더 이상 질문은 하지 않고,
다율이는 내 뒤에서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본다.
".........너 뭐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가락에 맞춰,
모니터에 새겨지는 글자들.
다율이는 그런 모니터를 보다가,
기겁한 목소리로 물음한다.
"너 뭐하는 거냐구? 너, 이거 학교에
가져갈 생각이야?"
끄덕,
난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왜? 갑자기 왜?"
모니터 안에, 내가 여자임을 밝히는 글과
은석선배에 대한 오해를 풀어내려가는 글을 써내려가는 내 뒤로,
다율이가 계속해서 물음한다.
글을 다 쓰고 나서,
다율이를 돌아보며 설명을 하려는데,
갑자기 울컥,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아냐, 아냐. 나중에 얘기해. 괜찮아, 나중에 얘기해줘."
그런 내 감정을 읽었는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날 위로하듯 말하는 다율이.
난 그렇게,
내가 써내려갔던 글을 프린트 한 뒤,
학교로 다시 향했다.
그렇게, 교장실로 박차고 들어가
모든 것을 해명하고 난 후,
난 퇴학을 당했다.
일주일간은, 다율이네 집에 박혀 죽은 듯이
지내며 다른 학교로 전학갈 수습을 밟고 있었다.
그동안 은석선배며, 승현선배며, 재인선배며, 찬영이며...
계속해서 나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난 그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학교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주소도,
동생이 예전에 혼자 생활했던 오피스텔로 나와있기 때문에
다율이의 집으로 날 찾아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정말 괜찮겠어?"
"응."
고모네 집에서 통학을 결정하고,
수원에 자리한 일반고로 전학수습을 밟고 난 후,
다율이의 집에서 짐가방을 싸며 다율이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럼, 배구는?"
조심스럽게 다시 질문하는 다율이를 잠깐 바라보고,
다시 짐가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 거기도 배구부 있다니까 거기서 다시 배우면 되지."
표정관리를 하려고 일부러 억지웃음을 짓는데,
그런 나를 다율이가 품에 안아준다.
"꼭, 그 사람하고 떨어져야 돼?"
은석선배를 말하는 다율이의 물음에,
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나 때문에, 그 사람 인생 다 망가졌잖아."
"........난 모르겠다..."
내 결심에, 아직 이해를 하지 못 하겠다는 듯,
다율이가 한숨을 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자주 연락하고."
"응."
"자주 놀러오고. 나도 자주 갈게."
"응."
그렇게, 다율이와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난 다음 날 수원에 위치한 일반고로 발을 디뎠다.
"안녕, 이정원이라고 하구. 잘 부탁해."
오랜만에 입어보는 교복치마 때문인지,
아직 낯선 환경 때문인지,
어색하게 교실 교탁앞에 서서 반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텃세 부리려는 아이들도 있고,
기대감이 섞인 얼굴로 날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고.
"음... 남은 자리가, 승현이 옆 자리 있네. 저 쪽 가서 앉아있을래?"
운동장쪽 창문 맨 끝자리를 가리키며
내게 말하고는, 안경을 치켜올리는 담임선생님.
순간 담임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승현'이란 이름에
나도 모르게 움찔 거리고서는 난 창문 맨 뒷자리로 향했다.
"안녕."
'김승현'이란 이름의 짝꿍과 어색하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텃세를 부리려는 듯, 일부러 내게 까칠하게 대하는
짝꿍의 모습에, 자꾸만 승현선배가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럼 예전에 다니던 여고에서 자퇴하고 여기 온거야?"
금세 내 앞에서 조잘대는 안경 쓴 여자아이의 물음에,
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대한예술남고에 있었던 그 기간은,
이정원의 시간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보여졌을 땐, 이정원이란 사람은
예원여고를 자퇴하고 약 두달 간 은둔해있다가, 결국 수원에 자리잡은
한 일반고로 전학을 온 여자아이 였을 뿐.
그렇게, 일반고에서 '이정원'이란 내 진짜 이름으로,
교복치마에 적응하며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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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흐름때문에 63편까지만 올리려다가,
저도 소설 찔끔찔끔 올리려니 성에 안 차섴ㅋㅋㅋㅋㅋ
65편까지 올리겠습니다~
내일은 드디어 완결이 나겠네요.ㅜㅜㅜㅜㅜㅜ
끝까지 재밌게 봐주세요~
첫댓글 벌써 완결이돌아오네요~빠르다!! 낼 어케 될까요~ 은석이가 빨리 찾아야할텐데...궁금해요
꺄아아... 벌써 완결~!!!!
재미있어용>_<~~~
꺄~~완결?!기대되요ㅋㅌ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