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 년 청림회 육조단경 법문 68강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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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曰→ 육조스님이 말하기를
吾若言→ 내가 만약 말하되
有法與人이라면→ 어떤 도리가 있다.
꼭 고정된 어떤 법이, 법칙이 있어서 사람에게
“이것이다”라고 일러준다면
卽爲誑汝야→ 그것은 내가 너를 속이는 것이다.
계정혜가 어떻다. 뭐가 어떻다. 어떻다 해서 꼭 고정된 무엇을 한정시켜 놓는다면...
“모든 법이 다 불법이다” 그런 말이 있는데
이것만 꼭 집어서 “이것이 불법이다” 한다면 그것은 속이는 것이지요.
사기 치는 것이지요.
鍛且隨方解縛을 假名三昧다→ “隨方解縛” 이거 좋은 말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 놔야 됩니다.
“隨方解縛” 이 方자는 방향. 아니면 그 사람의 근기. 아니면 그 사람의 어떤 병.
方자는 그런 뜻으로. 방향과 어떤 근기와. 그 사람의 병과 상대. 상대의 차별성...
이런 것을 따라서 그 속박을 풀어준다!!! 이겁니다. “속박을 풀어준다”
그러니까 “◆있다”고 하는데 집착한 사람은 그 집착을 떨어줘야 되고.
“◆없다”고 하는데 집착한 사람은 없다고 하는 것을 떨어줘야 되고.
그러면 반대말을 또 해야 되는 것이지요.
▲너무 기도에 빠져 있으면, 한 곳에 빠져 있으면 병이 되거든요.
집착하는 것은 병이니까요. 그 기도 아무 소용없다고,
아무 영험도 없는 기도 뭐하려고 하냐?고 해서 그만 찬물을 쫙 끼얹어줘야
그것이 속박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신심도 없이 기도도 안 하는 사람보고는,
불교는 기도가 최고지, 기도 빼버리고 무슨 불교냐?고.
이렇게 해서 시작을 해가지고서 신심을 불어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부, 부처님이 그렇게 우리한테 펼쳐놓은
그물에 걸려들어 있다니까요.
그 어디에 걸려들어 있는지도 몰라요 우리는!!!
그것이 “隨方解縛”입니다.
병 따라서 속박을 풀어주는 겁니다. 그것이 “법”이지요.
고정된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법이다” 그렇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假名三昧다→ 거짓으로 이름을 붙이자면 그런 것을 “三昧”라고 한다.
참 “隨方解縛”이라는 말이 아주!!!
부처님의 모든 교설이 사실은 전부 “隨方解縛”입니다.
인간이 잘못 사는 데는 뭔가 그 나름대로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병을 제거 하는 데는 거기에 알맞은 방편이 있다 이겁니다.
그 방편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그 방편 다 쓰면 또 안 맞지요.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니까요.
汝師所說 戒定慧는→ 그대의 스승이 말하는 계정혜는
實不可思議也니→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아주 칭찬해주는 겁니다.
“대단하다” 이 말입니다. 여기서는!!!
“실로 아주 훌륭하다” 이 말입니다.
“不可思議”라는 말도 여기서는 훌륭하다고 해석 해야지,
계속 “불가사의다” “사유하지 못한다” 사유하지 못할 것 뭐 있어요?
“훌륭하다” 이겁니다. 칭찬해주는 말입니다.
吾所見戒定慧는→ 내가 본 바의 계정혜는
又別하니라→ 또 다르다. 너의 스승이 말하는 계정혜 하고는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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志誠이曰 戒定慧는 只合一體이어늘 如何更別이리이까
師曰, 汝師戒定慧는 接大乘人하고
吾戒定慧는 接最上乘人이니
悟解不同일새 見有遲疾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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志誠이 曰 戒定慧는 只合一體라→ 누가 말해도 계정혜는 하나일 뿐이지.
일체일 뿐인데
如何更別이리이까→ 어떻게 다를 수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師曰 汝師戒定慧는 接大乘人하고→ 대승인을 제접하고,
대승인을 상대로 해서 가르치는 것이고,
吾戒定慧는→ 나의 계정혜는
接最上乘人이니→ 최 상승인을 가르치는 것이다.
大乘人. 最上乘人. 최 상승인이라는 것을 한 차원 달리 표현한 것이지요.
앞에서 훌륭하다 했으니까요.
悟解不同일새→ 깨달아 아는 것이 같지 않음일새. 그래서
見有遲疾이다→ 계정혜를 보는 소견도 다르다 이겁니다.
遲疾. 遲= 더디고. 疾= 빠르다. 더디고 빠르다. 라는 표현이지만,
높고 낮은 것이 있고, 좋고 나쁜 것이 있고, 거기에는 또 엄청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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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聽吾說하라 與彼同否아
吾所說法은 不離自性이니
離體說法은 名爲相說이라 自性을 常迷니
須知一切萬法이 皆從自性起用하면 是眞戒定慧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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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聽吾說하라→ 내 말한 것을 그대는 잘 들으라.
與彼同否아→ 저 사람... 네 스승하고 더불어 같은가 다른가?
