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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초라했지만 아랫목 정은 늘 따뜻했습니다.
묻어둔 밥그릇엔
엄마의 온기가 늘 뭉클하게 만져졌지요. 흙속 뒹굴던 고사리들
생의 한기를 녹이려
모두 제 갈 길로 갔지만
농심만을 움켜쥔 어머님은
터진 양말 깁던 초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속 터진 굴뚝은
날마다 한숨만 푹푹 품어냈다
땔감이 없어도
불평하지 않던 아궁이는
가난을 내색하지 않던 어머님의 회한 이었습니다.
어린꿈 벗어두고 온 고향이
이토록 그리운 것은 굽은손 펴지 못한
어머님 모습 그리워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을 한없이 들여다 봅니다
♧ 고향의 봄
장독대 옆 살구나무
주홍 구슬 부풀던 날
헛간에 겨울 잠자던
삼테기 툴툴 털어
지게 지신 아버지 따라
삽이랑 괭이들고 나서는
올망졸망 남매들
일하기 싫어 딴전 피는
철부지 망아지처럼
투덜투덜 터덜터덜
억지 소 걸음 하는데
또랑가 풀섶에서
수줍은 제비 꽃 보곤
자줏빛 설레임에
마음 부푼 시골 소녀
쿵더쿵~
가슴 뛰는 소리가
꽃향기 그윽한
봄 하늘 가른다.
농부의 마음
따사로운 햇살 내린
양지바른 산자락 한끝
땅속영혼 긴잠깨고
복사꽃 봉우리 움트는
한가로운 시골 언저리
봄맞이 농부님네 오손도손
무슨소리 그리도 정다운지
볕가리개 모자아래로
복사꽃 만큼이나 화사한
웃음이 피어남은
풍년가 기원하는 작은소망일까 밭고랑 방석 삼아
불어오는 실바람에 시름 날리고
새참요기 술한잔 나눔의
이웃을 부를줄 아는
흙묻은 손사래의 후덕한 인심은
만개한 복사꽃같은 봄맞이 농부의
행복이 깃든 소박한 꿈이라
지 게
채마밭 나무새 마저
늘어져 졸고 있는
한 여름 들판에 무거운 짐 내려놓고
지친 몸 추스리면
손 바닥만 한
그늘 한 점
나 혼자만의 놀이터였다
장난감은 언제나
이랑사이 긁어 모은
고운 흙 한줌
두꺼비집 만들고 부수고
그래도 보고 싶은
엄마는 오지않고
고요한 적막을 가르는
쇠파리 소리만 난다
서둘러 철이든 아이는
멀리 등만 보이는 엄마를 두어번 바라보곤
밭 이랑 베게 삼아
그리운 엄마품으로
꿈길을 내달린다.
장날
어둠이 밀리고
헛기침 두어 번으로 열리던
내 고향의 새벽
헛간 지게 툴툴 털어
겉보리 한 자루 달랑 얹곤
터덜터덜 시오리 오일장
향하시던 아버지
도시 장사꾼에게 빼앗기듯
받아 든 꼬깃꼬깃한 지전 몇장
허리 춤 전대에 찔러넣고
양말 하나,호미 하나
대장간에 들려 낫 비리고
어물전 동태 한 마리 사니
남은 건 동전 몇 닢
몇 번을 망설이다
들른 주막에서 걸친
텁텁한 왕대포 한잔에
짓누르던 삶의 무게도 잊은 채
그저 허허~오랫 만에 웃어보네
도깨비 씨름 하자던
으슥한 산모퉁이 벼랑을
가련다 떠나련다를 목청 높여 불러대니
지게 뿔 꼭지에 매달린
외로운 동태 한 마리가
흔들흔들 갈 길을 재촉하네.
아랫목
겨울 들어 자주 눈이 내리면서 여러 날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고 걸음도 빨라진다.
나 역시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파트의 훈훈한 온기가 반겨주는데도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진다. 중앙난방의 보일러 덕에 집안 가득 온기는 있지만, 이럴 때면 절절 끓는 아랫목이 그립고 추억의 온기를 그리는 겨울밤은 한없이 길기만 하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는 온돌 문화가 무엇인지 잘 모를 것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장을 달구고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모여앉아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는 정겨움도 당연이 모를 것이다.
