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레아동문학연구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운영자 너구리(박숙경)의 답글로 '문제아'를 쓴 문제아(!) 박기범이
참으로 고마운 소견을 적어놓았더군요.
저는 너무 무식해서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거칠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을
지독히 겸손하고 십일월 하늘처럼
맑고 노프고 짙푸르게
지고지순으로 제 가슴 후려치는 마음을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민주노동당 사이트를 눈을 부릅 뒤져도 결코 볼 수 없던 마음 한끝이
우리 어린이 문학 마당에 정통하게 올려져 있었습니다.
너무 자랑스러워 저는 가슴이 벅차 퍼왔습니다.
긴 글이라서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을 쓴 박기범은 몇날 며칠의 고민 속에서
며칠을 쓰고 지우고, 다시 썼을 것입니다.
그 수고로움의 이유를 저는 저대로
또 며칠을 묻고 대답하며 읽을 것입니다.
이 글은 자신의 당파를 단호하고 눈부시게 밝히고 있군요.
........................
2002/11/21 (09:36) from 211.105.148.214' of 211.105.148.214' Article Number : 1727
박기범 Access : 164 , Lines : 305
Re: 발언
숙경아, 여기 네 글 아래 몇 번이나 댓글을 달까 하다가 오늘은 마음먹고 써 본다. 네 글을 읽고 무척 반가웠거든. 우선은 어찌했건 정치 이야기를 이 게시판에서 본 것이 반가웠고, 또 하나는 네 글 자체를 보는 것으로부터 기분이 좋아 그랬어.
정치
글쎄, 언제부턴가 나는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정치라거나 선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참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로 느껴왔어. 혹은 불편한 일, 꺼리는 일. 그 까닭이야 이미 지긋지긋할 대로 천박해진 우리 정치의 저열함, 그리고 그 때문에 낳은 냉소와 불신 거기에 첫 번째 까닭이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리 조용할 수 있나. 이미 나 말고 모두들 이심전심이어서 더 말할 것이 없어 그럴까. 어쩌면 이리 말하는 것이 내 조급함이나 경망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 움츠러들기는 하지만 조금은 궁금했고, 조금은 안타까웠고,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있기도 했어.
어린이문학
설마 정치적 냉소, 그 때문일까? 이곳 어린이문학도 결국은 진실을 찾아가는 일인데. 너무 상투이기는 하지만 결국 자유와 평화에 닿기 위한 것일 텐데. 저마다 현실 세계에 갇힌 질곡이나 존재의 아픔을 넘어서고자 저편의 조화로운 세상을 그리는 것 또한 그것일텐데. 결국 문학의 주제와 현실의 꿈은 다르지 않을 텐데. 가장 비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것. 때로는 순수 문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것이 되는 것처럼, 문학은 현실에 대한 발언일 수밖에 없는데. 게다가 어린이문학 둘레의 많은 선생님들은 이전 시기 누구보다 적극으로 운동을 실천해오신 분들. 그리고 지금은 당시 단일한 전선이 해체된 자리에서 출판, 교육, 문화, 문학의 자리에서 그 이상의 깊이와 견고함으로 세상과 삶을 구원코자 애쓰시고 있는 분들인데……. 그리고 분명 지금도 그 어떤 분들보다 관심을 가지며, 혹은 직접 한 가운데에서 눈앞에 놓인 대선을 맞고 계실 거라 믿고 말이야.
천박함
모르겠다. 사실 현재 돌아가는 판국이 도저히 그 어떤 논평이나 논쟁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천박해서인지도. 그래서 때로는 왠지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것을 말하는 사람조차 아주 천박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드니 말이야. 그런 얘기를 하면 시류에나 관심을 두거나 세속적 가치에나 매달리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눈치를 보게끔 되는 건지도. 워낙 우리 정치는 어느새 정책 없이 전술만 남았고, 가치는 없고 진영만 남았으니 정치 이야기라고 해 봐야 고작 전술에 대한 관전평이나 진영 논리에 따른 입씨름밖에 되지 않으니. 결국 전술 중심, 진영 중심의 정치는 집권이라는 가치 이외의 모든 것을 지워 놓고, 신문 방송 또한 마치 스포츠를 중계하듯 전술 구사를 쫓아다닐 뿐. 오늘은 누가 누구를 만났다, 오늘은 누가 어디를 갔다, 오늘은 누가 누구와 손을 잡았다, 오늘은 누가 무슨 말을 했다, 해서 어느 진영으로 저울추가 기운다……. 승자독식인 선거 게임 앞에서 철저하게 집권만이 절대선이 되는, 그리고 거기에 중요한 것은 전술과 진영뿐인 정치 문화, 그리고 중계방송식 언론 앞에서 시민은 고작 관전석으로 내몰릴 뿐. 그것도 아주 더러운, 지저분한 게임의.
