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머리)
죽자
남들 꽃으로 피어날때 죽자
화엄사 흑매 높히 필때
나는 그 하늘가지 끝에서 떨어져 죽자
바람꽃에 쌍절리 매화잎 분분히 날릴때
섬진강을 넘는 봄햇살로 죽자
봇물 터지듯 아우성치는 하동포구 봄
나는 죽은듯 숨을 죽인다
(중략)
봄향기 흩날릴때 죽자
아퍼 죽지말고
봄향기 흩날리는 지금 죽자
봄향기 흩날릴때 죽자/자작나무
바야흐로 봄꽃이 만발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이럴 때 어디든 떠나지 못하면 그것은 내게는 잔인한 고문이다.
평생 역마살때문에 마음의 병이 끊이지 않는 중심에는 언제나
꽃이있다.꽃이 만발하는 계절이 오면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꽃은 왜 속상하게 이렇게 많이 핀다니~!
3/25일,11코스/9.3km
하동호-청암체육공원(0.7k)-평촌마을(1.7k)-화월마을(0.8k)-관점마을(1.0k)-
상존티마을(2.6k)-존티재(1.2k)-동촌마을(1.0k)-삼화초등학교(0.3k)
11코스 시작점 하동호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이런 흐린 봄날은 강바람에 스쳐오는 물냄새도 쌉쌀하다.
강바람에 두둥실~
길을 잃은 저구름아
너는 알리라 내 갈 길을
나그네 떠나 갈 길을
내 마음 별과 같이/주일청
농어촌공사 하동호관리소 경내.
평촌교 아래를 지나 청암으로~
하동호에서 평촌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수월하다. 청암을 거쳐가는 길이다.
청암골은 북의 삼신봉에서 동서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 속에 깊숙히 자리잡은
심산유곡이다. 보슬비가 오락가락 내리기 시작한다.
청암면의 면소재지인 평촌마을에서 점심식사를한다.여기를 지나면 매식할 곳이없다.
평촌마을 슈퍼에서 강아지 간식으로 참치캔을 구입하여 각자에게 주었으나
정돌이와 진순이는 먹지도 않고 되돌아 가고 송이는 자기것 만 먹고 음식점 앞에
지켜 서 있다가 다시 따라 나선다.
경묘당.
평촌마을의 금남사에는 목은 이색의 영정이 있고,경묘당 영내 경천묘에는
신라 마지막왕 경순왕의 영정이 모셔져있다. 원주 용화사에서 옮겨왔다.
상존마을 앞 청암천
존티재 앞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카이젤 콧수염의 천하대장군과 혓바닥을 쑥 내놓고 있는 지하여장군이 익살스럽다.
우리나라에 분포된 목장승의 특징은 치켜올린 눈썹에 부릅뜬 눈과 크게 벌린 입이다.
전라도는 절집 앞을 지키는 목장승까지도 해학적인 모습을 더 하는 것이 많다.
존티재에서 고개를 의미하는 "치"가 경상도 발음인 '티"로 변형되고
또다시 고개를 의미하는 "재"가 중복되어 붙었다.
삼화실 에코하우스
폐교된 삼화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생태체험학습및 방문자 쉼터로 활용하고있다.
그러나 방문자 쉼터를 방문하려고 해도 문이 잠겨있고 전화도 안 받는다.
29억원이 투입되었다는 건물이 제대로 활용되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없다.
삼화(三花)실은 이정마을의 배꽃,상서마을(도장골)의 복숭아꽃,중서마을 오얏(자두)꽃의
세가지 꽃이 피는 세마을을 의미한다.여기가 11코스의 종착지이지만 다음 12구간의 거리도
줄이고 오늘 숙박지로 점찍어 둔 이정마을에 황토방이 있어서 연장하여 계속 고고~
12코스/13.4Km
삼화실-이정마을(0.8k)-버디재(0.9k)-서당마을(1.8k)-우계저수지(0.6k)-
괴목마을(1.2k)-신촌마을(1.6k)-신촌재(2.8k)-먹점마을(1.7k)에서
흥룡마을(2.0k)로 빠져서 하동터미널-진주터미널로 버스이동
12코스는 하동군 적량면에서 악양면 대축마을을 잇는 둘레길이다.
봄에는 꽃동산을,가을이면 황금으로 물든 지리산 자락을 펼치는 곳이다.
지리산 둘레길 하일라이트 3개구간 중 마지막구간이다.
석조 솟대
이정마을 초입.
