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겨울의 6시에서 7시로 가는 아침은 어둑하였다. 공설운동장에서 만난 우리들은 석 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타고 대진 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생초 톨게이트를 지나고 곰내 마을을 앞두고 있을 때 뒤따르던 무쏘님의 자동차가 산청휴게소를 지난 곳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주저앉았다는 연락이 왔다. 대장님과 그가 무쏘님 일행을 데리러 다시 고속도로로 향하고 나머지 일행은 선배님의 카니발로 옮겨 타고 달려서 화계에 도착하였다. 의령에서 출발하신 갑장도 도착을 하신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으신 선배님이 주암식당 앞 넓은 마당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어 라면을 두 봉지 끓이셨다. 라면은 몸에 좋은 튀기지 않은 생 라면이다. 버너에 연결된 대용량 가스용기가 처음 보는 것이다. 선배님의 물건 하나하나가 맘에 든다.
상의 속주머니 안에서 숟가락을 꺼낸 선배님을 비롯한 일행들은 라면의 국물 한 방울까지 나눠먹은 뒤 화장지로 빈 그릇을 닦았고 콘크리트 마당에 흘린 국물도 깨끗이 훔쳤다. 나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허기진 배를 달래고야 마는 선배님을 감탄하였다.
시간이 제법 흘러서 무쏘님 일행이 도착하고 팀은 다시 추성리를 향했다. 추성리로 들어서는 의탄 교에 가까워질 무렵 앞쪽 저 멀리 높은 산에 빙화가 만발하다. 우리는 푸른 하늘아래 눈부신 빙화로 부풀어 오른 하얀 산을 몹시 기뻐하였다.
추성리에서 트럭의 적재함에 올라탔다. 트럭은 광주리 농원을 지나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급한 산길을 꾸역꾸역 달려간다.
차가운 맞바람이 팀을 엉겨 붙게 만들었다. 배낭에 엎어진 채 뒷사람들의 무리에 깔린 아재의 허리가 위태로웠다. 드디어 차가 더 나아갈 수 없는 곳까지 닿았을 때 우리는 내렸다. 빈 터에 잎 떨어진 감나무가 떨고 있었다.
트럭은 돌아가고 우리는 별 수억만 개짜리의 호텔과 1박 2일간 먹을 밥이 든 배낭을 저마다 짊어지고 깊은 국골로 빠져들었다.
옷 벗은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깊고도 깊다. 지난여름 폭우에 쓰러진 잡목들일까? 길을 막고 있다. 키 큰 잡목을 지날 때 팀은 아래로 기고 키 작은 잡목을 만날 때 팀은 위로 넘어갔다. 볕이 귀한 골의 바위는 초록이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고층의 엘리베이터와 번지르르한 아스콘 도로 위 자동차로 움직이던 도심의 산 꾼들은 사람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산길에 길들여지기 위해 산행초반에 자주 쉬었다. 맨 처음 쉴 때 나는 선배님들께 배낭 메는 법을 배웠다. 갑장이 내 배낭의 허리벨트를 너무 많이 잡아 당겨서 뱃속의 내장들이 숨 막힌다고 아우성이었다.
"개미허리 아니었나?"
나를 놀리는 갑장의 배를 나는 쥐어박았다.
우리가 따르던 빈약한 계곡을 버리기 전에 팀은 바위에 걸터앉아 새참을 먹고 수통에 계곡물을 채웠다. 나는 절뚝거리고야 말 내 무릎에 무릎보호대를 채우는데 엉터리다. 대장님이 반대로 하라고 알려주시지만 나는 늦다. 내 깨우침이 몇 박자 늦어진 틈으로 그의 면박이 치고 들어온다. 아, 바야흐로 나에 대한 그의 구박이 꽃피기 시작한 것이다. 팀 모두 배낭을 메고 막 일어설 때 나는 배낭의 뚜껑을 닫지도 않은 채여서 그에게 또 구박을 받았다.
난 왜 이리 잘 퍼질까? 아무래도 지구의 중력을 많이 받는 신체구조인가 봐.
