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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주 산문집, <저의 기쁨입니다>, 푸른사상, 2024년 9월.
긍정심리학의 아름다운 실제
맹문재
1.
금선주의 작품 세계에서는 주어진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작가의 모습이 단연 돋보인다. 작가는 30년 동안 기업체의 해외 주재원 부인으로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의 삶은 일반인들과 비교해서 차원이 달랐다. 작가가 영위했던 외국 생활은 언어와 문화와 역사 등이 한국과 큰 차이가 있어 현지에 적응하는 데 많은 애로를 겪었다. 그렇지만 작가는 가족은 물론 주재원들과의 공동체 의식으로 난관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갔다. 주재원들의 행복은 물론 회사의 발전과 국위 선양에 그 나름대로 기여한 것이다.
금선주 작가는 긍정심리를 토대로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긍정심리학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E. P. Seligman)이 창시한 개념으로 기존의 심리학과 달리 인간의 약점보다는 강점을 내세운다. 삶의 과정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긍정적인 점을 살려내는 데 역점을 둔다.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심리나 정서를 극복하기보다는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미덕을 살린다. 개인의 강점을 계발해서 일, 사랑, 자녀 양육, 여가 활동 등의 삶의 현장에 활용해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다. 자신감, 미래에 대한 희망, 인간관계의 신뢰 등의 긍정심리는 삶이 편안할 때보다 시련의 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용기, 정직, 공정성, 팀워크 등의 강점과 미덕도 마찬가지이다. 긍정심리학은 현재의 상태를 더 향상된 상태로 높이는 것으로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이다.
긍정심리로 삶을 영위하는 작가의 태도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모습이다. 르네 듀보(Rene' Dubos)가 『적응하는 인간』에서 분류했듯이 적응에는 수동적인 적응과 능동적인 적응이 있다. 현대인들은 자동차의 배기가스, 도시의 악취, 교통 혼잡, 비정한 사건들, 즐거움이 없는 축하 행사 등등의 바람직하지 않은 환경에 지나치도록 잘 적응한다. 소극적으로 순응하는 것이다. 능동적인 적응은 소극적인 적응과 달리 적응할 만한 환경을 만들어간다. 삶의 토대가 타락하는 데에 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개선해 인간 가치를 실현해 가는 것이다.
금선주 작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자신의 환경을 끌어안는다. 자신과 다른 가치관이나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선입견으로 배척하기보다는 긍정하는 마음으로 관계를 맺는다. 마치 공자(孔子)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한 것처럼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때로는 어려움에 부딪혀 불안감이나 분노나 좌절감 등에 함몰되기도 하지만, 끝내 자신의 마음을 건져 올려 새롭게 출발한다. 하늘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믿고 사람답게 살아갈 만한 세상을 다른 이들과 함께 이루어가는 것이다.
2.
상점이 즐비한 상가를 구경하며 걷는데 돌풍에 몸이 앞으로 쭈욱 밀렸다. 몸피가 얇은 편이긴 했지만 건강한 체격인 내가 바람에 붕 떠오른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빌딩 사이로 회오리치는 바람 한가운데 내 몸이 솟구쳐 오르면서 꼭 잡고 있었던 아이의 손이 힘없이 풀려나갔고, 나는 빌딩 사이 크레바스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낭떠러지로 속절없이 떨어질 판국이었다. 목이 쉬게 아이를 부르며 땅을 향해 발을 뻗을수록 옆으로 더 솟으며 점점 밀려갈 뿐이었다.
이건 악몽일 거야 하는 순간, 어떤 손이 쑥 올라와 발목을 낚아채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점프했던 덩치 큰 호주의 아저씨와 함께! 그 아저씨는 세찬 바람에 밀려가고 있던 아들도 다른 한 손을 뻗어서 눌러 잡았다. 마주 오던 호주의 아주머니가 마침 아이를 막아 세워서 가능했다.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젊은 엄마였던 나는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의 말에 대답도 못 한 채 엉금엉금 기어가 아이를 품에 안고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한마디의 영어로 밀어내지 못한 채 창피하고 당황스러워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바탕의 소동에 몰려온 사람들의 다양한 빛깔의 걱정스러워하는 눈동자들에 둘러싸인 채였다.