보슬비에 개도 개고생이고 내 카메라도 생고생이다.
비오는 날은 나의 소니 밀러리스카메라 보다는 DSLR의 대포카메라가 습기에
더 강하다.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맑은 날은 밀러리스에 대한 애정이, 비오는
날은 미움이 교차한다.날씨의 제약으로 세심한 촬영에 제약이 따른다.
이정마을
12코스의 시작점인 삼화실에서 0.8km 지점에 왔다.
오늘(25일)의 하루를 접는 숙식지다.
황토방 민박을 운영하는 종손집의 본채.
황토방 두개로 운영하는 산도리민박집(010-9720-4585)이다.
좌측은 둘째 며느리,우측은 첫째 며느리가 서울에서 내려오면 쓰는 방인데
안 쓸때는 이렇게 민박으로 운영(숙박비 3만원)한다고.
"무턱대고 정을 나누었다고 인연이라 하지말자
인연은 서로를 돕고 아름답게 끝까지 가는 것이라고 하자"
비에 젖은 털을 말리라고 현관에 들어 오라고 해도 완강하게 사양한다.
조금 지나서 다시 나와보니 사라졌다.이집 주인이 쫒아 버렸다고 한다.
저녁 6시에 쫒겨간 송이는 불빛도 없는 캄캄한 산길을 달려서 3시간만에
자기 집에 도착했다고 궁항정에서 알려준다.
함께 비 맞으며 우리와 함께한 7시간 동안에 송이가 먹은 것은 작은 참치캔
하나와 간식용 꼬마소세지 한개 뿐이었다. 다시 빈속에 3시간을 달려간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배고픔과 추위에 떨면서 남의 집 처마밑에서 자느니 차라리
늦게라도 자기집에 돌아가서 밥먹고 따듯하게 자는 것이 정답이라고 자위를 해본다.
비에 젖은 송이의 마지막 모습.
방에 장작불이 들어가고 무쇠솥에 물이 끓기 시작한다.
둘레길 표지석 밑의 후원자명에 복권위원회가 명기되어있다.
녹색복권을 산 사람들이 둘레길 조성에 기여했다는 고마운 사실이.
이정마을 이화정(배꽃)에는 TV,냉장고,모기장이 다 있다.
마을회관 앞 커다란 느티나무가 이마을의 당산나무다.
느티나무 뒤는 창녕 조씨 제실,동화제.
황토방 내부.
우체국 집배원 출신의 이집 주인 아저씨는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과
박정희대통령 시대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향수에 푹 젖어 계신 분 같다.
오늘 이집 투숙객은 남자 단독1명팀,여자 동창친구들 5명팀 그리고 우리부부 2명팀이다.
주인 아저씨가 앞자리에 좌정하고 나머지 8명이 상2개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한다.
이마을과 둘레길에 얽힌 히스토리와 에피소드를 설명하신다.
식사가 푸짐하고 너무 맛이 있어서 말씀에 집중이 안된다.
둘레길 일정에서 마주하는 밥상의 격이 매일 업그레이드 되고있다.
막걸리 한잔해야 하는데 술 안마신다는 주인의 정색하는 분위기에 눌려
말 꺼내기가 버겁다. 쩝~
둘레길 트래커가 원주민을 대하는 3대 덕목은 3체 금기라고 누가 알려준다.
잘난 체,많이 있는 체,많이 배운 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 둘레길에서만 해당되는 말일까~
요즘은 잘난 사람도,돈 많은 사람도,많이 배운 사람도 도처에 넘쳐난다.
지나 내나 세끼 밥먹고 잠자고 똥싸는 것은 똑같은데~
3/25 저녁식사(6천원)
3/26 7시 아침식사(6천원).
트래커 기준으로는 아주 게으른 9시에 다시 길을 나선다.
봄인데도 산간이라서 간밤에 내린 서리가 아직도 풀을 하얗게 덮고있다.
좌측 밥봉.
밥을 고봉으로 담은 모양이라는데 카메라 각도가 제대로 잡지 못했다.
이정마을 앞 이정교를 건너면 바로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다시 이런저런 너덜길,돌계단,황토길이 버디재 고갯마루까지 이어진다.
해발 260m의 버디재를 넘어 서당마을로~
묘역도 시대별로 바뀌면서 서구화되어간다.
웬 나무조형물인가 했더니 개가 소변보는 자세다.자세 지대루 나왔다.
서당마을 직전, 뒷골에 새로 짓는 둘레길 화장실의 마스콧트인듯.