吾所說法은 不離自性이니→ 내가 설법하는 것은 언제든지 自性을 떠나지 아니한다.
항상 자성에다 근거를 두고 법을 설 한다 이겁니다.
靑梅祖師도 그런 말 했지요?
心不返照면 看經無益이라.
경전의 설명. 부처님의 말씀은 전부 마음에다 근거를 두고 마음이 설한 것입니다.
마음에다 근거를 두고 마음을 설하고, 마음에다 대고 설한 것입니다.
듣는 사람도 마음이고 설하는 사람도 마음이고, 또 그 소재도 마음입니다.
이야기하는 그 소재도 마음이라고요. 또 그 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설한 것입니다.
불교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다가 返照해보지 아니하면 경을 아무리 봐바야 이익이 없다고요. 남의 소리만 하는 것이지요.
不離自性이라→ 自性에서 떠나지 않는다.
離體說法은→ 心體를 떠나서 설법하는 것은
名爲相說이라→ 現相. 어떤 외형적인. 바깥세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겁니다.
집은 어떻게 짓고, 그런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것이지요.
自性을 常迷니→ 그리되면 우리 마음자리. 자성자리가 항상 미혹하게 되는 것이니,
須知→ 모름지기 알아라.
一切萬法이 皆從自性하야
起用이라→
일체만법이 전부 우리들 마음자리. 우리 자성자리로부터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겁니다.
불교에서는 저 산도 하늘도
구름도 강물도 해도 달도
전부 우리 자성자리로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 자성이 빠진데서 무슨 해가 어디 있으며
달이 어디 있습니까?
이 지구가 수억 만 년 됐다고 하지만, 수억 만 년 이라는
역사도 내가 없으면. 내 자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는 분명히 나 보다 먼저 있었잖아요?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내가 없다고 생각 했을 때,
아버지가 어디 있으며 할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결국은 내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버지이고
할아버지라고요. 과거의 많은 세월도 현재 나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이 그냥 이상한 이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그것이 진짜 맞는 소리입니다.
是眞戒定慧法이니라→ 이것이야 말로 진짜 계정혜법이다.
전부 계니 정이니 혜니 하는 것이 우리 자성으로부터...
또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흔히 계정혜를...
▲계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우리 삶의 주변 환경을 정리하는 것. 그것을 질서 있게 하고 정리하게 하는 것.
이것이 戒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이 시간에 공부하려고 오려고 하더라도,
이런저런 약속 다 미뤄놓고, 또 할 일 어지간히 바쁜 것 다 처리해놓고,
아니면 다음으로 다음 시간에 아니면 내일로 미뤄놓고,
이것을 딱 딱 정리 해놓는 겁니다. 질서있게 딱 딱 정리 해놓는 것.
그것이 戒라고요.
그러면 1시간쯤 다른 생각 아니 하고 공부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 안정이 되는 것이지요. ▲定이라고요. 일반적으로 설명을 하면 그래요.
저는 계정혜를 그런 식으로 해석을 잘 해요.
그러면 공부가 되잖아요. ▲慧 = 공부가 된다고요. 그렇게 해야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처리하지 못한 일 잔뜩 벌려놓고 공부하는 시간에 내가 전화 하겠다.
아니면 전화 오겠다. 이런 식으로 돼 있어서는 이것이 戒가 제대로 안 지켜진 겁니다.
그러면 안정이 되겠습니까? 계속 전화오고 전화해야 되고...
전화 오면 ‘아 이거 누가 전화 왔구나’ 딱 안다고요.
내가 그때 전화해 주기로 했는데 못 했으니까요.
그런 정리를 안 해놓은 겁니다. 그런 정리를요.
우리 일상생활을 그렇게 봐야 됩니다. 그런 정리를 안 해놓으니까
▲안정이 될 까닭이 없지요. 안정이 안 되면 제가 실컷 강의해 봤쨔...
▲慧 = 공부가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계속 그 쪽에 가 있으니까요.
이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고요.
그래 계정혜를 일반적으로 그렇게 해석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 생활에 제일 아주 도움이 되는 그런 戒定慧입니다.
불교를 아무리 복잡하게 설명해도 戒定慧 三學뿐이니까요 불교는!!!
육조스님이 아주 뛰어난 만고에 둘도 없는 명 해석을 해서,
여기서는 달리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戒定慧”라는 것이 그래요.
아이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 잘 되게 하려면 처리할 일.
질서 정연하게 책이나 노트 같은 것도 반듯하게 놓고, 앉아서 하면, 안정이 되잖아요?
첫째... ▲戒가 질서 이런 것들이고,
▲定은 안정이 오는 겁니다. 질서를 통해서 안정이 오는 것이고, 안정이 된 상태에서
공부하면 공부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慧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이... 집을 한 채 지으려고 해도 마찬가지고,
하루의 약속을 지키는 일도 역시 마찬가지고,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서도
마찬가지고, “계”라는 것은 정지 작업이지요.
제 69 강 - 頓漸品- 3
聽吾偈하라 曰
心地無非 自性戒요 心地無痴 自性慧요
첫댓글 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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