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1월6일
말씀: 예레미야 1:6-10, 29:10-13
제목: 변화와 성장
올해 목표가 ‘삶의 변화를 위한 성장의 해’입니다. 21주년을 맞이한 목표가 사실은 개척할 때 표어와 내용이 같습니다. 저희교회 표어가 21년째 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내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이웃이 변화고 사회가 변하고 국가가 변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출발한지 21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21주년이 되면서 안식년을 통해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목회를 위한 헌신적인 자세로 돌아가지는 의미와 함께 적어도 구체적인 변화와 더불어 성장해야할 시기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올해 목표인 ‘삶의 변화를 위한 성장의 해’로서 변화와 성장에 관해 말씀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안주지대’(Comport Zone)라는 심리적 용어를 들어보셨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익숙해진 행동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안주지대(Comport Zone)라고 부르는데, 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편안함을 느끼는 영역이나 익숙한 생활방식을 추구하게 되고, 한번 이 지대에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안주지대에 머물고자하는 욕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마는 그런데 이것이 인생에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의 속성을 아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왜 하나님께서 양을 창조했느냐하면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도 얼마나 안주하기 쉬운 존재들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 만큼 양과 인간의 속성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사야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의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양의 속성에 대해 아는 대로 말씀을 좀 드린다면 먼저 양은 고집이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양은 반드시 가던 길로만 갑니다. 어떻게 보면 귀소본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다른 길이 좋은 길이고 먹을 것도 많은 길이지만 그것을 눈에 보면서도 늘 가던 길만 고집합니다. 두 번째 눈이 나쁩니다. 그래서 앞에 있는 양의 엉덩이만 보고 갑니다. 그런데 조금만 간격이 떨어지면 딴 길로 세 버립니다. 세 번째 더럽기가 그지없습니다. 오물을 배출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되는데 절대 안합니다. 그 자리에서 오물을 배출하고 그대로 누워버립니다. 목자가 치워주지 않으면 오물을 뒤집어쓰고 삽니다. 네 번째 잘 넘어지고 넘어지면 못 일어납니다. 다리가 단단하거나 힘이 있거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양은 잘 넘어집니다. 그리고 한 번 넘어지면 목자가 일으켜 세워주지 않으면 절대 혼자 못 일어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방어력이 전혀 없습니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을 가지고 있지 못한 존재입니다. 여섯 번째 죽을 때 온순해 집니다.
잘 보십시오. 구체적으로 설명 안 드려도 양의 속성이 얼마나 인간과 흡사한지를 알 것입니다. 여기에 총체적인 분모를 찾으라면 양이나 인간이나 안주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고집이 얼마나 셉니까? 여자들이 흔히 최 씨 고집 알아주어야 한다고 하면 강 씨와 결혼한 여자는 강 씨 고집이 더 하다고 하고 김 씨 집으로 시집온 여자는 몰라서 그렇지 김 씨들이 은근히 고집이 센데 못 말린다고 하고 다 자기 남편 성을 가진 성씨가 고집이 세다는 것이지요. 인간들이 양처럼 얼마나 눈이 나쁩니까? 그래서 조금만 말씀으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제 갈 길로 가버립니다. 세상이 조금만 유혹하면 그쪽으로 마음이 쏠리지 않습니까? 양이 더러운 것처럼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더럽습니까? 인간이 한 번 넘어지면 자력으로 일어 날 수 없어서 인간만큼 서로 도움을 요청하는 동물도 없을 것입니다.
결국 목자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 어린아이는 부모의 돌봄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우리 인간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속성을 가진 인간들이 얼마나 안주하려고 하고 편안하려고 하고 그래서 늘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 쉬우냐하는 것입니다. 타성이라는 용어나 심리학적인 용어인 ‘안주지대’라는 용어는 우리의 인생에 위험한 단어입니다.
