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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단회인데요, 천도품으로 단회를 한다.
보통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아생전에 천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천도라는 것은 악도에서 선도로, 강급에서 진급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중생에서 불보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살아서 천도가 중요하고, 돌아가셔‘도’ 천도를 물론 해야한다.
종교 중에 죽은 사람을 천도시켜줄 수 있는 종교가 얼마나 있느냐? 무당은 달래주기만 한다. 2~3년 지나면 다시 나온다. 불교나 원불교는 돌아가신 분을 위해 천도를 시키기도 하고, 인연을 맺어주기도 하고, 진급을 시켜주기도 한다. 복록을 지어주고, 깨침을 주기도 한다. 먼저 살아 생전에 천도가 중요하고, 죽은 영혼의 천도도 중요하다.
천도품 1장에 보면, 죽은 일, 산 일 모두 큰 일이다. 대사라고 하셨다. 대사는 생과 사에 대한 것이다. 사는 것도 중요하고 죽는 것도 중요하다. 생에서는 생의 가치, 사에서는 사의 가치. 모든 사업을 성공하는 사람들이나 어디가서나 성장 발전하는 회사는 반드시 연구소가 있다. 연구소는 미리 연구해서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미리 준비를 하는데 살고 죽는 일은 미리 준비를 안 한다. 살아 있을 때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죽을 때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를 미리 준비해야한다. 그래야 그 삶이 가치를 발휘하고 그 죽음이 가치를 발휘한다. 그런데 또 그 삶이 죽음으로 연결되고 그 죽음은 삶으로 연결된다.
그 중에 핵심 기점이 있다. 그게 바로 극락이다. 살아서도 극락 죽어서도 극락이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보통 사람은 상대적인 세계에서 고에 반대되는 낙을 위해 산다. 극락은 상대되지 않은 절대적인 락이다. 고와 락의 세계를 뛰어넘은 것이 극락이다. 극락을 수용해야 고 속에서 락을 발견하고, 락 속에서도 잘 추스려서 지속적인 락을 장만할 수 있다. 살 때는 극락을 수용하고, 죽었을 때의 왕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극락수용이 삶의 가치요, 왕생극락이 죽음의 가치이다. 그런데 살 때 과연 극락을 수용하느냐?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 극락은 신앙 수행이 없이 알 수 없다.
언제 제일 잘 살 것인가? 무시선, 무처선은 그 때 그 자리에서 극락을 수용하고, 극락을 만끽하고 살라는 뜻이다. 그것을 위해서 수양도 하고, 미리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경계에서 잘 지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잘 활용해서 써야 한다. 이것이 삼학수행이다. 또 나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수용하도록 나누는 것이 사은사요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바로 극락이다. 극락은 저기 멀리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지금, 항상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여여한 그 자리를 알아야한다. 대종사님께서는 바로 그 자리를 알려주신 것이다.
죽어서도 마찬가지다. 죽으면 12인연을 따라 간다. 무명에 근간되어 전도몽상되고 몸도 못 받거나 우마육축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내가 과연 죽었을 때 영식이 툭 떠서 왕생극락 할 수 있겠느냐? 군대 가기 전에 영어 못 하던 사람이 군대 갔다오면 영어 잘 하느냐? 환경만 바뀐다고 영어를 잘 하느냐? 마찬가지로 현생에서 극락 수용을 못 한 사람이 죽어서 극락왕생을 하겠느냐?
대종사님은 그 때 그 때, 순간순간, 옆에 있는 사람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잘 하라고 하셨다. 니가 지금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느냐? 그러려면 눈이 바뀌어야 한다. 육안을 혜안으로 바꿔야한다. 육안은 현상 세계 밖에 못 본다. 육안에 보이는 세계는 이치따라 전부 바뀐다. 변과 불변의 자리를 아는 것이 지혜의 눈이다.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이면까지 볼 수 있는 눈이다. 비로소 혜안을 가질 때 육안을 잘 활용할 수 있다. 속지 않을 수 있다. 여기 오신 분들 이것 원해서 왔지요? “나는 극락 싫어” “나는 고통이 좋아” 이런 사람 있어요? 없을 것이다. 모두 영원한 락을 좋아한다. 극락은 영원한 락이다. 한편 어찌보면 락도 떠난 락, 고도 떠난 락이다. 고 속에서 락을 발견하는 락이다. 이게 영원한 행복이다. 여러분은 이 황금같은 주말에 이런 것을 만나러 오셨다.
여러분의 눈을 육안에서 혜안으로 바뀌어야 한다. 혜안은 불안이고 법안이다. 그러면 남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남들이 못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남들처럼 육안으로 살 것인가, 혜안으로 살아갈 것인가?
할 수 있다. 그럼 저는 하느냐? 좀 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극락을 가장 잘 수용하고 혜안을 가지신 분들이 우리 스승님들이다. 그렇게 사셨고, 그게 좋기 때문에 우리에게 말씀을 하신 것이다. 누구는 연봉이 10억, 누구는 학벌이 좋고, 누구는 인물이 좋고, 누구는 장관을 한다. 그 사람들에게 이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은가? 그 사람들에게는 돈 버는 것, 명예 올라가는 것. 즉 육안으로 보는 변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극락의 세계를 알고 수용하고 가르쳐 줄 수 있느냐?