뒷골의 내리막 길이 끝나는 곳에 서당마을이 나타난다.
한때 이동네에 41호의 가구가 살았고 이곳의 옛지명은 밤밭촌 함덧거리였다.
유명한 한학서당이 있었다고 해서 아예 지명이 서당마을로 바뀌었다.
지리산 둘레길은 남원시,장수군등 총 7개 권역에 21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번 일정을 끝내면 하동군 3개코스와 구례군 2개코스를 남겨 놓게된다.
어느덧 3/4를 돌았다.
이지역은 다랭이 논과 밭이 많이 보인다.
곳곳에 태양열 발전시설공사도 한창이고.
적량(우계)저수지
멀리 구재봉(해발767m)의 산그림자가 저수지에 드리워진다.
산노을에 두둥실~
홀로 가는 저 구름아
너는 알리라 내 마음을
부평초 같은 마음을
내 마음 별과 같이/주일청
적량저수지에서 내려다 본 서당마을.
조금전 서당마을에서 반대쪽으로 또 40여분간 알바를 했다.
하루에 알바 한번도 안하면 맛이 나나?ㅋ ㅋ ㅋ
저수지 옆의 괴목마을.
신촌마을
3개 마을을 거치는 동안 아무곳에서도 라면조차 먹을 곳아 없다.
여기서 농가에 들어가 식수를 보충하고 어제 민박집에서 만난 여자5인팀이
건네준 김밥 2덩이를 점심으로 마눌과 요긴하게 나누어 먹는다.
귀인들을 만나 배고픈 위기를 때 맞추어 넘긴다.다시 고고~
신촌마을을 지난다.
걷고 또 걷고,오르고 또 오르고.
경치는 죽이지만 여름에는 땀도 많이 흘리고 고생 좀 할 듯~
지리산 연봉에 둘러싸인 산간마을이 카렌다에 나오는 풍경같다.
남해나 다른 아랫지방에 비해 다랭이 경작지의 단위당 면적이 크다.
자연을 대상으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설치미술이다.
최근에 중장비를 동원하여 새로 크게 조성한 다랭이논의 규모는 반듯하고 더 크다.
산아래로 지향하는 매화줄기.
도토리,산밤등 열매의 무분별한 채취와 청설모같은 천적의 증가로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다람쥐의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먹이사슬의 최강자인 멧돼지나 고라니만 늘어나고 있다.
이번 일정 중 야행성인 고라니를 대낮에 두번씩이나 목격했다.
12코스의 이구간은 산넘어 산이다.
꼬불꼬불 오르고 또 오르는 된비알로 신촌재와 먹점재가 이어진다.
분지봉 500m,정면으로 구재봉까지 2km 남았다는 이정표.
먹(먹묵,墨)점 윗 마을.
둘레길을 중심으로 윗쪽은 현대적으로 지은 주택과 매실농원으로 구분되고.
먹점 아랫마을.
아랫마을은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양식이 혼합된 주택과 농원이 나온다.
매실을 숙성 시키는 항아리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하늘의 자양분을
빨아 들이고 있다.
백매에 홍매를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도 하고있다.
광양의 홍쌍리농원에 못지않는 대규모 매실농원들이 자리잡고있다.
광양의 청매실농원 풍경이 짙고 촘촘한 유화그림이라면
먹점마을의 매실농원은 옅고 성긴 몽환적 파스텔화 같은 느낌이다.
퇴로인 먹점마을과 흥룡마을의 2km구간 중간 쯤에 와룡사가 자리잡고있다.
아담하고 예쁜 절인데 지금 한창 내부 리모델링(?)공사 중이다.
중간지점에서 만난 연세 지긋한 분이 내게 귀띰을 해준다.
"이곳(먹점마을,흥룡마을)은 돈없는 사람은 살곳이 못된다"라고~
계곡과 어울러진 잘 조성된 주택과 정원 그리고 매실농원의 규모가 대부분 어마하다.
농원마다 매실숙성용 항아리가 즐비하다.
계곡은 깊고 청아하며 물길은 길고 물은 수정같다.
무릉도원의 분위기가 점입가경.
황홀한 기분을 만끽하며 내려 온 곳의 종착지가 흥룡마을이라고 한번 더 아르켜준다.
9코스, 산청 덕산에서 시작하여 12코스, 4/5 지점인 하동 먹점마을까지의 둘레길 구간을
동아마라톤에 연이어 3박4일 일정으로 마무리 하면서 하동행 버스에 고단한 몸을 싣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