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전 세계 가톨릭 교회는 오늘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한 성인을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합니다. 한국 최초의 사제이자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가 바로 그 성인입니다. 한국 최초의 사제로서 25살의 어린 나이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형장의 이슬로 자신의 온 삶을 바친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는 하느님의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겪게 되는 시련과 고통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역대기 하권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유다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예언자 즈카리야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느님을 저버리고 그 분의 계명을 어기며 살아가는 유다인들에게 즈카리야는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2역대 24,20)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이 같은 즈카리야를 사람들은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콕집어 이야기하며 자신들을 향한 저주의 말을 퍼붓는 예언자의 모습이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작당하여 하느님의 말을 전하는 예언자 즈카리야에게 돌을 던져 그를 죽이기에 이릅니다.
한편,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하시는 말씀으로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박해 받는 삶을 감당해야만 하는 제자들의 고단한 삶을 예고하시면서 그 박해가 다가올 때,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하느님의 거룩한 영이 가르쳐 주는 대로, // 그 분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기만 한다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1-22)
이처럼 오늘 제 1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따르는 길이 평화와 기쁨만이 가득한 삶이 아닌, 시련과 고통이 동반된 삶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그 시련과 고통을 감수하고 끝까지 견디어 내는 사람만이 하느님이 주시는 구원을 얻게 되리라 전합니다.
이 같은 점에서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야말로 오늘 말씀이 전하는 진리를 자신의 삶으로 증거한 가장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 하느님을 따르겠다는 일념 하나로 가족과 조국을 등지고 이국 만리 타향으로 떠나 // 낯설고 물설은 마카오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어렵사리 서품을 받고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 이미 아버지는 순교하신 뒤였으며, 홀어머니만이 계신 조국에서 사제만을 기다리는 신자들을 위해 사목하시다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삶을 마감해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삶은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모범으로서, // 사제의 삶을 살아가는 저에게도 역시 사제로서의 삶의 모범이자 믿음의 모범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의 마음 한켠에서 이 같은 물음이 생겨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과연 어디서 그 같은 굳은 믿음을, // 자신의 삶을 초개와도 같이 버리는 그와 같은 믿음이 어디에서 생겨났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어디에서 그토록 굳은 믿음이 생겨났던 것일까? 김대건 신부님이 보여주신 그 믿음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이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오늘 제 2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를 그 분의 영광으로 초대해 줄 것이며, 그 영광은 우리에게 하나의 희망이며 동시에 그 희망으로 인해 겪게 되는 시련과 환난 역시 우리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초대하는 소중한 것임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3-5, 새번역)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5,3-5, 공동번역)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처럼 하느님의 사랑으로 초대된 우리, 다시 말해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영광을 약속 받은 우리는 //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 그것이 기쁨과 희망이거나 혹은 설사 그것이 시련과 고통일지라도 그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한 희망을 얻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칠흑같은 어둠 속에 밝은 희망이 생겨나듯, 시련 속에 굳은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1서 1장 7절의 말씀은 그 같은 진리를 잘 밝혀 줍니다. 베드로 1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얼마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시련의 불로 우리 믿음이 단련을 받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우리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1베드 1,7)
베드로 1서의 말씀이 이야기하듯,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은 우리가 마지막 날 얻게 될 구원의 선물, 곧 썩지도 않고 더러워지지도 않으며 시들지 않는 영원한 상급을 얻게 해준다는 사실, 오늘 교회가 기억하고 특별히 한국 교회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이신 김대건 신부님이야말로 그 분의 삶 전체가 바로 이를 드러내는 산 증거이자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기억하는 오늘 한국의 모든 성직자들이, 특별히 본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목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본당 사제들이 김대건 신부님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굳은 믿음을 본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기도를 청합니다.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김대건 신부님을 본받아 부족하고 나약한 저희들이 굳은 믿음으로 영혼의 목자로서의 맡겨진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여러분 역시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모범을 따라 굳은 믿음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여 그 봉헌으로 하느님이 주시는 영원한 구원의 희망을 얻게 되시기를 그리하여 그 희망으로 언제나 기쁨과 희망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