팀은 점점 가팔라지는 길을 치고 올랐다. 고개를 들어 사방을 본다. 풍만한 반야봉의 하늘 금이 눈 시린 창공에서 또렷하였다. 나는 매혹적인 반야봉의 실루엣을 힐끔거리며 열심히 선배님들을 쫓아서 국골 사거리에 닿았다. 심마니님이 네 가지의 갈림길이 뻗는 방향을 조목조목 알려주신다.
팀은 국골 네거리에서 하봉으로 향했다. 국골 네거리에서 휴식 후 출발할 때 그의 구박이 있을 것이 두려워 서둘러 앞서갔다. 우리는 갑자기 눈 천지로 들어섰다. 숲 속에 두꺼운 얼음 꽃이 만발하였다. 잔설이 남은 땅 위에도 온통 얼음 꽃이다. 나는 얼음 꽃을 따서 가만히 입에 넣었다. 얼음 꽃의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깊은 산 속의, 토끼가 달려와 세수하다가 땟국 물 흘린 그 옹달샘 물 맛 같다고나 할까.
우리들은 얼음 꽃으로 둘러싸인 오솔길을 산중의 밤에 내리는 눈의 소리와 나무를 덮쳐서 가지를 부러뜨려 버리는 눈의 소리와 밤새 몰래 쌓였다가 아침햇살에 화들짝 빛나는 눈의 새하얀 감동과 사각사각 내리는 눈의 소리를 여인의 옷벗는 소리에 비유한 시인을 예찬하며 걸었다.
나는 앞서가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꽃을 즈려밟았다. 어깨를 뻐근하게 만드는 비박배낭을 짊어진 발걸음이 무거워서 내 발자국은 깊었다. 푸른 하늘은 우거진 숲 속의 얼음 꽃 사이로 눈부신 햇살을 뿌렸다. 햇살은 얼음 꽃 위에 실렸다가 잔잔한 바람을 타고 영롱하게 흩어지곤 했다.
나는 빙화를 떼어 먹으랴 구경하랴 걸음이 또 처지고 말았다. 흩어지거나 무더기로 낙화하는 빙화는 머리위에 배낭위에 소복이 쌓인다. 나는 앞서가는 이들의 배낭위에 떨어진 빙화를 털어내느라 장갑이 다 젖고 말았다.
우리는 빙화의 터널을 지나온 곳에서 양지바른 넓은 묘지를 만났다. 시각은 정오를 넘어 오후를 지나는 듯 했다. 우리는 묘지 앞 풀밭에서 점심을 먹었다. 모두가 서 너 모둠으로 나뉘어져 점심상을 차릴 때 맛있는 점심상으로 자유롭게 드나들기 위해서 나는 어중간한 위치에 얌체가 되어 앉았다. 여기서 나는 얌체로 들이대어도 내 맘 한구석 거리낄 것 없이 편하다.
따뜻한 음식과 좋은 사람들... 그리고 손이 시려서 끼지 않겠다는 젖은 장갑을 억지로 끼게 하려는 그의 견딜 수 없는 압박 압박 압박... 심마니님께서 뽀송뽀송한 장갑을 빌려주셨다. 겨울산행엔 장갑을 넉넉하게 준비할 것! 나는 한 가지 깨닫는다.
묘지의 그 분에게 잘 쉬었다 가노라고 인사드리고 팀은 길을 떠났다. 떨어지는 빙화 때문에 배낭은 커버를 썼다. 떨어지는 빙화가 내지르는 소리는 숲을 스치는 사람의 기척소리 같다.
지금부터는 덥지 않다. 높이 오를수록 길 위의 쌓인 눈은 더욱 두꺼워져 갔다. 선두를 놓치면 길을 잃기 쉬웠지만 선두가 사라진 곳에 발자국이 남아서 그 발자국을 따라갔다. 열심히 따라간 그 곳에 선두가 몰려있었다. 험한 길을 만난 것이다. 다들 스틱을 아래로 집어 던진 뒤 누군가 매달아둔 밧줄을 타고 한발 한발 내려선다. 아무래도 국골에서 위로 까마득히 보였던 암봉을 지나는 듯 했다.
하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에서 상봉 중봉 하봉의 키 재기 하는 듯한 신비스런 자태를 바라보며 봉우리를 넘었다.
