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시작 ←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생방송 장면. 뒤쪽으로 이 프로의 진행자 김동건 아나운서가 보인다. 그해 여름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KBS의 ‘특별생방송-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1983년 6월 30일부터 방송이 시작돼 장장 138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처음 방송할 때 만해도 90분 길이 단발성 특집이었다. 이산가족 150명을 초청한 방청석에 1000명이 넘게 몰려왔다. 방송도중 방송사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가 쏟아졌다. 진행을 맡은 유철종 이미연씨는 이날 새벽 3시까지 연장방송을 해야했다. 방송은 연장에 연장을 거듭 결국 138일간 계속됐다. 진행자로 김동건 신은경 황인용 강부자씨 등이 합세했고 잠도 잊은 채 마이크를 잡았다. 방송과는 별도로 여의도 KBS 본관 벽과 그 앞 광장에는 이산가족을 애타게 찾는 이들이 붙인 벽보가 어지러이 등장했다. 한국전쟁후 생사를 모른채 33년을 애태우던 남북이산가족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방송이벤트였다. 방송중 10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참여해 애탄 절규를 했고 1만189가족이 상봉의 기쁨을 맛보았다. 독일의 공영 ZDF를 비롯, 일본 NHK, 미국 CBS 등 해외 미디어 취재도 뜨거웠다.
[1996년] 작곡가 박시춘씨 별세 ← ‘신라의 달밤’ 등 주옥같은 곡으로 우리네 삶을 달래줬던 작곡가 박시춘씨. ‘신라의 달밤’의 작곡가 박시춘씨(83)가 숙환으로 1996년 6월 30일 별세했다. 박씨는 1926년 밀양보전을 졸업하고 1931년 ‘OK레코드’에 전속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모두 2천여곡의 작품을 작곡했다. 일제말기 무명가수였던 남인수가 불러 인기를 모았던 ‘애수의 소야곡’은 당시 이동 연예단의 악사였던 박씨의 손에서 나왔고 해방직후 나온 ‘가거라 38선’은 38선의 비극을 노래로 엮어낸 첫 작품이었다. 박씨는 또 1947년 가수 현인이 부른 ‘신라의 달밤’을 비롯 ‘고향만리’ ‘럭키서울’ ‘비내리는 고모령’과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전선야곡’ ‘전우여 잘있거라’ 등 주옥같은 멜로디로 한국 가요계를 이끌었다. 본명이 순동인 박씨는 밀양서 권번을 하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당시 명창 손만갑-이동백-이화중선-김창용의 소리를 듣고 자랐다. 읍내에 있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축음기의 신식노래에 도취하여 11세에 그 카페에 심부름꾼으로 들어간 것이 그의 가요인생의 시발이었다. 6.25 때 국방부 정훈국에서 ‘승리의 용사’ 등 국군 장병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고인은 5.16후 10년 동안 한국연예인협회이사장을 맡았으며 예총부회장 작가동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씨는 한국대중가요계를 이끈 공로로 보관문화훈장과 문공부장관상을 받았다.
[1971] 펜타곤 페이퍼 신문 게재 권리 인정 1971년 6월 30일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전억제명령사건(prior-restraint case)으로 간주된 재판에서 연방대법원은 6 대 3의 판결로 <뉴욕 타임스 The New York Times>와 <워싱턴 포스트 The Washington Post>에게 펜타곤 페이퍼를 다시 게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1967년 미국의 국방장관 로버트 S. 맥나마라의 책임하에 작성된 펜타곤 페이퍼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1968년 5월까지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문제의 발단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부설 국제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었던 다니엘 엘스버그가 정부의 허락 없이 이 문서들을 <뉴욕 타임스>에 제공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71년 6월 13일 <뉴욕 타임스>는 연방정부가 '최고 기밀서류'로 취급하던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연재기사를 게재했다. 이에 미국 법무부는 이 보고서 공개가 미국의 안보이익에 '치명적이며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연방 제1심 법원으로부터 국가기밀서류의 공표를 금지시키는 임시명령을 얻어냈다. 