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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촌한옥마을에서 만난 고래등 기와집. 가회동 백인제가옥 '
▲ 백인제가옥 안채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 그 도심 한복판에 한옥마을의 성지(聖地)로 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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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반 상류층 고래등 한옥의 결정체 |
백인제가옥 입구를 들어서면 한옥으로 된 관리사무소와 공터, 그리고 솟을대문이 차례대로
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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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채 동쪽 담장 너머에는 깔끔한 모습의 한옥이 있다. 겉으로 보면 아무런 상관도 없는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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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이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솟을대문은 여전히 닫혀있었다. 대문도 주인을 닮는다고 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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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시작이 좋지 못했던 백인제 가옥, 가옥의 1대 주인, 친일파
한상룡(韓相龍, 1880~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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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제가옥 바깥 둘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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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간채에서 붉은 벽돌문을 지나면 바로 시원스런 팔작지붕을 지닌 사랑채가 마중한다.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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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솟을대문에서 사랑채로 이어지는 |
▲ 동쪽 뜨락에서 바라본 사랑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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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락 구석에 약간 높게 터를 다져 박석을 깔고 조촐히 산책로를 내었다. 그 주변에는 여러 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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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제가옥에는 특이한 공간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랑채 뒷쪽에 달린 2층 공간이다. 한상룡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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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쯤 열린 사랑채 뒷쪽 벽돌문과 |
▲ 툇마루를 갖춘 안채 뒷쪽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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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도 많고, 부리는 사람도 많고, 거기에 손님도 늘 많았기에 부엌 또한 넓게 닦았다. 안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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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는 부뚜막에서 연기가 꺼질 일이 없었다. 허나 지금은 언제 모락모락 연기를 피웠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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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채는 백인제가 그의 장인, 장모를 위해 지은 공간이다. 별도로 대문을 내어 가옥의 서쪽 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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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는 집의 안주인, 즉 가옥 주인 부인의 생활 공간이다. 부인 뿐 아니라 어머니와 며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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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무늬가 새겨진 벽 한복판에 태극무늬 마크가 또렷히 새겨져 있다. 그냥 흑백TV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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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제가옥 내부, 별당 둘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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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투어 시간까지 백인제가옥을 살랑살랑 둘러보고 시간에 맞춰 솟을대문 밑 쉼터로 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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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제가옥에서 가장 북쪽이자 하늘과 맞닿은 곳에 시원스레 팔작지붕을 휘날리고 있는 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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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인이 별당에 많은
공을 들였는지 별당의 갑옷인 주변 돌담까지 적지 않은 정성을 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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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당 내부는 오로지
가이드 투어 때만 들어갈 수 있다. 즉 아무 때나 갈 수 없는 비싼 구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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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당을 둘러보고 안채로
이동했다. 안채 역시 실내화로 갈아타 내부로 들어서면 되는데, 마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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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채 윗방 |
▲ 안채 서남쪽을 이루고 있는 할머니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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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건넌방은 며느리가
머물던 공간으로 사랑방과 안방 중간에 자리한다. 시아비가 며느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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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채 건넌방의 특별함, 누마루 |
▲ 안채에서 사랑채(사랑방, 작은 사랑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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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채 뒷쪽 복도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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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사랑방은 집
주인의 거처로 서울시에서 수집한 여러 가구와 병풍 등이 주인이 없는 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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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대청에는 백인제 가족이 남긴 흑백사진이 하나 놓여져 있다. 백인제가 서재필(徐載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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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를 둘러보고
안채에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안채 뜨락에서 중문까지 나머지 설명을 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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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1년 1월 8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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