상처
상처. 그래, 나는 상처 쪽에 혐의를 많이 두기로 했다. 어느새 정치 이야기가 껄끄러운 주제가 되어버린 까닭은 결코 정치적 냉소도 아니오, 그 천박함에 대한 혐오도 아닐 거라고. 적어도 세상을 걱정하고, 더불어 꾸는 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고작 지긋지긋함이나 짜증 때문에 현실 정치를 입에 담지 않는 것은 아닐 거라고. 세상 걱정이 깊을 수록, 더불어 꾸는 꿈이 간절할 수록 이 지저분한 현실 정치를 더욱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을 거라 생각해. 그런데도 그것은 공론화되지 못하고 더욱 섬세한 논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 같아. 상처 때문일까? 몇 번의 실패, 몇 번의 배신, 몇 번의 좌절, 그리고 몇 번의 절망. 온 마음을 다하고, 서로 치열하게 논쟁하고, 힘껏 싸운 뒤에도 이루지 못한 상처 때문에? 아니면 선거 시기 소중한 이들 사이에 입장 차이가 낳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의 아픔이 끔찍스러워서일까? 어쩌면 그 상처, 그 상처의 기억이 정치 논쟁 자체를 두렵게 하고 상채기만 남기는 소모적 논쟁으로 돌리게끔 하기 때문일까?
게시판
나는 아마 그랬나봐. 아동문학을 고민하는 분들, 적어도 이 게시판에서 만나는 분들은 진보의 편에서 더불어 꾸는 꿈을 놓지 않는 분들과 뜨겁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우리가 꾸는 꿈을 더욱 섬세하게 찾아가는 과정을 나누리라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진지한 성찰의 글을 통해 내가 가진 입장을 돌아보고, 되묻고 싶은 것을 다시 묻고, 현실 정치와 세상을 보는 눈을 더 밝게 갖추어 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으면. 때로는 배우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검증받고, 그래서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그 꿈을 함께 나누는.
이거 되게 망설이다가 쓴 글인 거 알겠지? 겨우 요만큼인데, 이거 몇 시간이나 또닥거리고 있는 거야, 이거. 벌써 다섯 시간째다 야. 실은 오래 전부터 때때로 이런 저런 질문이나 논평 따위의 정치 발언을 이 게시판을 빌어하고 싶었는데 도무지 용기가 없어 못했다. 정치 얘기하면 벌써 소름이 돋아서 또 누가 익명으로 딴 데 가서 놀아라 하고 쫓아내려 하지는 않을까 하기도 했고, 아니면 나부터도 뜬금없는 얘기인 것 같아 어떻게 틈을 보아야 할지 몰랐고. 그러다가 네가 쓴 글을 보고 나서 그 댓글로 이렇게 조심스레 써 본다.
Re : 후원금
네가 쓴 글, 후원금을 읽고 글만으로도 그대로 좋았어. 내가 생각하기에 올 대선이 중요하게 남기는 것 몇 가지는 어느 정치 세력이 집권하는가와 상관없이 정당내 국민경선의 경험과 노사모라는 자발적 정치참여의 경험, 그리고 개혁국민당이라는 정치적 실험에 있다고 생각하거든. 아참 이쯤 미리 밝히는 게 좋겠는데, 요즘 포지션, 포지션 하니까 나도 그 말을 따서 하면 내 정치적 포지션은 민주노동당 주류에 비판적인 민주노동당 혁신파 정도가 될 거야. 나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거고.
앞서 내가 꼽은 세 가지 - 국민경선, 노사모, 개혁국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나와 입장이 다른 곳과 관련이 깊은 것이지만 나는 그러한 실험이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하거든. 그것은 단지 민주당(혹은 노무현)지지자들만의 경험이 아니라 시민 사회 일반의 경험이 되었으니까. 그것은 분명 집권과 상관없이 정치 문화를 진전시켜 놓았으니까. 그러한 실험이 낳은 문화 중 하나가 바로 조직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이 공감하는 정치세력을 스스로 찾는 것. 스스로 발언하고, 스스로 돈을 내고, 스스로 만든다는 것. 그런데 올해를 지나면서 그것이 시민 일반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진보적 의원 하나를 원내에 들여보내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 그게 설령 우리 옆집 아저씨가 한나라당에 찾아가 스스로 만 원 후원금을 내는 거라 하더라도, 또 어느 정치 집단에 후원금을 내는 일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아주 의미있는 일이라고. 보수이건 진보이건 어떤 이념 지향을 갖는 곳이건 자발적인 동의와 참여가 바탕인 거라면.
D- 28
(이거는 그냥 혼자 떠들어보는 말로 할 수밖에.)