한참 지나 정신을 차리고 호주의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연락처를 묻자 그는 대답 대신 우리 모자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안심시키며 일어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를 먼저 일으켜 세우고 나도 겨우 일어서자 둘러선 사람들이 안도했다. 내가 걸을 수 있게 길을 터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씩씩하게 걸음을 떼려는데 욱신거리며 발등이 쓰라렸다. 그래도 손뼉을 치며 좋아해주는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똑바로 섰다. 아저씨도 우리를 구하느라 내던졌던 서류 가방을 챙겨다 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하더니 아이를 다시 잘 살폈다. 무릎이 까졌고 팔꿈치 아래도 긁혔으나 피가 많이 나지는 않았고 보채지도 않았다. 나도 발등과 손바닥에 찰과상으로 피가 거뭇하게 맺혔으나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그래도 아저씨는 반드시 상처를 소독해야 한다면서 손가락으로 근처 약국을 가리켰다. 사태를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My pleasure!”
그 말은 순간 내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국말로 정중하게 인사하고 기차로 한 정거장 떨어진 아타몬 집으로 아이와 함께 무사히 돌아왔다. “My pleasure!”……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고맙고 아름다운 그 말은 보석처럼 다가와 나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 「저의 기쁨입니다!」 부분
위의 작품의 화자는 복잡한 서류를 갖추어 회사의 일에 바쁜 남편을 대신해서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돌아오다가 바람에 날린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사람이 바람에 날려가는 경우를 한국에서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화자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화자가 첫 해외 주재지여서 겪었던 그 아찔한 상황은 결코 가볍거나 작은 일이 아니었다.
화자는 상점이 즐비한 상가를 즐겁게 구경하며 걷다가 돌풍에 몸이 앞으로 쭈욱 밀리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빌딩 사이로 회오리치는 바람 한가운데 갇혀 솟구쳐 오른 것이었다. 함께 손을 잡고 오던 아이도 힘없이 풀려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손 쓸 사이가 없었다. 화자는 크레바스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빌딩 사이에 떨어질 판국이어서 땅을 향해 발을 뻗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바람의 힘에 더 솟아오르며 밀려갈 뿐이었다.
그 위험한 순간, 어떤 손이 쑥 올라와 화자의 발목을 낚아채었다. 그 바람에 화자는 바닥에 고꾸라졌지만, 다행히 땅에 내려올 수 있었다. 화자를 도와준 사람은 호주의 한 시민이었다. 그는 위험한 상황에 놓인 화자를 발견하자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고 점프해서 구한 것이었다. 세찬 바람에 밀려가고 있던 아이도 잡아서 구해주었다. 그의 행동은 일찍이 맹자(孟子)가 측은지심(惻隱之心) 을 설명하면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아무 조건 없이 구해준 사람을 예로 든 것과 같다. 호주의 시민이 보여준 헌신적인 행동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화자는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주위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단지 엉금엉금 기어가 아이를 안고 주저앉아 엉엉 울기만 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어서 창피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단박에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했다.
화자는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기를 도와준 그 시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아울러 사례를 하고 싶어 그의 연락처를 물었다. 그는 화자와 아이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안심시키며 일어설 수 있겠느냐고 걱정만 할 뿐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상처를 소독해야 한다며 근처의 약국을 가리켜주기도 했다. 화자는 그 친절함에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는 “My pleasure!”라고 대답했다. 화자는 그의 말에 크게 감동해 자신도 모르게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또다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화자는 살아오면서 해온 봉사나 후원 등의 선행이 호주의 그 시민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 것에 비해 위선에 가까웠다고 반성했다. 대가를 바라고 행한 선행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낳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뒤 화자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마다 그 호주의 은인을 떠올리며 “저의 기쁨입니다!”라는 말을 답례로 했다. 그럴 때마다 듣는 사람이 좋아한 것은 물론 화자 자신도 격려와 축복을 받았다.
어린이 전용 병원 응급실은 아기들의 울음소리로 어수선하기만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통역사를 청했다. 이민자가 많았던 호주는 병원에서 각 나라의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배가 자꾸 돌면서 해산이 가까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걷지 못하는 증상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통역사에게 내가 보았던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얘기하자 자신도 그 프로그램을 보았다고 했다. 아이 엄마에게는 아까부터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통역사에게 하면서 아무래도 백혈병에 대한 검사를 받아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통역사는 알았다며 모든 증상과 상황을 자세히 응급실 의사에게 통역해주었다. 그제야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온종일 캠시로 다시 어린이 병원으로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다녔던 탓인지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며 갑자기 배가 뭉치고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또 다른 응급 환자가 되어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 링거를 맞고 배 마사지를 받아야만 했다. 고된 회사 일에 시달리던 아이의 아빠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병원으로 달려와 비로소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는 이틀 뒤 불행하게도 루키미아(Leukemia), 즉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선고였지만, 아이는 살 운명이었음이 분명했다.
