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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러 오시는 분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고민과 계획들이 있었을테고,
가족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오셨을 텐데요. 또 본인의 목표도 당연히 있을 것이고요.
그런데 그런 도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큰 용기라고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해외에 산다는 게 많이 두렵고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쨋든 다 사람 사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워홀러 4년 차 홍석)
워킹 홀리데이! 국가 간 협정을 통해 젊은이들이 상대 방문국에서 합법적으로 취업을 할 수 있고
공부와 여행까지 병행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한국은 현재 23개 국가 및 지역과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끄는 나라로 호주를 꼽을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20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해서 막연하게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가
정말로 제가 20대가 넘어가는 시기가 되어서… 그전에는 꼭 가야겠다 결심을 해서 오게 됐습니다.”
늦기 전에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결심을 하며 호주를 선택한 김상혁 씨! 상혁 씨는
어떤 이유로 호주를 선택했을까요?
“돈을 좀 많이 벌고 싶었는데 호주가 임금이 가장 높아서 결정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다른 워킹홀리데이 국가들은 제약이 좀 많은데요.
캐나다 같은 경우에 인원수 제한이 있고 다른 나라 같은 경우는 언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나마 익숙한 영어이고 제한도 없어서 호주로 오게 됐습니다.”
워킹 홀리데이로 어느덧 호주 생활 4년차가 된 홍석 씨,
홍석 씨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워킹 홀리데이를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살 때 한국에서 신안군 작은 섬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알던 세상은 그 섬 하나가 전부였는데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느끼는 게
오래전부터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워킹홀리데이를 알게 돼서
해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홍석 씨는 호주에 오기 전 두 가지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고 말하는데요.
“호주에 올 때 두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는 돈 그리고 두 번째는 경험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호주는 전 세계에서 최저임금이 제일 높은 나라인 걸 알게 됐었고
그리고 다문화 국가인 만큼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직종의 일을 해볼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런 걸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워킹 홀리데이 비자 획득을 위해 시골 마을에서 열심히 일해 온 홍석 씨!
“첫해에는 세컨드 비자 취득을 위해서 스탠소프라는 시골 동네로 가서 3개월 동안 딸기 농장에서 일을 했어요.
그 후로 쭉 그 동네에 잘 정착해서 자리 잡고 두 번째 해엔 또 서드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서
6개월이라는 시간을 일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워릭이라는 동네에 가서…거기에 큰 소공장이 있어요.
그 소공장에서 또 1년 동안, 안정적인 직장에서 꾸준한 수입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그리고 세 번째 처음으로 골드 코스트라는 도시에서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언제나 밝게 생활해 온 홍석 씨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후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막 락다운이 시작됐었을 때 저는 멜버른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요.
그게 2020년 3월인데 호주가 막 그때쯤부터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서 락다운이 하나둘씩 시작됐을 때였어요.
근데 제가 마침 그때 멜버른으로 딱 이사를 갔고 가자마자 락다운이 시작됐어요."
그래서 일은 뭐 당연히 할 수 없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세는 계속 내야 했었고 어쨌든 식비도 지출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정말 빵 한 조각 사서 버티고 하루를 버티고
이랬던 적이 있었는데요. 사실 그때가 제일 말 그대로 팬데믹이었던 것 같아요.
브리즈번에서 워킹 홀리데이 학생들을 위한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김용성 목사.
김목사는 국경이 재개방된 후 호주에 온 여학생이 브리즈번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어려움을 겪은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워홀러로 들어왔거든요. 그때 당시엔 들어온 지 일주일 밖에 안 됐을 때인데
브리지번 시티 안에 백팩커에서 머물다가 거기서 코로나에 감염이 된 거예요.
자가 진단 키트를 한국에서 가져온 게 있어서 테스트를 한 거예요.
근데 거기에 양성 반응이 나온 거예요. 그래서 백패커 매니저한테 보여주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라고 했더니 백팩커 매니저가 당장 나가라고 그 밤에 그냥 쫓아보냈대요.
그래서 짐 들고 나왔대요. 그때 당시 시간이 밤 열시 정도 됐는데 나와서 갈 데가 없으니까…
다행히 그 백패커에서 같이 지내던 외국 친구들이 옆에 같이 있어준 거예요.”
