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 아리랑(세마치 장단)의 유래에 대해서 ✯ 밀양(密陽) 아리랑 유래 ✯ 『밀양 아리랑』은 경상도 민요이나 지금은 전국적으로 불러지는 불려지는 대중 민요가 되었다. 이 노래에 대한 유래는 이렇게 전해지고 있다. 그 옛날 밀양 부사(密陽 府使) 이(李) 아무개에게 ‘아랑’이라고 하는 어여쁜 딸이이었다. 얼굴이 아름답고 마음이 어질며 재주 또한 많아서 원근(遠近)동리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관아(官衙)에서 심부름하던 젊은 관노(官奴) 허(許)씨가 아랑의 고운 자색에 반해 급기야 아랑의 유모를 꾀어 아랑을 유혹토록 하니, 그 곳이 3월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던 영남루(嶺南婁)였다. 백화난만(百花爛漫)한 그 곳에서 싸늘한 강바람을 쐬며 하는 달구경 또한 정취(情趣)여서 아랑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유모는 간 데 없고 느닷없는 사내가 나타나 연모(戀慕)의 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 무례함을 꾸짓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애원하는 지라.... 결국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챈 허씨는 이제까지의 연정을 증오하면서 단도(短刀)로 아랑을 찔러 죽인 것이다. 그 후로 밀양에 신임 사또가 도임하면 그 첫날밤에 아랑의 넋이 나타나 억울함을 통곡하는데, 그 때마다 신임 사또들이 혼절해서 죽고 말았다는 것. 이런 소문을 들은 서울 남산골의 어느 젊은 선비가 그 내막을 캐기 위하여 자원하여 밀양 부사로 내려왔다. 이 신임사또가 초야에 촛불을 밝히고 기다림에 아니나 다를까 아랑의 넋은 또 다시 나타났고, 자초지종 하소연을 듣고 난 젊은 사또는 이튿날 허씨와 유모를 잡아 가두고 아랑의 넋을 위로해주고 영남루 아래에 아랑각이라는 사당을 지어 주었다. 이 후로 밀양의 아낙네들은 아랑의 정절(情節)을 찬미하게 되었고, 그 때 지어 불렀던『아랑가』가 세구연심(歲久年深)하여 오늘날의 『밀양아리랑』이 되었다는 것이다. |
첫댓글 아버지의 손에 잡혀 학창시절에 아랑낭자전 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어요~내용이 같네요...수 많은 사또가 죽었고 나중에 영리하신 부임사또에게 아랑의 넋이 나비로 변 하여 범인의 머리에 앉아 사또가 그 범인을 찾을수 있었고 사당을 지어 넋을 기리니 원한을 풀고 저승으로 갈 수 있었다는 내용...그 아랑낭자의 아랑가가 밀양 아리랑이 됐다니 새로운 사실을 알고 갑니다!~~감사 드려요!~~()
네 그래서 늘 귀신은 있다 없다라고 말하질 못하지요 그들 마음속에 자리하니요
아랑의 본명은 윤동옥,아랑을 죽인 아전의 이름은 주기였는데, 이 아랑의 전설을 비틀어보면 아랑을 죽인 <주기>가 이 전설의 일등공신이라 생각해봅니다. 그냥 제생각입니다 ㅎㅎ 아랑의 후예는 지금 다 어디로 갔는지~~올려주신 글 읽으며 추억에 젖어봅니다 고맙습니다^^
네 밀양을 좋아하고 영남루에 혼을 앗긴후 자주 찾아갑니다 찬바람만 불어도 핸들을 그곳으로 꺽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