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지,
십자가를 축복의 도구로 바꾸시고
십자가에서 맞이한 마지막 순간까지
사명을 다하신 당신을 닮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 제 삶 속에 이루어지게 해주소서.
오늘의 기도지향
여행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영원한 안식처이신 주님,
무엇인가를 찾아 길을 떠나는 모든 이들을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고
가는 곳마다 즐거움과 경이감을 체험하게 하시어 넘치는 생명력을 안고 돌아와
일상의 삶을 또 다시 충만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요한 5,1-3ㄱ.5-16
1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5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 13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오늘의 묵상
원하십시오
애플 컴퓨터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한 연설이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 는 잡스가 졸업생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 말을 ‘배고픈 사람으로,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라.’ 정도로 옮길 수 있을까요.
배고픈 사람, 모르는 사람은 먹을 것을 찾고 배우려고 합니다. 음식을 찾는 사람, 배우려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만족에 이르는 사람, 배움에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실함의 차이에 있겠지요. 실상 우리는 원하면서도 절실하게 원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반대되는 것을 바라기도 하지요. 절실함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나뉘어 있다는 것이며 확실하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을 모시고 다니는 사람’ 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로마로 압송되는 도중 유명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썼습니다. 순교를 열망하면서 로마 교회 신자들이 자신의 구명 운동을 하지 말 것을 부탁하는 그 편지에는 ‘나는 그리스도의 밀이니 맹수의 이빨에 갈려야 합니다.’ 라는 성체성사에 대한 아름다운 구절이 나옵니다. 이 편지 말미에서 성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원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황인수 신부 (성바오로수도회)]
영적독서
하느님의 은총을 깨달읍시다
바울로 사도가 갈라디아인들에게 이 편지를 쓴 것은 그들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을 율법의 지배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음의 은총이 그들에게 전파될 때 할례를 받은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받은 은총의 선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율법의 지배 아래 있기를 원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의를 섬기는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죄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부과하신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의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로운 법을 주심으로 해서 그 율법이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 주기만 하고 없애 주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하여 활동하는 신앙의 은총만이 우리 죄를 없애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교에서 개종한 이들은 은총 지위에 세워져 있던 갈라디아인들을 율법의지배 아래 두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갈라디아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고 유다교 예배의 외적 예식의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면 복음은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다교에서 개종한 이들은, 사도 바울로가 이방인들이 개종할 때 그들에게 유다의 관습을 따르라고 권한 다른 사도들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갈라디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그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그런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복음은 아무 유익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편지에서 말해 주고 있듯이 바울로 사도는 베드로 사도더러 이중적인 행동을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로마서에서도 바울로는 이 문제에 대해 말해 주고 있지만 갈라디아서와는 한 가지 차이점을 지닙니다. 로마서에서는 이 문제에 있어 뚜렷한 결정을 내리면서 유다교에서 개종한 신자들과 이방출신의 신자들 간에 발생한 이 논쟁을 해결해 줍니다.
한편 갈라디아서에서 바울로는 유다교에서 개종한 이들로부터 율법 준수를 강요받아 그들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흔들리고 있던 이들에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인들은 사도 바울로가 자기들을 보고 할례를 받지 말라고 말할 때 그것은 참된 교리가 아니라고 믿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편지 서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하느님을 외면하고 또 다른 복음을 따라가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서두의 말씀은 이 문제점을 간단한 말로 넌지시 비쳐줍니다. 앞에 나오는 인사의 말씀에도 자기가 사도라고 말할때 "그 사도직은 사람에게서나 사람을 통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라고 덧붙입니다. 이와 같은 말은 바울로의 다른 편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울로 사도는 이 말씀으로써 갈라디아인들 보고 유다 율법의 필요성에 대해 납득시키려 하는 이들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온 이들이라는 점을 보여 주고 있고, 복음적 증거의 권위에 있어서 자기 자신이 다른 사도들 보다 더 낮은사도로 여김받을 이유가 없으며,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사람에게서나 사람을 통해서" 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를 통해서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