언론의 자유와 관련한 이 재판에서 미국 대법원은 미국연방헌법 수정안 제1조 출판의 자유 조항에 따라 신문의 발표는 보호받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1898년] 황국협회 결성 1898년 6월 30일 대한제국은 무너진 국내상업체제를 되살리기 위해 보부상과 연합해 황국협회를 결성했다. 홍종우·이기동·고영근 등이 중심이 된 황국협회는 7월 7일 발회식을 개최한 훈련원에서 "나라를 문명부강하게 하는 도리는 황실을 존숭하고 충군하는 대의를 밝힌다"는 설립 취지를 표명했다. 황국협회의 주요 활동은 민선의회설치운동과 상업단체복설운동이었다. 이밖에도 황국협회는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독립협회에 대항하는 역할도 했다. 독립협회와 황국협회가 서로 충돌하자, 정부는 12월 25일 군대를 동원해 독립협회를 강제해산시켰으며, 이후에는 황국협회도 해산시켰다. 황국협회는 청일전쟁 이후 심화된 일본의 상권침투와 조선상인의 몰락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와 결탁해 전통적 특권상업체제의 복원을 꿈꾸었으나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1807년] 독일의 문학비평가 피셔 Friedrich Theodor von Vischer 1807년 6월 30일 태어남 / 1887년 9월 14일 죽음 피셔는 독일의 미학자이며 문학비평가이다. 그는 <미학 또는 아름다움의 과학 Ästhetik, oder Wissenschaft des Schönen>(6권, 1846~57)을 펴내는 등 근대 미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튀빙겐에버하르트카를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사상에 심취했으며, 에두아르트 뫼리케와 D. F. 슈트라우스와 친분이 두터웠다. 1844년 튀빙겐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으나 자유주의적인 내용의 취임사 때문에 2년 후 대학을 떠나야 했다. 1848년 혁명기에는 온건한 좌파로서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1855년 취리히대학교 교수가 되었으나 1866년 다시 튀빙겐대학교로 돌아왔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패러디한 것으로 유명하며, 시와 소설을 쓰기도 했다.
[1992년] 경부고속전철 기공 1989년 5월 정부는 경부고속철도 건설방침을 결정하였고, 1990년 6월에는 전 노선이 결정되어 1992년 6월 30일 천안아산역 예정지에서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공사는 열차의 방식 결정, 열차 도입 국가 선정, 문화재 훼손 논란, 잦은 설계 변경, 부실 공사 의혹, 외환 위기 등 많은 위기에 봉착했으며, 결국 6년으로 예정되었던 공기를 훨씬 넘는 12년의 공사 끝에 일부 구간이 2004년 3월 31일 개통되었다.
[2002년] 브라질 월드컵축구 사상 5번째 우승-2002한일월드컵 폐막 브라질이 2002년 6월 30일 일본 요코하마경기장서 열린 제17회 2002 FIFA 한·일 월드컵축구 결승에서 호나우두가 혼자 두 골을 터뜨리는 활약에 힘입어 독일을 2대0으로 꺾고 FIFA컵에 입맞춤했다. 1958·1962·1970·1994년에 이어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이었다. 21세기 처음이자,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월드컵의 패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것도 대회 1회전부터 결승까지 7전 전승이라는 완벽한 성적으로 거둔 영예였다. 1930년 1회 대회 이후 72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과 벌인 월드컵 맞대결에서 승리하는 기쁨도 누렸다. 대회 8골을 넣은 브라질의 호나우두는 득점왕에게 주어지는 "골든 슈"를 차지했다. 15억명 이상이 TV로 시청한 결승전은 FIFA랭킹 2위 브라질의 화려한 공격과 11위 독일의 수비가 충돌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주도권은 3대회 연속 결승에 오른 강호 브라질이 쥐었다. 결승골은 후반 22분 터졌다. 히바우두가 상대진영 왼쪽에서 강하게 때린 중거리슛을 독일 골키퍼 올리버 칸이 잡다 놓치자 호나우두가 달려들며 가볍게 차 넣었다. 호나우두는 12분 뒤 클레베르손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땅볼슛, 쐐기골을 성공시켰다. 한편 5월 31일 개막되어 한 달간 전세계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월드컵도 결승전과 함께 폐막됐다. 이번 대회는 우려했던 축구장 난동꾼(훌리건) 관련 사고가 한 건도 없었고, 금지약물 복용 케이스도 나오지 않았으며, 경기 배분, 선수단과 관중의 이동, 교통, 숙박, 미디어 서비스 등 공동개최에 따른 문제점들도 거의 불거지지 않아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력 측면에선 한국이 4강, 일본이 16강까지 오르면서 아시아축구의 약진을 주도했으며, 터키·세네갈·미국 등도 선전해 "축구 평준화"에 이바지했다.