진짜 극락을 아는 사람은 명예, 부귀영화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는다. 하라고 해도 안 하고, 마지못해 중생제도를 위해 한다. 극락의 재미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산다. 모르니까 변하는 것에 목숨걸고 달라든다. 혜안을 가져야 극락을 수용할 수 있다. 육안의 세계에서는 고와 락의 양변에서, 짝하는 세계에서 산다. 야구광들은 경기에 이겨서 한 잔, 졌으니 한 잔, 비겨서 한 잔 이다. 자기 스스로 진급해서 극락을 수용하지 못 하니까 술이라는 타력을 통해 잊고 싶은 것이다. 나름 극락의 세계에 가고 싶은 것이다. 여행을 가는 것도 극락을 가고 싶어서이고, 술을 마시는 것도 극락을 가고 싶어서, 극장에 가는 것도 극락을 가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이렇게는 가지 못 한다.
극락은 어떻게 갈 것인까? 삼학 수행을 통해 갈 수 있다. 이것은 대통령, 장관도 못 알려준다. 빌게이츠도 못 알려준다. 이것을 알려주는 것은 우리 스승님들이다. 이것이 억지처럼 들리십니까? 사실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중국 순치황제가 동생에게 황제자리를 물려주고 “내가 18년동안 곤룡포를 입었을 때보다 절에서 머리를 깎고 반나절 한가하게 앉아있던 심경이 훨씬 행복하다”고 했다. 순치황제의 출가시이다. 부왕부왕 한 것 같은가? 사실이다. 대통령이 큰 일 한다고 하지만 부처님이 하시는 일에 비하면 손가락 끝의 때만큼도 못 하다.
은하계 안에 태양계가 있고 그 안에 지구가 있고 우리가 있다. 지구가 40억년 전에 생겼다고 하는데, 극락의 세계 마음의 세계는 40억년이 문제가 인다. 은하계가 문제가 아니다. 은하계 100억개 보다 넓은 우주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 이게 바로 부처님의 눈이고 심안이다.
오늘 너무 과장되게 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한다. 태양보다도 밝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눈과 마음이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태양이 밝아도 그늘진 곳은 못 비추고 마음 속은 못 비춘다. 부처님의 참 마음의 세계는 그 못된 중생의 마음도 다 비추고 새 사람을 만들어낸다. 그 그늘진 마음까지도 다 녹여내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이다.
천도 하고 싶은가? 살아 생전에 내가 나를 천도해야 한다. 죽어서는 스스로 못 한다. 그 때는 타력이 필요하다.
어제 발인이 있어서 익산에 다녀왔다. 자식이 9남매가 있는데 하나도 안 죽었고 상주가 16명이 왔다. 영가가 89세였고 9남매가 시집장가 다 갔다. 하나도 안 죽었다. 그래봤자 상주가 16명밖에 안 된다. 제가 죽으면 몇 명이 올 것 같은가? 여러분들은 다 올 것인가?
돌아가신 영가가 이생동안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자식이 9명인데 그 중 한 명도 안 울었다. 그 누구를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내가 혜안이 열려서 극락을 하고 내가 스스로 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육안을 가진 사람은 누가 존경스럽겠습니까. 대종사님이나 저 같은 사람 안 존경할 것이다. 삼성이 이번에 4조 정도 이익이 났는데 거기 임원은 연봉이 얼마라더라. 누가 삼성 들어가고 포스코 들어가는 것만 박수 치고 부러워하는 사람은 육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게 나쁜 게 아니라 그것만 생각하고 사는 것은 중생의 삶이다.
‘우리 지연교무님이 어린 나이에 출가해서 저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구나.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세상 모르고 출가해서 애쓰겠네.’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전자는 혜안이고 후자는 육안이다.
육신은 나이가 있지만 마음에는 노소가 없고, 영생을 놓고 보면 불생불멸이라. 원래 나이가 없다. 육신의 나이가 70 80이 되도 철딱서니 없는 사람도 있고, 육신의 나이가 어려도 그 사람 마음에 엄청난 불종자와 서원을 가지고, 강렬한 신심과 구도심으로 일체 생령을 건지겠다는 씨앗을 가지고 성장하는 사람도 있다.
육안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나 더 가집시다. 혜안을 가집시다. 그러면 생의 가치를 잘 수용하고 죽어서도 왕생극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
김대선 교우 - 꼭 출가만 해야 그런 극락에 갈 수 있는 것입니까?
교무 - 한마음인 것입니다. 출가, 재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진선 교우 - 포스코 합격했는 데, 왜 축하해야 합니까? 교당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세계에 있는 일을 축하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교무 - 포스코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혜안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정경도 교우 - 생과 사가 둘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왜 울지 않았다고 그게 나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교무 - 생사의 이치를 알아서 그랬다고 하면 괜찮지만, 그런 것입니까? 근데 생사의 이치도 모르면서 자기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자식들이 슬퍼하지도 않았다면 그건 진짜로 슬픈 일일 것입니다.
마음의 그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락과 고의 세계를 뛰어넘은 극락의 그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것입니다.
오진선 교우 - 현실세계에서 원불교를 다니셨는데 왜 이렇게 생에 나쁜 일을 많이 하셨을까요?
교무 - 안 믿으셨으면 어땠을까요? 더 했지.
그 사람의 전생 업력과 습관을 따라서 그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