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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자물쇠가 없는 문☆]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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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물쇠가 없는 문 ]
김흥기 시집 / 조선문학시인선 356 / 조선문학사(2013.11.30)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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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가 없는 문
김흥기
텅그랑 텅그랑 둔탁한 종소리가
달마을 꼭대기까지 찾아들면
골목 교회종탑은 온몸을 떨어 긴 여운을 뿌린다
조용한 교회당 뒤뜰‘티 없이 맑은 피부의 여인이 밥솥 뚜껑을 열자
김서린 얼굴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돋아나고
자작자작 밥물 잦는 오곡밥이 뜨거운 몸을 뒤척인다
엔진 소리 멀리 들리는 길모퉁이 천막 교회
푸른 종소리를 주우러 달려온 크고 작은 입들이
오곡밥을 한입씩 물고 별미라고 느낄 때쯤
여인이 저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예수님을 보았느냐고,
저들이 한입으로 대답한다
예수님은 바로 당신이라도!
여인이 맑은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모아
아미타불
사과
김흥기
그대 마음 몰라
망설입니다
그 눈빛은 내 머릿속을 혼란으로 메우고
이성은 착각을 불러옵니다
햇살이 그대 알몸에
울룩불룩 사춘기를 심을 때면
포른 저항이
발갛게
얼굴 붉힙니다
야! 저것이 금단의 열매인가요
사탄이 가르쳐 준
원죄의 유혹인가요
강렬합니다
어쩌나요
나, 그만 저 빛나는 맛에 무너져
과육을 아삭아삭 먹습니다
갑자기 부끄러워 손으로
가립니다
잔디
김흥기
생애의 절반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을 빤히 뜨고
나를 쏘아보는 거였어요
처음엔 그것이 우러러보는 줄 알고 우쭐댔지만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그때마다 광풍이 몰아쳐
웃자란 내 머리칼은 일제히 잘렸지요
절망이었습니다
골똘히 생각하다 마음을 바꿔먹었지요
머리를 곧추세우는 법보다
숙여 아래로 내려가
여럿이 손잡고 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산비알 뙈기밭 둔덕도 얽어주고
푸른 방석도 돼 주었지요
이제 내 삶 송두리째 밟히며 산다 해도
다시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진 않겠습니다
오히려 척박한 땅으로 달려가
푸른 융단이 되겠습니다
연탄불
김흥기
작은 소주방
유리창을 뚫어 서너 뼘 남짓 내민
함석 서린 연기가 솔솔 아침 공기를 타고 날아오른다
아, 살았구나!
유일하게 그의 건재를 확인하는 생명의 통로
밤새도록 고열에 시달리다 뿜어내는 독기가
이토록 반가운 안부의 전달자가 되리라곤
내 미처 몰랐다
아득한 고생대 단층 속에서
끓는 지열에 몸부림치다 까맣게 타버린 화석 같은 몸이
세상과 씨름하는 서너 평짜리 작은 공간
시끌벅적 헤픈 이야기들이 분분한 하루가
묻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시린 이야기로
쌓이는 삶터에
인파의 물결이 조금씩 출렁이기 시작한다
파도를 타는 무희의 춤사위처럼
연탄 한 장의 입김이 더 활활
하늘로 퍼져 오른다
진료일기. 1
김흥기
어미의 부축으로 들어서는
나어린 소녀, 뒤틀린 사지四肢를 보는 순간
머릿 속 영상 하나 빠르게 재생된다
도시의 흉기 앞에 맥없이 부서지던 한 생명_
아니 내 피붙이를 기억하며
나는 이미
영상 속 아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오늘은 메스가 아닌,
가느란 침으로 일그러진 뼈 짬을 뚫는다
파르르 떠는 생체반응
마비된 경락이
푸~ 터지자
온기가 여울처럼 돌아든다
처절한 영상도 스르르 되감기고
소녀의 미간에도
해맑은 꽃처럼 피어난다
기다림
김흥기
여기 그댈 위해 내 손수 만든
작은 정원에
산여울 돌아드는
연못이 있고j
꽃비늘 반짝이는 은어가 있소
오래 묵은 돌담 아래
옛 아낙 손때 묻은 항아리가 놓여 있고
해묵은 옷장을 이고 있는
정자가 있소
달이 뜨면 달빛을 벗하고
달이 지면 물빛을 벗하다가
별이 지는 새벽엔
차가운 가스등에 불을 댕겨 놓으리다
새벽이 희쁫이 눈을 뜨면
이슬 턴 초록의 머위 잎을 따다
외씨버선 짝맞는
꽃신 지어 보겠소
멸망을 보다
김흥기
오색 연등이 줄지어 늘어선 거리
부처가 돌탑을 벗고
슬며시 나와
비틀거리는 군중 속으로 들어간다
번뇌를 짊어 진 무리들이 윤화의 강변을
서성거리는데
같이 가자고, 질긴 사바의 연연을 내려놓자고
목탁을 두드리고
죽비로 탁탁 등짝을 후려쳐
부처가 잠을 깨운다.