하봉 헬기장이 드러났다. 먼저 도착하신 분들 중 일부는 하봉샘터로 치우산장에서 사용할 물을
길러 가셨고 몸살 난 장정과 약자들은 몸을 뻗고 쉬었다. 몸살 난 장정의 누운 입속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이래서야 대겄나.. 젊은 사람들은 쉬고 있고 나이든 사람들은 물을 떠러 가고...."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물을 길러 가신 분들이 좀체 오시지를 않아서 젊은 우리들의 송구스런 마음은 더욱 커져 갔다. 한 시간도 더 지났을 즘 물을 길러 가셨던 분들은 숨이 턱에 차도록 힘겹게 물을 양손에 그득 들고 돌아오셨다. 하봉샘터에 물이 말라 치밭목 산장 근처까지 다녀오셨다고 하셨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담부터는 저희가 물을 길어 오겠습니다."
산행실력이 시원찮은 나는 입은 살아서 말은 잘한다.
물을 길어 오시느라 기진맥진하신 선배님들은 비박 지를 이 곳 하봉 헬기장으로 할 것을 바라셨다.
우리는 물을 서로 나누어지고 중봉으로 바쁜 걸음을 쳤다. 반야낙조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물을 배낭에 넣은 뒤부터는 목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고개를 아래로 꺾은 채 땅만 보며 열심히 걷는데 아재께서 오백년도 넘었을 주목나무를 알려 주신다. 가객님의 수목장 이야기에 등장했던 그 나무라 하신다. 산객들의 옷깃이 스치기 좋을 길가에 우뚝 섰다. 햇살이 잘 들지 않을 것 같은데 춥지 않을까. 길가여서 외롭진 않을 것이다..
머물기.....
팀은 중봉에 닿았다. 어둠이 내려앉는 중봉은 편안해 보였다. 넓은 빈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봉의 상봉에 사람들의 검은빛이 움직였다. 반야봉의 왼쪽으로 일몰이 진행되고 있었다. 반야봉의 붉은 일몰을 바라기하는 중봉은 은은한 빛으로 충만한 듯 보였다. 대장님과 선배님은 곧 소멸되고 말 지리의 황혼을 붙잡으려고 자취를 감추셨고 우리는 꺼져가는 황혼이 치우산장을 비출때 비박준비를 끝내야한다는 강박관념의 굴레를 뒤집어 썼다. 나는 너울 너울 춤추며 이 곳을 유람하고 싶었다......
텐트가 서너 동 세워지자 그는 텐트와 텐트사이에 준비해 간 비닐을 뒤집어 씌워서 방을 만들고 거기에다 침낭을 펼쳤다. 이를 바라보던 구절초님은 그에게 탄복했지만 비닐은 밤하늘을 막아서 하나 두울 세엣... 별을 헤다가 잠들고픈 내 오랜 얼어 죽을 낭만을 묵살시키고 말 것이었다. 그가 하시는 일에 토를 달 수 없다. 한 번 밉보이면 그는 내게 더 이상의 비박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므로.
야윈 달이 반야봉의 왼편에서 돋았다.
중봉의 밤을 보내기 위한 11인의 단도리가 각기 달랐다. 전생에 영화감독이었을 심마니님은 산행으로 흘린 땀자국을 귀한 물로 씻어야 했고 나는 몸이 식기 전에 챙겨온 내복과 솜바지를 입어야 했다. 심하게 껴입던 나는 그에게도 체온이 내려가기 전에 옷을 껴입을 것을 독촉하지만 지독히도 말을 안 듣는다. 팀은 자신과 다른 단도리의 행태에 경악도 하고 서로 배우기도 하였다.
까만 천정에서 아침이슬에 빛나는 메밀꽃 무리 같은 별들이 돋았고 팀은 따뜻한 우리들만의 중봉에서 만찬 앞에 둘러앉았다. 나는 만찬중의 꽃, 과메기가 궁금했다. 과메기 먹는 법을 배웠다. 과메기 한 점을 초장에 찍어 마른 김 위에 놓고 그 위에 실파, 미역을 얹어 싸서 먹는 것이었는데 생미역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긴장했다. 생미역은 내가 챙겼어야할 항목으로 빠트리고 온 것이라면 그의 제 3차에 해당하는 구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다행히 생미역을 찾았다!
대장님께서 건배제의를 하셨다.
