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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회원 자유게시판 스크랩 성금요일예배 해설: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
삼겹줄 추천 0 조회 513 14.04.04 21:45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성금요일 루터교회 예배해설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

- 성금요일 공동식사와 성찬예배-

  

  

*성금요일 예배의식서를 참조하고 초청의 인사가 끝난 후 예배 해설을 한다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해 생명을 내놓으시고 운명하신 날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이 날을 가장 엄숙하고도 경건하게 지내는 날입니다. 모든 제단의 장식과 초, 베너와 같은 모든 것들을 없애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날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으신 날이라고 해서 마냥 침통한 날은 아닙니다.

 

로마-카톨릭 교회에서 성 금요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침통한 날이고, 마음이 무거운 날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교인들은 무조건적으로 금식해야 하는 고난의 날이고 세상적인 모든 일로 부터 엄격히 떠나야 하는 날입니다. 로마교회는 성금요일  테네브라이(tenebrae)라는 어둠의 예배를 드립니다. 원래 고대교회에서는 성 목요일 아주 이른 새벽이나 심야기도회를 테네브라이라고 말했지만, 1939년부터 교황 비오 12 세(Pius XII)에 의해 성금요일 아침 예배로 바뀌게 됩니다.(이때로 부터 로마카톨릭의 예배개혁이 시작됩니다) 

 

테네브라이는 가장 오래된 기도회 전통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많은 변형들이 각 교파마다 있지만 원형은 성주간 목금토 삼일 동안 심야 또는 아주 이른 새벽에 어둠 속에서 모여 조용한 기도회를 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했습니다.  새벽인지 한 밤중인지 시간을 규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테네브라이가 지향하는 원래의 시간은 주께서 잡히시긴 전날밤 감람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던 시간을 원형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느 교회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사라져 버렸지만 이 테네브라이 기도회의 원형을 특별히 규정짓는 것은 '3'이라는 단어 입니다. 삼일간 심야기도회(Nocturn), 세개의 시편, 세개의 본문(예레미야 애가 중에서), 세개의 응답찬송을 주기도와 함께 조용한 가운데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회를 온전히 시간을 재 보면 약 두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Antiphonale zum Stundengebet, Seite 299 ff., Vier-T?rme-Verlag, M?nsterschwarzach, 7. Auflage 1996)

 

아마 그래서 였을까요? 교황 비오12세는 이렇게 장 시간 걸리는 예배를 축소해서 성금요일 아침예배(심야나 새벽이 아님!)로 변경시키게 됩니다.

 

이 예배의 특징은 가상칠언에 의해 하나씩 촛불을 꺼나가기 때문에 결국 어둠의 상태가 됩니다. 또한 이 예배에는 성찬이 없고, 예배가 끝난 후 아무런 인사와 교제 없이 침묵과 어둠 속에 모임이 끝나게 됩니다. 이유는 바로 주님이 죽은 침통한 날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금식해야하고침묵하고 마음을 무겁게 하라고 로마교회는 가르칩니다. (물론 지금은 로마교회와 로마교회 전통을 따르는 성공회, 일부 루터교회와 감리교회가 원형과는 전혀 다른 변형된 테네브라이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지극히 본인의 사견이지만 로마교회도 그렇고 현대 개신교회가 저마다 이것이 전통적인 원형이라고 말하는 테네브라이 예배는 모두 원형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한 밤 중 장시간 계속 되었던 예수님의 체포직전 기도시간 분량을 현대 교회는 너무 축소 해버렸고, 예배 시작 시간에서도 불일치가 극명하고, 더우기 고대 교회가 테네브라이 예배에서 중시하던 3이라는 개념도 오늘의 예배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지 않는가? 이런 면에서 본다면 오늘날 테테브라이라고 하는 예배들은 그저 자기교회 예배를 특화 시키기 위해 이름만 따온 듯한 인상이 듭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따르는 루터교회와 모든 개신교회들은 로마 교회와 다른 시각으로 성금요일을 맞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이날은 당신의 아들이 죽은 날이기에 가슴 아프고 침통한 날입니다. 그러나 죄인의 입장에서 보면 십자가 죽음의 사건 때문에 구원받는 날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십자가 죽음이라는 비참함, 한 가운데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묵직한 감격으로 나누는 날입니다. 루터는 이를 두고 십자가 위에서 벌어지는 "행복한 교환"(Der fr?hliche Wechsel)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목숨과 인간의 죄를 맞바꾸어 구원을 이룬 사건입니다. 이 행복한 교환이 오늘 성금요일 예배로 구체화됩니다.