어떤 이는 돼지의 상판대기로,
혹은 승냥이의 치켜든 눈꼬리로
으르렁 거리며
날카로운 이빨에 탐욕을 물고 눈치를 살핀다
부처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연등을 끄고 부도 속으로 들어간다
빈집
김흥기
생철 비중이
바람에 펄럭이는 저 허름한 빈집
구멍 난 바람벽에도
한때 철철이 황토물 곱게 먹인 때때옷 갈아입고
앞마당이 북적거리던 때가 있었다
하나의 뿌리에서 돋아난 줄기가
한 볼 가득 웃음을 터뜨리고
가지마다 붉은 태양이 주렁주렁 열글던 날
자궁처럼 뜨겁던 보금자리는
천년 시간에 멈춰 섰다
눈 속 가득 채웠던 사랑을 보내고
절망을 견디는 시간
언제까지 넌 끊어진 핏줄을 기억하며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남을 것이냐
집착은 빈 메아릴 뿐, 이파리 나부끼던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라
툭툭 떨어지는 뙤창문살 사이, 하늘이 휑한데
너의 뼛골인들 성하겠느냐
다 무너져 내린대도 슬퍼하지 마라
여기 또 하나의 낡은 것이 우두커니 서 있으니
화개약수
김흥기
얼마나 품었길래
그 머언 길 돌아
졸 졸 쉼 없이 흐르는가
수없이 오갔을
세기의
지층을 밟고
귀뚜리 우는 밤에도
산바람
굽이치는
돌 틈사이로
물방울
똑 똑 청아한 울림
적막을 깨는 천년
비밀의 갸륵한 맛
일몰日沒
김흥기
소리 없이 지다 뿌리는
저 오색 찬란한 색채는
어느 못다한 사랑을 남기고 가는
화가의 유작인가
그 누가
숨 멎는 순간을
저토록 화려한 빛깔로
치장할 수 있을까
절정의 순간보다
더 빛나는,
하늘 가득 수놓는 저 아름다운 소멸이
욕망으로 키운 숲보다
더 신비로운 줄 누가 알았으랴
저 황금빛 뒤태 청결한
빛고운 일몰이여
까치가 울면
김흥기
까악 깍
아침에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오신다기에
사립문 열어 놓고 해 종일
삽짝을 본다
시집올 때
웃손으로 오셨다 돌아가실 때
눈시울 붉히시던
큰 오빠가 오실까
반갑고 설레어서
이를 어쩌나
절 올릴 때 얼어 튼 손
보시면 어쩌지
오빠에게 졸아야지
이르지 말라고
돌아서서 눈물 짓던
어무이 한테는
다을새길
김흥기
산이 좋아 산으로 가네
숲이 좋아 숲으로 가네
이 길을 걷다 보면
산노루 맑은 두 눈에 구름이 흘러가고
산새도 지지지 놀래 부르네
그 옛날
목동이 소 몰고 가던 길
새순 돋던 찔레도 수줍어
배시시 웃고
산 꿩이
푸드덕 길을 내어 주네
고맙고 반가워서 이를 어쩌나
허리굽혀 사방에 절이라도 해야겠네
오늘도
이 길을 걷는 사람아
대물림
김흥기
애젊은 나이에
청상靑孀이 된 저 여인
손등 고목 껍질 같다
물려받은 재산이라곤 슬어 놓은 새끼들과
산비알 자드락 뙈기밭이 고작,
오뉴월 뙤약 볕에
메마른 밭고랑만 후빈다
입이 포도청이라 했던가
물 말아 후루룩
들이 킨 조 밥 덩이 한 술
속인들 편하랴
앙상한 가슴 쪼글쪼글 마른 젖꼭지를
빨다 울다
잠이 든 새끼들 불상타
어쩌랴!
