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쿠사 1 - 우토역에서 버스로 아마쿠사섬 혼도에 도착하여 크리스천 박물관에!
*** 5월 11일 부터 6월 2일 까지 23일간 유럽 여행을 다녀 오느라 그간 여행기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
2025년 12월 7일 구마모토 스이도쵸역 (水道町駅) 에서 A선 타사키바시 (田崎橋) 행
전철을 타고 9정거장 을 가서 구마모토역 (熊本駅) 에 도착해 이코카
카드를 개찰구에 터치하고는 들어가 기차를 타고 우토에키 (宇土駅 우토역) 에 내립니다.
택시를 타고는 우토조아토 (宇土 古城 (宇土城跡) 에서 내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 우토성 혼마루를
구경하고는 걸어 오다가 택시를 불러 타고 우토역에 도착하는데, 처음에는 기차로 미스미항으로
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미 아마쿠사에 상륙해 구경하고는 버스로 아마쿠사로 갈 생각이았습니다.
그러나 11시 47분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우토역 동구에서 13시 03분 아마쿠사호 (あまくさ号) 버스를 타는데
이 버스는 구마모토의 사쿠라 버스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로 서쪽으로 달려서 미스미역에 도착하는데....
버스가 서는 곳이 미스미 서항이라 들었지만, 오늘 보니 역 앞에 미스미동항 못미쳐 피라미드 옆 광장에 섭니다.
그러고는 버스는 되돌아 나와서는 고가 도로로 올라가서 바다에 놓인 긴 다리를 지나 가미
아마쿠사 섬에 도착하는데..... 바다를 보니 문득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 씨가
동아일보 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 라는 칼럼에 쓴 겨울 여행의 묘미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에요.”
― 미야케 쇼 ‘여행 과 나날’
내게 여행은 겨울이 제철이다. 휴양이나 관광이 아닌 어딘가 새롭고 낯선 곳에서 새 경험을 하는 의미로서의 여행
이라면. 이 의미에 딱 맞는 영화가 심은경이 출연한 영화 ‘여행과 나날’ 이다. 미야케 쇼 감독이 연출한 일본
영화지만 심은경은 이 작품에서 슬럼프에 빠진 한국인 각본가 ‘이’ 로 출연해 한국어와 일본어를 오가며 연기한다.
심은경 배우 자신이 언어를 넘나들며 연기하고 느꼈던 ‘여행의 경험’ 이 영화 속 ‘이’ 라는
인물과 맞닿아 있다. 언어가 익숙해지는 순간 새로움의 긴장감이나 설렘이
사라지는 것 처럼, 낯선 곳도 익숙해지면 일상이 되어 버린다. 언어와 여행이 비슷한 이유다.
“나는 말(言) 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여행이란, 말에서 도망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이는 그렇게 말하며 여행을 떠난다. 눈발이 날리는 설국의 지도에도 없는 깊은
산속 여관에서 무심하고 퉁명스러운 주인 벤조와 지내게 된다. 사실 굉장한 모험이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엉뚱한 짓을 함께하고 그의 숨겨진 사연을 알게 되면서 이는 말한다.
“이렇게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에요.” 하지만 함께한 그 경험이 벤조에게는
일상으로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똑같은 경험도 여행자에게는
새롭고 즐거운 일이지만, 일상으로 살아가는 이에게는 그저 그런 일이다.
‘여행과 나날’ 은 이처럼 ‘여행’ 이라는 낯설고 새로운 경험과 ‘나날’ 이라는 익숙해져 틀에 갇혀 버린
일상을 병치해 놓은 영화다. 움츠러들기 마련인 추운 겨울이 오히려 여행의 제철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말과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고픈
분들이라면 눈 내려 길 조차 지워진 곳으로 떠날 일이다. 진짜 삶의 즐거움을 찾을지도 모를 테니.
겨울 12월에 여행중인 나로서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새에 다시 뗘오르는게 있으니....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동아일보 ‘ 김창일의
갯마을 탐구’ 라는 칼럼에 “ 꽃게가 ‘게의 대표’ 자리를 꿰찬 사연 ” 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암꽃게가 한창 잡히는 철이다. 꽃게잡이의 전진기지인 연평도에 쾌속선을
타고 가는 내내 알이 꽉 찬 해꽃게를 먹을 기대감에 마음이 들떴다.
내릴 준비를 하며 여객선에서 바라본 연평항은 여느 때와 다른 풍경이었다.
연평도에서 사계절 동안 거주하며 해양문화를 조사했던 경험에 비춰 보면 이상하리만치 항구가 적막했다.