나의 유년시절의 겨울밤, 아버지가 늦게 오시는 날이면 엄마는 밥상을 차려 상보로 덮어두고 밥그릇을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 두시곤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고추장 된장 간장의 원료가 되는 메주도 아랫목에다 띄우고 콩나물을 키우는 시루도 아랫목에 두고 물을 부어가며 뿌리가 자라나게 했다. 전통 음료인 식혜도 아랫목에서 삭혀 장작불로 가마솥에 끓여 밖에 내놓으면 동동 떠다니던 밥알이 살얼음으로 변했다.
어릴 적 온돌 문화는 참으로 많은 추억을 갖게 했다. 또한 예전에 우리 엄마들은 아랫목에서 아이를 낳고 아랫목에서 산후 조리를 했다. 그래서 나의 고향은 아랫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면서도 무의식중에 느끼는 단절감 고독감 소외감도 바로 온돌로 따뜻하게 데워진 아랫목에 대한 그리움에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 자식을 위해 아랫목을 배려하는 아버지의 마음도 잊을 수 없다. 장작을 패서 군불을 지펴주시던 아버지. 밤새도록 절절 끓던 아랫목에서 식구들이 둥글게 앉아있으면 동치미 국물과 군고구마를 슬며시 밀어 넣어 주셨다. 또 화로에 숯불을 펴서 방 가운데 놓고 불꽃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인두로 꾹꾹 눌러 훈훈한 온기도 주셨다. 이불 속에 들어있는 발가락 간질이며 먹던 군고구마 맛과 윗목에서 바라보던 아버지의 마음이 아리게 와 닿는 겨울밤이다.
전기도 없던 그 시절 겨울밤 아랫목은 우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친구 집에 모여 대나무 밭에서 호랑이를 봤다는 으스스한 말씀을 듣고 집에 오지 못하고, 친구 집에서 밤을 보낸 적도 있다. 친구들과 같이 들었던 옛날이야기엔 바람이 저쪽으로 불면 비가 오고 이쪽으로 불면 비가 그친다는 삶의 지혜도 있었다. 씨는 언제 뿌려 언제 거둬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남이 도움을 청하면 기쁘게 도와주라는 공동생활의 원칙 등,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아랫목에서 배웠다. 그런데 요즘 온돌 문화가 차츰 없어지고 많은 곳에 상업화된 찜질방 문화로 살아나 그곳에서 온돌 문화를 즐긴다. 하지만 어릴 적 추억으로 기억되는 가정적 온돌문화와는 달리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과 이웃의 정겨운 모습은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전원주택에 황토방 하나씩을 만들어 놓고 아랫목 문화를 즐기곤 한다.
잘 알고 지내는 선생님 한 분도 옥천에다 황토방을 만들어 놓고 가끔씩 우리를 초대해 주신다. 아랫목이 그리울 때 난 종종 그곳을 찾는다.
대문도 없고 둥근 원두막 하나가 그곳을 지켜주며 댓돌위의 고무신이 우리를 반겨준다.
황토방 입구에 있는 높은 댕이란 글씨만 봐도 그곳에서 제일 높은 집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상업화된 찜질방과는 달리 아랫목은 절절 끓고 위에는 차가운 공기가 어릴 적 군불을
지펴 아랫목을 내주셨던 아버지의 정을 느끼게 했다. 오래 전부터 아랫목이 없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고 입식 문화의 편리함을 누리고 살지만 이웃 간의 정은 잃고 사는 것 같다.
소가족 중심으로 공동체가 분화되고 각자의 방으로 공간마저 나누어져있는 겨울밤,
밤바람이 창을 흔들고 가는 소리에 밖을 보면 문득 혼자인 나를 자각한다.
대화와 소통도 단절된 아랫목이 없는 아파트 생활에서 아랫목 정서는 잊히어 가지만,
내가 잃어버린 건 비단 아랫목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내 주위를 돌아보고 아파트의 이웃을 찾아 서로의 정을 나누야겠다.
또한 훈훈한 인정이 오가는 마음으로 한파를 견디며 잃어버린 아랫목을 되찾는 겨울을 보내야겠다.