― 「루키미아(Leukemia)」 부분
위의 작품의 화자는 건설회사에 다니는 주재원의 집을 방문했다가 다섯 살 된 아이가 아파서 잘 걷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텔레비전의 다큐 프로그램에서 어린이 전용 병원을 특집으로 마련해 방송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호주에는 어린이 혈액암 환자가 많아서 최고의 전문의가 그곳의 어린이 병원에 있었다. 그 의사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는데, 특히 혈액암의 초기 증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감기로 오인해 치료시기를 놓쳐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화자는 아픈 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 방송을 떠올렸고, 병원에 데려가서 백혈병 검사를 받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주선한 것이었다. 그 아이는 다행히 조기에 백혈병을 발견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건강을 회복했다.
화자가 아픈 아이를 입원시키고 검사를 받도록 주선한 것은 지식이나 정보가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아픈 아이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화자는 출산을 앞두고 있어 몸을 무리하면 안 되었다. 실제로 화자는 온종일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다녀서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고 배가 뭉쳐 통증이 몰려와 또 다른 환자가 되어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배 마사지를 받아야 했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화자는 아이의 상태가 급하다고 여기고 병원을 알아보고 통역사에게 도움을 구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나섰다. 화자가 헌신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은 ‘저의 기쁨입니다’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주의 시민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화자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 일을 가슴속에 새기고, 답례로 아픈 아이에게 도움을 준 것이었다.
3.
며칠 후 우리 동네로 꺾어지는 골목길 언저리에서 준이라고 불렸던 남자아이의 엉덩이를 호주인 아빠가 심하게 때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보았던 장면이라 약간은 두렵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용기를 내어 다가가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들이냐고 물었다. 남자는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니 상관 말라고 했다.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 분노를 느꼈다. 한국에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보며 아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부끄럽고 아팠는데, 해외에서 그 현장을 직접 맞닥뜨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슬프고 참담해 온몸이 떨렸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이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아서 유감이라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남자는 흠칫 놀라 아이가 차 안에다가 오줌을 싸서 버릇을 고치기 위해 훈육하는 거라고 안절부절못하며 뒤늦게 변명했다.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다시 침착하게 말했다. 말로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테니 아이를 다시 길거리에서 때리는지 앞으로 쭉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조수석에 있던 여자가 얼른 차에서 내려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며 사과했다. 나는 나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고 아이에게 때린 걸 사과하라고 버텼다. 남자는 발가벗겼던 준이에게 여자가 가져온 새 옷을 입히고 둘이 같이 아이를 안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 「영이와 준이」 부분
위의 작품의 화자는 동네의 골목길 언저리에서 준이라고 불리는 남자아이가 호주인 아빠에게 심하게 엉덩이를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 다가갔다. 이국에서 낯선 사람에게 항의하는 일은 두려운 일이었지만, ‘저의 기쁨입니다’라는 마음을 가졌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화자는 그 호주인에게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냐고 묻자, 그는 당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니 상관하지 말라고 무시했다. 화자는 한국인으로서 아기가 수출되는 현실을 목전에서 확인했기에 심한 분노와 참담함과 슬픔을 느꼈다. 그리하여 온몸이 떨렸지만, 용기를 가지고 유감을 강하게 표현했다.
화자의 당찬 항의에 준이를 때리던 호주인 아빠는 흠칫 놀라며 아이가 차에 오줌을 싸서 버릇을 고치기 위해 훈육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화자는 말로 충분히 훈육할 수 있는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앞으로 계속 지켜보겠다는 경고도 전했다. 그러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이의 엄마가 차에서 내려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아이의 아빠도 준이에게 옷을 입히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호주 정부는 인구 증가 정책으로 이민자는 물론 입양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그에 따라 입양아 부모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었다. 위의 부부가 그 예로, 그들은 해외에서 입양한 아이들을 키우며 정부가 주는 수당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화자에게 건넨 사과는 진정성이 의심되는 것이었다. 돌아서는 화자에게 제 나라에서 팔아치운 아이를 사람 되라고 키워주는데 왜 주제넘게 간섭하느냐고 투덜댄 것에서 확인된다. 화자는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다시 다가가 당신들은 아이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는지 계속 지켜보겠다고 침착하게 말했다.
화자는 주재원 부인들의 모임에 나가서도 입양아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했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없었지만, 입양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는 의견을 모았다. 그와 같은 주재원들의 관심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아이들을 입양한 호주인들은 한국인들이 정부에 신고해서 양육권을 박탈당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눈빛을 보였고,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었다.