"자, 건배합시다. 말 많고 탈도 많았던 우리 비박 산행이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것을 자축하면서
제가 지화자~ 하면 여러분이 좋다! 라고 하세요. 안 좋으면 뭐 할 수 없고."
"예~"
"지화자!"
"조오타!"
술에 취하고 별에 취하고 드넓은 하늘에 취한 우리들은 무아지경으로 일치했다.
중봉은 높아서 저 아래 타원을 그리며 불빛 내뿜는 마을들이 한 눈에 보였다. 기다란 타원의 구름 띠가 마을의 야경위로 떠 있었다. 어둠은 지리산의 아흔아홉 골을 메워서 마을과 중봉을 지척인 듯 여기게 하였다. 나는 작은 지구별에 서 있고 이 어둠을 따라 조금만 서쪽으로 가면 반야봉 뒤쪽으로 넘어간 석양을 다시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드디어 체온을 뺏긴 그가 떨면서 침낭에 묻히고 싶어했다. 이 무슨 개 풀뜯는 사태란 말인가! 내 생에 유일무이할 중봉의 밤을 포기할 것 같은가.
"옷을 입으란 말이다 옷을!"
"그라까.."
그는 결국 옷을 껴입었다.
팀은 별빛에 젖어서 노래했다. 돌아가면서 노래했고 아이가 엄마를 부르듯 지리산을 애달프게 불렀다. 텐트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덩실대는 우리를 카메라에 담으시던 선배님도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합세하여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빙글빙글 도는 지구별 위에서 나는 어깨 춤를 추었다.
밤이 깊었나 보다. 아침의 일출을 보게 해 달라고 대장님께 다짐을 받아내고 별산님이 끓여주신 따끈한 물이 든 날진 병이 뒹구는 침낭 속으로 몸을 묻었다. 우리는 제각기 앙증맞은 텐트 속에서 또 침낭 속에서 가시지 않은 여흥으로 이야기와 노래와 잠자리에 대한 염려를 주고받았다.
나는 부드럽고 푸근한 침낭 속에서 자장가를 불렀다. 내 아이들이 유치하던 시절에 들려주곤 했던 섬 집 아기를.
둘러친 비닐이 밤새 펄럭거렸다. 밤새 잠들지 못한 내 귀는 바람이 오는 방향을 반야봉에서 오른쪽으로 서너 뼘 떨어진 곳일 것이라고 감지했다. 맑은 별밤에 바람이 이다지도 불어온다면 저 바람에 무엇이 묻어올지 나는 걱정이 되었다. 날씨가 푸근한 것으로 보아 눈을 몰고 올리는 없다. 그렇다면... 비다!
잠들지 못하는 밤은 지겨워서 나는 여명이 간절히 그리웠다.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여명보다도 대장님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물 건너 간 일출을 탄식하는 소리였다. 대장님은 전원기상을 외치셨다.
일어나 그를 보니 밤새 얼마나 더웠는지 겉옷을 다 벗어 던져두고 있었다. 비닐을 들추고 나갔다. 이럴 수가... 밤새 불어오던 바람이 무슨 짓을 했는지 한 눈에 다 보였다. 우리는 몇 미터 전방도 내다볼 수 없이 빽빽이 몰려온 안개에 갇히고 만 것이었다. 간밤의 화려했던 만찬장은 손 댈 수도 없는 쑥대밭이 되었고...
엄두가 나지 않아 멍하니 섰는데 대장님이 유님 표 아침메뉴를 준비하라고 하신다. 나는 빨간 고무장갑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평소에 '어쩔 수 없이 타고 난 야인기질'이라고 떠벌리던 내가 문명으로부터 조금 돌아 나온 이 곳에서 고무장갑을 한 없이 그리다니...
심마니님이 '요리는 내가' 하시며 소매를 걷어붙이셨다.
어찌어찌 아침끼니를 때우고 아니 머문 듯 깨끗이 청소를 하고 길 떠날 차비를 마쳤을 때 안개는 굵은 빗줄기로 변해 있었다. 내 마음은 홍수 졌다. 별빛 젖던 꿈같은 시간은 섬 집 아기를 불렀을 때 끝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무릎이 멀쩡하다는 것이다. 이번 산행에서 제일 염려했던 것이 이튿날의 하산행에 무릎이 어떻게 작용할지였었다. 아무래도 신들린 듯한 간밤의 춤사위가 도움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출발을 앞두고 하산코스를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초보들이 그 험한 길을 과연 잘 내려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나는 초짜지만 안다. 비 오는 날의 산길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칠선계곡을 만난다는 내 핑크빛 설렘이 서글픈 겨울비 앞에서 흑 빛이 되고 만 이 때에 나는 대장님이 최단거리의 수월한 길을 선택해 주기를 속으로 바랐다.
