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북 전주 가족회관 비빔밥 |
[이야기가 있는 맛집] 비빔밥
조선후기 기록된 비빔밥 다양한 재료만 설명하고
지방에 대한 언급은 평양 이외에 전혀 없어
![]() |
전북 익산 황등시장 진미식당 비빔밥 |
현재 최고의 비빔밥으로 손꼽히는 전주비빔밥은 조선시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온 기록으로는 "조선시대에는 전주비빔밥이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비빔밥'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시의전서是議全書>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처음 '骨董飯골동반'이라고 쓰고 옆에 한글로 '부?밥'이라고 달았다. 즉, "골동반=부?밥=비빔밥"이란 등식이 처음 성립된다. '부?밥'에 대한 기록도 상당히 구체적이고 이즈음 우리가 먹는 비빔밥과 상당히 비슷하다.
"밥을 정성들여 짓는다. 고기는 재워서 볶고 간납(간전)을 부쳐서 썬다. 각색(여러 종류)나물을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놓는다. 밥에 만든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계란지단을 붙여서 골패 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고기완자는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을 쓴다."
'비빔밥=골동반' 아니다
![]() |
전북 익산 황등시장 한일회관 비빔밥 |
<시의전서>의 '부?밥'은 특정 지방 비빔밥에 관한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비빔밥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야한다. 육회가 아니라 볶은 고기, 미리 비벼서 내놓는다는 점, 고기완자를 사용한다는 점, 콩나물 국이 아니라 잡탕국을 쓴다는 점 등이 돋보인다.
지방별 비빔밥에 관한 기록은 조선후기 '백과사전'인 오주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볼 수 있다. 각 지방의 특산물을 소개하면서 "평양의 감홍로甘紅露, 냉면, 골동반"이라고 이야기한다. 더구나 같은 책에서 "채소菜蔬골동반은 평양의 진품珍品"이라고 못 박았다. 상당히 많은 종류의 비빔밥(골동반)을 이야기하면서 비빔밥의 다양한 재료만 설명하고 지방에 대한 언급은 평양 이외에 전혀 없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시기는 "시의전서"의 50년 전쯤이다. 여기에도 전주비빔밥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뒤져도 역사의 기록에는 골동반만 나올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골동반은 우리 비빔밥과는 거리가 있고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음식이라는 점이다. 흔히 '비빔밥=골동반'로 동일시하여 조선시대 기록 중, 골동반에 관한 것을 찾아내면 비빔밥의 역사를 찾는 셈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전혀 그렇지 않다.
골동반은 중국 음식이고 역사가 퍽 오래된 것이다.
![]() |
진주 제일식당 비빔밥 |
농담 삼아, "자꾸 골동반을 찾다가 어느 날 중국 정부에서 '한국비빔밥은 중국음식'이라고 '골동반공정骨董飯工程'이라도 시작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한 적도 있다.
"비빔밥의 한자 표기가 골동반"이라는 표현은 맞다. 그러나 '골동반=비빔밥'은 아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의하면 야외에 나갈 때 준비했던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이 골동반의 일종인데, 밥을 지을 때 생선이나 고기 등을 미리 넣고 쌀을 안친 것이다. 비빔밥의 실체를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골동반이나 비빔밥이 같은 것으로 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음식이다.
중국골동반은 일본의 '가마메시(釜飯)'와 거의 흡사하다. 솥밥이다. 쌀을 안칠 때 육수를 넣고, 작은 가마솥 위에 새우나 작은 생선 등을 얹는다. 나중에 작은 푸른나물 등을 얹어서 내온다. 문제는 먹는 방식이다. 가마메시는 절대 비벼먹지 않는다. 가마메시나 골동반은 정해진 대로 재료를 넣고 밥을 짓는다. 우리나라 콩나물밥이나 무밥 정도로 보면 된다. 절대 비벼먹지 않는다. 비빔밥과는 전혀 다른 '닫혀 있는 음식'이다. 비빔밥처럼, 먹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대로 깔끔하게 떠먹는 방식이다.
전주·진주·익산 등 유명
![]() |
성미당 |
평생 '닫혀 있는 가마메시'를 보았던 일본 언론인 구로다 가쓰히로씨가 보는 비빔밥은 '양두구육'일 수 있다. 겉은 예쁜데 비비고 나면 엉망이 된다. 그걸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선생은 "밥과 고명이 한 그릇에서 만나는, 두 문화의 충돌과 융합, 그리고 제3의 맛의 창조"라고 이야기했다. 다양한 문화를 한 그릇에 넣고 비벼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한국은 멀티미디어 시대의 선두가 될 것이라고 이미 15년 전에 이야기했다.
