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언군은 욕심이 많아 시전 상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재산을 축적하였으며 나중엔 시전 상인에게 빚을 진 것을 할아버지인 영조가 알고 유배를 당하기도 했던 인물이었으며 정조가 세손이던 시절 노론 벽파를 조종하던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세손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세손으로 낙점했던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드라마에서는 홍국영이 죽은 누이(원빈)의 원혼을 달래주려 한다는 핑계로 은언군의 장자인 담을 원빈의 양자로 들이는 데 성공하는데요. 원빈의 양자는 결국 정조의 양자이므로 정조는 그토록 원하는 아들 하나를 얻게 되는 셈인데 이 일로 인해 홍국영은 누이의 죽음으로 허사가 되어버린 외척의 꿈을 다시 한번 꾸게되는 계기가 되죠. 천하의 세도가인 홍국영이 왕의 양자를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섣불리 원빈에 이은 후궁 얘기를 꺼내긴 불가능했으니 말입니다.
☞ 참고로 의빈 성씨(드라마에선 성송연)가 후궁으로 들어온 건 홍국영이 죽은 이후입니다.
홍국영은 은언군의 아들 담을 원빈의 양자로 들이자마자 그에게 완풍군(完豊君)이란 작호를 주는데 완(完)은 왕실의 본관인 완산주(전주)를, 풍(豊)은 홍국영의 본관인 풍산을 뜻하는 표현으로 담이 보위에 오르면 왕의 외숙부로서 국정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난 좋은 예라 하겠네요. 이후 완풍군은 상계군으로 작호가 변경됩니다.
그러나 이런 홍국영의 야심에 제동을 건 사람이 나타났으니 바로 정순왕후(영조의 계비)입니다. 정순왕후는 왕실 최고 어른이란 지위를 이용해 왕위계승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효의왕후(정조의 정비)가 후사를 잇지 못하니 하루빨리 후궁을 간택하라며 압력을 넣는데요. 이즈음 홍국영은 상계군 담이 자신의 마음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계군을 역모죄로 누명을 씌우는데 은언군 또한 그 여파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른바 상계군의 옥으로 말미암아 홍국영은 효의왕후를 핍박하고 왕위계승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집중적인 탄핵을 받고 원빈 홍씨의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관직에서 물러나 실각당한 후 효의왕후 김씨의 독살설로 죄를 뒤집어쓰고 가산을 모두 빼앗긴 채 유폐되어 사망하고 말죠.
정조는 자신의 이복동생들을 끔찍이 생각했는데요. 은언군의 동생인 은신군이 죽자 그 묘비에 직접 글을 썼고, 상계군의 옥으로 말미암아 강화도로 유폐된 은언군을 직접 보살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홍국영이 죽은 5년 뒤 상계군이 자살하자 노론벽파에서는 은언군마저 사사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지만 정조의 관용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한 후 나이 어린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게 되는 정순왕후가 일으킨 신유박해로 천주교 신자인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순교 당하면서, 그 파장으로 은언군 또한 사약을 받고 한 많았던 일생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의 아들중 3남인 전계대원군은 두 아들과 같이 강화도로 귀양가는데, 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전계대원군의 3남 이원범으로 후에 철종이 되는 인물입니다.
이로써 왕권과 정권을 놓고 벌어진 소용돌이 속에서 왕이 되지 못하는 왕자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은언군 또한 철저히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데 그것도 모자라 자신들을 죽게 만든 왕실에 대를 이어주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훗날 은언군은 자신의 손자인 철종이 왕이 되면서 신원이 회복됩니다. 홍국영의 야욕에 편승하여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 했던 은언군의 꿈은 그가 죽은 후 손자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