이 허기의 단단한
대물림을
무엇이 되어 태어나랴
김흥기
일생을 묵묵히 헌신하는
너를 보면
울컥! 할 때가 있다
억울에 치齒를 떨며 분노를 누르는
너의 속은 불덩이겠지
그런데도
저항은 결코 대안이 아니라고
숙지는 너를 보면 외려 내 속 뒤집힌다
그 잔인한 폭력,
모독을 용케 참으며
절치와 부심을 곱씹는 인내는
세상 그 무엇에 견주랴
오직 뜨거워질 거라는
믿음 하나로 섬긴 너,
이젠, 그 믿음조차
아둔한 착각이었음을 알아야지
이미 너는 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보다 더 무서운
가마솥에서
달달 볶이고 있으니까
고목
김흥기
언제나 과묵한 너, 가지 떨궈
덩그러니 먼 산 지켜보고 있구나
돌이켜 보면 굳셀 때도 없지는 않았지
폭설을 견디며 뻣센 정강이로
찢어지는 가지를
칭칭 동여맸었지
다, 고물고물 슬어놓은 자식들
때문이었으리라
나어린 젖먹이까지 올망졸망
달고 사느라
어디 한눈팔 참 있었겠나
너의 몸에 쓸쓸한 생각이 보인다
내, 가끔 빈 들녘에 나가
우두커니 섰다 돌아오듯이
외로움을 타면 다 그런가 보구나
나 역시 여기 덩그라니 서 있으니
참회懺悔
김흥기
작음 못 가 야트막한 둔덕에
정갈한 여인이 한 분 꼿꼿이 앉아 있다
물안개 자오록한 수면엔
물비늘 돋아 찰랑찰랑 밀려가고
여인의 가슴도 파도처럼 출렁이다
시나브로 갈앉는다
한때 수려한 날개를 달고
오색 구름에 쌓여
욕망의 빗금을 그었지
그 눈부신 기억을 폭포처럼
내던진 여인이
못 속의 초상을 고즈넉이 바라본다
부르르 몸을 털던 여인이
물빛에 투영된 제 모습을 보고는
말갛게 정화된 참회의 눈물로 가슴을 헹궈
먼 산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문을 연다
김흥기
천둥이 섬 하나를 뒤엎을 듯이
꿍꽝거려
마당에 나서기 두렵다
언젠가 얼핏 들은 어느 여인 고백이
죄가 커 천둥 치면 새파래진다던,
그 말이 왜 이리 생생할까
그렇다면 분명 벼락이
내 머리통을 비껴가진 않을 텐데
절대 어물쩡 넘어가진 않을 텐데
죄상죄상이
요리조리 꼬리를 감춘다
아하, 그렇구나
이놈이 내 심장 한쪽에 똬리를 틀고 있었구나
이 벼락 맞을 놈이,
모가지 두어 개 엇바꿔 달고
오욕五慾에 맛이 들어 툭하면
짐승 발톱이 돋던,
인두겁을 쓴, 참으로
면목없는 놈
마당에 나서면 박살이 날
이장移葬
김흥기
파묘破墓요!
세 번 고하니, 장정들 삽질이
해묵은 흙 지붕 삽시에 허문다
세 살배기 외동이
아버지 주검 위에 뒹굴던 날로부터
예순 두 해,
삭아내린 흔적 위에
다시 뒹군다
아버지!
한 번도 불러 본 적 없지만
황토방 누런 바닥에
가지런히 누워계신 유골의 유전자가
내 뼛속에서 욱신거린다
너는 꼭
아버지를 닮았다며
눈시울이 벌겋게 된 누님의 손을 잡고
난생 처음
아버지!
하고 불러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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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먼발치서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는 온통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는데 막상 얼굴을 드러내 놓으려니 기쁨보다는 중압감이 앞섭니다.