원두막과 서리
무심코 달력을 보니 음력으로 보름이다. 아 오늘이 보름이었구나 무엇이 그리 바빠서 날짜 가는줄도 모르고 사는지 급히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 봤다 환한 보름달이 다정한 빛을 내려주고 있다 유년시절 고향 마을에서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이다 난 어느새 추억속으로 달려가는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고향의 시냇물은 하도 맑아 동전을 떨어 뜨려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 또래 아이들이 멱을 감고 놀면서 신발을 던져놓고 신발 찾기를 했었다. 먼저 찾은 친구는 보물이라도 찾은 듯 함성을 지르고 우리는 그 신발로 송사리를 잡는 그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름밤이면 마을은 텅텅 비었다 다들 냇가로 나가 멱을 감고 원두막에 모여 추억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냇가 상류에서, 여자들은 하류에서 멱을 감고 원두막으로 모여든다. 때론 원두막이 멋진 무대가 될 때도 있다. 옥수수 껍질로 하모니카를 대신하고 둥근 돌을 주워 마이크로 쓰고 호야 등을 조명삼아 노래를 부르면 신나는 무대가 펼쳐진다. 또 원두막은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회의실로 쓰여 지고 원두막 밑은 농기구를 보관해 두는 창고로도 쓰여진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원두막에서 서리해 온 것들을 먹는 재미다. 서리에는 몇 가지를 규칙이 있다. 대장을 정해놓고 대장의 신호에 적극적으로 따라 주어야 했다. 또 달이 뜨지 않은 밤을 이용하고 흰 옷을 입지 말아야하며 모기가 물었을 때 때려 잡지 말고 조용히 비벼 죽이는 규칙을 정했다 그날도 우리는 대장의 신호에 따라 복숭아 밭을 습격했다. 잘 익었는지 냄새를 맡아보고 큰걸로 골라 두개씩만 따야 된다는 대장의 지시를 받고 서리가 시작됐다. 서리는 때를 지어 남의 물건을 주인에게 들키지 않게 훔쳐 먹는 장난이기에 훔치는 재미도 있지만 원두막에 모여 나누어 먹는 재미가 더 크다. 두개 이상 따면 절대 안된다고 대장이 지시를 했지만 그날따라 대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욕심을 낸 것이 문제가 되었다.
다섯 명이 원두막 무대에서 신나게 놀다보니 배가 고파 서리 모의를 하고 세 명이 선정되어 복숭아밭으로 갔다. 복숭아밭 주변에는 키가 큰 옥수수가 심어져 있어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원두막 쪽을 주시하며 주인의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뒤에서 무언가가 나를 잡아챘다. ‘들켰구나’ 라는 생각에 도망도 못가고 오금이 저려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니 주인이 아니고 오빠였던 것이다. 그 복숭아밭 주인은 다름아닌 오빠 친구였다. 그날 오빠는 친구를 대신해 원두막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오빠한테 들킨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으로 ‘휴’ 한숨을 쉬고 친구들을 찾아 봤다. 친구들은 대장의 지시에 따라 두개씩만 따고 이미 나가서 들키지 않았다. 결국 나만 욕심을 부리다 오빠한테 들키고 만 것이다. 그날 밤 우리는 오빠 덕분에 달고 맛있는 복숭아를 먹었지만 그 후로 오빠가 친구한테 동생의 서리 예기를 했단다 그 친구는 변상해주는 대가로 동생을 나 한테 시집 보내면 되잔아 하고 웃어 넘겼다고 했다. 지금껏 먹어본 복숭아 중에 그때 먹었던 복숭아 맛이 최고였던 것은 동생을 배려해준 오빠 친구의 마음과 친구들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냇가에서 발가벗고 멱을 감으며 하늘과 가까운듯한 높은 원두막에서 서리해 온것을 먹던 친구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보름달이 환하게 고향 하늘을 비추고 있을거란 생각에 친구들 얼굴이 하나씩 떠오른다 .소박한 정들이 모여 살았던 고향. 원두막 밤하늘에 아름답게 흐르는 별똥별을 보며 서리를 해서 먹던 소녀는 이제 중년이 되었다. 원두막이 있던 자리는 흔적 조차 없고 잡초만 우거져 있고 .시원한 바람과 시냇물, 추억이 있던 자리는 각종 쓰레기로 뒤덮혀있다. 시골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만 더 할 뿐이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다보니 내 마음속 원두막도 점점 잊힌듯하다. 하지만 가끔씩 떠오르는 옛 추억들은 마음 둘곳 없는 나를 웃음짖게 한다 환한 보름달 만큼이나 나에게 풍성한 추억을 안겨준 고향의 원두막 오늘따라 그 원두막이 더욱 그립다 .