지금 식객들이 관심이 있는 비빔밥은 네 종류 정도다. 우선 전주비빔밥이 있다. 전주 현지의 '가족회관' '성미당' '중앙회관'을 손꼽을 수 있다. 서울에서는 명동 '고궁' 정도가 추천할 만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빔밥의 뿌리는 진주晉州 비빔밥이다. 진주 현지에 가면 '천황식당' '제일식당' '하연옥'이 있다. 진주비빔밥 중 가장 화려하고 추천할만한 집은 오히려 울산에 있다. '함양집'이다. 3대 80년 전통이다.
대중적이지 않지만 가격 대비 가장 좋은 비빔밥으로 손꼽을 수 있는 맛집은 오히려 전북 익산시 황등시장?있다. '시장비빔밥' '진미식당' '한일회관' 등이다.
![]() |
함양집 |
숙채 대신 생채를 사용하고 된장찌개를 내놓는 비빔밥집으로 서울 종로2가의 '된장예술과술' 전주 IC 부근의 '함씨네밥상'도 권할 만하다.
가족회관: 비빔밥을 중심으로 한식 한상차림도 가능하다. 비빔밥 이외에도 곁차림으로 나오는 반찬들이 화려하다. 전주에서도 비빔밥 명가로 손꼽힌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3가 80/063-284-0982/명절 휴무/주차장 없음/11:30-21:30 성미당: 밥을 미리 비벼서 내놓는 특이한 방식이다. '비빌밥' 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비빈밥' 이라 표현한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3가 31-2/063-287-8800/명절휴무/10:30-21:30
함양집: 함양에서 이사해 울산에서 3대 80년 동안 비빔밥을 만들었다. 탕국이 나오고 비빔밥 위에 생전복이 놓이는 특이한 비빔밥이다.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 3동 579-4/052-275-6947/매주 일요일, 명절 휴무/09:00-22:00 천황식당: 건물이 특이하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일본풍이 들어간 한옥이다. 마치 영화세트장 같은 느낌이다. 식후에 먹는 계피가 특이하다. //경남 진주시 대안동 4-1/055-741-2646/첫째 셋째 월요일/09:00-21:00 시장비빔밥: 토렴 방식으로 재료와 밥을 덥히는 특이한 비빔밥이다. 가격 대비 최강의 비빔밥이다. 시장 통의 음식이지만 맛이나 음식에 대한 정성이 흠잡을 데가 없다. //전북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 황등시장 내/063-858-6051/연중무휴/08:00-1500 된장예술과 술: 종로 2가의 골목길에 있는 생채 비빔밥 집이다. 된장찌개가 구수하고 부추나 치커리 등 비빌 재료가 신선하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 12-7/02-733-4516/연중무휴/10:30-23:00 |
인삼 넣은 추어탕, 기가 막힙니다
![]() | ||||
|
대전에서 30분을 달리면 충남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가 있다. 이곳 마전에는 곳곳에 유명 추어탕집이 포진돼 미식가들의 식욕을 자극하는 추어탕 마을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A추어탕 집은 금산 지역의 특색을 살려 추어탕에 인삼을 넣은 '양푼이 인삼 추어탕'을 개발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9월 2일부터 충남 금산 국제인삼유통센터 일원에서 '2011 금산세계인삼엑스포'가 열렸는데, 추어탕만 고집하며 살아온 양해덕(53)-권은자(48) 부부가 개발한 '양푼이 인삼 추어탕'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지역 방송국에도 소개가 되는 등 마전 추어탕 마을의 향토 음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에 평범한 추어탕에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던 양씨 부부는 금산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삼을 추어탕에 넣고 미식가들의 반응을 들었다. 그 결과 뜻밖에 좋은 반응을 얻어 '양푼이 인삼 추어탕'을 식당 대표 음식으로 올려 세웠다.
![]() | ||||
|
주방을 전담하고 있는 부인 권은자씨는 서울 생활을 하다 양씨와 결혼한 뒤, 곧바로 추어탕집이 밀집된 마전으로 이사를 와서 살았는데, 이 때부터 추어탕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내친 김에 추어탕 전문 식당을 차렸다. 양씨 부부는 청결과 친절을 바탕으로 맛난 추어탕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양씨 부부가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것은 미꾸라지 조리법과 식재료 선택이다. 양씨 부부는 절대로 가공된 미꾸라지를 들여오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알고 지내는 미꾸라지 전문가를 통해 반드시 생 미꾸라지를 들여와 전통적인 방식으로 추어탕을 만든다.