"그렇게 안 위험한데 왜들 그러시지?"
대장님은 얼마든지 내려갈 수 있는 길이라며 계획된 코스대로 방향을 잡으셨고 심마니님과 무쏘님은 어제 점심식사에서 맡기고 온 살림살이의 부속품을 찾으러 묘지 앞 풀밭으로 향하셨다. 우리는 대륙폭포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나는 미리 겁먹은 발걸음을 무겁게 떼었다...
간밤에 껴입었던 내복 두개를 벗지 못했다.
영광의 탈출기
생각보다 길은 험하였다. 검은 바위는 높이 치솟았고 우리가 가야할 길은 검은 바위 사이에서 급하게 내리닫고 있었다. 젖어서 미끄러운 낙엽과 잔설에 덮인 길은 또렷하다가도 금세 흐릿해졌다.
'뭐 이런 데가 다 있노....'
나는 여기가 어딘지를 대장님께 물었다. 중봉북능이라고 했다. 앞서서 길을 여시는 대장님을 선두는 잘 따랐다. 바위에 막히고 나뭇가지에 걸리던 나는 자주 선두를 놓쳤다. 그럴 때는 야호~하고 외쳤다. 그러면 곧 선두에서 야호~ 하고 답이 왔다. 늘 그렇듯이 위험한 길에서 선두는 나아가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난감한 길이 기다리고 있나 보다...'
나는 길을 보기 전에 선두를 먼저 보고 알았다. 붙잡을 나뭇가지 하나 없는 벼랑이었다. 딛고 내려서야 하는 벼랑길에는 눈까지 쌓였다. 나는 몇 걸음 내려서다가 미끄러지고 말아서 비박 짐까지 보탠 무거운 몸뚱이는 나무뿌리를 붙잡은 오른팔 하나에 의지한 채 주저앉은 엉덩이로 간신히 버텼다. 나는 재빨리 일어서지 못했다. 더워진 체온은 잔설을 녹여서 바지와 내복 두개 그리고 최후의 젖어서는 안 될 데까지 젖게 하고 말았다.
벼랑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나는 쩔쩔맸다. 뒤따르던 그는 참다못해 역정을 내었다. 나도 내게 역정이 났다. 후미를 지키던 갑장이 겁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동정을 보내왔다. 역시 내 갑장이었다. 우리는 지금 지리산의 내장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도무지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큰창자쯤이면 참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축축한 엉덩이, 물이 차서 쩔벅거리는 등산화, 나를 잡아끄는 어깨위의 짐, 그칠 줄 모르는 비, 길이 없는 미끄러운 급사면, 부담백배의 근심덩어리로 전락하여 그에게 받는 눈총, 아무리 걸어도 벗어나지지 않는 깊은 골, 우리가 가야할 깊고 좁은 통로만을 보여주는 짙은 비구름...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은 있을 수 없었다. 이 같은 사면초가에서 위안을 찾는다면 바람이 잠잠하다는 것과 '나 돌아갈 곳', '기쁜인연' 표지기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한 무리가 산행할 때 거기엔 꼭 뒤처지는 사람이 한명쯤은 있어왔다. 그 한명은 어쩔 수 없이 일행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소싯적부터 산 잘 탄다고 스스로 자부해 오던 나는 늘 선두여서 꼴찌의 비애를 알리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제대로 걸린 것이다. 나는 만회하고 싶었다. 그래 이건 길이 아니라서 그래. 조금만 더 가면 잔설 사라진 길이 또렷할 것이고 나도 저들처럼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나를 위로했다. 이 보다 더 나쁜 상황이 어디 있겠냐고..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산 넘어 산이었다. 잔설은 끝이 났지만 발을 내 딛을 때 발을 받쳐줄 지반이 우루루 아래로 쏟아졌다. 겁이 난 나는 저 아래로 구르지 않으려고 주저앉고 말았다. 잘도 내려가던 그가 나를 올려다보며 절대 주저앉지 말라고 한다. 주저앉으면 몸을 조절할 수도 없이 그대로 미끄러지고 말 것이라고. 스틱에 체중을 싣고 한발씩 떼라고 일러준다. 시키는 대로 하지만 바들바들 떨리는 힘없는 팔을 믿고 발을 떼어 놓을 수가 없다.