장터
요즘 입맛 없는 남편 덕에 반찬거리가 걱정이다. ‘오늘 저녁은 뭘 해줘야 하나..?’
냉장고를 열어보니 장을 봐야 할 판이다. 입맛을 돋울 수 있는 갓 캔 나물과 색다른 찬거리들을 사기 위해 오늘은 마트 대신 오일장을 택했다. 고향인 금산에는 2일 7일마다 5일장이 열린다. 오랜만에 가는 재래시장 향수에 이끌려 발걸음이 빨라진다.
장터는 추위를 잘 견뎌내고 이미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 듯 했다.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상인들의 목소리로 부산했다. 장터에는 출 입구가 따로 있지 않았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장이 열린다. 분주히 상품들을 진열하는 상인들과 상호도, 가격표도 없는 많은 할머니 사장님도 떡 하니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계셨다.
시장 곳곳에는 이곳의 특산물인 인삼의 향긋한 향기가 가득했다. 군고구마와 호떡, 순대 등 먹거리도 푸짐했고 싱싱한 야채와 생선 비린내는 장터의 정취를 물씬 풍겨주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도 외투도 걸치지 않고 야채 박스를 나르고 있는 청년,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텁텁한 막걸리 잔을 기울리며 묵은 이야기를 나누는 할아버님, 거북이등 같은 손으로 마늘을 까며 혹여 마늘에 흙이라도 묻을까 까기가 무섭게 연신 입으로 호호 불어 대는 할머님의 모습도 보인다.
“할머니, 마늘 얼마에요?”
할머니는 마늘 한웅큼 움켜쥐고 대답 대신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셨다.
“네. 마늘 주시고, 옆에 있는 냉이도 주세요”
할머니는 담아주시며 고맙다고 덤을 더 얹어 주신다. 미안한 마음에 거절을 했지만 검은 봉지 속으로 쑤욱 손을 넣어주는 할머니의 마음이 정겹다 순간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가슴이 찡했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고집도 세신 할머니 구부러진 허리와 이마의 주름이 세월의 노고를 말해주듯 할머니는 바로 말없이 하던 일을 다시 하신다. 서둘러 다른 찬거리들을 하나하나 샀다. 오이며 시금치며 각종 나물과 생선까지, 후한 인심 덕에 알뜰히 장바구니에 담았다. 최근에 동네마다 대형마트들이 들어서서 장을 찾는 발걸음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오일장이나 재래시장보다는 마트를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 재래시장들도 사람들을 다시 찾게 만드는 자구책으로써 여러 가지 개선과 시도를 한다고 여러 매스컴을 통해 보도가 되고 있다. 실제로 내가 오랜만에 본 오일장은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오는 등 많이 변해있었고 또 변화하고 있었다. 물론 차가운 조명 속에서 반듯하게 진열 되어 있는 마트 상품에는 편리함은 있지만 쇼핑 카트 안의 물건들은 온통 인스턴트 음식에 디저트뿐이다. 질 좋고 후한 인심과 싼 가격, 정과 흥이 뒤섞여 사람 어울리는 냄새로 구수해지고 살가운 호흡으로 자연의 훈기가 전해져 오는 매력은 전통시장만의 것이 아닌가 싶다. 대기업 대형마트들의 시장잠식으로 재래시장과 소규모 상인들이 힘들어하고 있고, 한미FTA 통과로 농촌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재래 전통시장 본연의 개선노력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먼저 노력하고 있는 그들을 찾아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것을 지키고 살리는 데 더없이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장터를 벗어날 즈음 양손의 장바구니가 가득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같이 담고 와서 그런지 어깨가 늘어지지만 무게의 고달픔으로 전해 오지 않는다. 장에서 사온 물건들을 펼쳐 봤다. 제법 많은 것들을 샀지만 많은 지출이 아니었다. 싱싱한 향기가 집안 가득했고 장터의 후한 인심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저녁 맛있게 해 놓을 테니까 얼른 식사하러 들어와요.”
신이 나서 남편에게 전화했다. 싱싱한 야채로 잘 차려질 저녁 밥상 앞에서 행복을 나눌 식구들의 생각에 먼저 배가 불러진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한 저녁 식사는 오일장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웠고 맛있었다. 그동안 작은 것들은 지나치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내가 시골 장터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오늘 하루가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양력 대전대 평생 교육원 수필반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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