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신발 훔쳐가는 귀신
야광귀(夜光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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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광귀는 정월 초하루 밤에 사람이 사는 집에 몰래 내려와 신발을 훔쳐가는 귀신이다. 이 야광귀가 신발을 가져가면 잃어버린 사람은 일
년 동안 그 신수가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일러스트: 박명화) |
기자가 어렸을 적에는 시골집에 놀러 가면 집집마다 걸려있는 ‘체’를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집집마다 체 하나 정도는 있을 테지만, 옛날 우리네 어르신들이 정월 초하루가 되면 벽에 걸어놓았던 ‘체’는 그 의미가 달랐다. 도대체 그
옛날 대청 벽에 걸어놓았던 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우리네 세시풍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자.
밤하늘을 올려다보며‘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이라며 별의 개수를
헤아리는 것이 연인들의 단골 레퍼토리라면‘체’에 난 그 수많은 구멍의 개수를 세는 일은 누구의 단골 레퍼토리일까. 바로
야광귀(夜光鬼)다.
야광귀는 정월 초하루 밤에 사람이 사는 집에 몰래 내려와 신발을 훔쳐가는 귀신이다. 뭔 놈의 귀신이 사람 신발을
훔쳐가나 하겠지만, 이 야광귀가 신발을 가져가면 잃어버린 사람은 일 년 동안 그 신수가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월 초하루가 되면 신발을
뺏기지 않으려고 감추어두고 잠을 잤다고 한다.
이와 함께 야광귀의 호기심을 자극해 벽에다 체를 걸어두기도 하는데, 이는 야광귀가 체에 난
구멍을 세다가 새벽에 닭이 울면 신발 훔쳐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서둘러 달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앙광이귀신 내려온
날‘야광귀쫓기’
야광귀는 앙광이, 야광신, 달귀귀신, 야유광이라고도 부른다. ‘야광귀쫓기’는 설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신발을 훔쳐가는 귀신인 야광귀를 쫓기 위해 체 등을 걸어두고 머리카락을 태워 마당에 뿌리는 풍속을 말하는 것으로 ‘앙광이귀신
내려온 날’은 보통 설날을 지칭한다. 야광귀를 쫓기 위해 ‘체’를 걸어놓는 풍습은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각종 세시기(歲時記)에서도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경도잡지>에는 “야광이라는 귀신이 있는데 밤에 사람의 집에 찾아와 신발 훔치는 것을 좋아한다.
이때 신을 잃은 사람은 일 년 신수가 불길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신발을 숨겨놓고, 야광귀가 오기 전에 일찍 잠을 잔다. 이를
막기 위해서 장대 등에 체를 걸어둔다. 야광귀가 찾아와 체를 보고는 구멍을 세다가 순서를 잃어버려 다시 세면서 결국 다 세지 못하고 새벽에 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이름이 야광이인 귀신이 이날 밤 민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발을 두루 신어 보다가 발 모양이 딱 들어맞는 것을 신고 가 버리면 그 신발의 주인은 불길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것이 무서워 모두
신발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대청 벽이나 섬돌과 뜰 사이에 걸어 둔다. 야광귀가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다 세지 못하여 신발
신는 것을 잊어버리고 닭이 울면 가버리기 때문이다. 야광이 어떤 귀신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혹시 약왕의 음이 변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약왕의
모습이 추하므로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는 무서워 떤다.”고 전한다.
<세시풍요(歲時風謠)>에는 야광귀를 쫓기 위해 저녁에 마당에서 머리털을 태우고 그 재를 뿌리는 풍속이 기록돼 있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야광귀를 ‘야광신’이라 지칭하고 있으며, 이를 ‘앙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전한다. 이 야광귀는 설날에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정월대보름에도 내려온다고 전하는 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섣달 그믐날 밤을 새우고, 설날에는 차례와 세배 등을 다니느라 매우
피곤하기 때문에 방심하고 곤하게 잠자고 있을 때 신발을 훔쳐간다는 것이다.
“네 눈이 더 무서워”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야광귀가 확실하게
어떤 귀신인지에 대해 기록된 것은 없다. 다만 사람들의 신발, 때로는 옷 등 자신에게 맞는 것을 훔쳐간다는 것과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일 년
신수가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약왕의 음이 변해 야광귀로 불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약왕’의 모습이 추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무서워 떤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추한 모습의
야광귀도 무서워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정월초하루 대청 벽이나 장대 등에 걸려있는 ‘체’이다. 이는 체의 수많은 구멍을 ‘눈’으로 생각한 야광귀가
‘체’를 무서운 존재로 여겨 도망간다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여기에 야광귀의 호기심이 더해지면서 ‘체’는 야광귀를 쫓는 대명사가
되었다.
“얼마나 무서운 존재이면, 이리도 많은 눈이 있는 것일까?” “도대체 눈이 몇 개나 되는 거야?” 이런 호기심에 체에
나있는 구멍의 개수를 세는 것인데, 아무리 귀신이라고 해도 한 번에 그 작고도 많은 구멍을 다 세기란 어려운 일. 세다가 까먹고, 다시 세어보고
또 까먹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닭이 울고 날이 밝아 도망가게 된다는 것이다.
야광귀의 입장에서 보면 ‘체’의 그 수많은 눈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또 무서울 것인가. 자신도 명색이 귀신인데 아무리 세어보고 세어보아도 도무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우니 분명 만만한 존재는 아니리라
여겼을 것이다. 체의 눈을 다 세어보다 날이 밝아 신발도 못 찾고 그냥 돌아가는 것도 서러운데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무섭게 생겼다고
울면 이 한마디 던질 것 같다.
“네(체) 눈이더 무서워”라고 말이다.
출처: 글마루
http://www.geulmaru.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