"니 몸을 니가 못 믿는데 우찌 너를 도와줄 끼고. 얼라도 니 보다는 낫겠다."
내 한걸음 한걸음을 일일이 코치하던 그는 지친 나머지 바위 뒤로 사라졌고 늘 후미를 맡던 갑장도 가버렸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기댈 곳도 없었다. 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 팀은 자신들의 코도 석자인 것이다. 그들은 손바닥에서 거미줄이나 돌기가 나와서 벽을 잘 타고 오르내리는 스파이더맨의 후예들일 것이라고. 나는, 문제없이 마의 구간을 앞서간 이들을 분석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하여 발끝으로 정신을 집중했고 살아서 이 곳을 빠져 나가려는 의지로 이를 앙다물었다. 나는 슈퍼맨을 애인으로 둔 '로이스'가 아닌 것이었다.
어떻게 돌이 굴러 내리고 토사가 쏟아지는 급경사를 탈출했는지 기억이 없다. 무사히 살아서 대장님을 만났다. 대장님께 물었다.
"여기가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대장님은 말씀하셨다. 이제 위험한 구간은 다 지나왔다고 진짜라고. 몇 번이나 속은 나는 대장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다.
눈 쌓이고 비 내리는 날씨에 산행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출내기들을 데리고 이다지도 위험한 하산코스를 계획대로 밀어 붙이시는 대장님의 배포에 나는 질리고 말았다. 여기서 한사람의 낙오는 전체의 낙오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이 것이 다 씩씩한 듯 부린 내 허세가 대장님의 왕초보에 대한 과대평가를 부르게 한 탓일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저 앞에 또 선두가 몰려 있다. 대장님의 빤한 거짓말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가까이 가보니 오 주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누군가 매달아둔 가느다란 밧줄을 잡고 몸을 뒤로 한껏 젖혀서 댓 미터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낭떠러지다. 아, 이것이 무어란 말인가. 우리가 UDT체험을 나온 것인가.
나는 울고 싶었다. 애 저녁에 이 목숨 지리산에게 맡겨버린 처지였지만 그래도 울고 싶었다.
무사히 절벽을 내려섰다. 마음을 비우고 나를 믿으니 지리산신도 나를 도운 것이라...
절벽을 돌아든 곳 바위아래서 팀은 배낭을 내리고 있었다. 여기가 대륙폭포 근처인가 보았다. 중봉에서 갈라졌던 심마니님과 무쏘님도 무사히 때맞춰 도착하셨다. 무쏘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보았다. 미끄러져 허리를 다친 것이었다. 불편하지만 걸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서 다행이다. 무쏘님은 불편해서 허리에 손은 짚었지만 지리의 비경을 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몹시 기뻐했다.
남자들이 비닐을 치고 점심준비를 하였다. 우리 두 여자는 오만상을 다 찌푸리고 따뜻한 집을 그리며 서 있었다. 간밤에 껴입었던 젖은 내복 두개가 나를 얼렸다.
"저래갖고 내려 가겄나~"
울상이 된 나를 보고 천지님이 걱정하셨다.
"울면서 내려오는 거 아이가. 할만합니까?'
"넵! 할만 합니다~"
나는 천지님이 물어 오실 때마다 씩씩한 듯 허세를 부려왔지만 이젠 그럴 여력마저 소진하고 만 것이었다. 밥이고 뭐고 어서 걸었으면 싶었다. 걸음을 멈춘 비 맞은 몸은 금세 식었고 몸보다도 더 차가워진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추위로 바들바들 떨던 나는 태연하게 점심준비를 하시는 선배님들을 보고 아연실색하였다. 따끈한 국물과 따끈한 커피도 언 몸을 녹이지 못했다.
내려온 길을 돌이켜보던 나는 신기해서 뇌까렸다.