현대, 기아자동차회장인 정몽구회장이 사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스스로 꽃과 강이라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라’ 세상 사람들도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2013년도는 너무나 자기에게 익숙한 행동 자기에게 익숙한 생각, 그것만 고집할 것이 아니고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안주하거나 타성에 젖지 않는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차원에서 새해에 다시 한 번 21주년을 맞이하여 처음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변화와 성장’을 목적으로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변화’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내일의 꿈을 보내주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변질을 해서 죄악 된 삶을 살다가 그만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데 그것은 바벨론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이런 비참한 삶의 배경을 가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10절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 메시지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변화를 바라는 심정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끌러갈 때 두 부류가 이 사건을 두고 상반된 혼란을 겪게 됩니다. 한 부류는 근거 없는 낙관론, 거짓선지자의 잘못된 메시지에 의해서 이제 2년이면 포로생활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근거도 없는 속임수에 속아서 해방의 기쁨을 준비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반대의 부류들은 ‘이제 회복이란 없다 우리는 끝장이다 우리는 이런 회복 없이 죽어갈 것이다.’ 이렇게 낙심하고 있는 근거 없는 비판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편지를 쓰서 근거 없는 비관론도 아니요 그런 근거 없는 낙관론도 아니요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들에게 새로운 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입장에서 바벨론으로 끌러가서 생활하다 보면 허구한 날 눈만 뜨면 들려지고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 잘 못되고 타락한 이방 문화 아니겠습니까? 그런 타성에서 절망가운데 살아가든 그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은 거기서 둥지를 틀고 살 곳이 아니다 라고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이었겠습니까?
출애굽기에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400년의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백성으로 태어나 보니까 자기가 종입니다. 아버지도 종입니다. 할아버지도 종입니다. 또 아들도 종입니다. 그런데 이 애굽의 문화와 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빌붙어서 살아야할 비굴한 삶이 얼마나 타성에 젖기 쉬운 상황이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서 그렇게 타성에 젖어 있는 백성들을 일으켜 세워서 홍해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자유민으로 살도록 변화를 주셨습니다.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무의미하게 가치 없이 타성에 젖어 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세상의 즐거움에 어울리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실패하면 실패한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그 자리에서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을 수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변화라는 단어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타성에 젖어 살아가든 세상문화에서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바벨론은 둥지를 틀고 앉아 있을 곳이 아니라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시기를 원합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변화 받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 종살이 할 때나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할 때나 오늘날도 동일하게 이 세상의 문화 유행, 전통, 종교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기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았을 때, 십자가의 공로로, 그 보혈로 정결함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따라가야 할 존재요 그 분의 성품으로 변화를 받아야할 운명입니다. 변화를 받아야 그 분의 세계를 알게 됩니다. 변화를 받아야 영적인 삶, 영광의 삶, 하늘나라의 삶을 누릴 수 가 있습니다.
두 번째 성장입니다. 우리가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말씀을 듣고 마음 판에 세기고 간직해야합니다. ‘말씀’이라는 단어가 오늘 분문을 둘려 쌓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29:10,11,14 다 첫 번째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인준하시고 완성된 약속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미래지향적인 삶의 방향을 결정짓습니다. 우리에게 성숙과 성장을 향한 미래지향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속에 그대로 드러나며 발생하며 나타나는 것을 보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크게 두 종류로 구별됩니다. 말씀을 듣는 인생, 말씀을 듣지 않는 인생입니다. 인생은 다 비슷비슷합니다. 상처받고 상처주고 부패한 욕심을 따라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크게 인생을 나눈다면 말씀이 임하는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으로 나누어진다고 봅니다.
예레미야도 태어날 때부터 위해한 일을 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까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온도 마찬가지라 했습니다. 기도온처럼 좀생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포도주 틀에서 밀을 까고 있었습니다. 미디안 군사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숨어서 밀을 깔 정도로 담대하지 못 하고 소심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는 큰 용사다’그랬습니다. 내가 큰 용사로 너를 성장시키겠다, 내가 너를 큰 용사로 삼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300백용사로 13만5천을 쳐 죽이지 않았습니까?
예레미야 1:2 ‘아몬의 아들 유다와 요시아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4절 ‘여호와이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가 예레미야된 것은 이런 복된 말씀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에 예레미야는 얼마나 미련하고 우둔한 사람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니이다 하니’
여러분 미숙한 아이에게 말씀이 임하면 그 사람에게 슬픔을 줍니다. 왜 슬픔을 줍니까? 부담스럽게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슬프도소이다’그랬습니다. 이 말씀이 어디서 많이 듣던 말씀 아닙니까? 혹시 내가 수없이 내 뱉은 말씀이 아니냔 말입니다. 뭘 좀 하시죠, 그러면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자꾸 모이라고 하고 성경공부하자고 하고 기도하자고 하고 그런 말이 내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모른다는 말을 실제적으로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이 말씀이 희망이 되는 것은 내 인생이 이 말씀으로 결정짓고 내 인생에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말씀이 임한 그것 때문에 이런 슬프도소이다 하는 불행한 자리로 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초라한 고백을 하든 예레미야였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성장시켜주시는데 참 감동적입니다. 예레미야 1: 9절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 밀어 내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나는 말할 줄 모릅니다. 이렇게 열등감에 빠져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에게 임하셨던 것입니다.