돌이켜보면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속에 존재하는 어떤 가치를 찾아 숱한 방황을 하며 뜨거운 몸짓으로 세상과 몸 비비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일군 모든 것들이 진정한 나의 꿈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또한 내 안에 꿈틀거리는 또 다른 어떤 실체가 깃들어 있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 단단한 석회질의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와 영원히 마르지 않을 봄의 정원에 나를 꽃피울 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아직은 어쭙잖은 글이라 세상에 내어놓기가 치부를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부끄러워 숨고 싶은 생각 또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여러 친지들 위로에 힘입어 부끄럼을 무릅쓰고 어설픈 걸음마를 시작해 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아껴주신 여러 선배님과 사랑하는 가족들, 특히 제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박진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어려운 고비마다 혜안과 영감을 주신 조상님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初冬
石泉 金 興 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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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기 詩集 [※자물쇠가 없는 문※]
[ 시집해설 ] -
시역의 공간화와 自我擴大力
박 진 환(시인, 문학평론가)
1. 前提
일찍이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였던 바슐라르는 방을 방어 되고 소유되는 행복한 공간의 이미지로 지적한 바 있다. 소유되고 방어되는 공간으로서의 방은 그 때문에 안주의 공간이 되어주기도 하고 도피의 공간이 되어주기도 하는데 이때 두 경로의 해명이 요구되게 된다.
하나는 방이란 공간을 위협에 대처하는 방어 공간으로 보았을 때는 현실 수용에 실패한 도피처라흔 退行의 공간으로 보아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소유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안주의 공간, 곧 현실 수용에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공간으로 보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간 설정은 비단 도피나 안주만의 것이 아니라 현실 수용에 실패함으로써 자아축소화 현상으로도 보아줄 수 있고, 현실 수용에 성공함으로써 안주하는 자아확대력의 공간으로도 풀이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정신적 측면의 해석을 곁들여 볼 수도 있다.
전자적 도피는 자아협소화 현상으로, 후자적 안주는 자아확대력이 확보한 공간으로 보아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로 해석하진 이러한 공간은 시에서도 즐겨 설정되고 구축된다는 사실이다. 시인들은 스스로의 시적 공간을 자신의 시로써 설정하거나 구축하기도 하고 또 창조적 경로로 시역화하기도 한다.
시로써 설정하거나 구축된 공간은 시인들의 도피의 공간이나 안주의 공간이 되어줌으로써 시의 영토가 되기도 하고 성이나 시의 왕국이 되어주기도 하는데 전자의 경우 시의 공간이 퇴행의 장소가 되는가 하면 후자적 경우는 영토 확장을 통해 자아확대력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역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러한 전제는 시로써 설정하고 구축한 시의 영토가 방어 메커니즘의 자구수단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시를 조명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활용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준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시집 『자물쇠가 없는 문』이란 시집을 상재한 김흥기 시인의 시는 시집 제목이 암시하듯 문을 사이에 하고 설정되는 두 시적 공간을 조명해볼 수 있게 하는 근거를 제공해준다. 그것은 자물쇠가 채워져 잇지 않음으로써 언제나 드나들 수 있는, 개폐기능이 자유로운 통로를 제공해준다는 암시와 함께 문의 이쪽과 저쪽이라는 두 공간을 설정해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닫힌 공간이면서 동시에 열린 공간이 되어주는 것은 문이 아니라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은 문의 이쪽과 저쪽은 현실적 사실 공간보다는 정신적 출입이나 출타가 가능한 그런 내면 공간에 설치된 문쯤이 될 수 있게 된다.
이런 소외로 해서 김흥기 시인의 시집『자물쇠가 없는 문』은 공간시학이랄까, 정신분석학적 방법론을 동원할 수 있게 하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파트 구분 없이 90여 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는 시집엔 세 시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 세 공간의 시역이 구축되어 있다. 그 하나는 과거세이고 두 번째는 현실 공간, 그리고 세 번째 공간은 자아확대력의 확장으로 영토를 넓히고자 하는 미래지향 공간이다.
이 세 시의 공간을 시를 제시, 구체화 했을 때 시집 『자물쇠가 없는 문』의 공간들은 그 본태를 드러낼 것으로 본다.
2. 세 시적 공간
시적 세 공간 중 먼저 들여다봐야 할 공간은 과거세다. 과거세는 가버린 날의 현실 저쪽의 세계다. 그 때문에 유년이나 추억, 고향이나 사랑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는 현실적 반대력이나 제약이 없는 무풍지대다. 그래서 시인이면 예외 없이 이 무풍지대로 돌아가 편히 쉬면서 현실적 구속력이나 반대력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때 두 경로의 해명이 요구된다. 하나는 과거세로의 회귀가 현실적 반대력에 부딪쳐 나아갈 통로를 찾지 못함으로써 무풍지대로 돌아가는 현실도피로서의 퇴행이 될 수 있다는 점과,다른 하나는 현실 수용이 원만히 이루어짐으로써 과거세마저도 현실에 편입시켜 영토를 확장하려는 자아확대력으로 보아줄 수 있다는 점이다.
