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읽는 동화] 정혜원/ 쓰레기 줍는 엄마 < 작가세계 < 작가조명 < 기사본문 - 문학인신문 (munhakin.kr)
쓰레기 줍는 엄마
정혜원
삼월답지 않게 소나기처럼 봄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엄마와 나는 살던 아파트에서 산동네 아주 작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 다 아빠 때문이다. 아빠가 무리하게 사업만 벌려놓지 않았더라도 텔레비전 속에나 나오는 이런 곳에 이사 오지 않았을 것이다.
“영민아, 학교에 혼자 갈 수 있겠어?”
엄마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였다.
“엄마는 내가 이래봬도 오학년이나 되었다고요. 키가 좀 작아서 그렇지. 꽤 쓸만한 녀석이라고요.”
내가 말하자 엄마는 금방 소녀처럼 웃었다.
비슷비슷한 대문을 수십 개 지나면 도로가 시작된다. 거기서 한 십오 분쯤 가면 학교가 나온다.
오늘도 공부가 되지 않는다. 소나기가 창문을 세차게 때리고 또 때린다. 아빠가 돌아왔을까 하는 생각에 선생님의 목소리를 기차처럼 훌쩍 지나가 버린다.
“김영민, 너 오늘도 창문만 보고 있으면 어떡해? 수업에 집중해야지.”
선생님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친 듯 하다. 그래도 난 이 학교에 와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우리 선생님이다. 올해 처음 발령받았다는 선생님은 뭐든 무척 열심히 한다. 무엇보다 아주, 아주 미인이다. 아무리 나이를 계산해 봐도 선생님과 결혼할 확률은 영 퍼센트다. 그러니 나중에 꼭 우리 선생님 같은 여자를 만나야 겠다.
“네, 예쁜 선생님. 앞으로 집중할게요. 죄송합니다.”
난 언제 일어섰는지 벌떡 일어나 앵무새처럼 말하고 있었다.
“어머, 저 넉살 좀 봐. 영민이 파이팅! 열심히 하자.”
선생님의 얼굴에 성난 빛은 사라지고 웃음이 번져 나왔다.
이제 돈이 없으니 학원 갈 필요도 없고 그동안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게 되었다. 운동장에서 놀고 싶어도 오늘은 비가 와서 그냥 집으로 갔다.
“엄마, 뭐 하세요?”
“어, 그냥 비 구경하고 있어.”
“지금 한가하게 비나 구경 할 때가 아니잖아요. 아빠는 잠적한지 삼 개월이 지났고 생활비는 바닥이 날 지경인데요. 무슨 일이라도 하셔야지요?”
난 엄마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걸 보면 속이 답답하다. 어쩌다 이런 집에 태어났는지도 원망스럽지만 저렇게 어른답지 않게 초등학생인 나를 걱정시키는 엄마도 화가 난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니? 한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고 네가 알다시피 음식도 잘 못하고 몸도 약한데. 아빠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엄마, 정말 이럴 거예요? 무슨 일이라도 해서 나를 먹여 살리고 공부도 시켜야지요. 돈 떨어지면 학교도 가지 말고 밥도 먹지 말고 다 죽자는 건가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엄마가 어느새 울음을 터뜨렸다. 순간 후회가 밀려왔지만 때는 늦었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엄마도 속상하실 텐데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내일이라도 같이 일자라 알아봐요. 네-”
엄마는 아빠가 사업이 실패하여 잠적하고 나서 아이가 된 것 같다. 늘 소녀 같은 엄마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저렇게 자신감을 잃지는 않았다. 이제 아빠 대신 내가 소년가장이라도 되어야하나 갈등이 되었다.
그날 저녁 주인집 아줌마가 달래부침을 가지고 왔다.
“영민 엄마, 내가 다니는 마트에 일손이 부족해서 사람 구하는데 일 해볼래요?”
주인집 아줌마가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내 얼굴만 쳐다보았다.
“네, 그럼요. 안 그래도 일자리를 찾는 중이었어요. 아줌마, 감사합니다.”
내가 나서서 말하자 주인집 아줌마가 웃었다.
“영민이는 군대 갔다 온 아들 같네. 씩씩해서 좋다. 그래 그렇게 살다보면 아빠도 오시고 좋은 날이 있는 거야.”
