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위로하는 뮤지컬 만들고자 인간 내면에 초점 둔 연출 선보여
前作 이어 이건명·한지상과 호흡
1500석 규모의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들어섰을 때, 그는 긴장했다.
'내셔널 시어터(National Theater)에서 내 연출작 장기 공연을….'
그곳은 지금껏 그의 생일이 '1974년 8월 15일'임을 밝혔을 때 어른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네가 태어난 날 육영수 여사가 거기서 돌아가셨단다." 침을 꿀꺽 삼켰다. "'국민의 무대' 아닙니까.
이젠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뮤지컬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연출가 왕용범은 상반기 최고 흥행작인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가 유럽을 배경으로 한 또다른 대작(大作) '두 도시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국내 초연도 아닌 라이선스 뮤지컬인 데다, '프랑켄슈타인'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이건명·한지상을 데리고 들어와 '쉽게
가려는 게 아니냐'는 말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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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도시 이야기’를 연출한 왕용범. /이덕훈 기자
"오히려 너무 어렵고 괴로웠습니다." 찰스 디킨스 소설이 원작인 이 뮤지컬은 프랑스 혁명기의 런던과 파리가 배경이다.
주인공 시드니 칼튼은 사랑하는 여인의 남편 대신 단두대에 올라 희생된다.
왕용범은 바로 그 '희생'의 가치를 말하고 싶었다.
"모두가 자기 권리만을 내세우는 지금 세상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목소리가 아닐까요?"
사형대에 오른 주인공이 무수한 별빛을 배경으로 절규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 뜨겁게 다가온다.
그가 보기에 프랑스 혁명은 세상을 바꿨다기보다는 방향성 없이 표출된 분노의 목소리가 복수로 귀결된 혁명이다.
"이 작품은 결코 '레미제라블'의 아류가 아닙니다. 혁명이 스스로 뒤틀려지는 고통스러운 모습까지 보여주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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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디킨스 원작의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BOM코리아 제공
그가 주목한 것은 역사보다도 '인간'이다. "예전 버전의 주인공이 그저 유쾌한 인물이었다면, 이번엔 그 내면에 더 주목했습니다."
술에 절어 있던 염세주의적 지식인(칼튼)이 사랑하는 여인(루시)이라는 '빛'을 본 뒤 바뀌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뒤엔
그들에게 다가가 그 가족의 일원이 돼 행복해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칼튼이 루시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는 장면에선 길게는 1분까지 아무 대사 없는 정적이 흐른다.
"어떤 노래나 대사도 그 순간을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순 없었을 겁니다." 인간 내면에 대한 이런 돌직구 같은 묘사가
'프랑켄슈타인'의 성공 요인이었을 거라고 그는 풀이한다.
괴물을 창조한 빅터가 마지막에 '나는 나'라며 이기적인 자존감을 드러낼 때, 관객은 날것 그대로의 인간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란 얘기다. 왕용범은 다음 달 말엔 새 연출작인 뮤지컬 '조로'를 무대에 올린다. 쉴 틈이 없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8월 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공연 시간 170분(인터미션 포함), 1577-3363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