어선에 가득 실린 꽃게를 내리고 그물에서 꽃게를 떼어내느라 분주하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행과 연평도 곳곳을 둘러본 뒤 어촌계 사무실을 찾았다. 4월 말인데도 꽃게가 전혀 보이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예년에는 금어기가 풀리는 4월 1일부터 꽃게 어획으로
섬 구석구석 비린내가 진동하지 않았느냐며 어촌계장에게 물었다. 올해는 저수온
으로 금어기가 해제된지 한달이 됐는데도 꽃게를 잡지 못하고 있어 어민들이 공황상태라고 했다.
골목길을 걷다가 알고 지내던 어민을 만났다. 산더미처럼 쌓인 꽃게를 기대하고 왔다며 인사를
건넸더니 푸념을 늘어놨다. 그는 “지난해 연평어장 꽃게 어획량이 최근 5년 사이 최저치였다.
꽃게잡이는 4, 5년 주기로 풍어와 흉어를 반복하는데 지난해가 흉어였으니 올해는 많이 잡을 줄 알았다” 며
한숨을 쉬었다. 연평도에서 사흘을 보내는 동안 꽃게를 한 마리도 보지 못한채 돌아가는 여객선을 탔다.
인천항에 도착해 경기 파주시로 귀가하는 중 방송작가로부터 꽃게와 참게에 관한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았다. 집에 다다랐을 때 인근 음식점에서 크게
써 붙인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 메뉴 참게 매운탕 할인’ 이라는 글귀 였다.
우연한 사건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꽃게잡이 전진기지인 연평도에서 해꽃게를 맛보지 못한 아쉬움
을 참게로 풀자는 생각이 스쳤다. 파주는 임진강을 품고 있어서 참게 잡이의 중심지가 아니던가.
사실 조선 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가까운 하천에서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참게를 많이
먹었다. 어해도 등 조선의 회화에 나타나는 게 종류도 꽃게가 아니라 대부분 참게다.
‘참’이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참게는 게를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참게의 위상은 작아졌다. 폐디스토마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섭취를 꺼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1924년 5월 2일자 동아일보는 ‘원래 게장은 특별한 풍미가 있는 음식으로 술상과 밥상에 없으면 안될
진미가 되었으나, 실상은 이 맛있는 음식이 해소와 혈담을 자아내는 토질 (폐디스토마) 의 원인’ 이라고
보도했다. 또 농약 사용, 하천 오염 등으로 참게 개체 수는 점진적으로 줄어든 반면 꽃게 어획량은 증가했다.
1960년대 까지는 조기 어장과 꽃게 어장이 겹쳤는데 꽃게가 잡히면 물고기에 상처를 내고
그물에 걸린 꽃게를 떼어내기도 어려워서 꽃게를 성가시게 여겼다. 또 꽃게는
상온에서 빠른 속도로 부패하기 때문에 많이 잡더라도 냉동시설이 없으니 유통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1960년대 후반 조기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대체 어종으로 꽃게가 떠올랐고 1970년대에 외화벌이
수단으로 꽃게가 일본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급랭창고가 보급되고 유통이 발달하면서
국내 소비가 늘었다. 내륙의 도시인이 본격적으로 꽃게탕과 꽃게찜 등의 음식을 먹은 건
1970년대 이후라 할 수 있다. 꽃게 음식이 대중화되면서 게를 대표하는 이름은 참게에서 꽃게로 옮겨갔다.
우리 버스는 가미 아마쿠사 섬의 여러 정류소에 서고는 시모 아마쿠사 섬으로 건너와
내처 달려서 고가도로를 타고 2시간 10분 만인 15시 15분에
아마쿠사 섬의 중심인 혼도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는데..... 요금은 2,450엔씩 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밖으로 나와 우리 호텔 선로드 (ホテルサンロード ) 를 찾는데..... 분명히 여기 혼도 버스
터미널에서 보면 보이는 장소이건만 쉽게 찾지를 못해 다시 버스 터미널로 들어가 여직원에게 물으니
이 아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뛰다시피 사무실을 나와서는 다시 터미널 밖으로 우리를 데리고 니갑니다.
아가씨는 버스 터미널을 뒤로 하고 몇발자국 걸은후 손가락으로 건너편 건물을 가리키는데..... 그러고
보니 호텔처럼 생기긴 했는데 여기서는 호텔 간판이 전혀 보이지 않기로 도로를
건너가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그것도 아주 작은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대개는 엄청 친절한지라 버스 터미널 안에 사무실에 앉아 사무를 보던 아가씨가 우리가
호텔을 물으면 그냥 밖으로 나가 도로 건너편에 있다고 한마디만 해도 될 터인데 이처럼
역부러 일어나 사무실을 나오고 다시 터미널을 나와 데려다 주는 친절은 일본에서는 아주 흔한합니다.