김흥기 시인의 시가 보여주는 과거세는 그 후자적일 듯싶다. 그것은 현실수용에 실패함으로써 과거세로 도피하는 자아협소와 현상으로서의 퇴행이 아니라 퇴행함으로써 과거세마저도 현실 공간으로 편입시켜 확장을 꾀하고자 하는 자아확대력의 소산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시를 제시했을 때 이해를 도울 것으로 본다.
가) 전깃불이 없던 시절
산골 마을 여름밤은 온갖 풀벌레들의
야외 콘서트 홀이었지
비록 조명등 휘황한 무대는 아니지만
사춘기를 건너는 또래들 가슴에는
뜨거운 여름이 요동치고 있었지
울룩불룩 혼기婚期에 부푼 가슴들이
시퍼런 감시를 피해
멧괴새끼들처럼
살금살금 요새에 집결하던
그런 날 밤의 묘미란
학습되지 않고서는 맛볼 수 없는 특급 메뉴였지
그 풀벌레 소리 감미로운 기억 저편에서
아슴푸레 다가오는
옛 영상 하나
밤을 패고 지키던 아버지
작대기 세례에, 초죽음이 되던
부활의 여신
봉자
그의 등줄기는 성했을까?
나) 온몸을 사르는 순간에도
노을로 수繡를 놓는
빛고운 낙조를 보아요 그대여!
숨 지는 찰나에도 불덩일 끌어 안고
잠수하는 저 올곧은 결단을
이 세상 피고지는 것
다, 불덩이에서 비롯되나니
연정戀情의
불덩이로 꽃을 피워
하늘 가득 꽃물을 쏟아 놓나니
소멸은 본디 없는 것
잠시 저 세상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일 뿐
그대여 주름진 얼굴이라
억울타 말아요
저 눈부신 낙조를 보아요
예시 가)는 옛날이야기」, 나)는「낙조를 보아요」의 각각 전문이다. 대부분 회상성 시편으로 장식된 시집 후반부에서 임의로 골라본 예시가 보여주듯 회상성과 과거세에서 발상되고 있다.
예시 가)에는 사춘기 때 있었던 회상 속의 여인이 등장하고 있다. 밤이슬 맞고 돌아다닌다고 아버지로부터 몽둥이 세계를 받았던 봉자라는 실명이 환기시키는 ‘기억 저편’은 전기불이 없던 시절, 산골 마을에서 있었던 회상성 과거세다. 아직도 풋풋한 풋내가 풍기는 시의 분위기는 예시가 도피의 메커니즘으로 감행했던 퇴행성의 자아축소력이 아닌 그와 반대로 자아확대력이 회상공간에서 이끌어 내어 확충하여 현실 공간에 편입시키고 있는 건강한 뒤돌아보기로 보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예시 나)의 주름진 얼굴을 억울타 말라고 청유할 만큼의 나이가 떠올리는 시행대로 ‘그대’를 회상하는 시다. 그런데도 그리움이라든지 미련이라든지 하는 공식화된 연정에서 일탈되고 있다. 시행에 의하면 ‘노을로 수 놓는/빛고은 낙조’, ‘불덩이로 꽃을 피워’라든지, ‘소멸은 본디 없는 것’이라는 등의 건강한 에스프리가 뒷받침을 해주고 있어 낙조가 수반하는 엘리지와 같은 비가적 요소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또한 소멸을 소멸로 보지 않고 소멸 뒤의 새로운 탄생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일종의 자아확대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고향이나 유년, 사랑과 같은 회상성 발상에서 형상화된 시는 많다. 그런데도 예외 없이 시편마다 건강한 정서, 사유가 상호 호소력으로 작용하고 있어 도피나 퇴행이 환기시키는 그런 나약성보다 거꾸로 건강미가 시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이점에서 볼 때 과거세마저도 현실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자아확대력의 소산으로 보게 해주고 있다.