[1992년] 피델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에 취임 피델 라모스(Ramos, Fidel V.)가 1992년 6월 30일 제12대 필리핀 대통령에 취임했다. 지난 5월 11일 실시된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피델 라모스 전 국방장관은 아키노 대통령의 6년 재임기간 중 군합참의장과 국방장관직을 차례로 맡았었다. 라모스는 1986년 2월 그의 사촌형인 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에 대항한 군부반란을 주도하면서 국제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당시 군부반란은 피플스 파워로 대변되는 국민들의 대규모 민주시위를 촉발, 마르코스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어 후임 대통령에 오른 아키노 정권하에서는 7차례나 군부 쿠데타를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움으로써 아키노 대통령의 신망을 공고히 했다. 이를 계기로 마르코스 정권에서 탄압의 주체였던 그의 이미지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탈바꿈됐다. 그는 1928년 3월 18일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1백76㎞ 떨어진 링가옌의 명문가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마르시소 라모스는 외무장관 및 대만대사를 역임한 바 있으며 여동생 레티시아 샤하니는 현재 필리핀 상원의원이다. 1950년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1년 뒤 미 일리노이대에서 건축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필리핀군 소대장과 중대장 계급으로 공산게릴라 토벌작전에 참여했으며 한국동란에도 참전, 필리핀군 정찰소대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81년에는 군부에서 일단 퇴임했으나 마르코스 대통령이 그의 임기를 연장, 군의 다른 주요 장성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그는 1986년 대선 때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후안 폰세 엔릴레에 합세해 군부반란을 주도, 마르코스 정권에 종지부를 찍는데 일조했다.
[1989년] 전대협 대표 임수경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 80년대 후반 민간통일운동이 고양되면서 학생운동진영에서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통감하며, 1989년 6월 10일 "6·10항쟁 계승과 평양축전 참가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어 전대협의 평양축전 결사참가 의지를 표명하였다. 임수경(林琇卿·당시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4년)양은 6월 21일 서울을 출발하여 동경에 도착했고, 6월 28일 동경을 출발하여 6월 29일 서베를린을 경유 6월 30일 오후 1시 30분에 평양의 순안비행장에 도착하였다. 임수경양은 1989년 7월 1일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개막식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7월 7일 '조선의 날' 행사에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관한 남북청년학생 공동선언문'에 서명하고, 7월 20일부터 27일까지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을 벌였다. (성공회대학교 사이버NGO자료관)
[1980년] 성산대교(길이 1410m, 한강12번째 다리) 개통 한강의 12번째 다리인 성산대교(城山大橋)가 1980년 6월 30일 준공, 개통됐다. 마포구 망원동과 강건너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이 다리는 길이 1410m, 폭 21.6m의 6차선으로 양쪽에 보도(2.7m씩)를 갖추었다. 다리의 색깔은 안쪽은 회색, 바깥쪽은 주황색이다. 서울시가 1977년 4월에 착공, 2백57억9천만원을 들여 3년3개월 만에 완공한 이 다리는 1979년 개통한 성수대교에 이어 두 번째로 철재트러스 공법을 연결, 조립한 것이어서 교각사이가 120m씩으로 다른 한강다리보다 2배나 길다. 때문에 다리모습이 날렵해 보이는데다 교각과 교각사이에 반달형 아치를 세워 곡선미가 가미되어 있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중앙청∼사직터널∼금화터널∼연세대앞∼사천고가교∼성산대교∼경인고속도로 입구를 잇는 11.7km의 성산대로건설이 마무리됐다. 다리 양쪽입구에는 각각 입체교차로가 설치돼 차량이 각방향으로 논스톱으로 달리게 돼 있어, 김포공항을 오가는 차량들의 경우 시내중심까지의 주행시간이 종전40분대에서 20분대로 절반이나 단축됐다.