요즘 신문 방송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일은 아무래도 노-정 후보 단일화 문제일텐데. 나는 그것에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또한 그것은 아주 위험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가 노무현으로 되어, 그 결과가 이회창 집권을 막는 일이 된다면 결과로야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일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5년의 집권 저지를 가져올 수는 있을지언정 10년, 20년 이상의 정치 문화 후퇴를 부르는 일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 정당 내 국민 경선이라는 커다란 정치 실험. 그것은 분명 국민을 단순 관객에서부터 후보 선출의 과정 참여로까지 성큼 나아간 것인데, 그것을 무위로 만드는 일이다. 국민 경선으로 뽑은 후보자가 지지율의 불안함 때문에 아무런 정책적 연관이 없는 이와 연합을 한다, 그 안에서 다시 단일화 경선을 다시 한다. 국민이 뽑아준 후보라는 감격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물릴 수 있다는 선례가 남는 것이다. 아무리 플레이오프다, 각개격파다, 예선전이다, 실질적 결선투표제다 하는 말로 상황을 설명하려 한다 해도 그건 상황논리일 뿐. 겨우 2-3주 전까지만 해도 단일화는 없다! 후보단일화를 왜 하느냐?고 아주 강하게 이야기하던 후보자가 '국민이 원하니까...' 하는 말로 낯을 바꾸었다. 그이는 바로 '원칙과 소신'을 목숨처럼 지켜온 정치인이었다. 아니, 나는 노무현이 그렇게 말을 바꿨다 해서 그이가 입을 타격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거야 안타깝기는 하지만, 또한 정치인의 말바꾸기가 아무런 제제도 없는 관행이 되고 있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런 것 따위에는 벌써 무감각해져 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국민 경선'을 통해 국민 참여의 폭을 몇 십 배 확대시킨 새로운 정치문화 자체를 거꾸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무현의 지지자들이 그이를 지지한 까닭도 '원칙과 소신'을 지킨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노무현이 원칙과 소신을 버리고 단일화협상에 나서자, 이제는 단일화협상에 나서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인, 참여적, 실천적 지식인인양 기세를 올린다. 여전히 원칙과 소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얼 모른다는 눈길로 답답해한다. 심지어는 얼마전 김민석이 당을 버리고 정몽준에게 갔을 때 그토록 소리 높여 비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후보단일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높여 세운다. 무엇인가?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지만 민주당 또한 그네들의 가치 기준은 집권에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일 뿐이다.
결국 존경하고싶은 정치인인 노무현이 후보로 있는 민주당 또한 전술과 진영의 논리뿐이 남지 않은 구태 정치 집단인 것이다. 노무현이 김영삼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도, 노풍을 잇기 위해 부산 시장 후보로 양심적 지식인 대신 5공 부역자를 공천한 것도 모두 이해해야 하는 일이라 말한다. 단일화는 절대 없다고, 반칙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국민경선의 결과를 끝까지 존중해야 한다던 말을 하루 아침에 뒤집는 일도 구국의 결단인 듯 말한다. 통일이나 복지 분야에서는 이회창보다 더 수구적인 정몽준과 후보연합을 하는 일도 집권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말한다.
가치라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단 하나. 이회창의 집권을 막는다는 것. 그것이 가치다. 그 가치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과정도 용납이 될 수 있다는. 결국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을 국민의 손으로 후보로 뽑아놓고도 그네들에게 선거란 단지 '집권'의 게임이 될 뿐이다. 또다시 정책은 없고 전술만 남는, 가치는 없고 진영만 남은. 오로지 기준이란 집권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 자신의 정당 진영에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있다. 자신들에게 불리할 때 김민석은 천하의 나쁜 놈이 되었다가, 유리한 국면을 만드는데 일조하니 일등공신이라 다시 부둥켜안는. 결과에 보탬이 되면 어떠한 정치 행태도 용납되는 문화가 다시 되풀이된다. 제2의 김민석, 제3의 김민석은 계속 나오기 마련이다. 그 때에는 커다란 비난이나 저항 없이 나올 수 있다. 한두 번의 선례는 그것이 곧 문화가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자신의 이익을 쫓아 한 정치 행태가 쉽사리 용서가 되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뿐인가, 국민 경선을 뒤엎는 행위도, 말을 바꾸는 행위도, 정치적 득실에 따라 누구에게나 손을 뻗는 행위도 모두 관행이 되어버린다. 무서운 것은 최악이 집권하는가, 차악이 집권하는가가 아니라 정치 문화가 바닥으로 더 치닫는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누가 이회창이나 이인제의 거짓말, 반칙을 탓할 수 있겠는가.