![]() | ||||
|
전통적인 방식이란 미꾸라지를 푹 삶은 후 반드시 체에 걸러 추어탕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미꾸라지 업자들에 의해 가공된 미꾸라지가 아니라, 주인의 정성까지 가미된 수제 추어탕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양씨 부친이 직접 농사를 지은 금산 인삼을 가미하는 것이다. 양씨 부친은 50년 넘게 금산 인삼을 생산한 토박이 농부로 인삼 경작으로만 5형제를 키워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비법은 맛난 고추장에 있다. 해마다 가을에 전통 기법으로 고추장을 담가 추어탕의 최고 양념으로 쓴다. 이 고추장 양념은 전라도 남원 추어탕에는 가미되지 않는 것으로 마전 추어탕 마을의 특징이기도 하다.
![]() | ||||
|
이 집의 밑반찬은 미식가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무말랭이, 마늘쫑, 부침개, 잡채, 김치, 깍두기, 호박무침, 열무김치, 가지 무침, 콩나물, 멸치볶음 등 다양한 밑반찬을 부인 권씨가 직접 만든다. 물론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식재료들이다.
![]() | ||||
|
손님이 한 번 찾아오면 이내 단골이 될 정도로 맛난 추어탕 집으로 정평이 난 A추어탕집. 전체 매출의 80퍼센트를 금산이 아닌 외부에서 온 이들이 만들어준다. 대전 중심의 외지인이 식당을 찾는 주고객인 셈이다.
양씨 부부 슬하에 남매가 있다. 둘 다 대학 2학년생인데, 아들은 환경조경학과에 다니고, 딸은 미용 분야 공부를 하고 있다. 특히 아들 양창우(24) 군은 육군 상병 시절에 생면부지의 일반인에게 골수를 기증해 감동을 준 바 있는 청년이다.
당시 양 상병은 입대전인 2007년 우연히 한국조혈모세포은행서 골수기증에 대한 홍보를 접하고 좋은 일이란 생각에 '사랑의 골수기증'을 약속했다. 이후 입대하여 상병 시절에 한국조혈모세포은행으로부터 골수유전자형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골수를 기증했다.
인삼의 고장, 금산에 뿌리를 내리고 '양푼이 인삼 추어탕'을 개발해 금산을 찾는 분들에게 좋은 먹거리로 보답하고 싶다는 양씨 부부. 마전 추어탕 마을이 전국 각지 미식가들에게 잊지 못할 명소가 되기를 소망하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밥값을 따로 받는 따로국밥? 우린 기본이 '따로국밥'
![]() | ||||
|
달고도 차가운 가을비가 내렸다. 메말랐던 농심을 적셔주는 고마움이자, 본격적으로 겨울을 대비하라는 자연의 알림신호다. 어느덧 오후 햇살이 넘어가면 옷깃을 여미고 헛헛해진 배를 움켜쥐게 된다. 비로소 쨍한 냉면 국물이 아닌, 숟가락 비스름하게 꽂힌 국밥의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여러 국밥이 있겠지만 그 중심에 서있는 순댓국은 한편으론 희한한 음식이다. 기어이 그 특유의 향을 못 참아내는 이들에게는 고역이겠지만, 그렇게 도리질을 치던 이들도 나이가 들어가며 슬그머니 곁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동네 어귀 대폿집 노래자락에서 들리던, 얼큰해진 채 비벼대던 아버지의 숨결에서 느껴지던, 혹은 하루해를 정직한 노동으로 넘겼을 이웃에게서 묻어나오던 그 향취들. 순댓국은 정신적 추억뿐 아니라, 뼈마디 혹은 유전자 어느 곳에 파고들었을 일종의 회귀본능이다.
순댓국집이라면 골목에 자리 잡아야 제 맛
![]() | ||||
|
길을 걷다 발견하게 되는 수많은 식당들. 바쁜 현대인들은 별다른 선택 없이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 그저 그런 음식을 선택하고, 예상과 별다르지 않은 맛을 느끼고, 바쁘게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선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사이사이 골목길에도 많은 식당들이 숨어있다. 아니 모두들 안다. 알면서도 발길을 쉽게 들여놓지 못할 뿐이다. 각자 제한 된 밥시간에 의무적으로 음식물을 들이켜야만 하는 슬픈 도시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적어도 저녁시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금은 넉넉해진 시간, 밥만으론 부족한 한 잔의 여유를 부리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곳이 국밥집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왠지 골목길 가게로 들어서면 음식 이외에 사연이 말아져 나올 것 같은 고집스런 상상 때문이다.