[1948년] 트랜지스터 개발 발표 1948년 6월 30일, 20세기 기술혁명의 단초가 된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윌리엄 쇼클리(Shockley, William, 1910~1989), 존 바딘, 월터 브래튼 등 3명의 연구원이 6개월 전에 이미 개발을 끝냈지만 특허획득을 위해 함구해오던 미국 벨연구소가 이날 그 실체를 공개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진공관을 220분의 1 크기로 줄였다는 기자회견 발표를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쇼클리가 1950년에 최초의 개량형 트랜지스터를 들고 나오자 이 신개발품이 가져올 혁명적 변화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소비가 적고 수명도 몇 배나 길며 덩치도 작은 트랜지스터의 등장은 진공관 시대의 막을 내리게 했고, 최초의 전자계산기 ‘에니악’도 현역에서 퇴장시켰다. 개발은 미국이 했지만 정작 재미를 본 것은 일본이었다. 1955년에 소니사가 세계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TR-55’를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1936년]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간 남북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1936년 6월 30일 처음 출판됐다. 신문사 기자였던 작가 마가렛 미첼(Mitchell, Margaret)은 아버지로부터 들은 옛 남부의 분위기와 남북전쟁의 일화에 기초해 10년 동안의 조사와 집필 끝에 이 소설을 완성했다.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바람"에 모든 것을 빼앗기는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종래의 연애소설 여주인공과 전혀 다른 당당한 캐릭터로 불황에 빠져있던 사람들의 공감을 샀고, 금새 베스트셀러가 됐다. 작가 마가렛 미첼이 1037쪽 분량의 이 소설에 붙이려 했던 제목은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른다"였다. 이것은 "내일 생각하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라고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타라 농장에서 불타는 노을을 배경으로 외치는 마지막 대사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러나 맥밀런 출판사의 종용에 따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결정됐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기였고 이에 미국인들은 황량한 마음을 달래줄 소설을 원했다. 이 소설은 당시 뉴욕타임즈지의 서평란에서 "미국작가에 의해 쓰여진 최초로 주목할만한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6개월 만에 100만 부가 팔렸고, 미첼은 이 소설로 1937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1939년에는 클라크 게이블, 비비안 리 주연의 상영시간 3시간 40분짜리 영화로 제작되어 1년 간 관객 2500만명을 동원했고, 1989년까지 관람 총인원 12억 이상을 돌파했다.
그밖에 2004년 오르가니스트 한지윤씨 독일 뉘른베르크 콩쿠르서 1위 2001년 탈북한 장길수군 일가족 7명, 서울 도착 1999년 씨랜드수련원 화재로 캠프중이던 유치원생 19명 포함해 23명 사망 1994년 하타다 다카시 교수 별세 1984년 볼리비아 쿠데타 진압 1984년 서울~대전 고속도로 4차선 신설 확정 1983년 소련, 원격조정 통한 인공위성도킹 성공 1983년 여천 LNG기지 준공(단일기지로 세계최대규모 저장용량 15만 2000t) 1981년 중국, 실용주의 체제 선언 1981년 경희대국토종합개발연, 국내최초로 전국토지이용현황을 그린 컴퓨터지도 작성 공개 1980년 국회, 이택돈,예춘호,손주항,김녹영 의원직 사퇴 1980년 에너지관리공단 발족 1980년 모스크바서 서독, 소련 정상회담 1978년 현대아파트 사건 발표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1977년 동남아조약기구(SEATO) 해체 1975년 전투예비군 부대 편성 1971년 UN군사령부방송, 21년 만에 폐쇄 1968년 김종필, 모든 공직서 사퇴 1968년 프랑스 총선거에서 드골파 압승 1966년 태릉선수촌 개관 1961년 제3대 대법원장에 조진만 임명 1954년 소련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가동시작 1952년 민중자결단, 국회의사당 포위 80여 의원 연금 1951년 리지웨이, 원산만 덴마크 함상에서의 휴전회담 제의 1949년 하버드대, 최초로 흑인교수 임명 1949년 조선노동당 탄생 1942년 프랑스 작가 레옹 도데 사망 1923년 윤심덕, 한기춘의 성악회 열림 1913년 콜롬비아의 대통령(1974-78 재임) 로페스 미첼센 출생 1910년 통감부, 경찰관제 개정 및 조선주답헌병조례 개정(헌병경찰제 실시) 1909년 각의, 사법권양도 및 군부폐지 결의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카 지역 원시림에서 운석이 폭발한 `퉁구스카 대폭발 사건` 발생 1906년 미국식품의약국(FDA) 제정 1905년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원리 완성 1899년 독일, 스페인으로부터 마리아나, 카로린 군도를 획득 1893년 제2차 세계대전 후 동독의 최고실력자 울브리히트 출생 1882년 한국 독일 수호통상조약 체결 1649년 프랑스의 화가 시몬 부에 사망 1470년 프랑스의 왕(1480-98) 샤를 8세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