안타까운 것은 국민경선이라는 정치 실험을 잃는 것만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된 '개미들의 즐거운 정치 반란' 개혁국민당. 민주당 내에서 버러지 같은 인사들이 노무현 흔들기를 할 때 개혁국민당의 출범은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기성 구태 정당이 이루어내기는 요원해만 보였던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상향식 민주주의, 당내 직접 민주주의를 그대로 가져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강령에 따라 시민들 스스로의 정치세력화를 이야기했고, 자신의 지향과 요구에 맞는 후보를 찾아 연합했다. 그들이 연합한 것은 민주당이라는 구태 정치 집단도 아니었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무현도 아니었다. 그네들의 열망을 일구어줄 '원칙과 소신'의 후보 노무현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노무현이 당적을 둔 민주당에서 흔들기를 하는 것에 반해 노무현을 지키는 데에 힘을 다하려 했다.
노무현을 지키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하면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가진 덕목 가운데 '원칙과 소신', '개혁 지향', '서민 지향', '국민 통합'이라는 것들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결국 그것은 '노무현을 노무현답게' 지켜내겠다는 것이었다. 노무현과 정몽준의 후보단일화 협상 얘기가 나올 때 개혁국민당은 단일화 반대에 목소리를 높였다. '정당의 목적이 집권에 있다는 잠꼬대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무원칙한 정권재창출, 무원칙한 반창연대를 반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무현이 후보단일화에 나선 지금, 개혁국민당은 단일화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노무현을 노무현답게' 지키는 것에 뜻을 두었던 개혁국민당은 그네들이 선택하고 연합한 후보를 지키지 않는다. 애매한 말을 해가면서 단일화에서 이길 수 있게 총력을 다하자는 독려만 있을 뿐이다. 개혁국민당은 또다시 당원 중심, 정책 중심의 정당이라는 획기적 실험을 버리고 그 또한 다를 바 없는 구태 정치에 주저앉으려 하고 있다. 개혁국민당이, 노사모가 노무현을 지지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이 단지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맹목적 지지인가? 진정 노무현을 자신들의 대통령 후보로 지켜내는 일은 무엇인가? 노무현이 개혁성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원칙과 소신을 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견인하고, 지지하고, 압박하는 것이 진정 그를 지켜내는 일 아닌가? 후보의 한 마디에 우루루 쏠리고, 후보의 걸음에 뒤쫓아다니고, 고작 지지세나 불려주기 위한 운동원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그것은 개혁국민당, 그리고 그 상징 역할을 하고 있는 유시민만이 아니다 . 노사모나 개혁당의 안팎에서 노무현의 원칙과 개혁성에 힘을 싣던 논객들 강준만, 노혜경, 장신기, 정대화 들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한달 전만 해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힘주어 이야기하던 그들이 지금 보이는 태도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노무현과 그의 소속 정당이 집권하는 일이 그토록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가. 혹여라도 경선에 실패해 정몽준이 후보가 되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개혁국민당과 노사모, 친 민주당 논객들이 정몽준을 위해 발벗고 뛸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 때 가서는 다른 입장을 취하겠는가? 그 또한 경선 불복, 그렇다면 누가 과연 우리의 후진 정치 문화를 탓할 수 있는가, 누가 이인제를 탓할 수 있을까?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도박이다. '국민경선'마저 팽개치고, 자발적 정치 참여의 실험마저 담보로 걸고 하는 도박이다. 설령 단일화 경선에서 노무현이 후보가 된다 하더라도, 설령 그리해서 이회창의 집권을 막고 노무현이 집권을 하게 되더라도 또다시 진흙탕이 되어버리는 정치문화의 후퇴는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는가? 원칙과 소신, 또는 참여제도와 정도라는 '가치'가 다 무너지더라도 반이회창 '진영'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용납이 되는가? 정몽준의 '정책'이야 어떻든 말든 집권을 위한 '전술'이 모든 것에 앞서는가? 그곳에 '가치'라는 기준은 없다. 오로지 '진영'에 유리한가 불리한가만 있을 뿐. 그곳에는 '정책'이 없다. 오로지 '전술'만 있을 뿐. 해서 우리는 또다시 가치와 정책을 놓고 논쟁하고 참여하는 유권자가 될 수 없다. 오늘은 누가 누굴 만났대? 오늘은 누가 무슨 말을 했대? 하면서 언론의 가십거리와 인사 동정에 대한 중계방송을 구경하며 관전평만 해야 할뿐.
나는 대통령 후보 아닌 정치인 노무현을 높이 평가했다. 현실 정치인으로 지금껏 걸어온 길이나 스스로 지켜온 것은 누구보다 높이 살만 했다. 그래서 비록 나와 정당 정치에 대한 입장이나 판단을 달리해 그이를 지지하는 분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 쪽 진영의 둘레에서 씨앗을 내린 몇 가지 정치 실험에 큰 의미를 둔다. 국민이 선거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한 '국민경선', 그리고 정당 구조의 혁신과 자발적 참여의 기풍을 낳은 '개혁적 국민정당'.