결국 한인회를 통해 김목사에게 연락이 닿았고, 김목사는 청년이 머물 곳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여학생이 보건국에 연락을 하고 임시 숙소로 향할 수 있게 됐다는 연락을 받게 됐습니다.
“보건국에서 한 시간 내로 택시를 보내줄 테니까 그걸 타고… 공항 근처에 있는 임시 숙소가 있대요.
그런 케이스가 여러 케이스가 있어서 임시 숙소가 마련이 돼 있고 그리로 가면 거기서 그다음 날 낮에
버스에 다 태워서 투움바로 이동을 한다고.. 그렇게 해줄 테니까
한 시간만 그 택시를 기다려라 그렇게 해서 통화를 했다는 거예요.”
비단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팬데믹 기간에 겪었던 심리적 불안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을 텐데요. 호주에서 심리학 박사 과정을 하며 현재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민 스튜어트 씨는 워킹 홀리데이 학생들의 비자 특성상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조언합니다.
“특성상 한자리에 정착이 안 되는 거죠. 한 곳에서 관계를 맺어서 익숙해진 사람들하고 유지가 안 되고
떠나야 되는 거죠. 그 사람들이 떠나야 되고 하니까 약간 불안한 상태에서 불확실함을 가지고 온 상태에서
자꾸 이게 변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또 어떤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고, 내가 어떤 직업을 잡을지도 모르고,
농장이 어떤지도 모르고 들어가고 그러니까 그런 불확실성에서 계속 1~2년을 살다 보니까
그게 부정적인 경험이 계속되다 보면은 사람의 불안이 더 올라가게 되죠.
그러니까 내 스트레스에 더 예민해지고, 내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더 불안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젊은 시대에, 젊은 나이에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
누구나 다 갖고 사는 불안인데요 거기에 조금 정도가 더 올라가는 거죠.”
민 스튜어트 씨는 학생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객지 생활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상황이 바뀌어도 이것도 하나 다른 경험을 했네, 다른 사람을 만났었네, 되게 좋은 사람을 만났었네,
그리고 안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치더라도 그 사람 이상했네 하고 넘어가고요. 내가 너무 엇나게 했다고
그렇게 너무 크게 확대 이해시키는 것보다 그래서 이렇게 조금 나를 알아가면서
그러니까 내가 어느 정도 핸들링 할 수 있는지도 알아가면서
그렇게 좀 워킹 홀리데이 생활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부분에서 옆에 좋은 친구분들이 있으면 정말 좋아요. 의지해서 작은 대화도 하고…
아침에 그냥 뭐 먹었어 하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작은 대화도 가능하면서
내가 오늘 기분이 완전 다운이야 이거 어떡하지 하고 이렇게 속 얘기도 하고
왜 이렇게 다운인지 모르겠어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어 그런 깊은 얘기도 할 수 있는
분들이 주위에 정말 있으면 좋고요. 없으면 요새 텔레헬스도 있고 또 카톡,
오픈 챗에 엄청나게 그런 네트워크가 많더라고요”
이런 가운데 민 스튜어트 씨와 호주 한인들이 워킹 홀리데이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비영리 단체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이민자로 오고 워킹 홀리데이로 와서 살다 보니까
이런 트렌지션 과정에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으면서 저희는 이제 익숙해지고
호주 문화에 많이 이렇게 같이 묻어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이 됐으니까요.
처음 왔을 때 그리고 또 영어가 익숙하지 않을 때는 되게 유용한 정보들을 못 찾으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그런 정보 제공을 한국어로 번역을 해서 드리고, 정보를 요구하시는 분들 워크숍도 해드리고,
교육적인 부분도 해드리고, 그리고 워홀러 분들뿐만이 아니라 한인분들,
상담에 대해서 거부감을 받으시는 분들을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을 찾는 거죠.
세계적 논문이나 이런 데서 봐도 피어서포트라고 하는데요.