두 번째 공간은 현실 공간이다. 현실 공간은 과거세가 회상성 발상에서 이루어졌던 것과는 달리 현실 자체이거나 현실적 사물이나 존재 현장성이 중시되는 삶의 공간이거나 시대적․ 역사적 현실 공간 등이 형상화로 재구성 되고 있다.
역시 시를 제시해 본다.
가) 어미의 부축으로 들어서는
나어린 소녀, 뒤틀린 사지(四肢)를 보는 순간
머릿 속 영상 하나 빠르게 재생된다
도시의 흉기 앞에 맥없이 부서지던 한 생명
아니 내 피붙이를 기억 하며
나는 이미
영상 속 아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오늘은 메스가 아닌
가느란 침으로 일그러진 뼈 짬을 뚫는다
파르르 떠는 생체반응
마비된 경락이
푸~터지자
온기가 여울처럼 돌아든다
처절한 영상도 스르르 되감기고
소녀의 미간에도
해맑은 미소가 꽃처럼 피어난다
나) 은은한 종소리 메아리를 따라
천년 화개암에 오르면
골 깊은 산사에 남실남실 띠구름 발아래 떠 있고
햇살이 실어온 청량한 바람이
화개 효종 속 깊은 울음 흔들어 깨운다
천년세월 다 어디로 갔는가
몸서리치게 불어오던 당나라 칼바람도
뒤엉킨 천 년 사직 고려의 피바람도
애환으로 감았다 메아리로 풀어내는 묵언의 종소리만
역사의 울음이듯 흐느껴 운다
어디선가 귓불에 부딪치는 소리
솔바람에 섞여
투명한 음색으로 뼛속을 파고드는 옛 선비의
글 읽는 소리는
고려 충신 ‘목은’의 낭음이 아닐까
그 소리 긴 여운 울림으로
천 년 잠을 깨우는 종소리가 된다
예시 가)는「진료 일기.1」, 나)는「화계사의 종소리」의 각각 전문이다. 예시 가)는 한의사인 화자 자신의 삶의 현장을 리얼하게 펼쳐 보여주는 시이고, 나)는 화계사라는 사찰의 종소리를 빌어 현실 공간을 형상으로 재구성해주고 있다.
사지가 뒤틀린 한 소녀를 침술로 치유시키는「진료일기」는 현장감과 현실감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침을 꽂자 마비된 사지가 풀리면서 경락이 터지는 치유과정이며, 어버이의 심경으로 인술을 베푸는 따뜻한 휴먼, 그리고 소녀의 미간에 피가 돌며 해맑은 미소를 꽃처럼 피워내는 발병과 치유와 회복 등의 연계맥락이 영상이 돌아가듯 펼쳐지고 있어 현실․ 현장은 물론 업고의식까지를 영상화하고 있다.
예시 나)는 화자 스스로의 경우가 아닌 객관적 사실을 빌어 형상으로 재구성해주고 있는데 단순한 청각으로 듣는 종소리가 아니라 종소리가 울림으로 파장해주는 천년 세월을 거슬러 읽게 해준다.
역사의 울음으로 울며 일깨우는 당나라의 칼바람이며 고려의 피바람과 같은 역사의식과 고려 충신 목은의 글 읽는 소리까지를 귀동냥 해내는 종소리는 ‘천 년 잠을 깨우는 종소리’가 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역사의식의 현장화나 현장화를 통한 리얼리티를 획득해내는 형상화는 다같이 현실공간의 재구성물들로서 화자의 건강한 삶과, 건강한 삶만이 이끌어낼 수 있는 에스프리의 값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남은 공간은 과거세에서 현실, 현실에서 지향되는 미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는 현실적 족지만이 찍어 길을 낼 수 있고, 길을 내어 걸어가 닿을 수 있는 미지성을 지닌다. 그 때문에 현실지양을 통한 새로운 세계에의 지향이자 도전이 된다. 미래는 다른 문에서 들어오는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과 시집 제목「자물쇠가 없는 문」과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자물쇠가 잠겨 있는 한 과거에로의 회귀도 미래에로의 통로도 역려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자, 연장만이 열어갈 수 있는 세계이자 공간이 될 수 있게 된다. 시를 제시해 본다.