하지만 대선을 한달도 채 남기지 않은 지금 노무현 후보의 모습은 '아름다운 바보'가 아니다. 5년, 10년 전 김대중이 그랬듯 정치인 개인이 가지고 있던 덕목은 구태정치집단의 이해 관계 안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모습이다. '국민이 원한다면....' 이라는 말이면 어떤 말이라도 순간에 뒤집을 수 있는 정치, 진영의 논리에 따라 어떤 배신이나 야합도 전술의 하나로 용납될 수 있는 정치.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차악' 또는 '차선'의 선택으로 '이회창 집권 반대'라는 가치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 그 '차선'이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차선'이기는 한 걸까?
많은 사람들이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말하기는 하면서도 실제 선거 공간에서는 집권 가능성이 없다 하여 고개를 돌린다. 이념과 지향, 원칙에 있어서는 진보정당의 것에 가장 부합하면서도 당선 가능성 때문에 선택을 미룬다. 자신의 이념과 지향대로 투표하는 일, 후보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정치세력에게 힘을 주는 일, 진정 그것이 우리를 우리의 꿈에 가깝게 하는 일이 아닐까.
총체적인 사회의 수구성 앞에서 우리의 진보정당은 언제 한 번 제대로 언론으로 국민 일반에게 소개될 기회가 없었다. 지난 달, 이회창이 젊은 대학생들과 대화를 한다며 대형 햄버거 가게에서 쇼를 벌인 화면이 3개 방송과 각 일간지로 보도되던 날, 권영길 후보가 '우리 쌀 지키기 100일 걷기 운동'에서 젊은이들과 뜨거운 길을 걷던 일은 어느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요즈음 노무현-정몽준 진영의 후단협 진행과정에 대해서는 대변인의 토씨 하나까지 문제 삼으며 자세히 보도하는 언론은 권영길 후보가 진보의료연합과 공동으로 발표한 무상 의료 5년 계획의 정책은 그 내용조차 소개하지 않았다. 그래도 5년 전, 10년 전에 견주어 민중후보/ 진보진영의 후보의 행보가 이나마 보도되고 있는 것인 지난 지방 선거에서 8%의 득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꿈을 앞당기는 일, 우리가 원하는 정치를 앞당기는 일, 그 길은 어쩌면 이 곳에 있지 않을까? 멀지만, 더 가까운.....
끝
우와 날 샜다. 게시판에 올려 놓고 보니까 창피한 생각이 막 밀려온다. 걱정이 좀 되기도 하고, 그래 이걸 하느라 앉아 있었나 싶기도 하고. 글쎄, 아마 내 생각의 미숙함이나 통찰이 가난해서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글인지도 모르겠네. 으이 당장이라도 우다다닥 혼내는 사람들 있을지 모르겠다.
아참 다른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글 하나를 이 아래에 옮겨 놓는다.
최병천 (2002-11-19 00:08:20, Hit : 130, Vote : 7)
[개혁당/ to 유시민님] '정직했던' 자유주의자에게
"정직했던" 자유주의자 유시민씨에게 띄우는 공개편지
1. 노무현에 대한 추억
본론을 말하기에 앞서 노무현씨에 대한 저의 추억 이야기를 몇 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첫 번째 노무현은 88년 겨울에 진행되었던 5공 청문회 모습입니다. 당시 저는 연합고사(고딩 입학시험) 앞두고 있는 정치에 관심 많은 중학교 3학년생이었는데, 5공 청문회를 볼까, 바로 앞으로 닥친 연합고사 시험공부를 할까 매일같이 망설였습니다. 그렇게 망설이면서도 저는 5공 청문회를 보았습니다.
당시 "시 쓰기"를 좋아했던 저는 5공 청문회를 보면서 심훈님이 썼던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떠올리면서, 머리카락이 쭈빗 쭈빗 서는 전율을 느끼며, 감동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5공 청문회의 주역들로 기억나는 사람이 바로 노무현과 이해찬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씨의 더욱 감동적인 모습은 다름 아닌 3당 합당을 거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청문회스타로서 "뜨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정계입문을 도왔던 김영삼의 3당 합당을 거부하고 <역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현실" 정치인의 입장에서 쉬운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현실" 정치 논리를 들이대며, 3당합당을 하면 그리로 가고, 김대중이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면 또 그리로 가고를 반복했지만, 노무현씨는 결국에는 다시 합류하는 일이 있더라도, 매 순간 주저하고, 갈등하고, 거부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2. 서 론 - "정직한" 자유주의
운동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것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식론"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들어간 이후, 저는 "불가지론"으로 저의 입장을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완전히" 알 수 없다.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있는 <정보의 불완전성>이라는 근본적인 인간의 유적(類的) 한계로 인해서 저는 불가지론으로 저의 철학적 인식론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실.천.>은 언제나 "판단"과 신념이 있을 때 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선택하는 그 모든 선택은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정보속에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정보"가 획득될때까지 실천을 미룬다는 것은 현실에서 그 어떠한 숨쉬기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리의 포트폴리오>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민중들과 역사를 존경하는 우리들은, 탁상공론을 해서는 안된다.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개입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념(or 이데올로기)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신념은 틀릴 수 있다.는 점도 열어두어야 한다.