"참 신기해요 그 험한 길에서 이 많은 사람 중에 엎어지는 사람 하나 없다니...."
"당신만 안 엎어지면 여기 엎어질 사람 하나도 없어요."
갑장이 올바른 말씀으로 내게 면박을 주었다.
"아요~ 당신만 잘 하머 된다 안쿠요 고마 가마이 있어!"
그도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이제 그의 구박은 헤아려 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진정으로 의기양양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도 얼마나 기특한지... 호원아재와 와운 언니도 그랬다! 칠선은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라고...
드디어 또다시 출발이다. 몸이 따뜻해져 온다. 길도 또렷해서 자신감이 붙는다.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칠선계곡에서 한 점 바람으로 스치고 팠던 나는 비록 온 몸을 구르는 지경이지만 칠선을 관통한다는 꿈의 실현가운데에서 몹시 흥분하였다.
웅장하고 깊숙한 칠선계곡의 뚜렷해진 산길은 여전히 거칠고 인색해서 발을 헛디디면 추락할 만큼의 공간만을 내어주었다. 키 높은 잡목사이로 포말이 부글거리는 아득한 계곡이 얼핏 보였다. 나는 거대한 폭포 음으로 숨어있는 계곡의 위상을 짐작하였다.
아름다운 계곡과 탕이 연신 나타난다. 무명폭포와 칠선폭포를 지났다. 찬란했던 단풍뒤로 퇴색한 겨울 빛은 을씨년스러웠지만 옥빛 계곡물은 깊고 아름다웠다. 옥녀탕을 지날 때는 옥녀 된 여자로서 그냥 지나치기가 몹시 안타까웠다.
비선담을 지나고 문명의 손길이 야금야금 뻗쳐오는 선녀탕의 다리위에서 우리는 쉬었다. 거대한 계곡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저 깊디깊은 계곡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무꾼이 쇠도끼를 빠트린 연못이 있을 것 같고 마실수록 젊어지는 샘터도 있을 것만 같은 신비로운 이 곳. 천벌을 받아 구렁이로 태어난 하늘의 아들 구렁덩덩이가 자신을 배신한 아내를 버리고 숨어들었던 동굴이 있을 것만 같은 곳. 남편 구렁덩덩이를 찾아 나선 삭발한 아내는 이 선녀탕을 지났을 지도 모른다.
나는 열명 중 여덟 명은 못 보고 지나쳐 버린다는 청춘홀을 꼭 보고 싶었다. 청춘홀... 칠선계곡에 들어섰다가 빠져 나가지 못하고 청춘을 다 보냈다 하는 그 자리... 청춘홀을 확인해 줄 선배님들은 나와 같은 길에 있지 않아서 목숨 걸고 온 이 곳에서 청춘홀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애석하고 애석하였다.
칠선계곡 본류를 멀찍이서 마주보는 불빛 없는 두지 터를 지났다. 허정 가였던 집 마루의 하얀 벽이 적적했다. 산길이 끝나는 두지 터를 벗어나 만나는 대로는 경사지고 길었다. 대로를 일률적으로 덮고 있는 딱딱한 반석은 지친 발걸음을 흡수하지 못하고 잔인하게 바같 쪽으로 튕겨내었다. 우리는 끝내 적응되어지지 않는 이 길을 지난 추성리 마을의 가로등 불빛 아래서 눈물겨운 산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악명 높은 칠선계곡의 원시적 아름다움이 천 대 만 대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그래서 범접하지 못할 신비로운 그 곳 하나쯤 그릴 수 있기를...
겁 없는 강아지가 호랑이 수염을 만지고 죽을 심을 다해 호랑이 불알을 만진 산행, 심설산행과 우중산행, 비박산행을 이틀 만에 치르고야 만 속성산행이 영원히 변치 못할 다이아몬드가 되어 아! 내 심장 깊숙이 박히고 말았다.
.에필로그.
해뜨기 전에 산에 가는 법이 없고
해지기 전에 산에 남는 법이 없고
눈 덮인 산과 빗물 젖은 산을 멀리하던 그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서고 말아서 야간산행까지 꿈꾸는 지경이 되었다.
그는 하늘같은 진주 산 꾼 선배님들의 작품에 다름 아니다.
이제 나는 이런 그에게 묻어간다.
부라보 2006년이여! 아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