또래 안에서 같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신 분들끼리 만나서 대화를 통해서 침묵 같은 것도
조금 키워나가시면서 공유를 하시는 그런 방법이에요. 부담감이 없이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는 퀸즐랜드주 한인회 역시 어려움을 겪는 워홀러 학생들을 돕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당시 한인 회장을 맡았던 김혜연 씨의 말입니다.
“브리즈번은 상당히 젊은 도시입니다. 퀸즐랜드는 젊은 분들도 굉장히 많이 고생을 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소외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있어서 많이 어려움이 있었죠.
그래서 시작한 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해서는 푸드 패키지라든지
아니면 생활용품 패키지를 만들어서 돕는 일을 많이 했고요. 신청자를 받고
그다음에 또 지방에 있는 분들에게도 운송을 해주고요. 보내주고 이런 일들을 많이 하면서
굉장히 많이 활동을 했어요. 한 6주 정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한 200개 이상씩 보내드렸고요.
또 픽업도 할 수 있게 해드렸고요. 그 과정에서 여러 한인 교민들께서 도움의 손길도 굉장히 많이 주셨고
재정적으로나 아니면 물품 도네이션으로 도움을 많이 주시고 하셔서 그런 부분들을 또 할 수 있었고요.
또 연락이 오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정신적으로 상담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연결시켜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진행했던 것 같아요. “
많은 한인 동포들이 한국에서 온 청년들을 돕기 위해 힘을 모은 이유,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 나와 있으면서 힘든 부분들이 있는데요.
동포로서 서로 돕고 같이 살아가기 위한 거죠.
호주에서 살면서 동질감도 많이 있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돕고 싶어서 많이 신경을 썼고요.
전체적으로 임원들하고 같이 열심히 도우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김혜연 씨는 호주 워킹 홀리데이로 오는 청년들에게 기본적인 안전망을 꼭 만들어 놓길 당부합니다.
“꼭 보험을 들어서 안전망을 만들어 놓는 게 좋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이랄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지식은 숙지를 해두면 더 도움이 되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어디를 가서든 당당하게 열심히 생활하면 분명히 보상도 있고 보람도 있고
주어지는 대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미 호주에서 4년째 생활 중인 홍석 씨가
새로 호주를 방문한 학생과 워홀러를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조금이라도 영어 공부를 하고 오는 것과 안 하고 오는 것은 큰 차이인 것 같습니다.
그 나라의 문화, 언어, 생활, 모든 것을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곳에서의 생활도 즐길 수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막 도착한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인생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길은 있으니까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 자신을 믿고 가다 보면 본인의 길이 보이고
증명해낼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온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워홀러 서하늘 씨는 한국과 다른 호주의 느린 일처리 속도를 언급하며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다고 조언합니다.
“어느 나라에 가도 서울 같은 도시는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그 정도의 인프라를 여기서 자꾸 기대하게 되는데요.
인터넷이나 여러 가지 공과금 관련된 일들이나 이런 걸 처리를 할 때 빨리 되길 바란다거나,
정확한 일 처리를 바란다거나, 이런 것들이 사실은 조금 무리인 때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행정적인 일을 할 때는 조금 여유를 갖고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영화 편집 일을 했던 서하늘 씨는 호주에 와서도 관련된 일을 찾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며,
자신이 원하는 직종이 해당 도시에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워홀러를 시작하라고 조언합니다.
“일단 제가 조금 실수를 했던 건 내가 하고 일, 그 직종이 내가 가는 도시에도 있는가?
그러니까 커리어 패스로 생각을 해보면요 그곳에 가도 정말 내가 할 만한 일이 있는가를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 캐시어나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한국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이곳에서도 이어가고 싶다면
직종과 연관이 있는 도시를 찾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의료 보험을 꼭 들고 오시거나 혹은 여기서 호주 보험을 또 드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홍석 씨는 용기 있는 결단을 하고 호주까지 온 워홀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함께 힘을 모아 도전해 나가자고 말합니다.
워홀러 오시는 분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고민과 계획들이 있었을테고,
가족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오셨을 텐데요. 또 본인의 목표도 당연히 있을 것이고요.
그런데 그런 도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큰 용기라고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해외에 산다는 게 많이 두렵고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쨋든 다 사람 사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