결국, 저는 60%의 신념을 갖고 있을 지라도, 40%의 "회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비율은 역사의 특정한 정세에 맞추어 <포트폴리오>(분산투자)를 해야 합니다.
80년대가 지나고 군부독재가 퇴장하고, 소비에트식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세계사적인 진보세력을 떠받쳐주던 "거대한" 담론(or 신념 or 이데올로기)하나가 붕괴했습니다. 이 시점에 수많은 사람들은 "회의"(재검토)를 하며 진리의 포트폴리오 작업에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확신"이라는 말을 두려워합니다. 확신은 진리의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교적인 수사(修辭)로 확신이라는 표현을 쓸지언정, 저는 언제나 최소한 10% 이상의 "인식의 빈공간"을 마련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빈 공간이 상대방과의 "소통의 공간"이며, 인식이 발전할 수 있는 엔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쌍방향 의사소통>이라는 말을 몹시 좋아하고, "인식의 빈공간"을 소통으로 기름칠하는 <성찰>이라는 말을 몹시 좋아합니다. 결국, <진리의 포트폴리오>라는 말은 <제한된 가지론(可知論)>과 동의어이며, <성찰적 이성>이라는 말과 동의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소 개
그러고 보니 제 소속을 밝히지 않았군요. 저는 자랑스러운 민주노동당의 당원입니다. 제가 민주노동당의 당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정치적" 긴장감을 가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쓰는 이 글이 "정치적" 목적이 전혀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주된 목적은 한때 몹시 좋아했던 이 시대의 <양식있고 양심있는 논객>과 진솔한 의사소통을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논쟁"을 원했다면 이곳 개혁적 국민정당 자유게시판이 아니라 오마이뉴스같은 곳에 아마도 글을 썼을 것입니다.
4. 유시민씨에 대한 추억
저에게 유시민씨는 "정직한" 자유주의자였습니다. 저에게 "정직한 자유주의자"라는 말은 <성찰적 좌파>라는 말만큼 감동적인 언어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이 언어는 동전의 양면처럼 결국 같은 언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시민씨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입니다. 그리고 「항소 이유서」그 이후에야 읽게 되었고,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등의 책을 봤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유시민씨가 쓰는 "정직한" 자유주의자로서의 칼럼이 저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지식인"의 사회적 소명은 시대적 "등불"을 밝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른쪽으로는 냉전적인 반공·반북주의가 "정상적" 우파로 간주되고 왼쪽으로는 스탈린주의와 "기형적 민족주의"에 불과한 주체사상의 잔재가 짙게 드리웠던 한국적 이념 지형에서 자유주의를 말하기 위해서는 정직한 용기가 필요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자유주의 좌파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자유주의 좌파가 사회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생각하는 근대적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언론·출판·집회·결사·사상·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장되고 둘째,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실현되지 않을 때 그 사회는 자유주의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정직한" 자유주의자들을 존경합니다. 시대와 정직하게 씨름하는 것이 자유주의자의 기본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방성"과 끊임없는 성찰이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기본 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시민씨는 "정치"를 선택하고 개혁적 국민정당을 창당한 이후, "정직"을 포기하는 것만 같아서 몹시 안타깝습니다. 그것은 <공화국>을 꿈꾸며 개혁적 국민정당을 만들었던 <공화주의자> 유시민이 "정치인"으로 전락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공화국"의 타락이 아니라, 실은 "공화주의자" 유시민의 타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5. 대한민국 "주류사회"로 돌진하는 노무현의 우향 우
2001년 겨울부터 소위 민주노동당 지지자들과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논쟁에 끼어들면서 단 한번도 노무현 "개인"을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민주당의 전(前)근대적 정당지배구조>를 비판했었습니다. 그래서 전근대적 정당지배구조에 "개인"으로 포섭된 노무현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지, <민주당의 후보>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불행하게도 하나둘씩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 노무현에 대해서도 더 이상의 기대가 없습니다. 1997년 DJP연합을 했던 김대중은 같은 김대중이지만, 더 이상 1970년대 "예비군제 폐지"를 주장하고, 87년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던 "그" 김대중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노무현씨가 딱(!) 그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노무현씨는 "고독했던" 야인생활을 청산하고 대한민국 "주류사회"를 방향으로 본격적인 우향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김대중과 김종필의 DJP연합보다 "더 오른쪽"에 해당하는 노무현-정몽준 연합을 하려고 합니다.