11학년 남학생이 서스펜션(suspension) 당했다던데 아세요? 교칙을 잘 몰라서 당한 거래요. 익스펄션(expulsion)은 또 뭐예요?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니, 교문에서 엄마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학이나 퇴학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랐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런 일이 자기 아이들에게 닥칠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 말을 듣자, 알고 피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의 교칙 안내서는 아주 얇았다. 그렇지만 모르는 단어를 사전을 뒤져가며 읽어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미국 학교의 교칙이 한국의 경우와 다른 것도 많았다. (중략)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아이들이 다니는 ASM에는 한국 아이들이 50명에 달했다. 이탈리아 학생들이 가장 많았고, 한국이 두 번째, 미국이 세 번째로 많았다. 학생 수가 500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였는데, 무려 150개국의 아이들이 다니는 다국적 학교였다. 학부모 대표가 되어보니 학교와 여러 분야의 소통이 시급했다. 대표단을 정비하고 모든 일은 회의를 통해서 결정하자고 했다. 결정된 사항은 온라인에 학부모 소통의 장을 만들어 공유했다. 무엇보다 학교와 학부모 공동체 간의 대화가 필요했다. 첫해를 소통의 해로 정하고 학교 이사장을 비롯해 각 학년 선생님과 학부모들 간의 간담회를 열었다. 학부모들은 그동안 궁금하거나 건의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며 반겼다.
교칙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했다. 문제가 됐던 정학이 무엇인지 퇴학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아이들이 무사히 학교를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부모의 태도인지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자녀들이 스스로 내면적 가치를 느끼고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주된 역할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것을 위해 학교의 교칙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했다.
― 「교칙 번역 프로젝트」 부분
위의 작품에서처럼 해외 주재원들은 어쩔 수 없이 자녀를 외국 학교에 보내야 했고, 그에 따른 불편함이나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주재원 자녀들이 학교생활에서 겪는 대부분의 불이익은 교칙을 잘 몰라서였다. 언어의 소통을 원만하게 할 수 없는 형편이므로 학교의 교칙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화자는 주재원 자녀들이 모르고 당하는 것과 알면서도 피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문제의 해결에 나섰다. 학부모 대표를 맡고 있었기에 책임감이 더 생겼다. 주재원 자녀들은 밀라노에 있는 아메리칸 스쿨(American School of Milano, ASM)에 다니고 있었다. 화자는 학교와 학부모 간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학교의 이사장과 각 학년 선생님과의 간담회를 주기적으로 열어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갔다.
또한 학교의 교칙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자녀들이 스스로 내면적 가치를 느끼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이 교칙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학부모들은 역량을 발휘하며 번역 작업에 매진했다. 교칙을 다 외우는 정도까지 되어 결국 이전보다 학교의 전반을 알게 되었다.
위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해외 주재원들은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적응한다. 자녀들이 교칙을 제대로 알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한 것이다. 화자는 물론 주재원들이 ‘저의 기쁨입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4.
사랑의 다리라고 불리는 카펠교 아래로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헤엄쳐 왔다.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빵 부스러기 따위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 백조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주재원들과 부인들의 삶이 생각났다.
유럽의 가전제품 시장은 치열했다. 독일의 기업들이 선점한 시장에 미국 기업들의 제품이 상당히 파고들고 있었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국민 기업인 필립스사의 제품을 소비자들이 압도적으로 선호했다. 네덜란드 법인의 대표로 발령이 난 남편은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율을 올리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일했다. 언제나 일에 매진해 남편의 신경은 늘 날카로웠다. 하루는 아침 식탁에서 집안일을 상의하던 남편이 한 가지씩 정확히 확인하며 짚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던 아이들이 아빠, 엄마는 부하직원이 아니에요라고 놀릴 정도였다. 주재원들의 생활은 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다.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내조하는 부인들도 늘 긴장하며 생활했다. 그래서 물 위에서 우아하게 보이는 주재원 부인들의 삶이 물 아래서 발을 무한하게 움직이는 백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네덜란드 법인장으로 발령 나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 TV 시장 점유율은 단연코 네덜란드 기업인 필립스사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편 회사의 제품 점유율은 20퍼센트 미만에 불과했다. 주재원들은 필립스사를 난공불락의 존재로 여겨 그 회사의 제품에 도전하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은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산책하면서도 머릿속을 회사 일로 꽉 채웠다. 유럽 시장에 맞는 디자인으로 법인의 효과적 마케팅 전략을 세우려고 했다.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여러 상품을 섞어놓고 당신 같으면 어떤 제품을 고르겠냐고 다짜고짜 묻기도 했다. 제품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물어볼 때도 있었다. 직원들의 팀워크를 최고로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걷다가 집을 지나치기도 했다.
