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卞氏族譜 : 씨족보(氏族譜)를 밝게 분변하다
성종조에 남원군(南原君) 양성지(梁誠之)가 《해동성씨록(海東姓氏錄)》을 지었다.
명헌공(明憲公) 이파(李坡)는 우리나라 씨족에 대하여 대대로 미미한 경우라도 모두 그 지파(支派)를 분변하였다. 또 고려의 여러 과거(科擧)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무 방(榜) 제(第) 몇째를 인명마다 일일이 세었는데, 한 사람도 착오 나지 않게 하였다.
서천부원군(西川府院君) 정곤수(鄭崑壽)는 성씨의 보첩(譜牒)에 뛰어나 서울과 지방 사족(士族)의 역대 이름자와 출처(出處)의 사적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혹 와서 그 세계(世系)의 내력을 물으면 반드시 하나하나 짚어 가며 상세히 설명해 주기를, ‘그대의 선대는 아무개에서 일어났고 아무개 아무개를 거쳤으며 몇 대가 현달하고 몇 대가 벼슬하지 않았다’ 하여 마치 직접 눈으로 보고 말하는 것처럼 하였다.
홍여하(洪汝河)는 《해동성원(海東姓苑)》을 지어 그 선조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찾아 먼 삼대(三代)까지 모두 자세히 상고하여 써 놓았다. 또 그 음(音)이 소속된 오성(五聲)의 구분을 상고하여 변별해서 연계시켜 놓지 않은 것이 없다. 그 향관(鄕貫)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추구한 부분에서는 멀리는 중국, 가까이는 우리나라에 있어 모두 깊이 있게 분파(分派)를 찾아 기록하여 각기 그 보첩을 얻게 되었다.
현감 조중운(趙仲耘)은 《씨족원류(氏族源流)》를 지었고 전부(典簿) 정시술(丁時述)은 《제성보(諸姓譜)》를 지었는데, 모두 보학(譜學)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
문간공(文簡公) 이의현(李宜顯)은 우리나라의 성씨를 모아 이(李), 김(金), 박(朴), 정(鄭), 윤(尹), 최(崔), 유(柳), 홍(洪), 신(申), 권(權), 조(趙), 한(韓)의 12성을 가장 잘 알려진 성이라 하고, 그다음으로 16성, 또 그다음으로 25성, 또 그다음으로 41성, 또 그다음으로 19성, 또 그다음으로 38성, 또 그다음으로 136성을 모았다. 또 복성(複姓)으로 남궁(南宮), 황보(皇甫), 선우(鮮于), 석말(石抹), 부여(扶餘), 독고(獨孤), 영고(令孤), 동방(東方), 서문(西門), 사마(司馬), 사공(司空)을 모아 11성을 찾았으니, 모두 298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