노무현씨는 김대중보다 더 카리스마가 없으며, 김대중만큼의 정치철학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또한, 김대중만큼의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정몽준 연합은 분명하게(!) DJP보다 "더 오른쪽"에 해당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유시민씨가 "정직하게" 생각해보면 자명한 일이라고 생각되듯, 노무현씨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하는 이유는 <반노(反盧)·비노(非盧)>세력의 이탈 협박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정몽준 후보가 후보단일화를 받아들인 이유는 당선이 되지 못할 때 정치보복을 당할 수 있는, 소위 "정주영 학습효과"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합이라는 것은 <권력분점>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이 자명한 진리에 대해서 갖은 현란한 수식어로 방어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유시민씨가 내면의 정직함과 씨름할 때 결론은 역시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5%의 후보와 25%의 후보가 후보단일화를 한다는 것은 <절반의 권력>을 내어주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미 절반의 권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벌후보와 권력을 분점한 노무현씨가 재벌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육에서 "시장원리"를 주장하는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해서 노무현 후보가 공교육 강화를 할 수 있다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둥근 사각형이며, 물과 기름이 썩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유시민씨에 대한 「실망 이유서」
시사평론가가 "절필"을 선언하고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트를 돌진하는 마음가짐으로 "국민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소리를 듣고 내심 감동했습니다. 비록 정치적 견해는 다르지만, 그 "충심"과 "열정"에 감복했습니다. 물론, 정당시스템인 민주노동당의 것을, 정강정책은 민주당의 것으로 하겠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실소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충심과 열정에 감복했다는 것만큼은 진심입니다.
국민적 개혁정당의 창당정신은, 후보단일화 반대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개혁적 국민정당 당원들을 묶어 세우는 <창당정신>에 해당하는 근본적 정체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민적 개혁정당 구성원의 내부적 정체성은 "노무현 엄호"라는 것이 있기도 했습니다. 현재 국민적 개혁정당은 <후보단일화 반대>라는 "가치"와 <노무현 엄호>라는 인물에 대한 "선호도"인 서로 상이한 가치가 충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어려울 때 가장 정직하고, 가장 어려울 때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시민씨가 후보단일화를 지지한다면, 두가지 측면에서 님은 자유주의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님이 설령 자유주의자로 남게 될 지언정 "거짓" 자유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에 대한 인정은
(1) 첫째, 유시민씨가 스스로 말했던 "국민경선"이라는 게임의 법칙을 교란시킨 놈들이 자행한 <반칙>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반칙을 반대했던 유시민씨를 포함한 국민적 개혁정당 당원들 전부는 단기적 이익에 급급하여 <게임의 법칙>을 포기하고 반칙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국정치사에서 이제 더 이상의 국민경선은 없게 될 것입니다. 반칙을 반대하던 한겨레같은 언론사와 유시민씨같은 사람도 인정하는 반칙을 누가 규탄하겠습니까?
(2) 둘째, "정당의 목적은 "집권"이 전부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다"라며 반창연대는 가치가 될 수 없다는 유시민씨 본인의 문제제기를 무위로 돌리는 것입니다. 저는 감히 질문 드립니다.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가 우리시대에 제시하는 <새로운 가치>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후단협류의 인간들이 주장하던 <반창(反昌)연대>는 절대로 독자적 가치가 될 수없다고 주장하던 유시민씨는 이에 대해서 "정직한" 답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 국민적 개혁정당은 "사막으로 간 펭귄"
유시민씨와 국민적 개혁정당은 스스로 <당원에 의해 유지되는 "최초의" 정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도 알다시피 최초의 정당은 민주노동당입니다. 국민적 개혁정당의 강령을 대충 훑어봤는데 그와 가장 가까운 정당 역시도 민주노동당입니다.
유시민씨는 민주노동당의 정강정책이 19세기 독일 사민당을 닮았다는 "실언"을 했는데, 20세기 후반에 유럽의 진보정당들이 채택한 매칭펀드제를 주장하고 실천하는 정당이 어디입니까? 20세기 중·후반에 유럽의 진보정당들이 도입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실천하고 있는 곳이 어느 정당이며, "당내에서" 30% 여성할당제를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유일한" 정당이 어디입니까? (민주노동당은 당규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알다시피 시의원 당선자 9명은 전부 여성입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주장실천하고, 부패방지법의 도입을 주장하고, 스웨덴 노르웨이에서 실시하고 있는 부유세 도입을 주장하고,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에서는 일반화된 무상의료, 무상교육, "주거권" 우선의 주택정책을 주장실천하고 있는 정당이 어디입니까?