― 「카펠교의 백조」 부분
주지하다시피 해외 주재원은 기업의 세계화 추세에 따라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해외 주재원의 성공은 기업경영 차원에서 매우 기대하는 과제이자 목표이다. 그만큼 필요성이 크지만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주재원들은 외국어의 사용이 능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 적응을 제대로 해야 한다. 현지의 역사, 문화, 전통, 종교, 정치, 경제, 노동 시장, 국민성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해야만 시장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글에서도 치열한 네덜란드 가전제품 시장에서 분투하는 한국 주재원들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자의 남편은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율을 올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 네덜란드 시장을 선점한 독일 기업의 제품들과 시장을 무섭게 파고드는 미국 기업의 제품들, 게다가 자국의 제품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네덜란드 소비자들의 시장에 한국 기업의 제품이 파고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주재원들의 생활은 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고,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내조하는 주재원 부인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화자가 물 위에서 우아하게 보이는 주재원 부인들의 삶이 실제로는 물 아래서 발을 무한하게 움직이는 백조와 같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하다. 백조들도 남편들 못지않게 현지 적응을 치열하게 해나간 것이었다.
띵∼ 똥! 벨이 울려 나가보면 정성껏 만든 음식과 쪽지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이웃 주재원 부인들의 따듯한 마음이었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한 층에 하나뿐인 아파트 현관문이 승강기였다. 심하게 아파 몸져누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죽을 끓여와 현관문에 매달아 놓고 가기도 했다. 가장 힘들고 괴로운 날들을 하루하루 버틸 수 있게 해준 응원 같은 이웃의 정성이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웠다. (중략)
페이라가 열리면 그동안 고마웠던 부인들을 불러내 사탕수수즙과 파스테우를 사고, 채소와 과일도 사서 나눴다. 부인들은 손사래를 치며 물러났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고마운 마음을 갚고 싶었다. 몸이 회복되는 기간이 더디어 페이라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동안 내가 사준 식재료는 요리되어 오롯이 우리 집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중략)
아이들의 진로 문제를 걱정하던 모 기획사 주재원의 부인이 안내했던 카페 옥타비아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함께 고민을 풀어나갔다. 나는 동기 부여 강사를 몇 년 했던 경험을 살려 진지하게 조언해주었다. (중략) 아이들의 고민을 해결했다는 소문이 카페에서의 식사 이후 났던지 주재원 부인들이 나에게 여러 가지 상담을 해왔다. 나는 식사를 내면서 부인들과 허심탄회하게 가정사와 아이들의 문제를 의논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늘 나를 괴롭히는 통증을 감당하며 긴장감 속에서 살아야 했던 브라질에서의 생활이었지만, 치자꽃을 보면 상파울루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이웃들의 향기가 떠오른다.
― 「치자꽃 향기」 부분
위의 작품의 화자는 브라질에서 주재원의 부인으로 생활하는 동안 이전 주재원 생활에서 당한 사고 후유증으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이탈리아에서 차를 강탈하는 강도들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온몸을 다친 것이었다. 몸에 염증이 생기고 통증이 몰려와 부엌칼조차 쥘 수 없었다. 손을 쓸 수 없으니 요리를 할 수 없었고, 식사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허리 통증으로 앉기도 힘들었고, 몸을 가누기도 어려웠다.
힘든 처지에 놓인 화자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주재원의 가족들이었다. 주재원 부인들은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가져왔고 쾌차하기를 응원했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과 도움으로 화자는 힘들고 괴로운 날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 화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고마움을 베푼 주재원 부인들을 시장으로 불러내 사탕수수즙이나 파스테우 등을 대접했고 채소와 과일을 사서 나누었다. 부인들은 손사래를 쳤지만 화자는 그렇게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그리고 동기 부여 강사를 했던 경험을 살려 부인들의 고민에 대해 조언해주었다. 주재원 가족들이 안고 있는 가정사와 아이들의 진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심성의껏 도운 것이었다. 화자는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았고,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기쁘게 여겼다.
화자의 자세야말로 주어진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한 모습이다. 화자는 치열한 시장 경쟁을 추구하는 기업체의 해외 주재원 부인으로 생활하는 동안 많은 갈등과 불안과 애로를 겪었다. 화자는 그 난관들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해 나갔다.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주재원 가족들과의 협력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실현한 것이었다.
‘저의 기쁨입니다’…… 호주의 한 은인이 들려준 “My pleasure!”를 실천하는 화자의 이 말은 참으로 겸손하다. 참으로 부드럽고 따듯하고 품이 넓다. 참으로 평온하고 선하고 향기가 난다. 참으로 단단하고 힘이 세다. 그리고 참으로 인간답다.
孟文在 |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