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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화 이상권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여러 차례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으며, 다양하면서도 개성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꽃샘 추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어린이》 《강철 변신》 《고정욱 선생님과 함께 읽는 금수회의록》 《몽양 여운형》 《우리 형》 《삼국지 이야기》 《까매서 안 더워?》 《트럭 속 파란눈이》 들과 많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으며, 지은 그림책으로 《눈 속 아이》 《구렁덩덩 새선비》 들이 있습니다.
작가의 말
이 책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온몸이 불에 탄 채규철 선생님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일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끔찍한 화상을 입고 도깨비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살아가야 했던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행을 딛고 끝끝내 오뚝이처럼 일어선 찬란한 승리의 삶이기도 했습니다.
채규철 선생님의 생애를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한 사람의 의지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뚜렷이 알게 됩니다.
목차
책 속으로
또 다른 아이는 바위를 조심스레 들어 올리며 가재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어머! 들꽃 좀 봐. 어쩜 저렇게 예쁘게 피었지?”
개울에서 조금 떨어진 둔덕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들꽃을 따서 머리띠를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계곡과 산자락, 개울 이곳저곳에 흩어져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놀면서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한참 뒤, 흩어져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이티 할아버지에게 다가와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선생님, 얘는 왜 이렇게 못생겼어요?”
한 아이가 방금 잡은 개구리를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23쪽
“채종묵 선생님! 거제도에 세워진 저희 분교의 교장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어느 날, 부산으로 피난 와 있던 서울 대광중고등학교에서 나이 든 사람이 찾아와 정중히 부탁을 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장이 된 아버지는 바닷가 모래밭에 자리 잡은 학교를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미군들에게서 얻은 군용 천막을 둘러치고 가마니를 깔아 교실을 만든 것이었다. 아버지는 교장이라고 거드름 피우지 않고 학생들을 직접 가르쳤다. 수소문 끝에 함흥에서 농촌 운동을 함께했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교사 일을 맡겼다. 규철도 이곳에서 다시 중학교 공부를 시작했다.
-58쪽
친구는 오히려 규철을 칭찬하면서 크게 웃었다. 그날따라 둘의 웃음소리가 하숙집 담벼락을 들썩였다.
어렵게 공부하며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둘은 대학 시험을 쳤으나 나란히 떨어지고 말았다. 3년 내내 학비를 벌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공부를 못한 탓이 컸다. 규철은 그동안 뒤쳐졌던 과목을 열심히 파고들며 1년을 노력한 끝에 1957년 서울시립농과대학 수의학과에 합격했다. 농촌 운동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함께 막노동을 하며 하숙 생활을 했던 친구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합격했다.
“규철아! 너는 이제부터 농촌의 향기를 실컷 마시게 되겠구나!”
“짜식! 너도 평생 남의 입 안을 들여다보면서 지내게 생겼구나!”
둘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활짝 웃었다.
-70쪽
채규철은 모든 걸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도 컸다.
그날 뒤로 채규철은 사고 나기 전보다 더 열심히 활동했다. 청십자 운동을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녔고, 간질 환자의 치료를 돕는 장미회 일을 새로 시작했다.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를 돕는 소록대 봉사대도 꾸렸다. 궁핍한 살림이었지만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어린이 도서관을 연 것도 이때였다. 동네 아이들은 채규철 덕분에 마음껏 책을 읽으며 놀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되었다.
-114쪽
출판사 서평
교통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어 얼굴이 흉측한 모습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아름다움 삶을 보여주고 간 채규철 이야기
채규철은 ‘채규철’이라는 이름보다 ‘이티(ET)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었습니다. ‘이티 할아버지’는 ‘이미 타 버린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채규철은 1968년 10월 사고가 나기 전 1967년 덴마크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장기려 박사와 함께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창립하고, 의료보험조합 운동과 농촌봉사활동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과 부산에서 양계장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자동차 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까맣게 타 버리고 맙니다. 채규철은 화상으로 수술을 30여 차례를 하였고, 고통스럽고 힘든 투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얼굴은 화상으로 일그러졌고, 타서 없어진 눈썹 자리에 머리카락을 심었고, 살갗으로 눈꺼풀과 입술을 만들었으며, 오른쪽 눈에는 의안을 넣었습니다. 채규철은 주변의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채규철은 몸이 장애와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고, 사람들이 무시해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신념으로 멸시와 시련을 이겨 내고, 사고가 나기 전보다 더 열심히 사회운동과 교육운동에 전념하였습니다. 스스로 품었던 다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라가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기 전까지 청십자 의료보험조합 운동에 헌신하였으며, 간질 환자를 돕는 장미회, 한센병 환자를 돕는 소록도 봉사대,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창립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 삶에 대한 교육과 강연도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전국 어디든 달려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집을 개방해 만든 어린이도서관과 경기도 가평에 세운 두밀리자연학교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느끼고 체험하고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나눠주고자 힘썼습니다.
2006년 12월 13일, 채규철은 70세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그리고 온몸에 화상을 입는 삶의 여러 고비를 뛰어넘어 일생을 농촌과 사회운동과 교육운동에 몸을 바친 채규철의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채규철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강한 정신으로 힘든 역경을 이기고 품었던 꿈을 이루고자 했던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로도 가누기 힘든 몸으로 오히려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행복해한 채규철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채규철의 삶과 철학은 우리에게 인생의 참 의미와 희망, 용기, 도전정신 같은 수많은 미덕을 묵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티 할아버지 채규철》은 채규철의 삶과 꿈, 철학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이 소중한 삶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자신의 신념과 의지에 달렸다는 것과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기본정보
ISBN발행(출시)일자쪽수크기총권수
9791185934938 |
2023년 07월 26일 |
132쪽 |
153 * 210 * 12 mm / 358 g판형알림 |
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