민주주의의 본질은 "인민에 의한 지배"입니다. 그래서 본디 참여민주주의라는 말에서 "참여"라는 말은 수식어에 불과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집회와 가두시위조차도 저는 "참여"민주주의의 일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예산제를 주장하고,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의제를 주장하는 정당은 민주노동당입니다. 가장 참여 민주주의적인 정당은 논란의 여지없이 민주노동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국민적 개혁정당이 "노무현"씨 개인에 대한 짝사랑을 하는 것이 결국 과거 386세대가 김영삼·김대중 개인에 대한 짝사랑을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동안의 "실연(失戀)"으로도 부족해서 더 많은 "실연"이 필요하다면 말릴 수 없는 일입니다.
8.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길에 동참할 것을 권합니다.
얼마전 독일 총선에서 녹색당은 8.6%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국회의원의 절반을 정당명부 비례대표로 뽑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라는 제도로 인해서 55석의 정당명부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1명의 지역구 의원을 포함해서 총 56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습니다.
8.6%
민주노동당의 지난 6·13 지방선거 득표율이 8.1%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우연인지, 상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분명하게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역주의 정치를 끝장내고 <정책정당>과 <정당정치>를 복원하는 것.
그래서, 당비내는 당원숫자와 국고보조금을 연계시키는 매칭펀드제를 도입하고, 독일식 정당 명부제를 실시할 것, <재벌과의 정경유착>을 원천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가 핵심입니다. 경제학을 공부했으니 잘 아시겠지만 "유인기제"가 있는 한 정경유착은 근절되지 않습니다.
개혁적 국민정당이 2002년 대선에서 무슨 선택을 하건, 결국 민주노동당은 갈 길을 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2004년 <강력하고 선명한 "노동자 야당">을 국민들에게 선물할 것입니다.
저를 비롯, 100여개의 지구당에서 상근비 20∼60만원을 받으면서도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진보정치", "개혁다운 개혁정당"을 꿈꾸면서, 이미 주류가 된 386들과 달리 아직도 80년대와 같은 세월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감옥도 가고, 부당한 노동탄압에 맞서 유치장에도 가고,철거민 투쟁, 노점상들의 권익보호를 위해서 부당한 공권력과 지금도 일상적으로 "바리케이트"를 향해 돌진해야만 했습니다.
9. 글을 마치며........
쩝.. 글이 너무도 길어졌습니다.
<소통>을 믿고, 그리고 원하는 마음에서 어쩌다 보니 긴 글이 되었습니다. "정직했던"이라는 과거형의 유시민씨가 아니라 "정직한"이라는 현재형의 유시민씨를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민주노동당의 당원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속셈이 밥맛이라고 생각되기라도 한다면, 제글을 깡그리 무시하십시오. 그냥 지나가는 개가 짖나보다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이글은 애초에 "논쟁"과 "선동"을 목적으로 하는 글은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비록 단기적으로 정치적 뜻은 달랐지만, 제가 알고 있던 "아주 근사한" 사람이 했던 가슴찡한, 정치매니아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던, 언제나 "원칙"이라는 것 때문에 소수파임을 감수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던, 저 같은 운동권의 그 뜨거운 심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감동하기에 충분했던 글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
- 정권재창출을 1차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는 "반창(反昌)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반창연대를 왜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그건 이회창이 추구하는 가치와 대별되는 새로운 가치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 도대체 박근혜·정몽준·이인제·박상천·정균환·한화갑 등이 모여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들이 이회창과 특별히 구분되는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반창연대는 필요할 수도,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안티(anti)테제로써가 아니라, 이회창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재창출"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슨 가치의 차별이 있느냐. DJ를 따라 다니는 아류 집단의 일부가 들어가 있다는 것 말고 어떤 연속성이 있느냐. 그건 정권재창출은 아니다. 이회창이 집권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정치다.
정당의 목적이 집권이라는 잠꼬대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외국의 예를 들어 미안하지만, 집권 연정의 주니어 파트너인 독일 녹색당은 1980년대 초부터 지방의회에 진출하기 시작해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주체가 되어) 집권을 하지 못했다. 녹색당은 전체 의석 수가 6∼7%인 미니 야당이었지만, 사민당과 기민련 등 거대 정당의 환경정책을 다 바꾸어 놓았다.
녹색당이 야당으로 있으면서 환경공약을 지속적으로 내놓았고, 거대 정당들은 표를 의식해 자기 당 환경 강령을 녹색당에 가깝게 수정해왔다. 정당은 이처럼 정치적인 꿈과 이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어야 한다. 집권당이 되면 그 꿈은 더 빨리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겠지만, 야당이라고 해서 못 이루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정치 상황을 보면 집권하기 위해서 꿈을 버리는 쪽으로 가는 정치공학이다. 신당·재창당·반창연대 등을 앞세우는 것은 정치 모리배 집단·정치업자들이나 할 일이지, 정치지도자가 할 일은 전혀 아니다. 나도 이런 말을 직접 하기 위해 칼럼니스트를 집어치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