일본 여행시 이 정도의 친절은 수없이 겪은지라 이제는 별로 고맙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아 돌아가는
아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말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규슈 오이타현 남쪽 기쓰키 (杵築) 를 구경하고는 벳푸 (別府) 로 가는 기차를 타러
기쓰키 역 (杵築駅) 으로 가야하는데 버스가 막차라 운행을 하는지 알수 없으니 택시를
타려는데 일본 중소 도시에서는 택시가 손님을 찾아 돌아다니지 않는지라 전화로 불러야 합니다.
마침 버스 정류소 옆에 “商工會議所” 라는 건물이 있어 수첩에 한자로 적기는 했는데
일본어로 어찌 발음하는지 모르겠는데.... 도로에 지나다니는 행인이 전혀
없는지라 물어 보려고 상공회의소 건물에 들어가니 수위실이 없고 넒은 사무실 입니다.
모두들 바쁘게 일하거나 의논하는 중이라 차마 말을 붙이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그러자 나를
발견한 20대 여직원이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고 그 뒤에 50대 남자는 아예 달려 나옵니다.
아마도 상공회의소에 온 고객이나 아님 민원인으로 생각했던 모양인데 달려오는 그 서슬에
내가 놀라고는, 수첩을 내보이며 택시 회사에 전화를 하려는데 하쯔옹(발음) 이
어찌되는지 물어 보니..... “ 쇼교카이쇼” 라고 말하기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나옵니다.
그럼 이제 여기서 조금 기다리다가 버스가 오지 않으면 택시 회사로 전화를 해서 "다쿠시 데스까?
와다시와 고코니 소교카이소마에니 이마스. 난분 구라이 카카리마스카? " 라고 말하면
되는데,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으니 단어 몇개와 간단한 문법만 알면 되는 쉬운 언어 입니다.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바로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이번에는 30대 남자 직원이 종이와 볼펜을
들고 뛰어나오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줄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 버스 정류소에 교외에 있는 기차역에 가는 마지막 버스가 10여분 남았는데 오지 않으면
전화를 할 예정이라고 하니,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자기가 도와줄수가
있으니 서슴치 말고 다시 상공회의소 사무실로 들어오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더라는....
그때 비하면 오늘 저 사무실 여직원이 버스 터미널 밖으로 뛰쳐나온 정도에 불과하니... 호텔로 들어가
체크인을 한 다음에 호실을 배정받는데, 한국말로 방이 하나 밖에 없다기에 깜짝 놀랍니다.
실은 첫 번째 인터넷에서 2인용 더불룸을 신청해 이메일로 부쳐져온 바우처를 받아보니 나만 인적
사항이 적힌지라 취소하고는 재차 마눌의 이름까지 넣어 신청했기로 그게 잘못됐나 싶어
놀랐더니, 침대가 하나지만 둘이서 잘 만큼 넓다니요? 쓸데없는 말이네.... 그게 더불룸이지?
그러고는 방으로 들어가 간단히 샤워만 하고는 다시 내려와서는 시내 지도를 받은 다음 내일 아침 식사를
신청하니 아가씨가 16절지에 인쇄된 8가지 메뉴를 보여주기에 그 중에 일본 가정식을 선택하는데....
놀랍게도 아가씨가 서툴지만 한국말을 조금 하기에 혼도 온천센타와 아마쿠사 크리스천 박물관 (Amakusa
Christian Museum. 天草 キリシタン 博物館 )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그러는
사이 마눌은 빨래들을 모아 호탈 내에 있는 코인 세탁기에 넣는데 세탁은 300엔이고 건조는 100엔이랍니다.
밖에 택시가 돌아다니지 않는 것 같아서 택시를 불러달라니 전화를 하는데... 5분을 기다려 택시를
타고 아마쿠사 크리스천 뮤지엄! 이라니 못알아 듣기에 아마쿠사 크리스쳔 하쿠부쓰칸
이라고 해도 고개를 갸웃거리니.... 여행 계획서에 적힌 한자를 보여주니 그제야 알아듣습니다?
내 일본아 발음이 서툴러서 그랬던 모양인데, 택시는 15분 이상을 시내를 가로질러 달려서는 드디어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게 구불구불 한찬 올라가서는 서는데..... 미터기 요금은 1,400엔이 나옵니다.
산의 돌출한 언덕이라 아마쿠사시의 시가지가 잘 내려다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서는 300엔씩 입장료
를 내고 함국어 팜플렛을 받으니, 나이든 남자 직원은 우릴 데리고 가서 기독교 영상물을 틀어줍니다.
그러고는 박물관으로 들어가서 서양 선교사들이 나가사키에서 건너와 교회를 세우고는 아마쿠사
섬이 "기독교도들의 섬" 이 된 과정에다가 훗날 에도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시마바라의
반란이 일어난 과정을 을 설명하는 자료들이 많은데, 사진 촬영 불가라 찍지 못하는게 아쉽습니다.