아줌마가 내 등을 두들겨주고는 나갔다.
“엄마, 잘 되었어요. 아줌마 따라서 일 나가면 시간도 빨리 가고 돈도 벌고 좋을 거예요.”
내가 말하자 엄마는 여전히 겁먹은 얼굴이다.
아빠는 이런 엄마를 두고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르겠다. 집도 넘어가고 갑자기 이렇게 해놓으면 어쩌란 말인가. 정말 속이 터질 거 같다.
다음날 엄마가 주인집 아줌마를 따라 마트에 갔다. 나도 마트 앞까지 따라 갔다가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가서도 엄마가 잘 할지 걱정이 되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난 마트로 달려갔다. 엄마가 녹색 앞치마에 머리수건을 쓰고 채소코너에 서있었다.
“엄마, 할만 하세요?”
난 엄마 옆에 다가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어, 그래. 다리 아픈 것만 빼고. 집에 먼저 가있어.”
엄마가 괜찮다는 듯 자꾸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첫날부터 엄마가 저녁 여덟 시를 넘겨서 왔다.
“엄마, 많이 힘드시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밥도 안 주고 자리를 깔고 누웠다. 난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라면을 끓여먹었다. 그리고 나서 안마사라도 된 듯 엄마의 팔,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엄마는 힘이 많이 드는지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 우리가 그 동안 아빠 덕에 편하게 산거예요. 다른 엄마들도 마트에서 일하며 열심히 살잖아요. 저도 알바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볼게요.”
마음이 약해진 엄마를 달래주었다.
엄마는 무척 힘이 들어보였지만 빠지지 않고 마트에 열심히 나갔다. 나도 걱정이 조금씩 덜어졌다.
“영민아, 이거 봐라. 누가 이사를 가는지 이렇게 좋은 의자를 버려서 가지고 왔다.”
엄마가 퇴근하면서 의자 하나를 주워가지고 와서는 좋아했다.
“네, 정말 새것 같네요. 제 책상의자 할게요.”
엄마가 모처럼 내 칭찬을 받고 활짝 웃었다.
한 달이 지나고 월급을 받은 날, 엄마가 이 집에 이사 오고 처음으로 삼겹살을 사가지고 왔다. 오랜 만에 삼겹살 익는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배가 터지게 먹으니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엄마는 종종 남이 버린 물건을 주워왔다. 플라스틱 바구니와 그릇, 물병, 바가지, 녹슨 식판, 망가진 밥솥 같은 물건을 집에 들여왔다.
“엄마, 이제 그만 주워오세요. 이러다가 집도 좁은데 물건들로 꽉 차겠어요.”
“영민아, 이거 다 돈 주고 사려면 얼마나 많이 드는데. 놔두면 다 쓸 데가 있어.”
엄마는 조금도 고집을 꺾지 않고 날마다 뭔가를 들고 들어왔다.
“영민 엄마, 그만 좀 주워 와요. 난 내 집에 쓸 데 없는 물건으로 차는 거 딱 질색이에요. 없이 살아도 깔끔하게 사는 게 좋거든요.”
주인집 아줌마가 좀 화가 난 듯 보였다.
“네, 저도 엄마한테 주워오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앞으로는 안 주워 오실 거지요?”
난 서둘러서 주인집 아줌마의 화를 가라앉히려고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엄마, 다시는 쓸데없는 물건 주워 오지 마세요. 이러다가 쫓겨나게 생겼어요.”
“다 필요한 물건인데...... .”
엄마가 속상한 듯 자리에 누웠다. 며칠 동안 엄마는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난 엄마 몰래 방에 있는 빈병이나 플라스틱 그릇을 가져다 버렸다.
뒷마당에도 빈 유리병과 빈 플라스틱 병이 쌓여서 사람들이 가며오며 쳐다보았다. 난 엄마가 주워서 쌓아놓으면 몰래 버리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어머, 저 집 좀 봐요. 지저분하게 쓰레기를 쌓아두었네요.’
‘그러게요. 저러다가 불이라도 나면 다른 집까지 큰일 나겠어요.’
‘통장한테 말해서 안 치우면 이 동네에서 나가라고 해야 할까봐요.’
지나가던 아줌마들이 한참 서서 우리집을 보고 말했다.