가) 연대기를 알 수 없는 허름한 지도 한 장
몇 세기를 걸어온 갈피를 넘기자
수없이 밟고 간 문명의 자국이 손금처럼 나 있다
먼지를 털고 원시의 유적 같은
으슥한 고택의 문을 연다
바람이 이동하며 흩어 놓은 세간 속에
낯익은 인사들의 문패가 나뒹군다
눈을 씻고 다시 본다
분명 살았을 적
저승의 희망을 외치던 이름들이다
하늘을 구겨 초인을 부르짖던
“니체”도 보이고
구원을 역설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도
불국토를 설하시다 피안으로 가버린
“석가”도 보인다
초극도 구원도 자비도 그 끝은 어디쯤일까
문명의 이력이 그어놓은 지도 위에
꼬불꼬불 나있는 손금 같은 길
주소도 없이 저절로 가는 나
나) 허물 많은 가슴에
불을 질러 다오
세상 추악한 관습과
정의로운 가치에 길들지 못한 나
금실 휘장을 두르고도
시장기를 느끼는
이 심장을 태워다오
다 타버려 재가 된 후에야
일궈낼 수 있는
불씨 하나
찾을 수만 있다면
화형은 죽음 아닌 삶의
풀무질이거니
예시 가)는「저절로 가는 길」, 나)는「독백」의 각각 전문이다. 두 예시가 다같이 미래지향적 현실 저쪽의 새로운 세계나 이데아지향이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시 가)에서의, 시행 ‘초극도 구원도 자비도 그 끝은 어디쯤일까?’라고 설의한 끝의 지향, 그것은 분명히 현실 저쪽의 세계 지향이다. 그런가 하면 예시 나)에서 ‘화형은 죽음이 나닌 삶의 풀무질’이란 불사조의 이미지에 연계되는 죽지 않는 삶의 추구이자 도전이다. 이 또한 현실 밖의 세계에의 돌진이자, 돌진의 의지 지향이 될 수 있게 된다.
예시 가)에서 니체, 예수, 석가를 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종교적 궁극인 구원의 세계를 보았음과 같은 이치를 성립시킨다. 니체와 초인에서는 인간 운명의 초극으로서의 의지를, 예수에서는 천국을, 석가에서는 바라밀다의 세계를 볼 수 있는 현실 초월의 세계 지향과 맥락을 같이 하게 된다. 이것이 다름 아닌 미래 지향이자 시적 미래 공간이다.
예시 나)에서 ‘허물 많은 가슴에/불을 질러다오’라고 청유하는 것이나, 종행 ‘풀무질이거니’는 맥락이 잇대어 있다. 새로운 생명으로서의 불씨를 풀무질로 태우고자 하는 생명에의 연소는 분명 생명의 연소를 통한 새로운 생명에의 돌진을 위한 풀무질이 아니던가.
어떻든 예시들이 보여주는 구원의 세계나, 구원의 세계 지향을 위한 생명의 연소는 다같이 그 표현은 달라도 새로운 삶에의 돌진을 위한 미래 공간 설정이 되어줄 수 있다.
이상으로 김흥기 시인이 설정하고 구축한 시의 세 공간에 대한 조명은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를 집약하면 결론이 되리라.
3. 결어
시집『자물쇠가 없는 문』의 시세계를 세 공간으로 나누어 조명해본 것이 위의 글들이거니와 세 공간은 과거세, 현실, 미래라는 세 공간 설정으로 구축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은 과거세마저도 현실 공간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자아확대력의 소산물로 보여지고, 이는 동시에 자아협소화를 극복한 것이 되어 주기도 한다.
이러한 정신지향은 과거에서 현실, 현실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삶의 돌진을 통해 새 통로를 엶으로써 시적 세계를 세 공간으로 설정, 구축한 것이 된다. 시집 제목 『자물쇠가 없는 문』은 바로 이런 공간을 열어가는 시적 문이었던 셈이고, 자유로운 문 열기를 위해 자물쇠를 채워두지 않았음이 된다는데 결론은 집약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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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시집『자물쇠가 없는 문』의 시세계를 세 공간으로 나누어 조명해볼 수 있다. 세 공간은 과거세, 현실, 미래라는 세 공간 설정으로 구축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은 과거세마저도 현실 공간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자아확대력의 소산물로 보여지고, 이는 동시에 자아협소화를 극복한 것이 되어 주기도 한다.
— 박진환 박사의 시집 평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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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기 시인∥
∙ 강원도 삼척 출생
∙ 성민대학교 졸업
∙『조선문학』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
∙ 동백문학상 시 부문 수상
∙ 조선문학문인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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