 

특별히 루터교회 교인들은 이날 저녁 식사로 물고기 요리를 나누어 먹습니다. 물고기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인데, 신앙의 자유가 보장 되지 못했던 초대교인들은 각자 사는 곳이 다르고 환경이 다를지라도 물고기’(IXTUS: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암호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한 가족임을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낯선 곳을 여행 할 때라도 문 앞에 물고기 표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들어가 유숙하고 말씀을 나누던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습니다. 루터교회는 이 전통을 성금요일에 다시 기억하며 공동식사의 메뉴로 큰 생선을 내놓습니다. 이 공동식사를 통해 십자가 구원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고,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게 됩니다.

 

이런 루터교회의 전통은 분명 금식을 강조하던 로마교회의 전통과는 전혀 다른 전통이고, 고난을 강조하는 한국개신교회의 관습과는 낯선 전통입니다. 그러나 죽음 한 가운데 있는 생명, 고난 한 가운데 숨겨진 하나님의 영광, 십자가 고통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구원,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그렇게도 목숨걸고 고수했던 십자가 신학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공동식사와 성찬의 의미가 결코 낯설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구원의 역설이 숨겨진 개신교회 신학이 구체적인 예배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 바로 성금요일 성찬예배이며, 성도의 공동식사입니다. 그래서 성금요일은 마냥 침통한 날이 아닙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날이기에 루터는 이 날을 성찬받기 가장 좋은 날이라고 말했고, 루터의 말을 따라 영어권 교회에서는 성 금요일을 ‘Good Friday’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게 될 이 성찬은 침통한 나눔도 아니며, 그렇다고 가볍고 값싼 은혜의 잔치도 아닙니다. 오늘의 성찬은 값비싼 하나님 아들의 목숨 값입니다. 목숨 값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성찬은 묵직한 감격, 무게 있는 기쁨의 성찬입니다.

 

성찬을 받으실 때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 주신 목숨 값을 기억하시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시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이 저녁 성 금요일 예배가운데서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묵상하고, 성찬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감격을 체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무릎꿇고, 청중은 모두 일어서서)

주님 이 시간 당신의 모든 백성이 생명을 주시는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의인이 하나 없는 곳에서라도 하나님의 공의는 거기 계시고 사랑이 한 점 없이 메마른 곳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심을 믿고 십자가 앞에 나왔습니다.

범죄로 가슴쓰린 우리를 미리 아시고 인도하시며 실패로 찬바람 도는 가슴을 미리 아시고 만져 주시는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바라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주님 우리의 눈을 들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손을 내밀어 주님의 보좌를 향해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의 사랑을 모셔들이게 하소서

모든 사람들이 다 변하나 배반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고 동일하심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믿게 하옵소서

우리 앞에 있는 문제가 아무리 높고 험하다해도 주님 십자가를 바라보는 당신 백성들에게는 한낱 넘어가고 말 작은 개미집과 같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성서봉독

우리가 함께 교독할 구약의 말씀은 사 52:13-53:12입니다. 이 본문은 이사야에 나오는 네편의 종의 노래 가운데 가장 길고 잘 알려진 에언시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예언시가 바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감수하신 십자가의 예수를 대망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오늘 읽을 시는 두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은 종이 감당해야할 고난에 대한 것이지만 뒷부분인 53:10-12은 죽었던 종의 회복과 평강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이렇게 대조적인 두 구조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우리의 소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도서간문

성금요일에 해당하는 사도서간문은 히 4:14-16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대제사장들과 달리 아론의 계열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늘로 부터오신 분입니다. 비록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어떤 인간 대제사장 보다 우리의 고통과 질고 연약함을 더 가까이서 아시는 분입니다. 이 분을 신뢰하고 붙드는 것이 참된 축복이라는 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 본문을 통해 전합니다.

 

복음서 유월절 저녁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과 세족을 마치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그때 제자들은 계속 잠만 잡니다. 주님이 기도 후 그곳에서 내려오셔서 이제 가룟유다의 밀고로 잡히게 됩니다. 성금요일 교회력 복음서 본문인 요18:1-19:42까지의 말씀은 바로 잡히시는 날 밤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 직전까지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이 말씀을 제가 봉독합니다. 조용히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고 우리는 그 댓가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움을 받았습니다.

이날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은 주님 안에서, 그리고 주님이 몰고 오시는 세상에서 새 생명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유일하신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히 살아계셔서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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