엄마는 왜 사람들한테 저런 말을 듣는지 모르겠다. 그냥 열심히 살면 언젠가 아빠도 돌아올 것이고 나도 열심히 공부할건데. 정말 걱정이다.
갑자기 누군가 마당에 있는 물건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영민아, 누가 엄마 물건 함부로 버리라고 했어? 너 정말 엄마를 어떻게 보고 그래?”
엄마가 머리끝까지 나서 나를 쏘아보았다.
“우리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이러다가 여기서도 쫓겨나면 어디로 갈 거예요?”
내마음을 몰라주는 엄마를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 쓸데가 있어서 가지고 온 건데. 한번만 내 물건에 손대면 혼날 줄 알아.”
엄마가 주워온 물건을 방 한 구석에 쌓기 시작했다. 일 년이 가야 쓰지도 않을 물건들이 방에 차기 시작했다. 이제 누가 이 방의 주인인지 모르겠다.
“영민아, 찐빵 먹어라. 방금 쪘다.”
하고 주인집 아줌마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다 버린 줄 알았더니 언제 이렇게 쓰레기를 모아 두었지. 영민 엄마 쓰레기장 되기 전에 다 처리해주세요.”
주인집 아줌마가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아무리 주인이라고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내 방에 물건 쌓는 거까지 참견할 건 없잖아요. 다 필요해서 그러는 건데.”
엄마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아주머니, 곧 정리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말하자 엄마가 다시 나섰다.
“넌 어린 애가 어른들 말하는데 빠져. 어디서 버릇없이. 아무튼 내가 돈 주고 사는 집이니 내가 알아서 할게요. 참견하지 마세요.”
엄마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서 좋지만 어쩐지 이상한 고집 같아 보여서 걱정이 되었다.
“어머나! 기가 막혀서. 취직도 시켜주고 난 잘해준다고 잘해주었는데.”
주인집 아줌마가 화가 나서 나가버렸다.
“엄마, 왜 그러세요? 주인집 아줌마한테 그러면 어떻게 해요?”
“넌 애늙은이 같은 소리는 그만 하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아주 엄마를 우습게 안다니까.”
엄마가 방안에 물건들을 차곡차곡 다시 쌓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병이 천장까지 닿았다. 이제 딱 이부자리 펼 공간만 남았다. 난 자꾸 가슴이 답답해왔다. 엄마가 너무 심하게 화를 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여보, 내가 당신이 없는 동안 많은 물건을 모아 두었어요. 이거 팔면 다 돈 될 거예요. 이거 팔아서 사업자금하세요. 여보, 가지 말아요. 영민이랑 둘이서 사니까 무서워요. 예전처럼 우리 잘 살아봅시다.’
엄마가 잠꼬대를 심하게 하여 잠이 깼다. 엄마는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그것이 비록 쓸데없는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열심히 모은 것이 큰일이라고 생각한 거 같다. 난 울음소리가 날까봐 얼른 밖으로 뛰어나갔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밤은 알록달록한 불빛이 찬란하게 보였다. 하늘과 가까운 우리집에서 보는 별은 제법 빛을 내고 있었다. 난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기도를 했다.
‘아빠가 보고 싶어요. 엄마를 위해서라도 아빠 좀 빨리 돌아오게 해주세요.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좋고 부자인 아빠가 아니라도 좋으니 제발 아빠 좀 돌아오게 해주세요. 이러다가 엄마가 큰 병에 들 것 같아요. 제발요.’
눈물이 어느새 입으로 들어와 짠맛이 났다. 영화처럼 소설처럼 신이 약속이라도 하듯 뭔가 증표를 보여주었으면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저벅저벅 발소리가 났다. 혹시 아빠가 아닐까 해서 숨이 막혀왔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처럼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우리집 대문을 넘어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술 취한 아저씨인 거 같았다. 그래도 난 실망하지 않는다. 난 엄마를 지켜야 하고 예쁜 우리 선생님 같은 여자와 결혼도 해야 하고 시를 멋지게 쓰는 시인도 되고 싶으니까. 오늘은 아니라도 언젠가 저 파란 대문으로 아빠가 돌아올 것이다. 꼭 그럴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문학인신문>의 '어른이 읽는 동화'란에 게재됨(2024.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