연신내 지하철역 부근의 아바이 순댓국집은 그런 면에서 매우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 만나게 됐다. 부슬부슬 첫 가을비가 내리던 저녁 무렵, 오가는 수많은 이들을 피해 담뱃불을 붙이러 들어간 골목에 그렇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북녘의 맛과 향
![]() | ||||
|
약속시간에 가장 먼저 도착한 기득권(?)을 부려 일행 다섯을 몰듯이 가게로 밀어 넣고, 차림표부터 살핀다. 종류가 많지 않아 좋다. 모둠과 국밥뿐이다. 가격도 괜찮다. 가장 큰 접시가 2만원 아래다. 삼겹살 1인분에 1만 원을 넘는 물가를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둠접시를 시켜본다. 속을 달래라고 국물이 먼저 나온다. 진한데 부드럽다. 자극적이지 않다. 북녘의 맛이 이런 건가 싶어 지나는 주인에게 물어보니, 돌아가신 함경도 출신 할머니가 하시던 방법 그대로 4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단다.
밑반찬도 단출하다. 흔히 나오는 마늘·고추·된장 등이 없고, 섞박지 모양의 깍두기와 겉절이김치, 양파 고추장 무침이다. 깍두기와 김치는 젓갈을 과하게 쓰지 않아 담백하고 시원하다. 그리고 양파고추장 무침이 색다르다. 아삭거림 속에 칼칼함이 묻어 나온다.
뒤이어 고기와 아바이순대가 어우러진 접시가 등장한다. 빛깔이 참 곱다. 알고는 먹어야 할 것 같아 다시 주인을 불러 세운다. 살코기·머리고기·혀·오소리감투(위)라고 일러준다. 그 위에 대창과 소창으로 만든 아바이순대와 새끼보가 얹혀있다.
일단 전제를 하자면 고기에서 냄새가 없다. 어떻게 삶았기에 이처럼 부드러울까 싶다. 아바이순대는 고소하고 담백하다. 특히 대창순대가 그렇다. 돼지를 잡으면 한없이 나오는 소창에 비해 50cm 남짓 밖에 없다는 귀한 부분이다. 여기에 선지·찹쌀·배추·우거지·숙주·배춧잎 등 16가지 재료를 넣었다니, 북쪽 식으로 표현하자면 맛이 아니 좋을 수가 없다.
따로국밥만을 파는 특별한 이유?
![]() | ||||
|
사진을 몇 장 찍기도 전에 비워버린 접시, 술국을 따로 청해놓길 잘했다. 아까보다 묵직한 국물에 아바이순대와 고기가 그득하다. 특히 큼직하면서 씹기 편한 고기 덩이는 마치 안동국밥에 들어있는 질 좋은 소고기 같다. 고기를 대는 이가 가게의 역사와 함께 한단다. 40년 전 그 사람에게만 받는다는 설명에 이해가 간다.
배가 불러오지만 국밥을 건너뛰자니 허전해 두 그릇만 청해본다. 6천 원, 비싸다고 할 순 없다. 밥이 따로 나온다. 말아져 나올 줄 알았는데, 차림표를 보니 따로국밥밖에 없다. 죽일 놈의 궁금증이 다시 발생. 그새 어느 정도 말이 트인 주인을 다시 부른다.
"일부 다른 가게들을 보니 밥값을 따로 쳐서 받더라고요. 같은 국에 어차피 말아 먹을 밥인데 어째 좀 그래서…. 그러느니 아예 따로국밥을 기본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원래 국밥은 국에 밥을 한 번 헹궈내 뜨끈하게 말아주는 것을 말했다. 그러다 나이든 분들에게 예를 갖춘다는 의미에서 '밥을 따로 올려라' 하던 것이 따로국밥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정설. 밥을 따로 낸다는 것이, 결국 가격 인상요소로 이어진 셈이다. 차별적 가격을 없애고, 아예 따로국밥만을 내겠다는 주인의 뜻이 전해진다.
계절갈이에 알맞은 음식은 역시 '국밥'
흔히 환절기에 계절을 탄다고 한다. 작게는 입술이 마르고 멍하기도 하다가, 심지어 으슬으슬해지기도 한다. 마음껏 즐긴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옮아가는 증상이다. 사실 큰 약이 없다. 잘 먹고 잘 자는 것뿐.
이럴 때 한국인이라면 계절갈이 음식으로 국밥만큼 긴요한 것이 또 있을까. "어~어"하며 훌훌 들이마시는 국밥 한 그릇은 속을 따스하게 해주고 기분을 일신시켜준다. 그릇을 내려놓고 정신이 번쩍 드는 그 느낌이 때론 못 견디게 그립다. 그것이 꼭 순댓국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유랑아제-펴뮤늬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