저가 여러분 앞에 말씀을 전하는 것은 제가 똑똑해서도 아니고 잘나서도 아니요 오직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설 특권이 주어진 것뿐입니다. 여러분들이 2013년 도에 하나님말씀 안에서 삶을 살아가고 말씀의 영향력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성장하는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 성도들을 보면 거짓선지자의 영향력 안으로 이끌리는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말씀 안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인생이 있습니다. 여기에 기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성숙한 성도인가? 성숙한 성도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수없는 유혹과 미혹의 영이 따라 옵니다. 이 악한 거짓교사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역사하는 마귀의 계략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12:38‘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이스라엘백성들을 혼미케 했던 수많은 잡족들이 얼마나 악한 영향력을 미쳤냐하면 민수기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구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이제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인도해 주시는 과정에 있는데 어린아이들처럼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이런 미련한 짓을 하게 된 이유가 누구 때문이라고 했습니까? ‘수많은 잡족’들로 인해서입니다. 모세처럼 예레미야처럼 말씀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은 거짓선지자와 잡족들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 사고에 영향을 받고, 불평과 불만에 영향을 받습니다. 신천지가 교회에 들어와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런 잡족들이 하는 짓을 합니다. 교회에 대한 불만 목사에 대한 불만 행정에 대한 불만 그렇게 불만을 쏟아놓고 그에게 점차 합세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교회가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부정적사고 또는 이단들을 경계하고 영향력을 받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어린신앙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분별력이 없고 의지가 없고 잘 속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성숙해야 되고 성장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세상 사람들의 영향력아래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말씀 안으로 들어와서 말씀에 영향력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요즘 학교에 가면 앉아서 조용히 성경책 읽는 학생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놀림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학생들이 악한 생각과 방법에 동조해야 왕따를 당하지 않은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신앙인으로 양육해서 신앙인들끼리 세상의 영향력을 받지 않은 믿음의 아이로 성장시켜야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눈만 뜨면 보여주고 들러주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T.V 드라마가 정상입니까? 음악이 정상입니까? 세상 뉴스거리가 정상적입니까?이런 혼미한 세상에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마다 하나님말씀의 영향력아래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생활에서 성장하는 비결을 가르쳐 드릴까요? 성장하려면 반드시 세상 사람과 먼저 단절하십시오. 끊어야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과 교제하지 마십시오. 혹시 새 신자들은 저희교회 성도와 교제할 때 반드시 신앙생활한지 몇 년 되었는지 물어보십시오. 물어볼 때 신앙생활한지 2-3년 정도 되었다면 그 분과 교제하지 마시고 10년 이상 되신 분과 교제를 하시되 10년 이상 되신 분들도 ‘잡사’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런 분은 또 경계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이 진실하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으려고 하고 또 모이기를 힘쓰는 성도와 교제하십시오. 그러면 신앙이 성장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런 새 신자 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면 그때는 세상에 나가 세상에서 관계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섬기십시오. 그리고 교회 안에 새 신자나 믿음이 연약한 자를 섬기시면 됩니다.
먼저 성장의 시작은 세상의 영향력을 끊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끊어야하고 그 다음에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자로 성장해서 그들을 인도해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실력을 구비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성장입니다.
성장을 위해 첫 번째로 말씀을 영향력 아래 있어야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장을 위한 두 번째로 기도입니다.
새해에 정말 변화와 성장을 위해 각오를 새롭게 했나, 안했나를 알려면 기도하러 오나 안오나를 보면 알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교회는 아마 올해도 작년과 같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주하시 마시고 새롭게 새벽을 도전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예레미야 29: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렇게 하시겠다는 전제조건이 바로 기도입니다. 12절‘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2절이 11절을 얻어내는 통로입니다. 왜 11절의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까? 12절을 누리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파악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2013년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천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 위해서 기도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 성숙하며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 무기를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삶 속에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능력을 소유합니다. 왜냐하면 능력을 소유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세상을 넉넉히 이깁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무장하기 때문입니다.
2013년도는 변화와 성장의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